피부밑 두개골 탐정 코델리아 그레이 시리즈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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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탐정사무소의 대표가 된 코델리아 그레이.

연이어 협박 편지를 받고 있는 여배우의 신변을 지키는 것과 함께

협박 편지를 보낸 자를 찾아내라는 의뢰를 받은 그녀는

개인 소유의 섬에서 소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한 연극에 출연 예정인 여배우를 따라

갑자기 며칠간 섬으로 외유를 떠나게 되자 사뭇 들뜬 기분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섬에 들어온 이후 사람과 풍경이 일제히 내뿜는 불길한 기운을 느낀 코델리아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지자 큰 충격에 빠지고 맙니다.

 

● ● ●

 

P.D. 제임스는 영국의 대표적 미스터리 작가지만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몇 편 없습니다.

그녀의 대표 캐릭터는 시인이자 경관인 애덤 달글리시지만,

최근 한국에서 출간된 P.D. 제임스의 두 작품은 여성탐정 코델리아 그레이 시리즈입니다.

재미있는 건, 시리즈 첫 편인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1972년에 출간됐는데

후속작인 이 작품은 10년 후에야 출간된 것은 물론 시리즈 마지막 작품이 됐다는 점입니다.

전작인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무척 재미있게 읽은 덕분에

단 두 편뿐인 시리즈에 대해 무척 아쉬워하면서 남은 한 편의 출간을 고대해왔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작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은 책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인 오스틴과 애거스 크리스티의 우아한 유령이 공동 작업을 했다면?”이란 카피처럼

이 작품은 서늘한 미스터리와 영국 특유의 유려하고 삐딱한(?) 순문학의 향기가 혼재돼있는데

이런 뉘앙스는 전작에서도 맛깔스럽게 잘 버무려져 특별한 재미를 준 바 있습니다.

하지만 피부 밑 두개골은 미스터리라고 하기엔 제인 오스틴의 유령이 압도적으로 강세였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유령은 네이밍 자체가 무안할 정도로 왜소하고 소박할 뿐입니다.

 

고백하자면, 552p 중 제대로 읽은 것은 초반 200p와 마지막 100p 정도였고

중간의 250p 이상의 분량은 등장인물의 대화만 읽은 게 사실입니다.

섬의 잔혹한 역사 및 어딘가 수상쩍은 연극 공연에 대한 사전 설명과

코델리아를 포함, 섬에 들어가기로 돼있는 인물들의 비밀스런 전사(前史)를 설명한 초반부는

제법 긴장감도 넘치고 맛깔난 영국 순문학의 문장들을 만끽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목이지만

(초반부의 이 만족감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 분명한 성실한 번역 덕분입니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뒤의 지루하고 진전 없는 이야기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지루했습니다.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의 서평에서도

풍경이나 사람에 대한 지나치게 세밀하고 장황한 묘사가 잦아서

책읽기의 흐름을 뚝뚝 끊게 만드는 경우가 적잖았다.”라고 지적한 적 있는데,

피부 밑 두개골은 그 정도가 지나친 나머지 도저히 미스터리에 몰입할 수 없었습니다.

 

코델리아가 탐정으로서 활약하는 대목은 너무 미미하고 별로 극적이지 않았고,

마지막에 밝혀진 진실은 이 작품이 굳이 552p라는 분량이 필요했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작가의 그리려던 궁극의 목표와 미덕이 무엇이었는지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섬을 온통 도배하고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에 대한 엄청난 설명이라든가

소품과 풍경에 대한 지나치게 디테일한 묘사들이 적절한 수준으로만 유지됐다면

훨씬 더 매력적인 작품이 됐을 거란 아쉬움이 마지막 장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350p 분량이라면 딱 어울리는 작품이었다고 할까요?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작품에 대한 저의 한 줄 평은 다음과 같습니다.

코델리아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던 역할 때문에 그녀의 매력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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