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리튼 키
미치오 슈스케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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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여 페이지의 단출한 분량이지만, 읽는 것도 서평 쓰기도 참 난감한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 중 어느 것과도 비슷한 경향이라고 할 수 없으니

이 또한 독자로서, 서평 쓰는 1인으로서 곤혹스러운 상황입니다.

물론 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작품은 거의 못 읽은 처지라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마지막 장을 덮은 이후의 솔직한 느낌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읽은 게 사이코패스 이야기인지, 피와 뼈가 날뛰는 하드코어 폭력물인지 모르겠군.”

 

좀 매크로하게 정리하면,

전반부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사이코패스임을 인지해온 남자가

언제 폭발할지 모를 자신의 폭주를 막고 평범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중반부는 어느 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뒤 패닉 상태에 빠진 남자가

사이코패스로서의 본색을 드러냄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후반부는, (작가가 앞부분에 대놓고 제시한 결정적 트릭을 놓친 탓이지만)

갑작스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피와 뼈가 날뛰는 하드코어 서사가 전개되다가

어딘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감동적이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뭐랄까... 한 작품 안에 적어도 두 개의 이야기가 혼재된 느낌이랄까요?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결국 중반부에 등장하는 결정적 트릭에 의해 갈라질 것 같은데,

스스로 사이코패스임을 인지하고 있는 한 남자의 1인칭 고백 서사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에 궁금함과 매력을 느끼고 열중하던 독자라면

중반부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결정적 트릭때문에 맥이 탁 풀릴 수도 있겠지만,

그 트릭에 대해 아무 거부감도 없거나 오히려 재미있다고 느낀 독자라면

그 뒤로 이어지는 피와 뼈가 날뛰는 액션 서사에 더 열광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읽은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들 중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잘 읽었다~!”라고 만족했던 작품은 외눈박이 원숭이뿐이었습니다.

랫맨은 뭔가에 취한 상태에서 읽은 듯 어질어질한 기분이었고,

투명 카멜레온은 이것저것 뒤죽박죽 믹스가 된 소동극을 본 느낌이었고,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은 심지어 초반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한 작품이었습니다.

 

미치오 슈스케가 여러 장르를 섭렵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작품 안에 두 개의 서사가 내장된 듯한 스켈리튼 키

저 같은 단순한 독자가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중반부의 결정적 트릭없이 1인칭 사이코패스 이야기로 마지막까지 전개됐더라면

어쩌면 평범한 미스터리 이상의 매력을 지녔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저의 이런 기대야말로

이 매력적인 작품을 평범하게 격하시킬 수 있는 무지함의 결과라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의 서평을 찬찬히 찾아보면 제가 놓친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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