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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0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평점 :
해리 홀레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입니다.
두 번째 작품인 ‘바퀴벌레’만 빼고 모두 읽었으니 나름 해리 홀레의 광팬인 셈인데,
역설적이긴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매번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뭔가 개운하지 않은 심정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사건 못잖은 분량을 차지하는 디테일해도 너무 디테일한 심리묘사들,
두어 번은 되읽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거나
심지어 몇 번을 되읽어도 도저히 모르겠어서 그냥 넘어간 적이 허다했던 난해한 문장들,
그리고 사건이 해결됐음에도 깔끔하게 그 과정을 정리할 수 없게 만드는 복잡다단한 구성 등
영미권은 물론 북유럽권 장르물 중에서도 유독 난이도가 높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이 매번 시리즈 신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신비로운 느낌?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난해함?
또, 엄청난 분량에 담긴 방대한 서사, 참혹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들,
몸과 마음 모두 만신창이지만 천재적인 감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해리 홀레와
그를 둘러싼 매력적인 조연들의 캐릭터 덕분에 분명 고난의 책읽기(?)가 될 걸 알면서도
신간 소식이 들리면 귀를 쫑긋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직전 작품인 ‘팬텀’이 시리즈 가운데 그나마 쉽고 선명했던 작품이라
‘폴리스’도 그 정도 서사라면 두통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고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딱 중반부 정도까지였습니다.
제목대로 ‘폴리스’는 오슬로 경찰들이 주연과 조연과 단역까지 모두 도맡은 작품입니다.
미제사건 현장에서 과거 그 사건에 관여했던 경찰들이 참혹하게 살해당하고,
미미한 단서들을 쫓던 해리와 경찰들은 어쩌면 범인이 경찰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합니다.
하지만 요 네스뵈는 사방팔방에 용의자들을 뿌려놓고 단서들을 흩어놓습니다.
게다가 경찰 내부에서 벌어지는 암투, 갈등, 불륜, 동성애, 음모까지 중요하게 묘사되면서
과연 ‘폴리스’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어마어마한 서사가 전개됩니다.
그 어느 작품에서보다 행복과 불운의 경계선에서 위태위태한 행보를 보이는 해리는
정식 경찰이 아니라 군나르 하겐이 이끄는 ‘보일러실 팀’의 자문 역으로 수사에 참여하는데,
몇 차례의 죽음의 고비를 넘기도 하고, 오랜 동료를 잃는 깊은 슬픔에 잠기기도 하고,
끊었던 술의 유혹에 넘어갈 뻔 하기도 하고, 겨우 손에 넣은 행복을 놓칠 뻔 하기도 합니다.
결국 거의 원맨쇼에 가까운 그의 비범한 능력 덕분에 사건은 해결되고,
어느 전작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의 행복한 엔딩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든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저기 깔아놓은 복선과 단서와 힌트들을 내가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나?
왜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에서 ‘아!’ 대신 ‘어?’ 소리가 나온 거지?
작가가 여기저기 흩뿌려놓은 나머지 용의자들은 왜 등장했고, 어디로 간 거지?
범인의 동기는 공감할 만 했나? 그의 잔혹한 범행수법은 동기와 잘 어울리는가?
해리 홀레를 이해하고, 그가 마주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깔끔한 맨 정신으로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게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해리처럼 살짝 맛이 간 상태, 그러니까 그에게 충분히 이입한 상태에서 읽어야
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지금까지 시리즈를 읽은 저의 나름의 방법론인데,
그와는 무관하게 ‘사건과 팩트’마저 이렇듯 애매할 때는 참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방대한 분량을 다시 읽으면서 체크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시리즈 11번째 작품인 ‘The Thirst’가 출간되면 또다시 궁금증이 일 게 분명하고,
이 어렵고 머리 아픈 책읽기에 덤벼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 역시 분명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시리즈 첫 편부터 하나하나 메모해가면서 되읽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엄청 부담스러운 계획이긴 하지만, 그래도 해리 홀레와 그가 마주한 사건들의 실체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