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죄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은모 옮김 / 달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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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이 나오면 늘 찾아 읽는 작가 중 한 명이 야쿠마루 가쿠인데,

지금까지 모두 여덟 편의 작품을 읽었고 우죄는 아홉 번째 만나는 작품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재미 면에서는 지금껏 읽은 작품 중 꽤 낮은 편에 속하고,

메시지라는 면에서는 그 어느 작품보다 직설적이고 좀 과한 편에 속합니다.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은 아무리 개인의 문제라 하더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엔 구조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즉 독자에게 미스터리의 재미와 함께 묵직한 사회적 이슈를 동시에 던진다는 뜻입니다.

재미있게 읽었던 그의 작품 대부분이 재미와 메시지의 균형을 잘 잡아왔던 반면,

우죄는 다소 단선적인 구조와 예측 가능한 엔딩 때문에 재미는 반감됐고

거꾸로 작가의 메시지는 동어반복 또는 강요라고 느껴질 정도로 지나쳤다는 생각입니다.

 

(아래는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포함돼있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에도 다 나오는 내용이긴 하지만

다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아직 안 읽은 독자라면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죄(友罪)’는 한자 그대로 직역하면 친구의 죄쯤 될 수 있고,

출판사 소개대로 일본 발음으로 유죄(有罪)와 동음이의어인 중의적 의미를 갖고 있는데,

다 읽고 보면 결국 친구 또는 연인의 죄는 아직도 유죄?’ 정도로 해석됐습니다.

 

스즈키는 중학생 때 어린 소년들을 무참히 살해했지만 법적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촉법소년인 그는 의료소년원에서 6년간 치료를 받은 뒤 퇴소했는데,

과연 이러한 조치가 적절한 처벌인지, 그는 더 이상 위험한 존재가 아닌지,

그가 진심으로 속죄했다면 이제 누구도 그를 편견으로 봐서는 안 되는 것인지,

누구도 쉽게 정답을 이야기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스즈키의 친구가 된 마스다,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스즈키를 사랑하게 된 미요코,

그리고 의료소년원에서 어린 살인마스즈키를 어머니처럼 돌봐주고 치료했던 야요이 등

스즈키 주변의 인물들이 챕터마다 화자를 맡아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워낼 수 없는 참혹한 과거입니다.

친구의 왕따와 자살을 방치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인생 전체가 비틀어진 남자,

자의반 타의반으로 노골적인 성인영화에 출연했던 탓에 세상의 눈이 두려워진 여자,

남의 자식의 갱생을 돕느라 정작 자신의 자식을 방치했던 어머니 등이 그것입니다.

말하자면 스즈키를 포함, 등장인물 모두 과거사의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물론

현재의 삶까지 피폐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스즈키의 정체를 알게 된 뒤, 또는 스즈키의 행방을 알게 된 뒤

두려움 또는 혐오감, 그리고 동정심 또는 이해심이 뒤섞이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내가 과거를 지워내고 싶듯이 스즈키도 속죄를 통해 과거를 지우고 싶은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살인마였던 스즈키를 친구나 연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스즈키를 그가 원하는대로 그대로 세상 속에 놔줘도 되는 걸까?

바로 이런 정답 없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재미 면에서 덜하다고 평한 건 이야기의 볼륨이나 구도에 비해

이 질문들을 위해 설정된 에피소드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다소 과도했기 때문입니다.

또 주인공들은 물론 중요한 조연에게까지 부여된 끔찍한 과거를 지닌 캐릭터역시

인공미가 너무 강해서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됐습니다.

 

과거의 행적만 놓고 보면 나카야미 시치리의 대표 캐릭터 미코시바 레이지가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 토막살인을 저지르고도 촉법소년이라 의료소년원에 보내졌고

이후 최강의 변호사가 됐지만 늘 속죄의 문제를 안고 있는 인물입니다.

스즈키와 미코시바는 성인이 된 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역시 속죄라는, 이행하기도, 타인들의 인정을 받기도 쉽지 않은 화두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미스터리로서 매력적인 화두이긴 하지만, ‘우죄는 작가의 메시지가 너무 강한 나머지

이야기의 힘이 반감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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