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카토르는 이렇게 말했다
마야 유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날개달린 어둠에서도 어느 정도 맛보기는 했지만,

주인공 메르카토르 아유의 진정한 재수 없음(?)과 끝을 알 수 없는 자아도취 기질,

그리고 사건 현장 도착과 동시에 진상을 파악해내는 신출귀몰함은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메르카토르 아유의 캐릭터를 단 한 줄로 잘 요약해놓았는데,

메르카토르 아유 가라사대, 내 말은 곧 정답이다.”가 그것입니다.

 

턱시도, 나비넥타이, 실크해트로 치장한 명탐정 메르카토르와

조수이자 친구이며 늘 구박당하고 무시당하는 추리소설 작가 미나기 산조 콤비가 활약하는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죽은 자를 깨우다는 별장 카레장에 놀러갔던 고교생들 사이에서

1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변사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규슈 여행은 이른 새벽 미나기의 옆집에서 발견된 변사체 사건을,

수렴은 종교단체가 머무는 섬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대답 없는 그림책은 지진이 일어난 직후 고교 건물에서 한 인물이 살해된 사건을,

밀실장은 밀실이나 다름없는 별장에서 발견된 의문의 변사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요약해놓은 설정들만 보면 미스터리 단편집에서 다룰 법한 보편적인 소재들이지만,

작가는 일반적인 진범 찾기와는 전혀 다른 전개와 해결방식을 택합니다.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은 물론 시간대와 장소까지 알면서도

주인공이 사건 해결을 위해 일부러 모르는 척 방치하는 경우도 있고,

변사체를 앞에 두고 소설의 소재로 삼기 위해 이리저리 창작을 일삼는가 하면,

심지어 살인사건은 맞지만 범인은 없다.”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배신감과 쾌감을 함께 안겨주는 작품이라는 인터넷 서점의 소개 글을 본 순간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위화감의 실체를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상식적이지 못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뒤통수를 맞은 듯 쾌감을 느낀 작품도 있지만,

다 읽은 뒤 배신감은 물론 불쾌한 기분까지 든 작품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흐트러진 퍼즐 조각들처럼 복잡하게 널려있던 단서들이

메르카토르의 빈틈없는 추론과 눈썰미 덕분에 하나씩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쾌감 이상의 경탄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진범은 누구인가?’라는 당연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무시한 채

내가 그리 말했으니, 그것이 정답이다.”라는 식의 엉뚱한 궤변만 늘어놓으며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낸 채 마무리할 때는 말 그대로 배신감과 불쾌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호감을 느낀 작품을 꼽아보자면, ‘수렴규슈 여행인데,

탐정 메르카토르의 매력과 작가 마야 유타카의 필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수작이었습니다.

 

일본 아마존 리뷰 가운데, “평범한 추리소설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할 수 없다.”

부조리한 결말, 정말 이걸로 끝인가?”라는 꽤 비판적인 언급들이 많이 있는데,

수록된 모든 작품에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아무튼...

과정이야 어쨌든 진범은 명쾌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믿는 분들께는 비추,

엉뚱하거나, 독특하거나, 본 적 없거나, 그야말로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분들께는 강추,

이것이 메르카토르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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