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 것이었던
앨리스 피니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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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원제는 ‘Sometimes I Lie’, 나는 가끔 거짓말을 한다.’입니다.

다 읽고 나면 이렇게 제목을 지은 이유는 물론 제목에 담긴 의미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번역 제목이 훨씬 더 작품 내용과 주인공의 심리를 잘 반영했다는 생각입니다.

제목대로 원래 내 것이었지만 누군가에게 빼앗겼던 것을 되찾는 이야기에 가까운데,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단선적이고 상투적인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복잡한 형식과 내밀한 심리묘사, 그리고 서술트릭의 맛까지 더한 놀라운 반전을 통해

심리스릴러 이상의 풍성한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세 명의 관점에서 전개됩니다.

교통사고로 몸은 코마상태에 빠져있지만 놀랍게도 의식만은 멀쩡한 현재의 앰버’,

사고 발생 전 며칠 동안 끔찍한 사건들을 연이어 겪어야만 했던 과거의 앰버’,

그리고 꽤 오래 전, 자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독한 일기를 남긴 ‘10살 소녀가 그들입니다.

 

현재의 앰버는 자신이 사고를 당한 기억조차 휘발된 채 코마상태에 빠져있지만

놀랍게도 병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대화, 체취, 분위기 등을 모두 감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말 한마디, 몸짓 하나로라도 자신의 의식이 깨어있음을 전달하고 싶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앰버는 계속 무기력한 코마상태를 유지할 뿐입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누구인지 끊임없이 추정하는데,

앰버가 볼 때는 남편 폴과 여동생 클레어가 가장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하지만 낯선 남자의 방문을 받은 뒤로 앰버는 큰 혼란에 빠집니다.

 

라디오방송 스태프로 일하던 과거의 앰버

오만하기 짝이 없는 유명 라디오 진행자 매들린 때문에 실직 위기에 처합니다.

하지만 앰버는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란 기치 아래 매들린을 파멸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 와중에 오래 전 헤어진 남자친구 에드워드가 나타나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남편 폴과 여동생 클레어는 사사건건 앰버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사이코패스로 성장할 게 분명한 10살 소녀의 일기장이 끼어듭니다.

부모에 대한 증오심과 유일한 친구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애정으로 똘똘 뭉친 이 소녀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거짓말은 물론 그 어떤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과연 이 소녀의 일기장이 앰버의 이야기와 어떻게 맞닿게 될지 내내 궁금했는데,

작가는 단 한 줄의 반전을 통해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칩니다.

 

이 작품은 줄거리 정리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출판사 소개글이 본 이야기와 다소 동떨어진 팩트 나열에 그친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이는데,

결국 원래 내 것이었지만 누군가에게 빼앗겼던 것을 되찾는 이야기

가장 함축적인 한 줄 카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의 핵심적인 의문만 정리해보면...

 

앰버를 코마상태에 빠뜨린 것은 누구인가?

앰버가 남편 폴과 여동생 클레어를 의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고 직전 앰버를 곤란에 빠뜨린 라디오진행자 매들린과 전 남친 에드워드는 왜 등장했는가?

앰버는 코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난다면 원래 내 것이었던것들을 되찾기 위해 앰버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이 의문들과 함께 독자는 읽는 내내 곳곳에서 미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딱히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기에 계속 불편함을 지닌 채 책장을 넘기게 되는데,

결국엔 이 크고 작은 위화감들이 차곡차곡 쌓여 막판 반전의 밑거름이 됩니다.

그리고 작가의 설계도가 얼마나 촘촘하고 정교하게 그려졌는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

 

고백하자면, 400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 딱 세 번 중도포기할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반전은 놀랍고 결말은 신선하지만, 거기까지의 지루함은 너무 길다.”라는 한 독자의 서평은

제가 중도포기하려 했을 때의 심리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데,

다소 지루하고 장황한 심리묘사, 세 갈래의 시점 덕분에 불분명해진 이야기의 정체성,

위화감만 가득할 뿐 방향성을 잃은 듯한 미스터리 등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불만이 임계점을 넘은 독자라면 어쩌면 반전을 보고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뭘 읽은 거지?’라는 혼란과 함께

반전을 위한 반전’, ‘부자연스러운 억지 전개라는 회의가 들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제 경우 반전 이후 엔딩까지의 깔끔한 정리 덕분에 불만은 어느 정도 사그라졌지만

서평을 쓰는 지금까지도 이 작품의 큰 그림이 다소 혼란스럽게 여겨지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원래 내 것이었던은 개인적으로는 두 번은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반전을 알고 읽으면 첫 책읽기에서 안 보였던 진짜 매력이 보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심리묘사로 꽉 찬 400여 페이지를 다시 읽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두 번째 책읽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인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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