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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글.사진 / 문예중앙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진은 변하지 않았다. 탄생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똑같다. 사진이 거짓말을 했다면 사진을 다룬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사진은 스스로 사실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사실로 받아들여달라고 한 적도 없다. '사실 그대로만 말한다'고 선언한 적도 없다.(p.34-35)


별다른 생각 없이 책을 읽어 나가다가 문득 이 한 장의 사진과 엮인 문장에서 덜컥 가슴이 멈췄다. 일종의 항변과도 같이 '사진은 스스로 사실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말하는 것에 새삼 감동이 와 닿았던 까닭이다. 왜 그랬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동안 하이브리드적 기교와 변형으로 포화된 작품들에 익숙해져 사진의 '사실이 아님'을 너무 당연시 해왔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사진가의 예술적 영감과 솜씨로 진행된 작업이었기에 카메라 자체에도 '변형'이라는 본연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지냈던 것이다. 한마디로 한낱 기계에 불과한 카메라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의 묘사요, 그것을 사실 이상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 암암리에 동의했었다.

이 부분에서 멈춰서며 혹시 지나온 글에도 내가 무심코 넘겨버린 글귀가 있을까 되돌려 보다가 책의 첫머리와 다시 만난다. 거기에는 어둠에 둘러싸인 낡은 마루바닥의 사진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고 한 귀퉁이에는 작은 글씨로 '당신의 눈이 카메라의 눈이 될 때'라고 적혀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는 말이었으며, 동시에 참으로 잊기 쉬운 말이기도 했다. 카메라의 눈이 된다는 것은 사진가가 나의 눈을 주장하지 않고 카메라의 눈을 존중한다는 겸허한 자세가 담겨있다. 그런데 사진을 찍다보면 어느새 (안 찍다보면 더더군다나) 내가 카메라를 부리는 양 착각에 빠질때가 있다. 익숙하다보면 기본적인 것들을 잊고 타성에 젖거나 자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철학의 풍경들>은 가장 기본적인 '카메라의 눈'을 '인식의 풍경'의 출발점으로 삼고 점차 독자와 한 대의 카메라가 혼연일체인듯 어둠 속에서 철학의 빛을 조금씩 흡수케 하며 종국에는 '사진이라는 것'에 대한 각자의 의미를 한 장의 사진으로 인화해 내게 한다.

카메라에는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 밝은 방)'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어두운 방)'가 있다. 그러나 '카메라 루시다'가 최초 카메라의 원형임에도 '카메라 옵스큐라'를 택하고 발전시킨 것을 보면 사진은 본질적으로 어둠의 속성과 더 친밀한 듯 하다. 사진은 '지나간 시간의 상처', 사진은 '하찮음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사진은 '욕망의 음화들'이라고 말하는 글귀들과 수많은 철학자들이 사진에 관해 남겨 놓은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슬픔이 흐른다. 이성적이고 냉철할 것 같은 것이 철학적 사유이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감성을 자극한다. 이에 더해 수록된 대다수의 사진들은 어둠이 강조된 흑백사진들이다. 간혹 컬러가 있다해도 어둠 가운데 깊이 잠겨있다. 모두 사라져갈 시간들이고 존재들이기에 어둠으로 애도하는 듯 흑백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진리는 오히려 스러져가는 초라한 오브제에서 더 쉽게 발견될 수 있다. 하이데거가 그랬다. 그는 고흐의 <구두 한 컬레>를 보기 전까지 예술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낡고 닳아빠진 구두 그림에서 존재의 시간을 바라보게 하는 진리를 발견하고는 그의 후기철학을 크게 변화시킬만큼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진을 통해 미의 진리에 다가서려는 사진가. 그런 사진가만이 삶을 지시하고 존재와 시간이 표명하는 예술의 근원 속에 자리할 수 있다. 고흐가 가시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서 내재적 성질(존재와 시간)의 아름다움을 보았던 것처럼. 평범하지만 진리로 이끄는 성질과 본래의 자리로 돌려주는 환원의 힘을 보았던 것처럼, 미적 대상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p.236)


하이데거로부터 예술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면 이번에는 예술의 선(善)을 이야기하는 수전 손택의 철학을 들어보자. 손택은 이미지 사냥꾼처럼 게걸스럽게 먹이를 찾아헤메는 '사진의 폭력성'을 비난하며 이에 대한 사진가의 자세로 피사체를 향한 부단한 성찰과 반성, 아름다움으로 가장한 위선을 벗겨내는 이성적 자각을 꼽았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이 이미지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탐닉하고 유희하는 현실에서 사진이 선(善)의 예술이 될 수 있는 길도 답변해 준다.

일단 세상 저쪽을 볼 줄 아는 시선, 카메라에 찍힌 그 너머(은폐된 것)를 볼 줄 아는 시선이다. 또 삶의 안쪽을 볼 줄 아는 시선이고, 시간으로부터, 시간 속에서, 시간에 기대어 참을 인식하는 올곧은 시선이다.(p.305)

이밖에도 이 책에는 존 버거, 롤랑 바르트, 발터 벤야민, 질 들뢰즈, 헤겔, 푸코, 칸트를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사유를 발췌해 저자만의 새로운 고리로 연결시켜 나갔으므로 사진 이론의 느낌 보다는 (예술)철학 에세이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물론, 푼크툼, 미메시스, 판타스마고리아, 시뮬라크르와 같은 전문 용어들이 종종 등장하고 실재, 시간, 우연성, 오브제 등 빠질 수 없는 모호한 사진의 개념들이 이어지지만 '사진함(photographing)'에 있어 한번쯤 생각해 볼 것들을 표방하는 고로, 사진가 선배에게서 들을 수 있는 친근하고 섬세한 조언들 또한 곳곳에 스며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든, 혹은 영화를 하는 사람이든, 첫 출발을 할 때 기억했던 것들을 간혹 잊는 경우가 있다. 아니, 어쩌면 기본적인 것들을 꼼꼼히 생각해 보지도 못한 채 앞으로만 내달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철학의 풍경들>은 사진함에 있어 기본이 되는 사유들과 마음의 자세를 챙겨보기에 무척 훌륭한 책이다. 이 어둡고 깜깜한 책 속에 들어가 인식, 사유, 표현, 감상, 마음이라는 5가지의 풍경을 마음 속에 각인시킨다면 보다 본질에 다가가는 사진을 만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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