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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버스를 타고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 쇼핑을 즐기거나 레스토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가끔 마주치기도 하는 도시를 방황하는 사람들. 도시를 방황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길을 몰라 헤매는 사람들, 거리를 서성이며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 집을 나와 정처없이 걷는 사람들, 그리고 도시를 탐색하는 사람들.

도시를 탐색하는 사람들 가운데 안도 다다오가 보인다. 물론 대한민국 도시 한복판에서 그와 마주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만큼은 정신없이 도시속에 몰두해 있는 그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래서 때로는 인생을, 때로는 예술을, 때로는 자연을 들려주는 다다오의 중심에는 언제나 도시와 도시 속의 건축이 자리하고 있다. 모든 사색들은 건축으로 귀결되며 다시 건축으로부터 새로운 인생과 예술과 자연의 의미들이 돋아난다. 또한 청년 시절 방문했던 도시들을 건축가로서 다시 방문하고 또 방문하는 경우도 있어 한 도시에 관한 그의 관점과 생각들이 확장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다오가 부단함으로 세계 도시를 여행하게 된 것은 (과장을 조금 보태) 순전히 르 코르뷔지에 탓이다. 다다오는 그가 흠모하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책에서 '젊은 날의 여행은 깊은 의의를 갖는다'라는 구절을 읽었는데, 글귀 하나로 무모한 도전을 선뜻 결심한 그가 외람되지만 엉뚱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하필이면 다소 건조하고 비판적인 그 책, 근대 건축의 이상을 역설한 그 책 <건축을 향하여>에서 '여행'이라는 단어를 짚어냈을까? 아마도 이것은 '건축'하면 서구의 건축을 의미했던 당시 관념과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건축적 열망이 합작해낸 위대한 결심이었을 것이다. 만일 이 책을 읽는 건축학도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그의 여행벽에 전염되리만큼 다다오의 절박함은 강하게 전달되어 오며 동시에 열정을 공유하고픈 마음을 선동질한다.

다다오에게 있어 여행을 통해 홀로 건축을 배워나가는 습관은 청년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권투선수를 하다가 독학으로 건축을 터득한 그가 오늘날 세계 건축계의 거장이 된 이면에는 이처럼 지치치 않고 낯선 도시에 무수한 발자국을 찍는 성실함이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독특하게 접혀있는 이 책의 표지가 궁금해 그것을 다 펼쳐보았는데, 그러다보니 반투명 마일라지(紙)에 가려 희미하게 보였던 그의 이력을 또렷한 붉은 글씨로 읽을 수 있었다. 그가 건축 사무소를 설립한 것은 1969년. 그로부터 이렇다 할 경력으로 꼽힌 일본 건축학회상을 받은 것은 1979년.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묵묵하게 초라한 사무실을 지켜나갔던 10년의 시간이 역력히 읽혀지는 순간이었다. 뿐만아니라 이후 2005년까지 변함없이 주요한 업적을 남겨왔다는 점도 지치지 않는 그의 열정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요즘들어 달인, 달인하며 개그맨 김병만의 성공 스토리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다다오 역시 그에 못지 않은 달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가 건축을 결심하면서부터 쏟아부은 노력들, 여행을 통해 온 몸으로 느끼고, 종이에 그리고, 가슴으로 사유한 결과물들은 오롯이 콘크리트에 담겨 그와 함께 양생되고, 견고해지고, 공간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은 단순히 다다오의 건축 여행기라기 보다는 콘크리트에 사유를 담아갔던 한 달인의 숙련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헌책방에서 건축서적을 뒤지고, 불편한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때론 한달 동안 발이 묶이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또 다른 여행을 위해 애써 모은 돈을 모두 투자했던 그의 청춘이 이 책에서 유독 빛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이 책은 다다오의 건축적 사유가 더 두드러지는 책이다. 폐허에서 느낀 아름다움으로부터 시작해 롱샹성당에서 배운 르 코르뷔지에의 빛, 톰블리의 작품에서 떠올렸던 '과정의 건축', 폴락의 드리핑 페인팅을 보고 시작된 '건축의 앵포르멜'에 대한 사색, 일본 경제의 탐욕스런 소비문화에 대항하고자 했던 '나카노시마 프로젝트' 이야기 등 무엇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울림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적 사유들은 그의 인간적인 갈등과 방황의 흔적때문에 더욱 고귀하게 전달되오는 것 같다. 뿐만아니라 여행에서 만난 다양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을 심심치 않게 해주는 요소가 된다. 흔히 건축가의 여행, 혹은 건축기행이라고 하면 해외의 건축 명물을 답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겠지만 이 책만큼은 예술작품과 건축, 혹은 건축물 사이에서 만날 수 있는 사색을 통해 그의 건축관과 도시관을 더욱 많이 담아냈고 젊은 시절의 방황,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건축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방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그의 건축세계를 이해하는데 묘한 친밀감마저 전달되어 온다.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도시에' 살지 않고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나'라는 주체를 '도시에' 방치하지 않고 '도시를' 목적어로 껴안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바로 안도 다다오처럼. 만일 물성 가득한 회색빛 도시에서 공간을 느끼고 내면의 예술적 사유를 불러내고픈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다다오에게서 영감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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