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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정신
로버트 헨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즐거운상상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미국 미술계의 정신적 지주라 일컫는 로버트 헨리와 예술의 정신이라는 엄숙한 주제 앞에서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어쩐지 황진이를 떠올렸다. 그것도, 조선시대 명기로 이름을 날린 역사적 인물 황진이가 아닌 TV 드라마 <황진이>이다. 사실 <황진이>는 화려한 캐스팅과 의상, 가무와 같은 볼거리며 기녀라는 독특한 소재 때문에 눈길을 끌었지만 사실 예술의 경지와 예술혼에 대한 해석이 매우 돋보이는 드라마였다. 조청단지를 쏟아 붓고, 줄타기를 배워가며 완전함을 추구했던 열정이나 기술과 전통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감정을 이입하는 창조적인 발상, 여학의 행수(기녀를 양성하는 국가기관의 대표자 자리) 자리에 연연해 경쟁하지 않고 오직 완벽한 춤을 구하는 순수한 이상, 자연에게 묻고, 사람살이에 묻는 겸허하고 소박한 자세, 그리고 종국에는 장단에 맞추는 춤사위가 아니라 음악으로 하여금 절로 우러나오게 하는 살아있는 예술혼의 획득까지... 만일 <예술의 정신>에서 로버트 헨리가 진심을 담아 후학에게 전하려 했던 모든 것들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바로 황진이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서두에서부터 <황진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 까닭은 이 책이 가진 내용과 분위기를 좀 더 쉽게 공감했으면 하는 의도에서이다. 막연히 '예술의 정신'이라고 하면 상당히 추상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심오한 철학이나 이를 수 없는 경지처럼 들리기도 하며, 예술에 의한 사회 운동(movement)을 떠올릴 수도 있는데, 이는 '예술'과 '정신'이라는 단어의 심도로 인해 갖을 수 있는 선입견일 뿐 저자의 진정한 의도와는 거리가 있다. <예술의 정신>은 로버트 헨리의 강의나 그가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 기고문 등을 정리해서 모은 글들로 다정하고 세심하며 실질적이고도 본이 되는 생각과 격려가 가득하다. 저자가 화가이기에 미술학도들에게 해당되는 스트로크, 드로잉, 초상화에 관한 구체적인 조언들도 종종 눈에 띄이지만 전반적으로 모든 예술인들, 더 나아가 꿈을 가진 청년들이 참고해도 좋을 투명한 사색들이 곳곳에 배어있다.

<예술의 정신>을 보다 잘 이해하고 읽기 위해서는 로버트 헨리가 어떤 사람인지, 시대적 배경은 어떠했는지 간단히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로버트 헨리는 20세기 초 미국 사실주의를 주도한 화가로 펜실베이니아의 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한 후 프랑스 에콜데보자르에서 공부했고, 마네(Manet)와 프란스 할스(Frans Hals)의 영향을 받아 도시의 정경이나 인물을 주로 그렸다. 또한 1907년 뉴욕의 화가들이 보수적인 전시정책에 항의하여 만든 에이트 그룹의 리더로 활동했으며 무정부주의자이기도 했다. 이렇게 그의 업적과 활동을 놓고 보면 그의 글에서 프랑스 에콜데보자르의 전통과 기품 어린 생각들이 흐르고, 무정부주의자로서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소탈한 자세, 생활에서 체득되는 예술적 감흥들이 한껏 뭍어나는 것이 더욱 드러난다.

                                                   - 로버트 헨리의 사진(좌)과 그의 작품들 -


'예술이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되는 글들은 따뜻한 온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물론 그가 자신의 학생들을 위해 쓴 글이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90년전 어떤 스승으로부터의 조언이 마치 나의 선생님이나 선배로부터 듣는 것처럼 친근감 마저 느껴지는 까닭은 이 시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의 진정한 의미와 삶으로서의 예술, 그리고 무엇을 위한 예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가르침에 목말라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록 화가는 아니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예술가로서의 덕목, 세상을 보는 방법, 비평, 예술가로서의 성공 여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정도(正道)와 순수, 인간으로서의 예술가가 무엇인지 돌이켜보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예술의 정신>은 이후에도 스승이 필요할 때마다 펼쳐보고 힘을 얻을 정신적 후원자로 삼아야 겠다 생각해 본다.

개성없는 기법은 아무리 정교해도 사소한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연구한 것일지라도 여전히 사소하다.
예술의 크기는 곧 인간성의 크기이다. 예술의 위대함은 예술가의 개성의 위대함에 전적으로 의존한다.(p.255)


* 사진출처 : http://artria.net/150043356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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