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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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교 과제로 노자와 도덕경에 대해서 발표하게 되었다. 고전이니만큼 어떤 역자의 책이 좋을지 검색해 보았다. 도올 김용옥과 최진석 교수의 책을 꼽는 글을 보고는 이 책을 읽었다. 당시 책을 읽을 때는 세상이 환해지며 우주와 인간사를 꿰뚫는 이치를 발견한 것만 같았고 바로 도교에 빠져들 것만 같이 매료되었는데 반 년이 좀 지난 지금,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시 읽어야겠다. 계속, 읽어야겠다.

깨달음도 지식과 같이 되뇌이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다짐을 칼에 새기고 정조는 편액을 만들어 침실에 걸어놓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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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기 2016-02-06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지막 ㄴㅅㅈ 님의 세줄이 무던한 저의 몸짓을 움직이게 하네요.
조속히 반해야 겠습니다.^^

yamoo 2016-08-25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진석 교수의 한계도 도드라져 보였던 책이었습니다~
 
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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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알고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기 보다는 내 정치적 입장을 공고히 하고 적을 공격하기 위한 총알을 얻기 위해 읽은 것 같다. (물론 대한민국의 역사를 잘 알 수 있는 좋은 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좋아했던 대통령의 죽음에 슬퍼하고 내가 증오하는 세력이 나라를 장악해 나가는 것에 분노하는 것에 지치는 것 같다. 공격하기 위해, 더 분노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공부하는 편협한 내 모습이 초라하게 보이기도 한다. (정말이지 이 책은 첫 장을 펼치면서부터 분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투표를 할 것이다. 정치에 관심을 끊지 않을 것이고 무엇이 옳은 주장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들어볼 것이다.

대한민국사 2, 3, 4권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롯이 대한민국의 역사가 궁금할 때 다시 펼쳐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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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1 - 개정2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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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여 페이지의 지혜가 담겨있겠지만 깨닫기만 할 뿐 행동에 옮기지 못하면 한비자 꼴을 면치 못할 것.

정말이지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어려운 듯 하다.

손자가 병법으로 대단할지는 모르겠으나 두 사람을 벰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니 어찌 이를 훌륭하다 할 수 있을까.

사마양저는 군내에서 가장 허약한 자와 같은 양의 식량을 받았고 오기는 가장 낮은 자와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한 회사의 CEO는 매일 아침 제일 일찍 나와 직원들이 썼던 컵을 씻어 놓았고 세 사람은 모두 군사들의, 직원들의 마음을 얻었다. 이것이 단지 전략이다 하더라도 위협으로 굴복시키는 것보다는 희생하여 마음을 얻는 것이 더 나은 리더십이 아닌가 한다.


군자가 타고나는 것이 아닐텐데 공자는 어찌 재여를 썩은 나무로 보아 조각하려 하지 않았을까.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

`배우고도 실행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일이다` 요즘 가장 되뇌이게 되는 구절이다. 좋은 책을 읽고 수없이 깨닫는다고 해도 실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읽는다고 해서 실행하는 것은 아닌듯 하다. 나를 다잡는 건 죽을 때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괜찮은 사람들이 망가지는 것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하면서 일을 하면 공도 세울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고상한 행동을 하는 자는 정녕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기 마련이며, 혼자만 아는 지혜를 가진 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말을 듣게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움트기도 전에 압니다. 백성은 일을 시작할 때에는 더불어 상의할 수 없으나 일이 성공하면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덕을 논의하는 자는 세속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공을 이루는 자는 뭇사람과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면 구태여 옛 것을 본뜨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으면 옛날의 예악 제도를 좇지 않았습니다.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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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교양 (반양장) - 지금, 여기, 보통 사람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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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금

세금의 징수와 분배에 있어서 재분배를 통해 소비 능력을 제고한다거나 같은 논의 선상에서 기본소득과 같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간명하게 이해하다면 아래의 그림을 염두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명심해야 할 것은 이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불확실하고 주관적인 개인의 가치관의 차이의 문제라는 것. 한동안은 이를 선악과 계급 대립의 전투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흥분하기 일쑤였는데 이런 생각에서 탈피하는 것이, 다시 이런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물론 아직도 노동자의 혁명을 통해 세상의 규칙을 다시 세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주장에 가끔 혹하기는 한다.)


142쪽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강조는 사회 구성원들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162쪽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작업과 노동에서 보람과 성취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직업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은 오직 임금뿐입니다.˝

182쪽
˝비정규직 확대의 본질은 투자가와 사업가가 져야 할 리스크를 다수의 노동자에게 전가한다는 것.˝

인서울 대학 정원 비율 8%, 대기업 취업자 비율 8%

극단에 서서 고집스레 투쟁하는 게 아니라 방향성을 설정하고 조율하는 것

책을 다 읽고나니 ˝아마도 이 책은 대한민국 시민들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라는 책 띠지의 문구에 깊게 공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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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병들의 `부르주아`나 십자군의 `이교도`들이나 우리나라의 `종북세력`이나 결국엔 다 그냥 같은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정의라고 믿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는 싸잡아 이름 붙혀 마녀사냥 하는 것.

문화대혁명이나 전쟁이나 이익을 얻는 것은 지도자들이고 피를 흘리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은 백성들, 국민들이다.(북한이 도발해댈 때 전쟁 한 판 벌이자고 용감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저들은 자신들이 장기판의 왕이나 차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은 다 졸일 뿐이고 의미 없이 죽어갈텐데)

《중국의 붉은 별》에 기록 된 마오쩌둥과 해방군의 모습과 《홍위병》에서 그려지는 마오쩌둥과 그의 홍위병들은 어찌 이리 다를 수 있는 걸까. 세계의 수많은 민족주의적인 독립운동가들은 독립 후, 해방 후, 광복 후 어찌 그리 다들 미쳐 날뛰게 되었을까. 자신의 희생을 보상받고 싶었던 걸까. 미국의 조종 때문일까.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김구 선생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그 역시 다른 수 많은 제국주의 피지배국가들의 독립운동가 출신 독재자들과 같은 길을 걸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히려 안두희에게 암살을 당함으로써 역사의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역사에서는 죽음의 시기와 방법이 한 개인을 영웅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니까, 케네디와 박정희가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수 백, 수 천 만의 홍위병 중 한명인 저자는 주위 사람들과 자신의 가족에게 닥쳐온 불행으로 당시 상황을 한 발짝 뒤에서 관조하며 바라볼 수 있었고 이렇게 책을 통해 당시 상황을 그려내었지만 그 밖에 더 많은 수의 홍위병들은 아직도 그 시대를 꿈꾸거나 위대한 지도자를 찬양하고 있을 것이다. 베이징 한 가운데 신처럼 모셔져 있는 모택동은 그러한 인민들의 경험과 깨지지 않은 망상, 현재 체제를 유지하려는 현 지도세력의 의도가 합쳐져 아직도 뭍히지 못하고 그렇게 전시되고 추앙받고 있는 듯 하다.

영화《킹덤 오브 헤븐》에서 예루살렘을 탈환한 살라딘에게 주인공은 예루살렘이 당신에게 무슨 의미냐고 묻는다. 도대체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무슨 의미이기에 그 무수한 무의미한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냐는 거다. 대답은 ` nothing, everything`이란다. 실체보다는 상징이 중요하고 사람들은 그 상징을 지킴으로써 혹은 탈취하려는 목표를 가짐으로써 쉽게 통치되고 통치되는 사람들 역시 무의식적으로는 그러한 목표하는 허상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모든 것인. 홍위병들이 붉은 혁명을 외치는 장면에서 왜 이 장면이 떠오른 걸까.아마 그들에게 전부였던 그것이 끝나는 순간 그것이 옳은 것이었든 아니었든 그들의 상실감은 참담했을 것이다.

p. 139 `이제 귀뚜라미 아저씨의 말이나 행동은 광대짓으로만 보였다.`
절대적인 신념에 휩싸여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달리는 사람은 그 옆에 비켜서 있는 사람에게는 광대로 보일 뿐인가보다.
세상 모두가 광대짓을 하고 있으면 그건 뭔가 잘못되고 있는 거지만 나 혼자 광대짓을 하고 있다면 그건 인생을 잘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일까. 모두가 술에 취해 있을 때 나 혼자 깨어 있으면 어색한 건 어쩔 수 없고 남들 모두 깨어 있을 때 나 혼자 취해있다면 비웃음 거리가 될 것. 내가 지금 술에 취해 광대짓을 하는 것인지 모두가 광대짓에 취해 있는데 나 혼자 깨어있는 것인지. 답은 시간이 지나봐야 아는 것이겠지. 답이 무엇이든지간에, 내가 취해 있는 것이든 세상 모두가 광대짓을 하고 있는 것이든 세상이 그런 게 아니었단 걸 깨달았다고 해서 그 광대짓을 멈출 수 있을까.

책을 읽고 있자니 《아홉살 인생》이 생각난다. 두 책 모두 한 아이가 성장해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고나서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 없이 그대로 북플에 옮겨놓다보니 글이 모자이크 같아지는 듯 하다. 생각이 떠오르는 그때 그때 쓰다보니 독서 속도는 너무나 더뎌진다.

209p에서 리링은 니체의 책과 군주론을 `모든 것을 다 다룬다고도 할 수 있지만 또 아무것도 다루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라고 한다. 정말이지 그렇다.

저자는 베이징에서 문화혁명을 하면서, 하방운동으로 산촌에 보내졌을 때도,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대학에 가서도 계속해서 죽음을 접한다. 과연 그의 인생이 특별히 기구해서일까. 그가 코난도 아니고 그가 가는 곳에만 죽음이 따랐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게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겪던 일상의 모습일 것이다. 현재의 북한도 그러하겠지. 정치와 권력이 종교나 무슨 무슨 주의와 결합하는 순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건 비단 중국이나 북한만 그러한 것은 아닐테다. 과거 카톨릭이 그랬고 한국전쟁 당시 남북한이 그랬고 현재의 중동이 그러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겠지만 현재 아내가 있는 사람이 자기가 좋아했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은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 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책을 읽으면서 적다 보니 션판과 리링이 결혼하고 사별했다는 것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역사적 사건으로써 공부했던 중국의 붉은 시대를 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더 생생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책이 재미있다. 여전히 위대한 지도자나 공산당 정부에 대한 비판이 금지되어 있는 중국이지만 더 확장되는 개방과 함께 그만큼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의 급속한 성장이 더뎌지는 순간 스며들어온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열기는 폭발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또 무수한 인민(국민, 시민)의 피 위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세워지거나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누워있는 위대한 지도자를 위시한 새로운 세력이 다시 한 번 나라의 고삐를 쥐어잡거나 하겠지. 언제까지 역사가 진보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할까.

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당`을 `신`이나 `주님`으로 바꿔 읽어보았는데 전혀 문장이 어색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체제의 폭력에 저항하며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모습이(그것이 아주 당연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처절하고 슬프기까지 했다면 탕구에서 벗어나 톈진으로 와 미국으로 가는 과정은 대단하고 멋있었다.

삶을 싸워가며 살아내는, 결국에는 승리한 션판의 인생. 대견하고 멋지다.

나는 안락한 불행 속에서 무엇을 탓하고 있는 건가.

오랜만에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고전이 아닌 책을 읽었다.

그가 그토록 탈출하고 싶었던 중국이 지금은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가가 되었으니, 저자는 그런 중국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이 치열하게 싸워왔던 시간들이 허망할까 아니면 드디어(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제 모습을 찾아가는 나라가 대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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