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0년 대학교에 처음 입학해서 읽었던 김예슬 씨의 선언을 2016년 졸업하는 이때에 다시 읽는다. 2010년엔 갓 대학에 입학해서 약간은 흥분된 상태에서 신입생의 특권을 누리며 학교의 주인공인양 캠퍼스를 헤집고 다닐 때 저쪽에선 대학을 거부하다니 괜히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그렇게 찬물을 뒤집어쓰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대학의 의미와 대학생으로서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내 시간과 노력과 삶을 다해야 하는지 제대로 고민하지 못하고 이렇게 그냥 졸업해버렸다. 사실 고민은 했다. 김예슬 씨처럼 치열하진 못했더라도 6년의 시간 동안 충분히 고민했고 답을 찾지 못했고 용기는 없었다. 사실 고민 끝에 결론은 회의주의로 빠져버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나 인정하고 싶은 진리라고 생각하는 회의주의로. 모든 가치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점점 더 정치적으로는 감시 당하고 경제적으로는 종속 당하고 사회적으로는 차별 당하고 있다. 쓸모없는 정보의 쓰레기가 넘쳐나자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정작 중요한 정보들은 통제 당하고 있다. 모든 일은 내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지만 널려 있는 건 비정규직 자리뿐이며 태생적 계급은 없어졌지만 소득, 성, 직업, 인종으로 구분되어 차별은 만연하고 서로에 대한 공격성은 날이 갈수록 거칠어진다. 형식적 자유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착각하며 의미 없는 성공을 추구하고 책임 없는 패배에 좌절한다.

이 책을 읽는 순간에도 나는 왜 대학교 3학년이 지나 졸업을 할 때까지 이런한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까 하며 자괴감을 느끼고 있으니, 뭐가 되었든 성취를 이루고 그를 통해 유명세를 얻거나 돈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사라지지가 않는다.

2010년을 살던 청년 김예슬 씨의 외침을 들으니 각 시대의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에 저항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서 다른 시대를 살아간 청년들의 글을 읽어보았다. 한용운의 조선 독립의 서, 서울대 문리과 대학 학생회에서 쓴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을`,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고려대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 손아람 작가의 `망국선언문`까지.
한용운은 일제의 제국주의와 식민통치에 저항했고 서울대 문리과 학생회는 이승만 독재체제에 항거했고 유시민은 군부독재를 거부했다.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제와 독재, 군부 폭력의 시대가 끝이 나고 청년들은 무엇을 이야기했던가. 고려대에 걸렸던 `안녕들 하십니까`와 김예슬 씨의 선언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는 사회에서 진정한 목적 없이 자신들의 물질적 성공만을 위해 경쟁하는 세태를 비판했고 2016년 새해가 밝으면서 손아람작가가 기고한 망국선언문에서는 헬조선의 실태를 고발하고 변화를 촉구했다. 한용운이 조선 독립의 서를 썼던 일제강점기 보다 더 돌아가 조선, 그것도 불타 없어지길 바라는 헬조선으로 돌아간 것이다.
일본제국이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같은 뚜렷한 독재자도 없고 이제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아 모든 행복과 불행이 다 투표를 한 시민들과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책임으로 떠넘겨졌다. 적이 누군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무엇과 싸워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저 자들은 국민의 반이 지지하는 세력이다. 해체하여 없애버려야 할 것 같은 대기업 재벌은 그 지배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우리가 인생을 바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중산층은 몰락하는 시대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최저임금을 올리고 허리를 튼튼하게 하자고 주장하지 않고 얼마 되지 않는 정규직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려 질주하기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어 죽어버릴 것 같기에. 경제는 성장해도 여유는 자리할 곳이 없고 민주화가 되어도 연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젠 대학교마저 졸업해버려 사회비판이고 뭐고 일단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진 못할지언정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라도 제대로 들어보자. 진실로 무엇을 바라는지.

김예슬 씨가 단순히 대자보만 걸어놓고 그대로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여 대기업에 입사했다면 감동이 덜했을 것이지만 이 사람은 학교를 나와버렸고 지금은 나눔문화라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한다던 그의 선언에 따라 그는 생각한 것을 말했고 심지어 행동하기까지 했다. 대단하다!

김예슬 씨가 그의 선언대로 끝까지 살아내주길, 그렇게 희망이자 목표이자 본보기로 존재해주길. 폭력적인 바람을 하게 된다.

그런데 왜 서양의 사상가들에게만 그 크고 단순한 깨달음을 받은 것인가.

46쪽
인간성과 꿈과 자기다움이 살아 있어서는 기업의 이윤창출에 쓸모 있는 부품이 되지 않는다.

47쪽
국가야말로 일정한 봉급을 보장받는 영원히 망하지 않는 기업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 맞지 않는가?

48쪽
너는 ˝반기업 정서˝와 ˝반시장 정서˝에 물들었다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당신들은 ˝반인간 정서˝와 ˝반사회 정서˝가 너무 심하게 물든 것이 아닌가? 자연이 죽어가는 곳에 비즈니스는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사회 공동체가 해체되는 곳에 시장이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인간성이 무너지는 곳에 기업인들은 살아남을 수 없지 않은가.

: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내 사업을 일구고 기업을 세워 큰 돈을 벌고 싶지만 그 과정에서 나와 내가 몸담고 있는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에게 피해가 간다면, 인간성을 제물로 바쳐가며 수익을 내야 한다면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돈을 제물로 바쳐 인간의 행복을 기원하면 모를까 인간을 제물로 바쳐 돈을 바라고 싶진 않다.

54쪽
인간은 자원이 아니다! 나는 자원이 아니다!

56쪽
날 때부터 온전한 인간이었던 내가 왜 초등, 중등, 고등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 인간은 다른 이유 없이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존엄하며 가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자. 숫자와 자격증과 사회에서 찍은 낙인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그러한 믿음이 흐려져버린다. 그러나 잊어버리지 말자. 존재만으로 존엄하다. 타인도 나도.

57쪽
내 인생의 1/4를 빨아들여 온 대학, 국가, 시장이라는 억압의 3각 동맹은 나머지 내 인생의 3/4까지 좌우하고 있다.

59쪽
참으로 나답게 살기 위해 먼저 그 삶을 살아내면서, 거기에 꼭 필요한 돈만을 버는 것이 아니다. 일단 돈부터 벌고 봐야 하는 것이다.

: 참으로 나답게 살기 위해 대학교를 들어오지 않고 일단 갈수 있는 한 가장 좋은 대학을 가려 하고, 참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고르는 것이 아닌, 일단 연봉을 많이 주고 그럴듯한 회사에 들어가 놓고 보는 것이고, 돈으로 기껏 한다는 게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 여행을 다니는 데 쓸 뿐이지만 일단 많이 벌어놓고 보려 하는 것. 나는 어디에 있고 `왜`는 어디에 있나.
버킷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죽기 전에 `무엇`을 하고 죽어야 후회하지 않을지 파악해보려고. 그 리스트에 오른 일들 중에 대부분은 돈이 필요한 것들이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돈이 필요한 일들이 아니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들이었고 자격증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열정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을 그런 것들이 필요했다.

60쪽
육체노동은 `천민`들의 짓인 양 경시하는 사회 인식이 부추겨지고 있는 현실에 나는 분노한다.

61쪽
대학, 국가, 시장으로부터 학습된 두려움은 다르게 사는 것에 대한 모든 상상력과 용기를 잠식해왔다.

: 획일화의 가장 큰 문제는 상상력을 제한시킨다는 것이다. 이 트랙을 벗어나 본 적이 없고 이 트랙 밖을 상상할 수도 없다.

71쪽
내가 접해온 진보는 충분히 래디컬하지 못하기에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 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 경쟁에 매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77쪽
우리는 코리아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류의 꼭대기 층에 올라 서 있다.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과 꿈을 착취하고 있는 내 삶의 기반을, 가난한 나라 자원과 생태계를 갉아먹으며 그들의 미래를 훔치고 살아가고 있는 G20 국가 코리아에 속해있는 대학생 신분인 나를 생각할 때마다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엄습하곤 했다.

80쪽
대학을 나오지 않고 주류적으로 살지 않아도 억울하거나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느껴지지 않으며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다른 삶이 존중되는 사회적 가치를 먼저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82쫄
나는 대중성과 현실성의 이름으로 나의 문제 제기와 실천을 하향평준화시키는 실용주의, 중도주의, 연대주의에는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84쪽
그만 배우기, 생각하기! 그만 생각하기, 행동하기! 디금 바로 살아가기!

:어느 시인의 말대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모두 초등학교에서 이미 다 배운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아직도 배우고 있으며 가끔 생각하고 거의 행동하지 않는다. 행동하자.

87쪽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가난한 마음이 없다면, 그런 자기 내어줌의 실천이 없다면, 그 많은 지식과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88쪽
우리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만들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스스로 겪고 만나고 헤매고 상처받고 저항하고 사랑한 만큼 만들어진다.

89쪽
삶은 너무 과소한데 지식은 너무 과도하다는 것이다.

91쪽
가슴 뛰는 것도 경쟁이 된 것일까?

: 아, 정말로 가슴이 뛰는 것뿐만이 아니라 열정, 도전의식, 꿈이라는 것들도 경쟁이 되고 스펙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학벌과 자격증, 외국어와 해외 경험에 더해 더 열정적이고 더 도전의식이 있고 높은 꿈을 가진 사람을, 그러한 열정과 도전의식과 꿈을 바탕으로 자기 삶의 스토리를 만들어온 사람에게 직업을 주는 시대가 되면서 남들보다 열정이 뜨겁지 않음에 도전의식의 희박함에 꿈의 단출함에 패배감까지 느끼고 있다.

105쪽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 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107쪽
나보다 싸보이는 사람들 앞에 우쭐하고, 나보다 비싼 자들 앞에 주눅 드는 나였다. 이렇게 돈으로 저울 달아지는 이것이 나란 말인가?

108쪽
어떻게 꿈이 직업일 수 있는가? 정말 어떻게 직업이 꿈일 수 있는가!

110쪽
남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된다.
: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는지 비교를 하다가 끝에 가서 빌 게이츠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비교를 포기했다.

111쪽
나 자신을 먼저 찾고 나의 본성으로 직업을 선택해 가겠다고 결심하자. 꿈은 직업이 아니다. 직업은 꿈이 아니다!
: 이제 막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난데, KOTRA 공고가 떴다며 살펴보고 있다.

115쪽
하지만 나는 안다. 생각할 틈도, 혼란을 겪을 틈도 없이 거짓 희망의 북소리에 맞춰 앞만 보고 진군하는 것이 훨씬 괴로운 것임을.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6-08-25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