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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박태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다음 달에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베트남이라는 곳을 단지 관광지로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배경을 보고, 내가 먹던 것과는 다른 음식을 먹는 것으로만 그곳을 다녀왔다고, 그곳이 좋았더라고 혹은 나빴더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수천 년의 역사를 모두 알 순 없겠지만 내가 걷고 맛보고 즐기고 고생할 땅에 살아왔던 사람들이 어떤 역사적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지금 어떤 문화와 어떤 습성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림잡아보고 싶었다. 어떠한 지리적 환경을 극복해오며 살아왔는지, 그렇게 자연을 극복하고 순응하며 어떤 종교와 문화와 관습을 키워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와는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 궁금했다.
과거사는 거시적으로, 근현대사는 미시적으로 봐야 한다는 말마따나 <베트남 문화의 오디세이>라는 책을 통해 베트남의 과거사와 지역적 특징, 지역별 문화, 전통을 가볍게 훑어보고 있다. 그렇다면 근현대사는?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는 근현대의 역사적 사건이 무엇이 있었을까. 물을 것도 없이 베트남 전쟁이다. <최병욱 교수와 함께 읽는 베트남 근현대사>를 통해 베트남 근현대사의 전반을 가볍게 읽어보겠지만 베트남 전쟁만큼은 가볍게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 행위와 일제강점기 시기의 역사적 사실에 무지한 일본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노근리를 기억하자면서 퐁니, 퐁넛에 대해 모를 수 없었고 다낭의 해변을 즐기면서 그곳으로 들어왔다 돌아가지 못한 5,000여 명의 국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베트남 여행을 떠나기 전에 베트남의 역사, 그 중에서도 최소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최소한의 공부는 하고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이 책을 읽었다.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전쟁은 오해와 욕망으로 발발하고
전후엔 오해와 욕망만을 기억한다
전쟁은 단지 전쟁 참여 인원, 사망자, 부상자, 손해, 전쟁 특수 수익 따위의 수치로만 표현될 수 없으며 숫자에 다 담지 못한 고통과 슬픔, 증오와 복수, 상실과 후회로 점철되어 있다.
전쟁에 승리자는 없으며 피해자만 존재할 뿐이며 베트남 전쟁의 승리자를 굳이 뽑아보자면 전쟁을 통해 특수를 누린 기업과 안보 위기를 조장하고 강화된 군 병력을 통해 자국에서 독재 정치를 일삼은 정치가들뿐이다. 그 외엔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성장해야만 하기 때문에 인류는 앞으로도 끊임 없이 전쟁을 해나갈 것이다. 그 전에 치른 무수한 전쟁의 교훈은 기억 못한 채. 오해와 욕망에 준동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짓을 종말이 오기 전까지 해댈 것이다.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생명의 가치와 인권에 우선할 수 없고 수억 달러의 전쟁특수도 한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할 수 없음에도.
베트남 전쟁 발발 원인, 경과, 결과, 영향까지 일목요연하고 읽기 쉽게 쓰인 책이다. 즐거움에 앞서 한 번은 읽어볼 책이며 분노에 앞서서도 일독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