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 허허허허!
18쪽
˝사람이 죽는다는 것른은 당연한 일이지만 부자가 되거나 벼슬을 할거라는 건 거짓말일 수도 있지. 그런데 거짓말은 좋은 보답을 얻었고, 진실은 죽도록 얻어맞은 셈이지. 너는....?˝

˝선생님, 저는 거짓말도 하기 싫고, 얻어맞기도 싫어요.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지요?˝

˝그래, 그럼 이렇게 하려므나, 우와-! 이 아이는 정말! 이걸 보세요! 얼마나...어이구! 하하! 허허허 헛, 허허허허!˝

개의 반박
19쪽
나는 아직도 은과 동을 가릴 줄 모릅니다. 삼베와 비단도 가릴 줄 모르구요. 거기다가 관리와 백성, 주인과 머슴을 구별할 줄도 모릅니다. 또.....

:개만도 못하구나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자, 그리고 노비

우리가 노비와 무엇이 다른가. 왜 담장의 벽을 허물진 못하고 징징대거나 도망다니기만 하는가.

25쪽
도덕- 여자의 어깨 노출을 불허하는 것.
:우리가 규정하고 생각하는 바람직한 것이란 게 얼마나 유치하고 누군가에게만 폭력적인가

31쪽
폭군의 신민들은 폭적이 타인의 머리 위애 떨어지기만을 바라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남의 참혹함을 자신의 오락으로 삼고, 남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삼으면서 위안한다.

: 타인의 불행을 보고 내 삶의 비참함을 위안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44쪽
우승자를 존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뒤떨어졌으되 기어이 결승점까지 달려가는 주자와 그런 주자를 진지하게 보는 관객, 그들이야말로 중국 미래의 대들보이리라.

45쪽
그런데 사실, 많은 인부들이 이 장성 때문에 고역에 시달리다 죽기만 했지, 장성 덕분에 오랑캐를 물리쳐 본 적은 없다.

62쪽
우리는 많은 죄인들을 <누군가에게 밉게 보인 사람들>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 아직도, 지금도

전사와 파리
63쪽
전사가 죽었을 때, 파리들이 맨 먼저 발견하는 것은 그의 결점과 상처이다. 그들은 그것을 빨며, 웽웽거리며 날아다니고, 자신들이 죽은 전사보다 더 영웅인 체 득의만만해 한다. 전사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파리를 쫓지 못한다. 그리하여 파리들은 더욱 웽웽거리고, 그 웽웽거림을 영원불멸의 소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완전함은 전사를 훨씬 초월하기 때문이다. 분명, 아직 누구도 파리의 결점과 상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점이 있더라도 전사는 전사이며, 아무리 완전하더라도 파리는 어디까지나 파리다.
가거라, 파리 떼들아! 아무리 날개가 있어도, 아무리 웽웽거려도 너희들은 결코 전사를 초월할 수 없나니, 가거가, 이 벌레들아!

65쪽
생명의 길, 진보의 길
길이란 무엇이던가?없던 곳을 밟고 지나감으로써 생기는 것이 바로 길 아니던가, 가시덤불을 개척함이 아니던가.
길은 옛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생명은 진보적이고 낙천적이다. 그러기에 인류는 결코 쓸쓸하지 않을진저.

: 한때는 인류가 진보해왔다는 것에, 진보하고 있음에(순간적으로는 퇴보하는 듯 보인다 하더라도), 진보할 것임에 의심한 적이 없었다. 노예제는 폐지되었고 (법적으로는) 모든 인간이 평등해졌으며 황제가 사라지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총리가(몇몇 국가는 아직 황제가, 혹은 황제와 같이 군림하는 대통령이 있긴 하지만) 길어야 8, 10년이 넘지 않는 시간만을 통치하고 물러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로봇을 만들어 노동을 대체하고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고 무인자동차, 드론택시의 세상을 앞에 두고 어찌 인류가 진보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잘 모르겠다. 과연 그러한 모든 것들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진보라는 것이 행복의 총량을 합만 수의 증가는 아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진보가 무슨 의미가 있나, 과연 인류의 행복의 총합은 증가해왔고 증가하고 있고 증가할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나는 모르겠다.

67쪽
여성과 국난
여성들은 참으로 가엽은 존재이다. 사회제도가 여성들을 이런저런 것들의 노예로 만들었고, 게다가 갖가지 죄명을 씌우려 하고 있다. 한 나라 말엽에 당시 여인들의 눈썹이 가느다랗고 끝이 처진 것을 가리켜 이는 망국의 조짐이라고 했었다. 기실, 한 나라가 망한 것이 어찌 여자의 책임이랴! 여인의 몸치장을 가지고 탄식을 하며 불만을 느꼈던 것 하나만 봐도 그 당시 통치계급이 얼마나 신통치 않았는지를 알 수 있다.
: 나라를 망치는 것은 여자의 탓이 아니라 지도자의 탓이다. 즉, 나라를 망치는 것은 다른 어느 한 집단의 책임이 아니라 그 나라 전체와 그 나라를 이끌고 있는, 이끌었던 지도자의 탓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도자가 책임을 져야지 누가 책임을 지겠는가.

사치와 음탕은 사회 붕괴와 부패 현상 중의 하나일 뿐, 결코 근본 원인은 아니다. 사유 재산제 사회에서는 본래 여자를 사유재산으로 여기고, 상품으로 여긴다.

72쪽
많은 여성들이 그(입센)을 파티에 초청했답니다. 그 자리에서 한 대표자가 일어나, 그가 <인형의 집>을 써서 여성들의 각성과 해방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주었다고 사의를 표시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작품을 쓴 것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저 극을 썼을 뿐입니다.˝

73쪽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합니다. 아직 갈 길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라면, 가장 긴요한 것은 그를 꿈에서 깨우지 않는 것입니다.

74쪽
무릇 밥은 돈을 주어야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돈소리 하는 것을 비천하다는 인간들은, ------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온종일 그를 굶긴 뒤에 다시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75쪽
자유는 물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만, 자유가 돈에 팔릴 수는 있습니다.
: 우리는 모두 그렇게 나의 자유를 팔아 월급을 받아 살아가지 않는가. 노예만이 자유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76쪽
사람들은 망각이라는 것이 있기에 자기가 겪은 고통에서 점차 해탈할 수 있기도 하지만, 망각이라는 것 때문에 왕왕 앞사람들이 범한 오류를 다시 범하게 됩니다.

78쪽
우리는 남에게 희생하라고 권유할 권리도 없거니와, 남이 스스로 희생하는 것을 막을 권리도 없습니다.
: 우리한테 중동 가라고 하지 마라. 어떻게 살진 알아서 한다.

79쪽
세상을 한 때, 그리고 짧게 놀라게 하는 희생보다는 끈기있는, 묵묵한 투쟁이 더 나을 것입니다.
: 세상을 한 때, 짧게 놀라게 하는 희생만큼이나 묵묵한 투쟁을 하는 것, 그 얼마나 힘들까. 잠깐 잠깐 뉴스에 나올 수도 있겠지만 상당하 시간 동안 아무도 봐주지 않을 것이고 승리의 순간은 보이지도 않을테데. 아무도 봐주지 않으면서 고통만 가득한 묵묵한 투쟁. 사실 역사 책에 쓰여진 순간의 영웅들 만큼이나 그들 역시 세상을 진보시키는 데 일조한 보이지 않는 영웅들일 것이다.

82쪽
붓과 혀를 동원하여, 이민족의 노예로 전락하였을 때의 고통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물론 옳은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주 주의해야 할 게 있다. 사람들이 그런 괴로움을 듣고 읽으며 결코 이런 결론을 내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래, 그래도 우리처럼 자기나라 사람의 노예가 되는 편이 훨씬 나아.˝
: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는다고, 우리나라가 북한에 먹히지 않았다고, 우리나라가 미국의 52번째 주가 되지 않았다고, 우리가 우리의 대통령을 우리의 손으로 뽑는다고 해서 노예가 아닌 것은 아니다. 노예라는 것은 아니지만, 노예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도 아니다.

84쪽
글로 나타내는 독은 단지 소독(小毒)일 뿐, 최고의 경멸은 무언이다. 그것도 눈하나 까딱하지 않는 채로의 무언.

85쪽
너희들과 나는 피의 맛을 본 짐승처럼 사랑을 맛보았다.

: 사랑을, 행복을 맛보는 것은 행복한 만큼 위험하며 불행하다.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도 사랑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으니, 인간이란 참으로 불행하기 쉽게 만들어졌다. 아주 아주 부단히 노력해야 겨우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86쪽
죽고 넘어진 어미를 먹어치우면서 힘을 기르는 사자 새끼처럼 힘차고 용감하게, 나를 떨쳐버리고 인생의 길로 나아가거라. 내 일생이 아무리 실패작이더라도, 내가 아무리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의 발자취에서 불순한 어떤 것을 너희들이 발견할만한 짓은 하지 않겠다. 꼭 그렇게 하겠다. 너희들은 내가 죽어 넘어진 곳에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를 너희들은 나의 발자취에서 어렴풋이나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아. 불행하지만 동시에 행복한 너희 아버지와 어머니의 축복을 가슴에 간직하고 인생의 여정에 오르거라. 앞길은 멀다. 그리고 어둡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거라.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앞에 길은 열리기 마련이다.
가거라, 용감하게, 아이들아!

87쪽
북경에서는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수레바퀴나 말 다리 사이를 빠져나가는 놀이를 한다. 언제 치일지 아슬아슬해 보고 있자면 가슴이 절로 서늘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장래 어떻게 될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걱정이 된다.

89쪽
청 나라 말기에 어떤 성에 처음 사범학교가 설립되었을 때, 한 노선생이 미심쩍다는 듯이 분개하면서 말했다고 한다. ˝스승을 가르치는 학교라고? 스승되는 자가 왜 가르침을 받아야 하누? 그런 이치라면 다시 부범(父范) 학교가 있어야지˝
그 노선생은 아버지의 자격을 자식을 낳는 것으로만 믿고 있다. 자식을 만드는 것쯤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 지금 중국에 필요한 것은 사실 부범학교라는 것을, 그 노선생은 그 학당의 일 학년에 반드시 입학해야만 한다!
우리 중국에는 자식의 아버지는 너무 많다. 그러나 앞으로 진정 필요한 것은, 그것은 <인간>의 아버지이다.

91쪽
울분은 어쨌든 변혁의 방아쇠다. 그러나 먼저 자신부터 변혁한 다음 사회를 변혁하고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 그저 울분만 품고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원한은 거의 아무런 쓸모도 없다.
원한은 분에 못이겨 죽게 되는 화근이다. 옛사람들 가운데는 이런 사람이 많았으나 우리는 그 전철을 거부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는 <세상에 공정한 도리가 없고 인도주의가 사라졌다>는 것 등을 핑계삼아, 자포자기하는 행동을 변호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분하다>고 하면서 분에 못이겨 죽을 것 같은 얼굴상을 짓는 사람은, 기실 분에 못이겨 죽지 못하는 법이다.

: 분하다고 내 삶을 죽일바에야 내 삶을 태워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일 나을 것이다. 알고는 있다만. 사실 요즘에는 울분 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니 죽이거나 태우기는 커녕 이미 다 타버린 재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어찌 한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95쪽
J.S 밀은 독재는 사람을 냉소자로 만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공화제가 사람을 침묵자로 만든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96쪽
이전에 잘 살았던 사람들은 복고를 주장하고, 현재 잘 사는 사람들은 현상 유지를 주장하며, 아직 잘 살아 보지 못한 사람들은 혁신을 주장한다.
대체로 이러하다. 대체로!

97쪽
인류의 슬픔과 기쁨은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는 법이다. 내게는 단지 그들이 법석을 떨고 있다고 느껴질 뿐이다.

106쪽
금송아지를 바라는 자에게는 황금쥐는 커녕 죽은 쥐도 주지 말아야 한다.

113쪽
세상 모든 문물은 이름없는 사람들이 누대에 걸쳐 이루어 낸 것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편의상, 기억의 한계상, 조금 더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경제적이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우리는 인류 진보의 감사를 몇명의(전체 인류에 비하면 그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몇명일 뿐이다) 위인에게 바치지만 어찌 역사가 몇명의 인물에 의해서만 이끌어져 왔겠는가.

117쪽
살인자는 세계를 파괴시키고, 구세자는 세계를 보수하고 있다. 그리고 대포밥으로 죽어갈 신세인 사람들조차 도리어 살인자를 공경하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만일 이와 같은 생각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세계는 그냥 이렇게 파괴될 것이며,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게 되리라.

122쪽
청년들이 금간판이나 내걸고 있는 지도자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차라리 벗을 찾아 단결하여, 이것이 바로 생존의 길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 나으리라.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할 것인가!

125쪽
밥, 이성, 조국, 민족, 인류...... 무엇을 사랑하든 독사처럼 칭칭 감겨들어라. 원귀처럼 매달려라.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줄기차게 달라 붙어라. 이런 사람이라야 희망이 있다. 지쳤을 때는 잠시 쉬어도 좋다. 그러나 쉰 다음에는 또다시 계속해야 한다. 한 번 한 번, 또 한 번, 몇 번이라도 계속해야 한다. 혈서, 규약, 청원, 강의, 눈물, 전보, 집회, 추도사, 신경쇠약, 이런 것은 모두 소용없다. 혈서가 무엇을 가져오는가? 단지 볼썽 사나운 혈서 한 장 뿐이지 않은가? 신경쇠약은 자신의 병이 될 뿐이다. 더이상 그것을 보물로 여기지 말라. 나의 경애하는, 그리고 미운 친구들이여!

132쪽
희망이란 존재와 한몸으로, 존재가 있으면 희망은 있습니다.

: 희망이 존재와 함께하듯 절망과 어둠 역시 존재와 함께 한다. 어둠을 완벽히 걷히게 하려면 존재를 파괴하는 방법이 있겠으나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두려워하는 혹은 능력 없는 자들이나 할 이야기이지 빛을 기대한다면 어둠과 희망을 모두 끌어안고, 그렇게 고통스럽게 가야할 뿐이다. 모든 것이 대립으로 존재하다보니 인간은 이리 모순적이고 삶은 불행하기 쉬울 뿐이다.


133쪽
과격주의는 올리가 없고, 과격주의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왔다`가 올 것이며, 이것이 두려운 일이다.

: 무엇이 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무언가가 `왔다`는 게 더 중요하다. 무언가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140쪽
용감한 권술가는 넘어진 상대는 절대 때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우리들이 모범으로 삼을만 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한가지를 덧붙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적도 용감한 투사여야 한다는 전제다. 패배한 뒤, 부끄러워서 위우치면서 다시 덤벼들지 않거나, 아니면 정정당하게 복수를 하려는 자여야 한다는 점이다.

141쪽
나는 사람을 무는 개라면, 땅에 있건 물속에 있건 모조리 때려야 할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154쪽
붓으로 쓴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156쪽
조물주는 항상 시간의 흐름으로 옛 흔적을 씻어내고 빛바랜 핏자국과 흐릿한 비애만을 남겨준다.

158쪽
요컨대 내 기억상으로는 그때가 영원한 이별이었다.

159쪽
침묵이여, 침묵이여! 만일 침묵 속에서 폭발하지 않는다면 침묵 속에서 멸망할 뿐이다.

160쪽
나라 안과 나라 밖의 살인자들은 지금도 태연히 머리를 쳐들고 다닌다. 그들 얼굴에 피가 얼룩져 있다는 것도 모른 채......
: 우리 역사에도, 우리 나라에도 자신의 얼굴이 피로 범벅되어 있다는 것도 모른채 잘 차려입고 거들먹거리는 살인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많은가.

역사는 인류의 피의 전튜를 동력으로 전진한다.
: 더 이상 민주주의가 됐든 뭐가 되었든, 그것이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가 아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참여하여 한 줌씩 쌓아 올린 토성과 같이 자라고 견고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핏자국이 남아 있는 한, 그 영향은 소리없이 퍼져나갈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자국을 씻어 흐려질지라도, 미소 띤 상냥한 그 모습은 희미한 슬픔 속에서나마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도연명의 만가
가족들의 설움은 채 가시지 않았거늘
남들은 벌서 노래부르네
죽은 이가 무슨 말을 하랴
언덕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162쪽
어떤 놈들은 - 나는 그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시위 지도자들에게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놈들은 <맨손> 시위대에게 총질을 한 것도 당연한 일이며 정부 청사 앞은 원래가 <주음의 땅>이고 희생자들이 자진하여 거기에 뛰어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 진보를 위한 누군가의 희생을 비웃는 자들, 그들의 죽음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는 자들. 그대들은 피를 먹고 자란 나무의 과실 먹을 자격이 없다. 우리가 즐거이 베어 무는 과일에서 슬픈 피 비릿내를 맡지 못하는 돼지들은우리에 가두고 비료나 먹이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것이, 피 비릿내는 고사하고 그 과일 마저 별 맛이 없다며 투덜대는 사람에게까지도 모든 과실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복창 터지고 화나는 일이지만 그래야만 한다. 우리는 그래야 한다. 우리라도 그래야 한다.

163쪽
기어이 시위 지도자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한다면, 단 두 가지 죄일 뿐이다. 청원이 유용하다고 여긴 것, 상대방을 너무 좋게 보았다는 것, 이 둘뿐이다.

개혁에는 피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혈이 바로 개혁은 아니다.
: 세월호가 끌어 안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버린 수백 가닥의 여린 바람이 한때는 돌풍이 되어 모든 잘못된 것을 다 날려버리고 이제야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유혈은 개혁이 되지 않았다.

166쪽
오늘날까지 저는 한 가지 낙관하였던 게 있습니다. 즉, 청년을 억압하고 살육하는 자들은 거의가 늙은이들이며, 이 늙은이들이 차차 죽어 가면 중국은 어쨌든 활기가 돌게 될 것이라는 낙관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청년을 살육하는 자들은 대부분 처연들입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나 청년들의 정의에 대한 불타는 의지 따위가 아니다, 잘못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 나의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마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 그것 뿐이다. 그리고 교육과 언론. 아이들을 일깨우는 것이 교육이라면 어른들을 일깨우는 것은 언론이기에. 그 이외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거기에 희망이 있긴 할까. 사실 자신이 없다.

169쪽
중국에 계급은 있어도 사상은 모두가 하나이다. 그것은 관리가 되어 돈을 벌려는 것이다.

176쪽
그리고, 애인은 굶기지 말길.

180쪽
개혁에 뜻을 둔 사람들이 민중의 마음을 깊이 모른다면, 개선의 방법을 놓고 아무리 심오하고 학식있는 토론을 벌여 보았자, 전혀 소용없는 일이다. 그것은 서재에서 몇몇이 나누는 자화자찬에 불과하고, 자기만족일 뿐이다.

182쪽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183쪽
니체는 피로 쓴 책을 읽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피로 쓰여진 문장이란 아마 없으리라. 글은 어차피 먹으로 쓴다. 피로 쓰여진 것은 핏자국일 뿐이다. 핏자국은, 물론 글보다 격정적이고, 보다 직접적이며 간명하긴 하다. 그러나 빛이 바래기 쉽고 지워지기 쉽다. 문학의 힘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충성혈서는 지워지지 않을 뿐더러 격정적이기까지 하다.

184쪽
우리가 연합전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목적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징표이다. 아니면 소집단의 목적이나,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목적만을 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목적이 노동대중에 있다면, 전선은 당연히 통일될 것이다.

194쪽
천재가 나오기를 요구하기 전에 천재를 기를 수 있는 민중이 있기를 요구해야 한다. 튼튼한 나무를 얻거나 고운 꽃을 보려면 반드시 좋은 흙이 있어야 한다. 흙이 없으면 꽃도 나무도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꽃이나 나무보다 흙이 더 중요하다.

195쪽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내가 알프스 산보다 더 높구나!> 이 얼마나 거룩합니까. 그러나 그의 뒤에 수많은 병사가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병사들이 없다면 그는 산 너머에 있는 적들에게 붙잡히거나 쫓기게 될 것이며, 그의 행동이나 말은 모두 영웅의 한계를 벗어나 미치광이의 부류에 들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천재가 나오기를 요구하기 전에, 천재를 기를 수 있는 민중이 있기를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쪽
어떤 혁명부대라도 봉기의 초기 단계에서는, 그저 현상에 대한 반항이라는 의미에서만 전사들 생각이 일치할 뿐이며, 그들의 궁극 목적은 갈리는 게 보통이다. 누구는 사회를 위해, 누구는 소집단을 위해, 누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누구는 자신을 위해, 누구는 오직 자살을 위해. 혁명군은 그래도 전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군하는 과정에 개인주의자가 쏜 탄알도, 집단주의자가 쏜 탄알도 독같이 적을 쓰러뜨릴 수 있으며, 어떤 전사가 죽거나 다치든 혈맹군이 입는 전투력 손실 역시 마찬가지이기 떄문이다.

209쪽
문학, 문학하고 떠들어 보았자 다 쓰잘데 없는 짓이고, 힘 없는 인간들이 떠들어대는 짓에 불과하다. 진짜 실력자들은 조용히 있다가는 소리없이 사람을 죽여 버리며, 억아받는 자들은 맟 몇 마디, 글 몇 줄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설령 운좋게 살아남아 아우성치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해도 실력자들은 가딱도 안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탄압을 가하고 살육을 자행한다. 이런 마당에 문학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210쪽
혁명에는 혁명가가 필요한 것이지 혁명문학이 급한 건 아닙니다. 혁명가가 쓴 것이라야 혁명문학이지요. 저는 문학이 혁명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혁명이 문학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225쪽
무릇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체격이 제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해도 하잘것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구경꾼으로 될 뿐이다.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 해도, 그런 일은 불행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첫째로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정신을 개혁하는 것이다. 정신을 개혁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문예다.

228쪽
희망이란 미래에 속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없다고 하는 내 주장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244쪽
민족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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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잭 런던이라고 해서 당연히 영국사람일 거라, 영국작가가 쓴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디 미국 태생이었다.

야성의 부름에 태곳적 기억이 반응하는 과정

비밀독서단에서 조승연씨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책이길래 엄청 기대를 하고 읽었다가 적당함 마음으로 다 읽고 내려놓았다. 디즈니 영화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

119쪽
오직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적의에 찬 세상에서 용감하게 살아남는 살인자였다.

: 이 인간 세상은 정말로 자연에 비유해서 인식해야 할까. 인간 사회 역시 적자생존에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이자 자연으로 인식한다면 남을 쫒아내고 파멸하시키고 내 먹이에서 힘으로 저들을 몰아내고 나의 위엄을 세우고 하는 것들은 용감하게 살아남는 승리자로 봐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기에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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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여행자 도쿄 김영하 여행자 2
김영하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처음 읽어보는 김영하의 책이다.

누군가는 여행기에 여행 정보를, 누군가는 한 편의 여행 다큐멘터리를, 누군가는 자신의 시선을 담는다. 이 책은 김영하의 시선이 궁금해서 고른 책이다. 그는 도쿄라는 아주 뻔하고 예쁘장한 도시에서 무엇을 보는지, 어떻게 보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했다.
그런 시선들을 읽다 보면 나 역시 여행을 떠났을 때 더 예민하게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해서.
사진집인줄 알았다. 김영하라는 사람을 글쓰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진에도 관심이 많을 줄이야. 그리고 굉장히 느낌 있게 사진을 찍으실 줄이야.

김영하의 책을 읽는다고 처음 집은 책이 `빛의 제국`이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아니라 `김영하 여행자 도쿄`라니. 이 책을 다 읽어도 김영하 책을 읽어보았다고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버거킹 가서 와퍼는 안 먹고 아이스크림만 먹고 온 느낌이다.

같은 곳을 가더라도 다른 것을 본다면, 다른 것을 느낀다면 그건 같은 곳을 여행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디를 여행하는 지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여행에서 더 중요한 건 어디를 가는지보다 거기서 무엇을 보려고 하는 것인가인듯 하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고 잡다하게 터져나오는 호기심을 여기 저기 흩뿌리며 여행하자.

내가 사는 인천이라는 도시는 내가 모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인천공항, 부평, 구월동, 인하대, 송도, 월미도, 차이나타운 그리고 우리동네를 제외한 인천의 모습은 어떠할까.

김영하의 도쿄 역시 부분적으로는 옳고 전체적으로는 틀리겠지.

한 도시에 대해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이 도시는 ~~하다.˝ 혹은 ˝다른 곳은 ~~하지만 이 도시는 그러한 것이 없다.˝라고 단정 좀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것이 여행자에게는 전체인지라 그 인상이 바로 그 도시겠지만 그건 분명 전체적으로는 틀린 것이 아니겠는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행을 가서 도시에는 호기심 가득하고 기대에 부푼 눈길을 주지 않기 시작했다. 서울의 맥도날드가 도쿄에서 보이는 순간 모든 도시는 `도시`라는 개념으로 보이지 개별적인 특성이 없다고 치부해버린 것이다. 도시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특별한 게 있겠어?라는 마음으로(물론 자연의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조형물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에 자연을 찾아다닌 것도 있지만)
물론 세계화 이후 정말로 모든 도시들이 미국 출생의 기업들에게 점령당하여 똑같은 모습의 식민지같이 되어 가는 면이 없잖아 있겠지만 그것보단 내가 도시의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도시를 하나의 도시로 봤던 것 같다. 여행책을 따라 도시가 쳐놓은 내부자를 위한 경계선 바깥을 졸졸 따라다니며 맥도날드만 보고 왔으니 서울과 도쿄를 구분할 수 있겠나. 그건 나의 게으름 때문이었으며, 무지 때문이었으며, 부족한 언어실력 때문이었으며, 닫힌 마음 때문이었다. 도시는 성실한 여행자에게만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가보다.

책 앞에 끼여있는 뭐 별로 길지도 않은, 대단치도 않은 이야기의 소설이 은근 재미있게 읽혔다.

181쪽
사랑하면 집중하게 되고 집중하면 그르치게 되니 이때의 피사체는 당신이 사랑하던 그 피사체가 아니게 된다.

191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더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3쪽
수동카메라를 팔고 디지털로 가는 사람들은 어딘가 전향자의 냄새를 풍긴다. 반대로 디지털에서 수동카메라로 넘어오는 사람들에게선 과장된 자의식이 엿보이는 경우가 많다.

203쪽
도시 전체가 잘 정리된 강박증 환자의 서랍 같다.

230쪽
우리는 낯선 도시에 도착할 때, 공포와 호기심, 친근감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그 도시를 `알아가게` 된다.

233쪽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뜻이다.

236쪽
도시에 대한 무지, 그것이야말로 여행자가 가진 특권이다.

241쪽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한 숙련, 무가치한 초과, 장인은 그 모든 것의 `거품` 속에서 위태롭게 존재하는 눈부신 잉여이다.

262쪽
처음에는 여행자가 여행안내서를 선택한다. 그러나 한 번 선택하면, 그 한 권의 여행안내서가 여행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여행자는 여간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책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268쪽
어쨌든 그것들은 모두 부분적으로 옳고 전체적으로는 틀리다. 어쩌면 우리는 도시를 여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여행안내서 안을 열심히 돌아다니다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288쪽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취향과 고집을 가진 인간들이 친절하기까지를 기대하는 것은 본래 무리한 일이다. 오직 도쿄만이 그 예외이다.

292쪽
오다이바는 근대 이후 일본이 제창해온 탈아입구의 쇼핑몰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럽을 재현하되, 유럽에서 불쾌힌 요소는 다 재거하고 환상만을 남겨둔 곳, 그곳이 바로 비너스포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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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013쪽
불필요한 단어는 생략하라

43쪽
이 세상에 `아이디어 창고`나 `소설의 보고`나 `베스트셀러가 묻힌 보물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의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허공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소설가를 찾아오는 듯하다.

소설가가 해야 할 인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막상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 왜 누군가에게는 그 아이디어가 빈번하게 찾아오고 누군가에게는 존재하지도 않은 것 처럼 나타나지 않을까

47쪽
아직 면도를 할 필요도 없는 나이에는 실패를 맛보아도 얼마든지 낙관적을수 있다.

53쪽
열세 살 떄 내가 원했던 것은 도시를 통쨰로 집어삼키는 괴물들, 방사능에 오염된 후 바다에서 기어나와 파도타기를 하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시체들, 그리고 검은 브래지어를 걸치고 몸가짐이 헤픈 여자들이었다.

60쪽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한동안 미친 듯이 일하다가 갑자기 게을러지곤 했따.

68쪽
어떤 이야기를 쓸 때는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원고를 고칠 때는 그 이야기와 무관한 것들을 찾아 없애는 것이 제일 중요해.

124쪽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141쪽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짓은 애완 동물에게 야회복을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라.

142쪽
`제일 먼저 떠오른 낱말이 생생하고 상황에 적합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 낱말을 써야 한다.`

148쪽
`수동태는 한사코 피해야 한다.`
수동태는 나약하고 우회적일 뿐 아니라 종종 괴롭기까지 하다.

: 한국어와 영어의 문법이 다르겠지만 수동태가 읽기 불편한 것은 두 언어 모두 해당되는 것 같다.

150쪽
`부사는 여러분의 친구가 아니다.`
수동태와 마찬가지로부사도 소심한 작가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낸 창조물인 듯하다.


: 이 책은 미국 문화를 이해하고 영어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읽어야 그 효용이 가장 클 것 같다. 글을 쓸 때 주의할만한 내용으로는, 1. 문법을 익혀라(이건 책을 많이 읽고 일상적인 언어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질 것) 2. 수동태는 지양하고 능동태를 사용하라 3. 부사를 피하라

164쪽
나는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단위라고-거기서부터 의미의 일관성이 시작되고 낱말들이 비로소 단순한 낱말의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고-주장하고 싶다. 글이 생명을 갖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면 문단의 단계가 바로 그것이다.

175쪽
여러분이 죽어라고 열심히 노력하기가 귀찮다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 모든 일에 있어서 성공이 숨겨져있는 상자를 여는 열쇠는 노력이다. 그냥 노력이 아니라 피똥쌀만큼 힘든 노력. 그 열쇠는 지옥의 사막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뮤즈는 땅에서 지낸다. 그는 지하실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여러분이 뮤즈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낑낑거리는 힘겨운 노동은 모두 여려분의 몫이라는 것이다.

176쪽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 보통 힙합 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같은 영역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달달한 칭찬이나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이 사람은 끔찍하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한다.

177쪽
형편없는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렇게 쓰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배운다.

180쪽
나는 저 끊임없이 지껄이는 바보상자를 꺼버리기만 하면 작품의 질은 물론 삶의 질까지 향상된다고 주장하고 싶다.

: 나는 카카오톡의 잡다구레하지만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글들과 유튜브만 없어도 지금보다 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182쪽
즐거움이 없다면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다.

191쪽
여러분에게는 우선 방이 필요하고, 문이 필요하고, 그 문을 닫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아울러 구체적인 목표도 필요하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들을 오래 실천하면 할수록 글쓰는 일이 점점 쉬워진다. 뮤즈를 기다리지 말라. 앞에서도 말했듯이 뮤즈는 워낙 고집센 친구라서 우리가 아무리 안달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점성술이나 심령 세계 따위가 아니고, 장거리 트럭을 몰거나 배관 공사를 하는 것처럼 하나의 직업일뿐이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날마다 아홉 시부터 정오까지, 또는 일곱 시부터 세 시까지 반드시 작업을 한다는 사실을 뮤즈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면 뮤즈는 조만간 우리 앞에 나타나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마술을 펼치기 시작할 것이다.

197쪽
모든 야만인들이 말쑥한 정장을 입고 다니는 이 적자생존의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198쪽
소설은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서술, 묘사, 그리고 대화.

199쪽
소설 창작이란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신념이다.작가가 할 일은 그 이야기가 성장해갈 장소를 만들어주는 것뿐이다.

200쪽
플롯은 좋은 작가들의 마지막 수단이고 얼간이들의 첫 번째 선택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플롯에서 태어난 이야기는 인위적이고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게 마련이다.

214쪽
묘사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되어 독자의 상상력으로 끝난다.

256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그러나 일단 기본적인 스토리를 옮겨적은 뒤에는 그 스토리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수정 작업을 하면서 여러분 자신의 결론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다.

: 나는 아마 확실하게 죽을 때까지 소설이라는 것을, 단지 몇 문장이라도 가상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 아는 것이 독자로서의 눈을 키워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600자로 쓰는 것이 어려워서 일도 못하고 있는 주제에 무슨 가상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겠나. 처음에는 문을 닫고 나의 것을 다 만들고, 그리고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고,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는다는 것은 글 쓰기 뿐만이 아니라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293쪽
사실 창작 교실이나 세미나는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책도 그렇고, 글쓰기에 대한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교훈들은 스스로 찾아 익혀야 한다.

308쪽
당신은 돈 때문에 일합니까?
대답은 `아니오`다.

: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의 1/3을 사용하고 돈을 벌 체력을 충전하기 위해 인생의 1/3을 자고 돈 버는 것이 힘들다고 푸념하며 1/3을 살고싶지 않다. 잠 한숨 못잘지언정 하고 싶은 것을 일로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떄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글쓰기의 순수한 즐거움 때문에 썼다. 어떤 일이든 즐거워서 한다면 언제까지나 지칠줄 모르고 할 수 있다.

331쪽
나는 태비를 꼭 껴안았다. 정말 근사했다. 그녀도 그랬다.

: 스티븐 킹은 비유와 묘사에 게으른 법이 없는 것 같다.

334쪽
글쓰기의 목적은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거나 데이트 상대를 구하거나 잠자리 파트너를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

: 나를 채우고 있는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 만큼 행복한 것이 있을까. 세상에 나를 우겨넣어 짜부라져 고통받는 삶이 아니라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업을 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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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주부 클로이 책방 2016-12-0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약을 잘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ㄴㅅㅈ 2016-12-21 23: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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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시대에는 인간이 기계화 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기계에 인간이 밀려버렸다. 이제 인간은 기계가 하기엔 돈이 많이 드는 일을 할 뿐이다. 인간과 기계의 효용이 경제적 가치에 따라 정해지고 점점 인간은 기계의 우수한 경제적 효용에 밀려 경제활동에서 밀려나 변두리에서 기본소득을 받으며 우울한 자유를 누리거나 아니면 생산도 소비도 못하는 귀찮은 존재로 떨어지겠지

이 시대의 포드와 공산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충격이었는지가 느껴진다. 아마도 알파고의 충격보다 조금 더 강했었을 것 같다.

인간을 관리하는 데 이런 저런 방법을 쓰는 것보다 각 계층에게 다른 수준의 언어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계급 구분이 자연스레 되지 않을까? 우리는 어차피 아는 단어 한에서 생각을 해내기 때문에 자유라는 단어를 가르치지 않는 것만 해도, 공화국이라는 단어를 가르치지 않고 그 개념을 가르치지 않기만 해도 그들은 그것을 바라지도 못하고 꿈꾸지도 못하지 않을까?

포드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디스토피아가 멋진 신세계나 1984와 같은 모습이라면 현재는 그들의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그 중간 어딘가에 왜곡된 모습으로 현실이 만들어졌다. 그런 것을 보면 100년 뒤 사회의 모습도 우리가 알파고를 보며 상상하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그 중간 어딘가에 조금은 왜곡되고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한다. 지옥도 천국도 아닌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고된 모습.

클론이 등장하기 전에 기계가 인간을 대체해버릴 것이다. 굳이 클론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이미 신체의 다른 부분은 기계로 대체되고 있는데

단지 단점만을 제거한다는 조건을 달아도 수면교육법이나 신파블로프식의 교육법을 안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힘에 대한 집착만 제거할 수 있어도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텐데

멋진 신세계에서는 모든 태아에게 그들이 생각해야 할 것, 좋아해야 할 것, 싫어해야 할 것들을 주입시킨다. 그들은 그렇게 주입된 것에 따라 자신들의 호오를 따르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런데 우리라고 다른가? 우리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 등이 정말로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인가? 그들이 태아 상태에서 1년 동안 그들의 판단을 주입받았다면 우리는 평생에 걸쳐 주입받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 아닌가?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언론이 화를 내지 않으면 그것이 화를 내야 할 사건인지도 모른다. 언론이 화를 낼 때 우리도 화를 낸다.
음식에 대한 미감 역시 우리는 국가적, 문화적 한계에 있을 뿐이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판단은 내가 속한 세대의 일반적 판단을 따를 뿐이다. 원래 내 생각이란 건 없다는 거다. 멋진 신세계 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약간의 선택이 있을 뿐. 우리가 100년 전에 태어났더라도 신분제라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요즘의 우리는 인도에 대해 성폭행 천국이라는 안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인도에 가보지 않았으면서도 그러한 생각을 한다. 그것이 알파계급이 카키색을 싫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태어나기 전부터 수백 번 주입받은 것은 우리가 언론과 교육으로부터 주입받는 것과 다름 없다.

만인은 만인의 소유라는 것도,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조에족은 군혼제를 채택하고 있다.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가 주어진 대신 자신의 꿈을 찾아야 하는 고통,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일자리를 선택하진 못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일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좋은 것일까?
행복한 노예와 고통스런 자유인 중에 뭐가 옳은 것일까? 이 사회에는 두가지 형태의 사람이 모두 존재하지만 어떤 모습을 지향하느냐에 따라서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선호가 갈리는 듯 하다.

모두가 만인은 만인의 소유라는 감정을 지니고 있고 질투가 제거된 상태라면 사랑에서 오는 행복감도 줄어드는 부분이 있겠지만 거기에서 오는 불행도 사라지니까. 좋은가?

알파고, 인공지능, 로봇, 무인자동차, 드론택시, 하이퍼루프, 유전자공학 등이 등장하면서 이전에 인간이 생각했던 미래 상은 대부분 설득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인간을 계급 짓고 그들을 그들의 노동에 붙잡아두는 것은 이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노동은 기계로 대체될 것이며 노동에 있어서 잉여인간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가 중요해졌다. 극 소수와 전부로 양분되어버렸다.

인간은 개성을 발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대신 차이를 인식함으로써 불행해지기도 한다. 모든 물리적, 환경적 조건의 평등함이 더 행복할 것인가 개성을 발현하는 사회가 더 행복할 것인가? 자신의 개성을 발하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대부분의 조건이 평등화된 쿠바의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과 요덕 정치범 수용소가 없는 북한이라면 과연 남한보다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까? 북한에서 내려와 동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한 탈북인사는 오히려 북한 사람들이 더 행복한 거 같다고 말을 한다. 남한의 사람들은 OECD 국가중 가장 긴 시간을 노동에 쓰며 노동 그 자체에서도 불행해하는 데 북한사람들은 경쟁하지 않고 취업에 대한 고통이 없어서 오히려 직업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인간은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고 소중한 것 같은데 그렇게 상품 찍어내듯 인간을 만들어내서 모든 인간성을 말살하고 개념으로서의 인간만을 양산하면 그게 도대체 그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게 무슨 의미인가? 그런 세계를 지배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잇나? 스스로를 기계화시켜서 만들어내는 인간 집단이 체제 유지 이외의 아무런 목표가 없는 인간들이 그들의 사회를 유지해나갈 유인은 무엇인가

계속해서 소마를 주입하여 기분을 일정 상태 이상으로 올려놓아 사색을 막는다는 것은, 사색은 불안과 고독, 불행과 고통에서 나온다는 것일까. 행복은 정신을 마비시키는가. 고통과 고독이야말로 계속해서 정신을 자극해서 활동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들이 수면교육에서 받은 말을 조건반사적으로 내밷는 것처럼 우리도 사회적 합의 혹은 수십년에 결친 경험의 교육에 따라 조건반사적으로 말을 내뱉곤 한다.

사실 출산을 인간에게서 분리시킨 면은 오히려 이 사회보다 나은듯 하고 그 외의 모습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레니나와 존이 서로의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계속 대화가 엇갈리는 걸 보면 국제연애가 저 비슷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94쪽
지금 모든 인간은 행복하니까.

:비판적 사고는 행복을 저해하는가? 질서에 만족하고 행복한 것이 좋은가 아니면 불만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투쟁하며 싸우는 것이 좋은가. 사실 행복이란 정신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육체노동을 하더라도 그 질서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면. 생각이라는 것이 과연 행복과 관련있는 것일까? 속된 말로 바보는 행복하다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116쪽
˝그대가 오늘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을 내일까지 미루지 말라.˝
: 마시멜로우는 있을 때 그때 그때 챙겨먹으라.

117쪽
어쨌든, 난 그 남자가 좋아. 그는 정말 멋있는 손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어깨를 움직이는 모습...그건 정말 매력적이야.˝
: 이건 뭐 사회적인 문제와는 상관 없이 사랑에 빠진다는 건 도대체 뭘까를 생각한다. 그것도 특히 한 눈에 반한다는 거. 도대체 뭐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가 생각해보면 저런 것들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 그사람의 손, 어깨를 움직이는 모습, 웃는 모습, 샴푸 냄새, 무표정히 창문 밖을 보고 있는 모습, 서 있는 모습, 걷는 모습, 옷 입는 스타일 등등 아주 사소한 것들에 사랑에 빠지는데 그게 진짜 사랑인가..

195쪽
세계가 그를 중요한 존재로 인정하는 한 세계의 질서는 훌륭했다.
: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는 어차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일 뿐이다. 그러니 각자가 보는 세계의 모습이 다르고 원하는 바가 다르고 정치관이 다를 수밖에.

266쪽
˝여러분은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델타 계급들은 전보다 배가된 분노를 느끼며 포효하며 공격해왔다.
: 예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발당했다. 존이 점점 예수를 닮아가고 있다.

274쪽
사회의 불안정이 없이는 비극을 만들 수 없는 것이야.
: 비극은 노래, 장면, 대사, 사상, 플롯, 성격으로 이루어지며 그 중 가장 중요한 플롯은 급전 발견 파토스로 이루어져있다.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 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니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뭔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 자네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창 밖으로 집어던진 것 말이네.
: 자유 하나 없다는 것으로 이 세계가 과연 디스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까.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없다면(그것이 태생적인 것이든 파블로프의 개처럼 교육을 받은 것이든) 자유가 없음에서 오는 불행도 없을텐데. 여기가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정확하게 나눌 수 있을까?

275쪽
안정이란 것은 불안정처럼 보이는 법일세. 또한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안정이란것은 불안정처럼 큰 구경거리가 될 수 없는 법일세. 따라서 만족하는 생활은 불행과의 처절한 투쟁이지니는 매력이나유혹과 투쟁이 지니는 장관이나, 정열 내지 회의에 대한 치명적인 패배가 지니는 장쾌함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야. 행복은 결코 장쾌한 것이아니야.˝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 - ˝하지만 그 쌍둥이들처럼 그렇게 형편없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까?˝
: 이제 우리는 감마와 엡실론 계급을 만들지 않고도 사회의 생산균형을 맞출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오히려 그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던 소비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지) 그렇다면 이제 이 유토피아,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낼 조건을 충족한 것인가.

276쪽
˝인간제조를 수행할 때 왜 모든인간을 알파 더블 플러스 계급으로 제조하지 않은 것입니까?˝
무스타파 몬드가 웃었다.
˝우리의 목이잘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야.˝

279쪽
세시간 반이나 늘어난 여가는 행복의 원천이 되기는커녕 그 여가로부터 어떻게 하면 도피할 수 있을까 하는 강박관렴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말았단 말일세.
: 노동시간과 여가 시간의 가장 적당한 비율은 어느정도일까. 유토피아에 나오는 6시간 근무제 정도면 가장 이상적일까? 노동없는 삶이란 정말로 불행할 것인가?

293쪽
브래들리. 그 사람은 철학이란 인간이 본능적으로 믿는 것에 형편없는 이유를 붙이는 학문이라고 정의했던 사람이었네.

294쪽
˝푹신한 의자에 안장 있는 에드먼드가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에드먼드만큼 가혹한 형벌을 받지 않는다고 확신하십니까? 신은 공평합니다. 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타락시키게끔 하는수단으로 인간의 사악한 쾌락을 사용한것이 아닐까요?˝

295쪽
물건의가치는 가치를 부여하는사람에 의해서 뿐 아니라 그 자체가귀한 것일 때 가치와권위가 붙는 것입니다.
: 그 가치라는 것, 귀함이라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 그것이 단순히 지적이고 고상한 것을 추구할 때만이 가치있다고 할 수 없을테고 그렇다고 감각적이고 피상적인 쾌락만을 추구한다고 해도 귀하다고 부를 수 없을텐데 말이다.

299쪽
하지만 저는불편한것을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 하루 평균 40명이 정신적 고통으로 자살하는 한국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도 과연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생명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면 불행해질 권리를 포기하고 매일 40명의 인명을 구하는 게 더 나은 건 아닐까.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한편 그 불행을 감당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사회일 수도 있다. 다수의 평범한 대중은 불행해질 수 있는 권리보다 신과 시를 노래하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바랄 수도 있다. 그들이 바라지 않더라도 그것이 그들에게 진정 행복한 삶일 수 있다.
존이 델타 계급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자유를 주겠다며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며 그들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처럼 총통은 모든 사람에게 당신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불행해질 권리를 가져가고 행복을 주겠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걸까.
더이상 고통을 감내하고 가야만 하는 천국은 사라졌다.니체가 이미 신을 죽였는데 어디 우리가 현세에서 고통을 감내하고 가야만 하는 목적적인 천국이 있다는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감내함에서 오는 깊은 행복감이 더 자주 자극적으로 오는 행복보다 가치있다고 할 수 있을까? 생산과 소비에 문제를일으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위생학과 경제학에 저촉되지 않는한 이제 사람들은 그 무엇이든 허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사실 인간이란 모든 다른 동물들과 같이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불완전하고 형편없는 동물인데 그것을 개선하려는 것이 왜 그리 나쁜가. 인간의 외적 조건을 인위적으로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이렇게나 허용되고 있는데 인간의 마음을 손쉽고 과학적으로 빠르게 변화시키는 것이 잘못된 것은 뭐가 잘못인가. 오히려 그것이 마약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는 것보다 조건반사적으로 훈련시키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시위진압대는 물대포를 쓸 것이아니라 코카인 가루를 시위대에게 뿌려대는 게 시위진압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싱가폴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도 점점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고교진학율과 대학 진학율, 명문고, 명문대 진학율이 나뉘고 있고 다시금 계층화 되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계급을 나누는 건 아닐지라도 자연스레 그렇게 되고 있는데 뭐가 많이 다른가.

우리는 왜 쾌락을 타락이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하층 계급의 태업을 방지하기 위해 주입된 세뇌 같은 건 아닐까?

가장 인상적인 장면
존과 레니나의 대화(서로 계속 엇갈리는)
존과 총통과의 대화
린다가 죽는 장면
사람들이 존을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대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존이 자살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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