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어보는 김영하의 책이다.
누군가는 여행기에 여행 정보를, 누군가는 한 편의 여행 다큐멘터리를, 누군가는 자신의 시선을 담는다. 이 책은 김영하의 시선이 궁금해서 고른 책이다. 그는 도쿄라는 아주 뻔하고 예쁘장한 도시에서 무엇을 보는지, 어떻게 보는지,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했다. 그런 시선들을 읽다 보면 나 역시 여행을 떠났을 때 더 예민하게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해서. 사진집인줄 알았다. 김영하라는 사람을 글쓰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진에도 관심이 많을 줄이야. 그리고 굉장히 느낌 있게 사진을 찍으실 줄이야.
김영하의 책을 읽는다고 처음 집은 책이 `빛의 제국`이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아니라 `김영하 여행자 도쿄`라니. 이 책을 다 읽어도 김영하 책을 읽어보았다고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버거킹 가서 와퍼는 안 먹고 아이스크림만 먹고 온 느낌이다.
같은 곳을 가더라도 다른 것을 본다면, 다른 것을 느낀다면 그건 같은 곳을 여행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디를 여행하는 지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여행에서 더 중요한 건 어디를 가는지보다 거기서 무엇을 보려고 하는 것인가인듯 하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고 잡다하게 터져나오는 호기심을 여기 저기 흩뿌리며 여행하자.
내가 사는 인천이라는 도시는 내가 모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인천공항, 부평, 구월동, 인하대, 송도, 월미도, 차이나타운 그리고 우리동네를 제외한 인천의 모습은 어떠할까.
김영하의 도쿄 역시 부분적으로는 옳고 전체적으로는 틀리겠지.
한 도시에 대해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이 도시는 ~~하다.˝ 혹은 ˝다른 곳은 ~~하지만 이 도시는 그러한 것이 없다.˝라고 단정 좀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것이 여행자에게는 전체인지라 그 인상이 바로 그 도시겠지만 그건 분명 전체적으로는 틀린 것이 아니겠는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행을 가서 도시에는 호기심 가득하고 기대에 부푼 눈길을 주지 않기 시작했다. 서울의 맥도날드가 도쿄에서 보이는 순간 모든 도시는 `도시`라는 개념으로 보이지 개별적인 특성이 없다고 치부해버린 것이다. 도시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특별한 게 있겠어?라는 마음으로(물론 자연의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조형물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에 자연을 찾아다닌 것도 있지만) 물론 세계화 이후 정말로 모든 도시들이 미국 출생의 기업들에게 점령당하여 똑같은 모습의 식민지같이 되어 가는 면이 없잖아 있겠지만 그것보단 내가 도시의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도시를 하나의 도시로 봤던 것 같다. 여행책을 따라 도시가 쳐놓은 내부자를 위한 경계선 바깥을 졸졸 따라다니며 맥도날드만 보고 왔으니 서울과 도쿄를 구분할 수 있겠나. 그건 나의 게으름 때문이었으며, 무지 때문이었으며, 부족한 언어실력 때문이었으며, 닫힌 마음 때문이었다. 도시는 성실한 여행자에게만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가보다.
책 앞에 끼여있는 뭐 별로 길지도 않은, 대단치도 않은 이야기의 소설이 은근 재미있게 읽혔다.
181쪽 사랑하면 집중하게 되고 집중하면 그르치게 되니 이때의 피사체는 당신이 사랑하던 그 피사체가 아니게 된다.
191쪽 당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더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3쪽 수동카메라를 팔고 디지털로 가는 사람들은 어딘가 전향자의 냄새를 풍긴다. 반대로 디지털에서 수동카메라로 넘어오는 사람들에게선 과장된 자의식이 엿보이는 경우가 많다.
203쪽 도시 전체가 잘 정리된 강박증 환자의 서랍 같다.
230쪽 우리는 낯선 도시에 도착할 때, 공포와 호기심, 친근감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그 도시를 `알아가게` 된다.
233쪽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뜻이다.
236쪽 도시에 대한 무지, 그것이야말로 여행자가 가진 특권이다.
241쪽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한 숙련, 무가치한 초과, 장인은 그 모든 것의 `거품` 속에서 위태롭게 존재하는 눈부신 잉여이다.
262쪽 처음에는 여행자가 여행안내서를 선택한다. 그러나 한 번 선택하면, 그 한 권의 여행안내서가 여행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여행자는 여간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책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268쪽 어쨌든 그것들은 모두 부분적으로 옳고 전체적으로는 틀리다. 어쩌면 우리는 도시를 여행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여행안내서 안을 열심히 돌아다니다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288쪽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취향과 고집을 가진 인간들이 친절하기까지를 기대하는 것은 본래 무리한 일이다. 오직 도쿄만이 그 예외이다.
292쪽 오다이바는 근대 이후 일본이 제창해온 탈아입구의 쇼핑몰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럽을 재현하되, 유럽에서 불쾌힌 요소는 다 재거하고 환상만을 남겨둔 곳, 그곳이 바로 비너스포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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