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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올해의 가을이 왔다.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은 항상 그 모습 그대로지만 가을을 맞는 느낌은 사람마다, 나이가 바뀔 때 마다 달라지는 것 같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겠지만 가을의 느낌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거구나’란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가을의 외로움와 허전함은 겨울의 외로움과 허전함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뼈 속을 파고드는 것이더니 이젠 나도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이런 가을의 멋진 쓸쓸함과 낭만적인 외로움과 감성을 일깨우는 고독이 참 좋아진다. 아마 나이가 더 들면 더욱 가을이 좋아지겠지...
가을은 시와 거리가 멀었던 사람도 시 한편쯤 읽고 싶어지고 이별 노래 한 소절에 푹 빠져들고 싶어지는 계절인 것 같다. 고독을 즐기는 방법은 온전히 고독에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바람이 불면 마음도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이 가을에 읽게 된 책은 바로 류근 시인의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다. 책 제목이 가을과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란 노래가사를 류근 시인이 썼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노래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듯 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노래나 시나 책이나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류근이란 시인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책 속에는 그의 자잘한 일상과 그의 고단한 인생과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하루하루의 작은 삶들을 통해 세상을 향해 한바탕 비웃어주고 싶었을까. 그가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그 해답을 아직도 찾고 있거나 어찌됐건 이 찌질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우리로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참을 수 있는 것을 참는 게 무어 참는 건가.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야 진짜 참는 거지.
견딜 수 있는 것을 견디는 게 무어 견디는 건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진짜 견디는 거지.
사랑할 수 있는 것만 사랑하는 게 무어 사랑인가.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햐 진짜 사랑인 거지.“]
시인이라서 그런지 이야기 속에 시가 있고 삶이 시가 되는 느낌이다. 평탄하지 못한 그의 인생과 찌질한 일상 속에 뒤틀린 세상이 있고 각박한 현실을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치약이 떨어지자 러키 하이타이로 양치질을 하고 술 마실 돈이 없으면 남아 있는 양은 냄비까지 전당포에 맡기고 해장술을 마시는 술꾼인 그에게 술이란 그의 인생에서 뗄 수 없는 친구이자 동반자인 것 같다. 47만원 조금 되는 돈으로도 마치 갑부가 된 듯 세계 일주 여행을 할까? 섬 하나 사서 낚시질 하며 생을 보낼까? 하며 만원의 행복이 아닌 47만이 주는 크나큰 행복에 잠깐이나마 행복해 하는 부분은 그의 궁핍한 일상을 엿 볼 수 있다.
현실에 연연하며 살고 싶진 않지만 당장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사와 끓여 먹어야 하고 추우면 연탄이라도 사서 피워야 하는 인생이라는 그의 말처럼 현실이 아무리 개판 같아도, 정승처럼 살고 싶어도 당장 배고프면 끼니 걱정 할 수밖에 없는,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누구나 자괴감을 느껴봤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한번씩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난다. 어찌 보면 너, 나 할 것 없이 산다는 것 자체가 쪽팔리고 찌질하다는 것에 대한 공감인 것 같다.


그의 주위에는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동화 작가가 꿈인 세 들어 사는 집 주인 아저씨의 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매번 낙방하면서도 계속해서 투고를 하는 아저씨는 ‘당선도, 좋은날도 다 필요 없다’고 말한다. 다만 자신이 들러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저씨는 여자 프로축구단 선수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안 류근이 따로 만난적이 있냐고 묻자 당신이 뭘 알겠냐는 듯이 “유씨, 축구의 세계를 알아유? 여자 프로 축구단 선수에 대한 순정만 반짝반짝 살아 있으면 그걸로 아름다운 거유” 라고 말한다. 그가 아저씨에게 뭔가에 대해 물어보면 ‘유씨는 사나이 순정을 알아유?’ ‘뽕밭 세계에 대해 알아유?’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세계에 대해 알아유?’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취급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런 아저씨의 정신세계가 궁금해진다. 다들 자신만의 인생철학이 있듯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그런 사람이 어울려 사는 이 세상은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공존하는 재래시장 같다.
사람이 무슨 이유로 태어나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고,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무엇이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알다가도 잘 모르겠을 때가 있다. 종종 인생길에서 한번씩 길을 잃어버려 방황하는 기분이다. 그냥 물 흐르듯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곤 한다. 각박하고 힘든 세상에도 웃음은 있고 바짝 나사가 쪼인 생활 속에서 한번쯤은 나사도 풀어 놓고 지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마음이 서글퍼지는 이 계절에 다른 사람의 아픔도 슬픔도 돌아봐 주는 마음 하나 가질 수 있는 계절이 되었으면..
[출가한지 50여년이 됐다는 노스님께서 혼자말인 듯 노랫말인 듯 읊조리셨다.
나는 꽃들에게 말을 걸면 내 슬픔 때문에 꽃들이 죽어버릴까 봐 아무말도 못하고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