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검은 박쥐떼의 습격

지친 금반지의 머리위에 쏟아져 내리는 빛나는 햇살은 그녀의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끝내 머리가 핑 돌면서 어지러움에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레털레 걸어가던 사기군이 놀라 그녀에게 달려 왔다.

“왜 그래요?”
“아이.. 으으으”

떼를 쓰다 혼난 어린애같이 울상을 짓고 있는 그녀의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는 굽없는 구두에 한쪽 팔만 달려 있는 브라우스의 앞부분은 단추가 몇 개 떨어져 나가 군데군데 풀어 헤쳐져 있고 곱게 빗어 올렸던 머리는 산발이 되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온 몸은 먼지와 흙으로 꾀제제한 체로 땅에 주저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완전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이 든 사기군은 그녀가 지금 뭔가를 원한다면 다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디 아파요?”
“나... 배 고 파 요”

그녀의 말에 어이없이 피식 웃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평소엔 쉬운 일이 지금 상황에선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달라고 하면 그게 더 쉬웠을 것이다.  그때 하늘 위로 뭔가가 ‘휙’ 하고 재빨리 지나갔다.

“뭐해요 빨리 안 오고”

무겁고 지친 몸을 이끌고 걸어가던 일행이 뒤쳐져 오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곳까지 오면서 힘든 일을 겪어 지친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쉬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마땅히 쉴 수 있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길바닥에 퍼져 앉아있는 금반지의 귀에 어디선가 나지막히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 안 들려요?”
“무슨 소리요?”
“종소리요..”

사기군은 그녀가 허기지고 기력이 빠진 탓에 환청을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힘네요  내가 나중에 여기서 돌아가면 먹고 싶은 것 다 사줄게요”
"여기서 돌아가기 전에 여기서 굶어 죽을것 같아요"
"조금만 더 힘내요.  우리 돌아가면 그땐 맛있는거 배 터지게 먹자구요"
'꼭 되돌아갈거야'


그녀는 혼자 그 말을 내뱉으며 천근만근인 몸을 질질 끌며 길을 걸었다.  그녀의 옆에 걷던 사기군은 몸은 지쳐도 입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그녀에게 짓궂은 농담을 걸어왔다.  그의 말에 대꾸도 않고 신경 안 쓰려고 다른 생각을 하며 걸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말이 귀속으로 쏙쏙 들어와 박히며  그녀의 인내를 테스트 하고 있었다. 조금의 힘이라도 남아있었으면 그에게 주먹을 한방 날렸겠지만 남아있는 에너지라도 아껴야 하므로 참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표정이 밝아지며 어딘가로 뛰어가더니 길가에 피어있는 꽃한송이를 따서 돌아와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름다운 아가씨 저의 마음을 받아주세요”
“저리 치워요. 말할 기운도 없으니까”

그가 또 헛튼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의 손을 슬쩍 밀치며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하지만 전에 보단 많이 부드러워진 태도였다.  하지만 먹어보란 그의 말에 결국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 그녀는 그 꽃을 빼앗아 땅에 내동댕이쳤다. 

“야~ ! 정말 죽어 볼래?  이런걸 먹으라고? 너나 실컷 먹어라 이 사기꾼아”

그녀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고함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더니 주먹으로 마구 두들겨 팼다. 그녀의 공격에 그는 아무런 방어도 몸을 최대한 움츠렸다.  
  
“아..아 잠깐만요. 왜 이렇게 폭력적이에요? 그게 아니고..내 말 좀 들어봐요”

힘이 다 빠져버린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지친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것 같았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치만 보고 서 있던 사기군은 약간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꽃잎이 떨어져 나가 망가진 꽃을 주으며 속상한 듯 말했다.  

"이 꽃 먹을 수 있는 거에요.  배고프다고 해서 껶어 온 건데”

축 늘어져 있는 그녀의 콧속으로 향긋한 꽃내음이 솔솔 들어왔다.

그 말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그 꽃으로 눈을 돌렸다.

“뭐..라구요”

방금 전 잡아 먹을 듯이 덤비는 그녀의 기세가 좀 수그러든 것 같자 그는 다시 꽃이 피어있는 곳으로 달려가 꽃을 껶어 돌아왔다.  껶어 온 빨간 꽃을 내밀자 그녀는 좀 전의 자기의 행동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슬그머니 그 꽃을 받아 쥐었다.  그녀가 화가 풀린것을 눈치 챈 그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이제껏 어떤 여자들에게도 한번도 자기의 마음을 보여 본 적 없던 사기군인데 금반지 앞에서만은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이 꽃은 시계꽃인데요 가운데는 나침반처럼 생겼고 수술은 마치 시계추처럼 생겼죠”

그는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걸 보여주려고 먼저 꽃잎을 따서 먹었다.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꽃을 코 끝에 갖다 대고 향기를 맡은 후 그 꽃을 입에 넣고 조심스레 씹어 보았다. 그 꽃은 약간 단맛이 났다.  점점 진하게 풍겨오는 꽃향기는 이 꽃의 향기가 아니였다.

그녀가 그 꽃향이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검은 망토를 걸친 여인들이 국화꽃이 얹힌 관을 끌고 가고 있었다.   종소리가 들렸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인들은 검은 망토를 깊숙이 덮어 쓰고 있어 얼굴을 잘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들의 얼굴엔 사람의 감정 중 어떤 감정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느낌은 너무나 차분하고 싸늘했다.  

그녀들의 행차를 본 다른 일행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묵념을 올렸다.  하지만 그녀들은 눈길 한번 돌리지 않은 채 묵묵히 관을 끌고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사라져 갔다. 

“누가 죽은 걸까요..  저 사람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겠죠”
“물론 그렇겠죠”
“죽는다는 건 뭘까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어쩌면 다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 그녀는 문뜩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이상한 말 그만하고 어서 가요. 다른 사람들이 우릴 기다리잖아요”
“난...이제 더 못 가겠어요”
“자 업혀요”

사기군이 자신의 등을 내밀어 주었지만 그녀는 업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빨리 업혀요 너무 빼는 것도 매력 없”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이 커지더니 비명을 질렀다.

“도망쳐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그녀가 벌떡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뛰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쭈삣 쭈삣해지는 불길함에 뒤를 돌아본 그도 죽어라고 뛰기 시작했다.

“에이씨 또 시작이야”

그의 뒤에 붉은 눈을 가진 박쥐떼가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갑작스런 박쥐떼의 습격에 미친듯이 뛰었다.  벌써 그들의 뒤를 바짝 따라온 박쥐들이 그들을 공격해왔고 일행은 곧 많은 박쥐떼들에 둘러 쌓여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금반지는 고함을 지르며 가지고 있던 가방으로 달려드는 박쥐를 막느라고 난리법석을 떨었고 도박사는 날아오는 박쥐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그 틈을 빠져나와 혼자 슬금슬금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사기군은 박쥐떼들에 쌓여 꼼짝도 못하고 울부짖는 그녀에게로 까만 박쥐떼를 헤치고 조금씩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쪽 팔로 그의 흰 양복을 벌려 그녀를 감싸 안았다.

계속해서 사정없이 몰려들어 그들을 물어 띁는 까마귀들 틈에서 그는 지팡이를 하늘높이 쳐들어 휘둘렸다.  두려움에 떨던 그녀는 그의 품에 더욱더 깊게 얼굴을 파묻었다. 주위의 뜨거운 열기와 고막이 찢어질 듯한 시끄러운 괴음, 그녀의 몸으로 전해져오는 그의 체온과 향수냄새, 목숨을 건 싸움. 그녀의 머릿속은 어지럽게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까맣던 하늘이 열리며 불에 탄 박쥐들의 재는 검은 비가 되어 내렸다. 

박쥐들의 습격을 피해 혼자 도망쳐 나온 도박사는 살았구나하는 기쁨에 두고 온 일행에 대한 미안함도 없이 혹시나 다시 공격해 올지 모르는 박쥐떼를 피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더 이상 쫓아오는 박쥐떼가 없자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늦쳤다. 여유롭게 흥얼거리며 걷고 있는 그는 발밑이 약간 흔들림을 느끼고 순간 놀라 멈짓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춘 그는 신경을 곤두 세우고 정황을 살폈다.  이번에는 좀 더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바짝 긴장한 도박사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조심 한발짝씩 떼어 놓았다. 몇 걸음 못가 땅이 심하게 흔들리며 금이 가더니 지그제그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다른 일행이 있는 곳도 마찬가였다.  사기군은 그녀를 데리고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일행을 향해 초고속으로 달려온 보르한의 차가 그곳에 도착했다. 땅은 더 심하게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사기군은 금반지의 손을 잡고 무작정 뛰었다.

그런데 목숨을 걸고 뛰던 사기군은 얼마 못가서 갑자기 멈췄섰다. 그들의 눈앞에 끝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곧 그들은 그곳에서 낭떠러지 끝으로 걸어가고 있는 또 한 사람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아까 혼자 도망가던 도박사였다.  둘은 큰 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그들의 애타는 목소리를 뒤로한 채 도박사는 무엇에 홀린 듯 계속 낭떠러지 끝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엔 볼 수 없었던 다른 잠든 아이의 얼굴처럼 아주 평온해 보였다. 이제 한 발만 더 내딪으면 끝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낭떠러지 밑으로 영원히 사라질 순간. 두 사람은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지켜볼 수 밖에 없어 애만 태웠다.  끝내 도박사는 마지막 한 발을 내딪었고 그녀는 도저히 그 장면을 볼 용기가 없어 고개를 돌려 버렸다. 

평소에 미워하긴 했지만 그의 허무한 죽음을 애석해할 시간도 없이 그들이 서 있던 발밑이 순식간에 쫘아악 갈라짐과 동시에 둘의 사이도 떨어지게 되었다. 

박쥐떼들의 공격을 피해 헛간에 숨어있던 지루한과 의사는 지진으로 집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자 그 곳을 빠져나와 다른 일행을 찾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눈에 보르한이 누군가를 어깨에 들쳐 매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도박사를 땅에 내려놓으며 두 사람에게 그를 부탁하고는 어디론가 급하게 가버렸다. 도박사의 눈동자가 풀린 것이 정신이 약간 나간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제 정신이 아닌건 확실했다.  의사는 도박사를 살펴보더니 환각상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서 여길 빠져 나갑시다”

의사와 지루한은 그를 양쪽에서 부축해서 데리고 갔다.

사기군과 금반지가 서 있는 땅의 틈은 빠르게 벌어지고 있었다.  금반지가 겁에 질러 꼼작도 못하자 사기군은 그녀가 서 있는 곳으로 옮겨가기 위해 있는 힘껏 뛰었다.  순간 그가 뛰어 내린 발밑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며 그는 벼랑에 매달린 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그를 끌어올리기 위해 그의 손을 잡고 힘껏 당겼지만 그녀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그의 손을 잡고 있던 그녀의 몸도 낭떠러지 쪽으로 딸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팔이 떨리며 손엔 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서 그의 한손이 빠져 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듯 비장한 눈으로 그녀에게 손을 놓으라고 했지만 그녀는 도저히 그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다시 땅이 흔들리더니 갈라져 있던 땅이 간격을 좁혀 오고 있었다.  안간힘을 쓰며 그를 붙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서 그의 손이 자꾸 미끄러져 나가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미안해요 더 이상 당신을 붙잡을 힘이 없어요.  놓으면 안 되는데...어떻하죠]

그 순간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그의 남은 손을 잡아주었다. 그 믿음직한 손에 의해 그의 몸은 위로 당겨 올려졌다.  땅이 맞붙으려는 순간 그의 몸도 함께 빠져나왔다.  사기군은 다시만난 보르한을 보곤 고마움과 반가움으로 어쩔 줄 몰랐다.  특히 금반지는 사기군의 목숨을 구한 기쁨과 다시 볼 수 없을거라 생각한 그를 만난 놀라움, 지금까지의 고생 이런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올라 자기도 모르게 이제껏 참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얼른 눈물을 훔쳤다. 

“또 한번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시네요.  뭐라고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사기군이 보르한에게 손을 내밀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는 사이 멀리서 다른 일행들이 박쥐떼에 쫓겨 그들 쪽으로 도망쳐 오고 있었다.  도박사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이제껏 죽었다고 생각한 도박사가 살아있는 것을 본 금반지와 사기군은 믿기지 않는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어쨌든 그가 살아 있다는게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보르한은 금반지와 사기군에게 몸을 피할 것을 당부하고 박쥐떼에게 쭃겨 도망쳐 오고 있는 그들을 돕기 위해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본 사기군이 비장한 각오를 한 사람처럼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하곤 바로 보르한의 뒤를 따랐다.   생각도 못한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잠시 어리둥절해 하고 서 있자 의사가 그녀의 손목을 끌며 재촉했다. 그들은 보르한과 사기군을 뒤로하고 앞을 향해 무조건 달렸다.  금반지는 두 사람이 걱정이 되어 순간순간 뒤를 돌아보며 달렸다. 

도망가던 그들의 눈이 점차 커지며 얼굴엔 긴장감이 돌았다.   전방 200미터쯤에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격전을 벌이고 있는 그들을 향해 빨리오라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지만 계속되는 박쥐들의 공격으로 그들의 걸음은 늦어지고 있었다.  먼저 엘리베이터에 도착한 세 사람은 그들이 무사히 어서 오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그리 멀지 않는 그들과의 거리가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는 점점 흐릿해지며 사라지고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자 가슴 졸이던 금반지가 간절히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정말 피를 졸이는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의 바램이 하늘에 닿았는지 숨가쁘게 뛰어오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 와요 지금오고 있어요”

반가움에 들뜬 지루한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에 들려왔다. 그녀는 얼른 눈을 떠 긴장된 모습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기군과 도박사의 모습만 보일 뿐 보르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자 반가운 마음 뒤로 그를 홀로 남겨 두고 온 두 사람이 너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보르한에게 자기의 목소리가 전해지길 바라며 소리쳤다.

“제발 빨리 와요”

자기들을 향해 소리치는 금반지를 본 사기군은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다.  사기군이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뒤에 따라오던 도박사가 뒤따라온 박쥐의 공격으로 쓰러지더니 다시 일어나 뛰었다. 이제 엘리베이터 문은 반쯤 닫혀가고 있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도박사는 몸의반이  엘리베이터에 끼인채 다른 시간 속으로 이동했다.   결국 오지 못한 보르한만을 남겨둔 채 떠나는 일행은 자기들의 비겁함과 미안함으로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금반지는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을 느꼈다. 

그들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어딘가에 멈추더니 문이 천천히 시작했다. 조금 열린 문 틈으로  익숙한 꽃향기가 스며 들어왔다.   주위를 살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일행은 넓게 피어 있는 하얀 국화꽃밭을 보곤 그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했다.  문뜩 이곳에 오기 전 관을 끌고 가던 여인들이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국화꽃이 피어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가던 그들은 어떤 작은 성당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는 성당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이고 들어갔다.  그 곳에는 검은 망토를 입은 여인들이 모여 죽은 사람을 위해 의식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의식이 점점 궁금해진 금반지는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망토를 걸친 여인들이 검은 관을 열었다.  사기군은 그녀가 혹시나 그들의 의식을 방해할까봐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놀란 금반지가 뒤로 돌아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사기군은 관 속의 하얀 드레스를 입고 편히 잠든 아름답고 숭고한 여인을 보고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왜 그래요?”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사기군은 당황해 하며 얼른 그녀의 손을 끌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도무지 어떻게 된 건지 머릿속이 혼란해진 사기군은  그 이후에도 그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말 금반지일까?  아냐 내가 잘 못 본 걸 수도 있어.  그녀와 닮은 사람일지도 몰라]

그들이 성당을 나가자 다른 일행도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그곳을 빠져 나왔다.  지친 그들은 일단 쉴 수 있는 곳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평소 말 많던 사기군이 성당을 나온 뒤론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처럼 멍하니 한마디 말이 없었다.  금반지와 다른 일행은 사기군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푸른 들판이 펼쳐진 곳이 나왔다.  길가에는 곧게 잘 뻗은 가로수와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여기저기 피어있는 이름모를 꽃들은 시원한 바람에 살랑이며 그들을 반겨 주는것 같았다.  모처럼 맞는 평화로운 풍경에 기분이 좋아진 지루한은 혼자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는 허기진 그들의 배를 더욱 고프게 했다. 

“아 배고프다 너무 배고파서 쇠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애”

금반지는 뱃가죽이 등에 딱 들어붙은 것 같았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 보면 이 근처에 집이 있다는 얘긴데..”

지루한의 말이 떨어지기도 무섭게 그녀는 제일 앞에 앞장서 걷고 있었다.  강하게 코를 자극해 오는 고소한 냄새는 어떤 유혹 보다고 더 감미로웠다.  그들은 곧 아담한 집 한 채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집 앞에 다다른 금반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행동을 의아하게생각한 사기군은 그녀의 시선이 꽂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저.. 저건 혹시”

옆에 서 있던 그도 놀라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왜 그래요?”

그 뒤에 도착한 지루한과 일행도 그 곳을 바라보았다.

“아니 저 차는...혹시”
“맞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자기의 생각과 같음을 확인했다.  울타리 넘어 군데군데 부서지고 찌그러진 상처가 있는 검은 차가 세워져 있었다.  의사가 달려가 얼른 그 집 문을 벌컥 열어 젖혔다.

“보르한씨?”

그는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러 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의사와 일행은 일단 집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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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한을 만나다]
“전 보르한이라고 합니다.  여긴 위험한 곳이니 일단 제 차에 타시죠”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지독한 안개속에서 만난 이 범상치 않은 낯선 남자의 출현에 모두들 어리둥절해 하며 경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안개속에 서 있는 이 남자는 그들이 올 줄 알았던걸까? 아니면 안개속을 뜷고 가기 힘들어서 잠시 안개가 걷힐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이 새낀 또 뭐야”

 뒤에서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던 도박사가 몸을 건들거리며 앞에 있던 지루한을 밀치고 그 남자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어깨를 툭 밀쳤다.  그러자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남자가 도박사의 팔을 확 비틀어 버렸다.  도박사는 그 남자의 손아귀에서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덤비는 하룻강아지처럼 꼼짝도 못한 채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잠시 뒤 보르한은 그의 몸을 죄고 있던 팔을 풀며 침착하게 말했다.  

“길게 얘기할 시간이 없으니 어서 차에 타시죠.  여긴 괴물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라 속히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도박사는 자기의 팔을 만지며 그의 기에 한 풀 꺽인 듯 또 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지만 기분나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보르한이 차 문을 열며 차에 탈 것을 재촉하자 일행은 그 남자의 호의를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어떻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지금 어디서 개수작 부려 어?  꺼져”

도박사가 갑자기 뒷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그 남자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

“그만둬요 어서 그 칼 치워요”

의사가 도박사의 돌발행동에 놀라 소리를 쳤다.  도박사의 그런 행동에 많이 놀랐지만 가죽 자캣의 그 남자 또한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던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저지 시킬수 없었다.  도박사의 행동에도 그 남자는 아랑곳 하지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칼 장난 할 때가 아닙니다.”

그가 어떻게 한 건지 순식간에 도박사는 손에서 칼을 떨어트리더니 한 마디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퍽 쓰러지고 말았다.  순간 보르한의 행동에 놀란 일행은 뒤로 물러섰다. 

“놀라지 마십시오 잠시 기절한 상태니까요.  이렇게 자꾸 시간을 끌면 여러분만 위험해질 뿐입니다”

 검은 선글라스 넘어 그의 눈이 일행의 행동을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선뜩 그를 따라나서려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모두들 똑같은 생각이시라면 할 수 없군요 그럼 조심해서 가십시오”

보르한은 돌아서서 차에 타려고 문을 열었다. 

"당신을 믿어도 됩니까?”

반신반의 하던 의사가 어이없는 질문을 던지며 떠나려는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보르한은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돌아 보았다. 

“지금 여러분이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방법이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당신 말이 맞는지 아닌지도 우린 모르지 않습니까”
“저를 믿고 안 믿고는 당신들 마음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모두 진실입니다.”

의사는 일행들과 눈빛 교환을 했다. 

“일단 당신을 믿어 보기로 하죠”

그들끼리 이 곳을 빠져나가는 것도 자신이 서지 않았던 일행은 일단 그를 믿어보기로 하고 차에 오랐다. 그에 대해 완전히 경계심을 풀지 못한 일행은 긴장하고 있어서인지 한동안 아무런 말없이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긴장들 푸십시오. 전 여러분들을 돕고 싶을 뿐입니다”

한쪽 눈을 가린 늘어뜨린 머리칼, 매끄럽게 빠진 콧날, 굳게 다문 입, 왠지 모를 믿음직스러운 모습이 그에 대한 경계심을 조금전 보단 약간이나마 풀게 했다.   

“차안이 완전 최첨단이네요 이런 차는 처음 봐요  와~ 이게 다 얼마짜리야”

누가 자동차 판매원아니랄까봐 지루한은 차안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더니 연이어 감탄을 내뱉었다.

“그런데 차 안에 왠 무기가 이렇게 많아요?”
“여긴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준비를 해 두는 겁니다”

그때 정신이 돌아온 도박사가 머리를 짚으며 힘들게 몸을 일으키더니 주위를 살폈다.

“여긴.. 아니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그의 차안인 것을 확인한 도박사는 아주 불쾌해하며 화를 버럭 냈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 것 같아 두고 가고 싶었지만 이 분들이 당신을 데려가자고 해서 태운 거니 고맙게 생각하시고 조용히 가시죠”

보르한의 말이 끝나자 의사가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우리끼리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뭐야! 누구 맘데로?”
"지금은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것 같아요"
"이 멍청이들!! 미쳤어?  저 놈 얼굴에 딱 나쁜놈이라고 씌여 있잖아"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지루한이 눈치없이 더욱 도박사의 화를 돋구었다.  

"사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을 똑바로하라고 얼굴로 봐서는 형씨가 더 나쁜놈 같아요"
"근데 새끼가 진짜" 

지루한의 말에 도박사의 얼굴이 더욱 불그락불그락 하더니 지루한의 멱살을 확 휘여 잡곤 불끈 쥔 거친 주먹을 한방 날리려는 순간 보르한이 갑자기 키이익 하고 차를 세웠다. 차가 갑자기 서는 바람에 도박사의 주먹이 빗겨가 사기군의 얼굴을 쳤다.

"아아!"
"왜이래요? 진짜 아! ..저리 비켜요"

사기군은 얼굴을 최대한 구긴채 불쾌함을 드러냈다.

"뭐야?"
 
차 뒷 자석에서는 자기들끼리 난리법석이었다.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내려드리겠습니다"

보르한의 가시 돋힌 말에 그를 인식해서인지 도박사는 억지로 감정을 누르곤 일행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내리라는 눈짓을 보냈다.  

"뭐해? 전부 빨리 안 내리고”

그러자 모두들 그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 채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릴 분이 없는것 같습니다. 혼자 내리시죠"
"뭐해? 빨리 안내려?"
"안개 숲을 빠져나갈 때 까지만요. 그때까지만 그냥 같이 가죠”
 
그때 동물이 울부짖는 듯한 괴상한 소리가 들려오자 약간 겁먹은 도박사는 할 수없이 지루한의 말에 그냥 못 이기는척 하며 슬그머니 눈치를 보더니 자리에 앉았다.

“으으음..그럼 안개 숲을 빠져나갈 때까지만이니 그때 가서 딴 소리 하면 그땐 확!. 내 성질 알지? 알아서들 하슈”
'웃겨 정말.  자기가 뭐라고'

금반지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비아냥 거렸다.

“아니 뭐야? 이 년은 왜 계속 시비야?  아주 오늘 년,놈들이 쌍으로 성질 건드리네"
“왜 이래요? 모두 그만들 하세요”

의사가 둘을 말렸다.

“지금부터 싸우는 사람은 이곳에 내려놓고 갈 겁니다.  누가 먼저 괴물의 밥이 되고 싶습니까”

보르한의 말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근데 어이 까만 안경.  도대체 뭣하는 놈인데 아까부터 이래라 저래라야?”

도박사가 침묵을 깨며 건방지게 물었다.

“전 그냥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해?  이 숲만 빠져나가면 일차적으로 널 죽여주지"
"네 좋을 데로 하십시요. 하지만 이 숲을 빠져나갈때 까진 제 말에 따르시죠"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듯하자 의사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여행을 하신다고요. 그러면 혹시 우리 말고 다른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으신지”
“아뇨”
“마지막 문에 대해 들어본 적은요?”
“잘 모릅니다."
“아.네에.. 그렇군요”

단호한 그의 말에 사기군이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보르한이 말을 이었다.

“그 마지막문이란 걸 왜 찾으시려고 합니까?”
“그게.. 그 문을 찾아야 우리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요”
“저도 예전에 그런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왜죠?”

일행은 모두 그의 말을 듣기 위해 숨을 죽였다.

“이제껏 그 문을 찾은 사람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들 순식간에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실망은 하지 마십시오. 제 말이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요”

보르한의 차는 앞도 재대로 볼 수 없을 만큼 자욱한 안개 속을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그때 차가 아주 커다란 바위 같은 것에 충돌하는 소리와 함께 일행의 몸이 심하게 쏠리며 차에 부딪혔다.  지루한의 머리에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때 보르한이 비장한 얼굴로 무기를 들더니 차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린 금반지가 차 밖을 내다보곤 사색이 된채 비명을 질렀다. 앞에 몸은 커다란 뱀처럼 생겼고 머리가 여러개 달린 푸르스름한 비늘을 가진 징그럽게 생긴 괴물이 공격을 시작했다.  괴물은 높은 괴음을 내며 시뻘건 눈으로 보르한을 노려보더니 입에서 붉은 화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괴물을 본 일행도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그를 향해 불을 뿜던 괴물의 다른 머리가 일행이 탄 차로 눈을 돌리더니 길고 징그러운 긴 목이 빠른 속도로 차를 향해 다가와 머리로 차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차는 그 괴물의 공격을 받아 견디지 못하고 찌그러지더니 이내 부서질 것만 같았다.  차안은 도망갈 사이도 없이 꼼작없이 갇혀버린 일행의 비명소리로 가득찼다.  그때 보르한이 번쩍이는 검을 들고 날쌔게 날아 괴물의 긴 목을 내리쳤다.  순간 괴물의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끈적끈적해보이는 시퍼런 피가 공중으로 뿜어져 나오며 목이 잘려 날아갔다. 

이 기회를 틈타 몸을 피하기 위해 일행은 부리나케 차 문을 열고 한명씩 차를 빠져 나가는데 숨막히는 긴장감에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자욱한 안개가 괴물에게서 자신들을 지켜주는 보호막이 되어 주길 빌며 각자 숨을 곳을 찾아 들어갔다.  괴물은 곧 보르한의 차를 목으로 둘둘 감아 세게 집어 던졌다
차는 어디론가 날아가더니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났다.  그리고 더욱 흥분한 괴물은 이번엔 보르한의 몸을 감아 죄기 시작했다. 보르한은 그 괴물에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점점 더 조여 오는 괴물에게서 벗어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안개속을 뚫고 들려오는 보르한의 괴로워하는 신음소리에 일행은 견디기 힘든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괴물이 그의 몸을 계속해서 조여오자 견디다 못한 보르한은 조금씩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 히드라 문양을 가진 그의 목걸이에서 괴물의 눈을 향해 강한 빛이 발사됐다.  순간 주위가 환해지더니 그 강한 빛에 괴물은 눈을 뜨지 못하고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며 보르한을 집어 던지고 말았다.  보르한은 어디론가 날아가 땅으로 떨어졌다. 

“안돼!!”

숨어서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금반지는 그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빠르게 뛰고 있던 그녀의 심장은 멈춰버리는 것 같았다.

“왜이래요? 지금 미쳤어요?”

사기군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 끌며 그녀의 행동을 저지시켰다. 하지만 얼굴이 하얗게 질린  금반지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사기군이 일어나 금반지를 억지로 앉히려 했다. 하필 그때 그의 눈이 괴물의 날카롭고 붉은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둘을 발견한 괴물은 몹시 굼주린양 흘러내리는 침을 혓바닥으로 낼름거리더니 닦더니 날카로운 이빨을 드려내 번뜩이며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내가 미쳐. 뛰어요”

사기군은 금반지의 손을 잡고 괴물을 피해 죽을 힘을 다해 힘껏 달렸다.  그러자 괴물은 소리를 지르며 더욱 빠르게 뒤쫒아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들의 뒤를 바짝 쫓아온 괴물의 두껍고 무시무시한 발톱이 있는 커다랗고 넙적한 발에 곧 밟히고 말것 같았다.   끝내 괴물의 공격을 받은 사기군이 소리를 지르며 땅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괴물의 날카로운 발톱에 그의 팔이 찢어져 흰 양복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빨리 가요. 어서”

땅에 쓰러진 사기군은 고통스러워하며 그녀에게 빨리 피하라고 손짓을 했다.

“어서 일어나요. 이러다간 죽어요”

금반지는 사기군을 일으켜 세우려고 애를 썼다.  쓰러져 있는 그를 괴물이 덮치려는 순간 사기군는 양복 주머니 안에서 빛나고 있는 자신의 카드를 꺼내 괴물을 향해 던졌다.   카드가 빙글빙글 돌며 점점 커지더니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괴물의 목의 관통했다.   검푸른 액이 사방으로 튀며 괴물의 목이 잘려 땅에 떨어져 굴렸다.  

사기군은 다친 팔을 움켜진 채 금반지의 부축을 받으며 바위에 몸을 숨겼다.  고통스러움에 그는 숨을 쉬기조차 힘겨워하는것 같았다.

"조금만..힘내요"

반지가 갑자기 자기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더니 옷을 벗는 것이었다. 그녀의 매끄럽게 빠진 어깨선과 가느다란 몸을 본 사기군은 눈을 뗄 수 없엇다.  

“뭘 봐요? 고개 돌려요”

블라우스를 벗은 금반지는 울상을 지으며 과감하게 자기의 블라우스를 힘껏 쭈욱 찢었다.

'이게 얼마짜린데’
“팔 내밀어요”

그는 약간 부드러워진 그녀의 말투에 약간 놀라며 고개를 돌려 그녀가 하라는데로 팔을 천천히 내밀었다.  금반지가 사기군의 팔을 칭칭 감아 묶자 사기군은 팔의 통증으로 괴로워했다.

“아~ 이런식으로 지금 복수하는거에요?"
“엄살은.. 아파도 조금만 참아요”

그녀를 응시하던 사기군의 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더니 그녀의 가슴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뭔가 이상한 느낌에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은 그의 부담스러운 눈빛과 마주쳤다. 

‘찰싹’
“이 응큼한 인간”

부끄러워하며 그녀는 얼른 찢어진 브라우스를 다시 주워 입었다.

“고마워요”

그녀의 그런 행동에도 불구하고 사기군은 응큼한 미소를 지으며 윙크를 날렸다.

“아직 살만한 모양이죠”

금반지는 얼른 고개를 돌려 그의 부담스런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좀 전 보다 조용해진 분위기는 둘 사이를 더욱 어색하게 만들었다.  왠지 괴물의 공격이 잠잠해진 것 같아 그녀는 얼굴을 내밀고 정황을 살폈다. 괴물이 어디론가 가고 있어서 도망을 가나 싶었는데 입에 누군가를 물고 있는 것 같았다.  유심히 보니 괴물의 입에 괴물의 공격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던 보르한이 의식을 잃고 몸이 축 늘어져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심장이 급격히 뛰기 시작했고 그가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녀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것을 목격한 사기군이 괴물에게 잡혀 가는 그를 구하기 위해 뛰쳐나갔다.  그녀의 가슴은 더욱 쿵쾅거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괴물을 향해 힘껏 던진 사기군의 지팡이는 괴물의 등에 깊숙히 꽂혔다.  괴물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뒤돌아 사기군을 향해 입을 벌려 불을 내뿜었다.   괴물이 입을 벌리는 순간 보르한은 땅으로 떨어졌고 주위의 모든 것들을 태워버릴것 같은 붉은 뜨거운 화염이 주위를 휘감았다. 

땅에 떨어진 보르한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기군을 뒤 따라 온 금반지를 목격한 괴물은 그녀를 휙 낚아챘다.   굵고 뽀족한 손톱을 가진 괴물의 손아귀에 잡힌 그녀는 죽을 듯이 비명을 질렀다.  화염에 휩싸였던 사기군도 쓰러져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구해줄 사람은 없었다.  이미 그녀의 몸은 괴물의 날카로운 이빨이 있은 입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살려줘요’

[이곳에서 이렇게 결혼도 못해보고 허무하게 죽는구나]

그녀의 머릿속에 영화 필름처럼 온갖 영상들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그녀는 두려움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순간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붕 뜬 느낌이 들더니 이상한 두근거림을 느꼈다.겁에 질린 그녀는 도저히 눈을 뜰 용기가 나지 않아 한 쪽 눈을 천천히 떠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죽은 줄만 알았던 보르한의 품에 안겨있었다. 그의 포근한 품에 안긴 그녀는 그의 멋진 모습에 점점더 빨려 들고 있었다.  보르한은 그녀를 안전한 곳에 내려다 주곤 다시 괴물과 맞서 싸웠다 아직도 그 황홀함에 젖어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를 향해 의식을 되찾은 사기군이 뛰어왔다.

“괜찮아요?  다친데 없어요?”

놀라 달려온 사기군이 자신보다 그녀가 다치진 않았는지 그녀의 온 몸을 살피고 있는 와중에도 얼 빠진 그녀의 눈은 보르한을 향해 있었다.

“정신 좀 차려봐요”

그런 그녀의 모습이 괴물 때문에 너무 놀란 탓이라 생각한 사기군은 그녀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지켜줄게요.. 꼭 그럴게요]

보르한의 번쩍이는 날카로운 칼날에 마지막 남은 괴물의 머리가 땅에 떨어져 굴렀다.  보르한이 던진 검은 괴물의 심장을 관통했고 곧 괴물은 엄청난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그때서야 어디에 잘도 숨어 있었는지 좀 전까지도 보이지 않던 지루한과 의사, 도박사가 ㅅ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괴물을 처치한 보르한은 모두 무사한지를 살폈다.

“살아있었군요”

“아..네에..우리도 죽을 뻔 했는데 보르한씨가 구해주셨어요”

금반지는 보르한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모두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믿지 못했던거 사과드립니다."

의사가 정중하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닙니다. 모두들 무사한것 같고 이제 괴물도 사라졌으니 전 이만 떠나겠습니다.  모두들 안녕히 가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그는 일행과 악수를 나누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들 옆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금반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고마워요. 제 목숨의 은인이세요.”

금반지는 그와 헤어진다는게 내심 무척 안타까웠다. 

“저도 아가씨를 구하게 돼서 기뻣습니다.”

처음으로 보는 그의 멋진 미소에 그녀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까 부터 그를 지켜보고 있던 도박사가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칼을 뽑아 들자 얼굴이 햐얗게 질린 금반지가 소리를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도박사의 칼이 보르한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그리곤 보르한의 몸을 비켜 날아간 칼은 뒤에 있던 괴물의 눈에 꽂혔다.  순간 놀란 보르한이 뒤를 돌아보았다.  괴물의 머리 하나가 눈에 칼이 꽂힌채 땅에 떨어져 있었다. 

"뒤를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건 모르는 모양이군'

도박사는 우쭐대며 그를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
 
보르한과 헤어진후 안개 숲을 무사히 빠져나온 일행은 환한 햇살에 눈이 부셨다. 그들의 앞날에도 그렇게 햇살이 비춰주길 바라며 길을 걸었다.  아직도 금반지의 머릿속은 온통 그의 생각뿐이었다.

보르한은 자기의 부서진 차를 몰고 일행과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던 중 반대방향으로 뭔가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달리던 보르한의 차에 뭔가 이상한 물체가 점점 많이 잡히고 있었다.  보르한은 그것이 뭔지 자세히 보기 위해 기계를 작동시켰다. 그것은 일행이 가는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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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하죠 깰 때까지 기다려야 될까요”
"글쎄요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방법 말고는 없을것 같네요”

두 사람은 지금의 이 원인 모를 일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방도가 떠오를때까지 일단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기군의 머리속은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 같았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급기야 답답함을 느낀 금반지는 먼저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괜시리 말을 걸었다가 그가 응큼한 수작이라도 걸어올까봐 내심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정적속에 오랫동안 그가 입을 떼지 않자 혹시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앉아서 잠이 든 건 아닐까라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그를 슬쩍 쳐다봤다. 그의 시선은 어떤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도 그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려 보았지만 특이할만한건 없었다. 줄곧 그의 눈은 그곳에 있었지만 그는 그곳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눈을 둘만한 곳이 필요했던 뿐 정신은 이미 다른 곳을 떠돌고 있었다.

평소에 전혀 생각이라곤 하고 살것 같지 않던 지금 그의 모습은 약간 의외였다. 그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어 있어 정신이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선 어떤 주문이 필요해 보였다.

"정말 알 수 없는 곳이죠?"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 대답도 없는 것으로 보아 더 강력한 주문이 필요했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의 사색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지만 무작정 이렇게 기다리는것도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눈에 비친 뭔가로 인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꺄~~~"

고막이 찢어질듯한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그는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쳐다봤다.

"왜요? 무슨일인데요?"

그녀의 몸과 얼굴은 경직 되어 꼼짝도 못한채 눈은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붉은 치마 위에 얼룩덜룩한 무늬와 울퉁불퉁한 피부를 가진 싱그럽게 생긴 개구리 한 마리가 큰 눈을 껌뻑 껌뻑거리며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 어서요 제발 이것 좀 치워줘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두손으로 개구리를 잡았다.  그 징그러운 생물체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녀는 그제서야 인상을 있는데로 찌푸린채 치마를 툭툭 털어내며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으~윽  그 개구리 저~쪽으로 저어쪽으로 멀찌감치 지워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징그럽게 생긴 개구리가 그의 손바닥 안에 있긴 했지만 그녀의 가시권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와는 달리 그는 개구리를 손바닥에 위에 올려 놓고 강아지를 쓰다듬듯 쓰다듬고 있었다.

"난 귀여운데"
"뭐라구요? 얼른 치워요"

그는 그녀를 약올리기라도 하듯 개구리를 만지작거리며 수상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웃음속에서 뭔가 일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에요? 설마 그걸로 날 겁주려는건 아니겠죠? 만약 그걸 내게 던지기라도 했다간 당신 얼굴도 개구리처럼 만들어 버릴거에요"
"누가 뭘 어쩐다고 그래요? 난 아무짓도 안 했는데.. 참 이상한 여자라니까"
"그러니가 빨리 멀리 보내란 말이에요"
"난 주머니에 넣어 갖고 다닐건데요"
"뭐,뭐라고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제발 잘못 들었길 빌었다.

"아직 귀 멀 나이는 아닌것 같은데 ...내 가 갖 고 다 닐 거 라 고 요"

그는 그녀가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한것 같아 몸을 약간 그녀 쪽으로 기울여서 또박또박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나 귀 안 먹었어요. 아니 이거봐요 사실 난 개구리 공포증 있단 말이에요. 게다가 심장이 안 좋기 때문에 그 개구리 땜에 심장마비 걸릴지 몰라요. 그러니 생사람 잡지 말고 잘 판단하세요"

그녀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약간 고민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그나마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싫은대요"
"뭐요??"

그녀는 황당함을 감출길이 없었다 . 이젠 정말 결단을 내려야 할때라 생각한 그녀의 얼굴은 곧 비장함으로 바뀌었다.

"할 수 없죠.  당신이 개구리를 버리지 못하겠다면 제가 떠나죠"
 
얼른 자신의 가방을 챙겨 들고 떠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그의 손이 덥썩 잡아챘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몸은 그의 두 팔에 잡혀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놀란 눈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잠시 뒤 그는 눈앞이 번쩍거림과 함께 어질어질함을 느꼈다.

"야~"

그녀는 들고 있던 가방을 미친듯이 마구 휘두르며 그를 두들겨 팼다. 그는 한마디 말도 못한채 무방비 상태에서 원없이 얻어 맞았다.
점차 가방을 휘두르는 그녀의 동작이 느릿해지는 걸로 봐서 그녀도 힘이 빠진 모양이었다.

"어디다 그 더러운 입을 갖다 대. 한번만 더 그런짓 했다간 정말 뼈도 못 추릴줄 알아"
"뭐~ 더러운?..뼈도 못추려?"
"그래"
"와~ 이거 뭐 위 아래도 없고..내가 댁보다 몇살 위인것 같은데. 그리고 무슨 여자가 그렇게 무식하게 때려"
"나 원래 무식해. 무식하기만 한 줄 알아? 성질도 더러워서 화나면 물불도 못 가려. 그러니 앞으로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그녀는 획 돌아서서 가버렸다. 그런데도 그런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자신을 그도 알지 못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도록 일행이 깨어나지 않자 금반지는 일행 한명 한명에게 다가가 몸을 세게 흔들어 보았다. 모두 다 죽은 시체마냥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녀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어깨가 축 쳐진 채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녀가 안스러웠는지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사기군은 그녀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려 놓으려다 움찔하며 얼른 손을 뒤로 숨겼다.

"저리가요"
"아니! 나 정말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런사람이고 이런사람이고 간에 50미터 접근 금지에요"

어쩔수 없이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 본 적 있어요?’
"..."

그녀는 대답 대신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봤다.

"없죠? 나도 없어요. 우리가 여길 오지 않았더라면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잖아요. 그냥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게임이라 생각하고 즐거요. 우린 그냥 게임을 하고 있는 거라고요 게임에서 지면 다시 하면 되요 그리고 결국 게임은 이기게 되어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그들이 깨기만을 기다리는 둘의 눈 앞에 공중에 ’문카드’ 한 장이 빛을 내며 공중에 빙빙 돌고 있었다.

"이건?"
“도박사가 가지고 있던 거랑 같은 거네요. 왠지 기분 나빠요"
"왜요?"
"음흉하게 생겼던데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카드가 보이는 건 분명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는 예견이 아닐까요.”

그 말을 내뱉던 그녀는 갑자기 엄습해오는 불길함에 몸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달 카드는 불확실성이나 불안정을 뜻하는데’

불길한 예상이 맞은 건지 잿빛구름이 파란하늘을 삼키더니 곧 그들의 머리위로 억수같은 비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얼른 근처 나무 밑으로 몸을 피한 두 사람은 근심에 찬 얼굴로 잠든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납게 내리는 비는 쉽게 그칠것 같지 않았다.  사납게 쏟아 붓는 비속에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진 잠든 일행의 온몸을 굵은 빗줄기가 강타하곤 팅겨 나갔다.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빗물에 잠든 일행을의 몸이 점점 잠겨 이젠 얼굴까지 잠길 상황이었다. 더이상 애만 태우고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한 금반지와 사기군은 그들에게 뛰어가 다시 한번 그들을 마구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고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둘은 이리저리 분주히 왔다갔다 했다.

비를 맞은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 미역처럼 얼굴에 달라붙어 성가지게 했고 물을 배부르게 먹어 늘어진 옷은 그녀의 몸을 더욱 무겁게 했다. 오랫동안 빗속에 있던 그녀는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한기를 느꼈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체온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을 움츠리며 팔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좀 일어나란 말이야! 왜 자꾸 안 일어나. 흑흑 지금 안 일어나면 정말 죽든 말든 나두고 갈거라고’

곧 울음이라도 터트릴것 같은 금반지는 무릎을 꿇고 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제껏 참아왔던 마음속의 두려움을 토해냈다.

"이 사람들을 끌고라도 저 나무 근처에까지 데리고 가야해요. 여기 이렇게 놔 두면 다 죽고 말 거에요"
"이제 곧 물이 여길 덮칠 거에요"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어떤 행동도 부질없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그녀는 모든걸 포기한 사람처럼 그의 손이 이끄는 대로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를 따라 불어나는 물을 피해 근처의 조금 높은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기군은 자신의 양복를 벗어 떨고 있는 그녀의 몸에 덮어주고는 그들에게로 다시 뛰어가 그곳에서 끌어내오기 위해 애를 썼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일어나 주길 바라며 지켜보는 그녀의 눈에 슬픔이 밀려왔다. 물은 이제 그들을 거의 덮어버렸다. 

그때 지루한의 손가락이 조금씩 꿈틀대더니 약간의 반응을 보였다.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아 얼떨떨한 상태였지만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지루한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주위엔 일행이 물 속에 파묻힌채 누워있었다. 사기군은 지루한의 옆으로 가서 그를 일으켜 세웠다.

"어서요. 여길 피해야 해요.  곧 물이 덮칠거에요 도와줘요"

지루한도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기군을 도왔다. 

"일어나요  이거봐요. 안 일어나면 죽는단 말이에요 어서 눈을 떠요"

그들은 잠든 일행을 깨우려고 안간힘을 쎴다. 그들의 정성이 통했는지 한명씩 정신이 돌아오고 있었다.

"정신이 들어요? 어서 일어나요"
"어떻게 된거에요"

그들의 머리위로 거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정신이 든 의사는 일단 사기군의 말대로 그 곳을 피하기로 했다.

지루한은 아직 깨지 않는 도박사의 얼굴을 여러번 세게 후려쳤다.

"이것봐요 정신 좀 차려요. 이 나쁜 놈아"
 
그때 코와 입으로 물을 토해내며 도박사가 눈을 떴다. 순간 지루한은 움찟하며 그가 자기의 말을 들었을 까봐 약간 두려웠다.

"괜찮아요? 정신이 들어요?"

지루한은 기뻐하며 도박사를 부축해 그를 끌고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하늘이 뚫린것 같이 쏟아지던 비는 곧 일행이 서 있는 발밑으로 큰 강물이 되어 거세게 흘렀다. 그런데 나무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금반지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이 강이 두 번째 강인 통곡의 강이 아닐까요” 
“아까 우리가 건너온 강은 슬픔의 강이었으니까 그럼 이건 신화에 나오는 5대강 중의 하나인 그 코퀴토스 비통의 강?”

의사는 사기군의 말에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린 건가 그럼 우린 어떻게 강을 건너죠?”

사기꾼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기의 타로카드를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왜 내가 이 카드를 뽑았을까’
"점술가가 우리가 뽑은 카드가 우리를 지켜줄 거라고 했잖아요.”
“맞아요 우리의 내면세계이기도 하고”
“그럼 이 카드로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카드속의 마법사가 지팡이가 공중에 떠 빛을 내고 있었다.  어리둥절해진 사기꾼은 그 지팡이를 쥐고 어떻게 사용해야 될지 몰라 이리보고 저리 보고 했다.

‘지팡이니 땅을 짚고 가란 뜻인가’

사기꾼은 지팡이로 땅을 쿡쿡 내리쳤다.   그러자 큰 강물이 소용돌이치더니 회오리가 되어 사라지고 강물이 흐르던 길을 따라 황금길 펼쳐졌다.  

‘내가 어떻게 한 거지’

그 광경에 놀란 일행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지만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기꾼도 또한 자신이 한 일이 믿기지 않은것 같았다.  그리고 눈앞에 펼져진 황금으로 된 길을 보고 또한번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도 걸어본 적 없는 황금으로 된 길을 밟으며  지루한은 세상에서 최고의 갑부가 된 것 같았다. 

‘이 황금만 있으면 그 꼴 보기 싫은 부장 코를 납작하게 해 주는데’

부장한테 금덩이로 한방씩 때리며 던져주는 상상을 한 지루한은 혼자 정신나간 사람처럼 실실 웃었다.  황금이 가득 담겨 있는 상자를 발견하는 상상을 하며 걷던 도박사는 그림의 떡인 이 황금길이 사라져가자 발을 떼지 못했다. 점차 황금길은 사라지고 고운 모래로 된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도박사가 자기의 얼굴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옆에 걷고 있던 지루한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왜 그래요?"

갑자기 도박사가 지루한의 멱살을 잡자 그는 놀란 토끼눈처럼 휘둥그레졌다.

"아 아  왜 이래요?"
"너 아까 날 때렸어?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소리에요?"

지루한이 기분나쁘다는듯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던 도박사의 손을 떼어 놓으며 말했다.

"이상해 왜 얼굴이 얼얼하지?"

도박사는 자기의 얼굴을 문지르며 의심스런 눈으로 지루한을 쳐다보았다.  
 
"..그야..어쨌든 나 아니였으면 벌써 죽었을 거에요.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할 판에 무슨 짓이에요?"
"지금 한 말은 정말이에요"

사기군이 한 몫 거들며 지루한의 말을 증명해주었다.  그제서야 도박사는 꼬랑지를 스스륵 내리고는 멋쩍어 하더니 다시 길을 걸어갔다.

"나 참... 그때 그냥 내버려두는 건데"

도박사보다 조금 뒤떨어져 걸던 지루한은 그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며 자기의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한참을 가다보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허름한 집 한 채가 나타났다.   사람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없는 이곳에서 집을 발견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혹시 자기들과 비슷한 여행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그 집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반쯤 떨어진채 바람에 덜컹거리는 창문만이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걸 봐서는 분명 사람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다시 문을 두드려 보았다.  여전히 묵묵 부답이었다. 

할 수 없이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기다려도 주인이 나타날 것 같지  않자 답답함을 참지 못한 도박사가 문손잡이를 다시 세게 흔들어 보았다  그러자 문이 삐거덕 소리를 내며 열렸다. 

집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가 보니 천장과 벽에는 거미줄이 군데군데 쳐져 있었고 물건이라고 해봐야 식기 몇 개와 탁자, 빽빽하게 책이 꽂혀 있는 책장과 낡은 침대뿐이었다.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식탁에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사기꾼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의사와 금반지가 방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도박사가 음식을 먹으려고 음식에 손을 갖다댔다 .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와 음식에 손을 데는게 깨름직한 지루한은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도박사가 음식을 집으려고 하자 음식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가  다시 다른 음식을 집으려는 순간 또 음식이 사라져버리자 둘은 서로 황당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의사와 금반지는 책장이 있는 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먼지가 뿌혛게 쌓여 있고 색이 바래 있었다.

“이 집 주인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요”

집을 둘러보던 의사가 옆에 있던 금반지에게 말하자 그녀는 그 이유를 물어 봤다.

“여긴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먼지도 많이 쌓여있고 식기도 모두 한 개씩뿐인 걸로봐서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을 했어요.”

금반지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중 조금 깨끗해 보이는 책을 꺼내 책장을 넘겨보았다. 책 속에는 일행들이 여기까지 오면서 겪은 일들이 적혀 있었다.  의아한 생각이 든 그녀는 뒷이야기가 궁금해 얼른 책장을 넘겨보았다. 하지만 뒷장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었다.

“이것 보세요 이 책에 우리가 지나온 일들이 모두 적혀 있어요.”

그녀는 미심쩍은 얼굴로 옆에 있던 의사에게 책을 보여주었다.  의사는 금반지가 내미는 책을 읽어 보더니 얼른 다른 책도 꺼내 펼쳐 보았다.  하지만 그 책에는 아무 내용도 적혀 있지 않았다.  또 다른 책을 빼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이 책에 왜 우리 이야기가 적혀 있는 걸까요? 그리고 이 집 주인은 우리가 올 것이란 걸 알고 있었을까요”

의사와 금반지는 수수깨끼 같은 일들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금반지가 책을 다시 책장에 꽂으려는 순간 책 사이에서 카드 한 장이 떨어졌다.  금반지는 바닥에 떨어진 카드를 주워 뒤집어 보았다.  그 카드는 운명의 수레바퀴 카드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곳이에요”

의사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고 지고 있었다.

“여기서 무엇들 하십니까?”

깜짝 놀라 돌아보니 사기꾼이 금반지에게 윙크를 날리며 느끼한 웃음을 지었다.

“아름다운 아가씨 그리고 의사 선생님! 주인도 올 것 같지 않은데 이만 가실까요.”

의사는 다시 보던 책을 책꽂이에 꽂았다. 사기군은 다시 한번 느끼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보더니 돌아갔다.

’정말 기분나쁜 사람이야’
"누구요? 저 사람요?"
"네.  아! 그리고 이 얘길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 그냥 더 두고 보는게 좋을 것 같아요"

길을 떠나기 위해 도박사가 문손잡이를 돌리자 문이 쿵 하고 떨어져 나갔다.  떨어진 문을 살짝 세워두고 가려는데 저쯤에서 누더기 옷을 걸친 텁수룩한 수염이 난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손님이 오셨군요. 오실 줄 알고 급하게 온다고 왔는데 좀 늦었네요.”

모두들 그 노인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가 영감 집이요?”

도박사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네 그렇답니다. 잠깐 들어 가시죠”
“근데 영감!  식탁에 먹지도 못하는 음식은 왜 올려 났수?”

도박사의 음식이란 말에 옆에 있던 사기꾼의 눈이 초롱초롱해지더니 말했다.

“음식이 있었어요?  아! 진짜 난 여태껏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도박사가 틀림없이 혼자 먹었을 거라고 생각한 사기꾼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다.

“환상을 보셨군요”

노인은 도박사가 환각을 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환상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이오”
"따라 들어오시죠"

노인은 일행을 안으로 안내했다.  식탁에 앉은 일행에게 노인은 오래되 보이는 딱딱하게 굳은 빵과 쟁반에는 쪼그라든 무화과, 뽕나무 과일인 오디와, 우유를 내 주었다.  도박사는 노인이 내 놓은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보더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제껏 아무것도 못 먹은 사기꾼과 금반지에게는 맛있게 느껴졌다  오디를 먹은 금반지의 혀는 금세 검게 물들었다. 

“계속 여기서 사셨습니까?”

의사가 노인에게 물었다.

“네 전 여기서 쭈욱 살고 있습니다”
“혹시 여기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았나요”
“네 아주 오래전에 여기에 몇 분이 다녀갔지요”
“혹시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전 잘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음..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 생각이 잘 나진 않군요”

의사는 좀 실망스런 눈치였다.

“아까 이 곳에서 영감님의 책을 봤습니다. 그 책에 우리가 지나온 얘기들이 적혀 있더군요”

예상외로 노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셨군요. 여기엔 많은 책이 있는데 이 집에 들른 분들의 일들이 책에 기록이 됩니다.  아마 그 책을 보신 모양입니다”
“그러면 저번에 여기 온 사람들의 내용이 적힌 책도 있을 것 아니에요?”

궁금함에 마음이 급해진 금반지가 질문을 했다.

“네 있었죠”
“그럼 그 책은 어디에 있죠?”
“어떤 분이 사 가셨습니다.”
“영감 지금 어디서 수작을 부려?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말해. 그리고 왜 우리 얘기를 책에 기록하는지도”

계속 듣고만 있던 도박사가 노인에게 다가가 식탁에 걸터앉더니 눈에 힘을 주며 더러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그 책을 찾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게 누구야?”
“저도 모릅니다. 그냥 그 분은 어쩌다 한번씩 오셔서 그 책을 사 가십니다”
“이 영감이 죽고 싶어? 빨리 말해 그 놈이 누구야”

결국 본성을 들어낸 도박사가 노인에게 칼을 들이대며 협박을 했다.

“전 정말 모릅니다.”

도박사의 무례한 행동을 하자 의사가 그를 말렸다.
의사는 죄송하다는 말과 이 집을 거쳐 간 사람 중에 마지막 문을 찾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제가 아는 건 그 분이 가져갈 때까지 끝이 난 책은 없었다는 겁니다."

 마지막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고 간혹 지옥의 신이 사는 궁전에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말이 맞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고 했다.  만약 그곳에 있다고 해도 그곳은한번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에 마지막 문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노인의 말에 모두들 마지막 문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럼 우린 여기서 나갈 수가 없단 얘기잖아.  뭐 이런 개 같은 여행이 다 있어?  그 여자가 우릴 속인 거야”

흥분한 도박사가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리쳤다.   

“하지만 포기는 하지 마십시오.  행운이 여러분을 따를 겁니다.”
“영감! 지금 불난 집에 기름 부어”
“우린 이미 여행을 시작했고 이젠 그 문을 찾을 방법을 찾는 것이 급선무에요. 그러니 조금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생각을 해 보자구요.”

사기군이 도박사의 행동을 저지시켰다.  노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이 어떤 길로 가시든 위험이 따를 겁니다. 특히 한번 길을 잃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는 곳곳에 함정이 있기 때문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럼 길을 찾을 방법은 없나요”
“별을 찾으십시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별을요”
“그럼 하늘에 떠 있는 북극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도 잘 알진 못하지만 그 별이 여러분을 지켜줄 겁니다.”

일행은 노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길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또한 앞으로 일어날 위험에 모두들 마음이 무거워졌다.  곧장 앞만 향해 걸어가던 일행은 숲이 우거진 길에 들어서게 됐다. 그런데 그 곳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자욱했다. 모두 흩어지지 않게 위해 손을 잡고 가기로 하고 조심해서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아!”

지루한이 어딘가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다시 천천히 한 발 한발 내딪으며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자동차 소리가 나더니 멀리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모두들 두려움과 궁금함을 참고 한참을 걸어 빛이 비치는 곳에 다다랐다. 그 곳에는 검은 가죽재킷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검정색 차를 세워두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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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잖아요”                                            
“그럼 문제는 간단하겠네요.”
금반지의 말에 지루한이 자신있다는 듯 거드름을 피웠다.  아까부터 눈에 거슬리는 그의 행동에 기분이 언짢았던 그녀는 입을 삐죽대며 그를 힐끗 쳐다봤다. 그때 하필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줄곳 그녀를 보고 있었던 건지는 알수 없지만 그녀와 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느끼한 미소를 지었다.
[기분나빠게 왜 저렇게 웃어]


점차 빛을 잃고 캄캄해진 하늘에서 촘촘히 박힌 별들이 보석처럼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물고기자리에 얽힌 문제로 사랑의 괴로움이란 뜻을 가진 바람꽃이라도 하는 꽃의 이름을 맞추는 문제였다.  아까전만 해도 어떤 문제라도 거뜬히 맞출 것 같던 기세는 온데간데 없고 모두들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에 당황해 했다 
그나마 지적으로 보이는 의사가 답을 맞췄다.


약속대로 스핑크스는 사라졌지만 산처럼 쌓인 모래더미의 위치가 자꾸 바뀌어 길을 찾을 수가 없는데다 태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는 그들을 점차 지쳐가게 했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사막에서 길을 찾아 헤매던 일행은 무더위와 타들어가는 목마름에 탈진할 정도였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무작정 앞만 보고 걸어가던 일행의 눈 앞에 아주 큰 푸른 호수가 또 나타났다.  약올리기라도 하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기루로 이미 여러번 실망을 한 그들에겐 고문과도 같았다.

터벅 터벅 내딪는 모래 위의 발자국이 바람에 의해 사라지듯 그들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알 리 없는 이 곳에서 이렇게 사라진다해도 그들을 기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란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서글퍼졌다.

한발 한발 내딪는것 조차 너무 힘겨운 그들 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자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더니 어디서 그런 힘이 쏟아났는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일제히 미친듯이 그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도착한 그들은 초췌한 얼굴로 호수를 들어다 보며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진 나르시스를 발견했다.   듣던데로 나르시스의 잘생긴 얼굴에 금반지는 감탄을 토했다. 
 
‘쳇 이 놈! 물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서 죽은 놈이잖아.   나보다도 못 생겼네.’


나르시스를 보며 건방을 떨던 사기군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지루한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나중에 치료 한번 받아 보셔야 될 것 같군요”
"나요?  왜요? 난 아주 멀쩡한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금반지는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못생긴 것들이 잘 난 척은]
자기도취에 빠진 사기꾼과 나르시스가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금반지도 허리를 굽혀 호수를 들어다 보았다. 


깊고 푸른 호수에 잔잔한 물결이 일더니 뭔가가 물위에 비췄다.  그녀는 호수에 비친것이 뭔지 보려고 눈에 힘을 주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떤 남녀가 손을 잡고 서 있었는데  남자는 뒤돌아 서 있어 얼굴을 알 수 없었지만 여자는 분명 금반지 자신이였다.
순간 그녀의 심장은 두근거리고 뜨거운 날씨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잠시 생각에 빠진 그녀가 명품 핸드백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연인 카드를 얼른 꺼내 보았다. 
[혹시... 저 남자가 혹시 나의 인연이 될 사람인가]


이런 과대망상에 빠진 금반지는 그 남자의 얼굴이 너무나 궁금해 호수에 얼굴을 더 바짝 갔다댔다. 그때 도박사가 등치에 안 맞게 뒤로 자빠지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깜짝 놀란 금반지가 그쪽으로 돌아봤다. 일행의 눈이 일제히 도박사로 향했고 놀라 허둥대는 그에게로 의사가 급히 달려갔다.

“왜 그러세요 괜찮아요?”
“이 이 안에 악마가 있었어요.”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 되는지 가슴을 손을 얹진 채 사색이 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도박사의 모양새 빠지는 모습에 그의 겉모습과는 다른 인간의 나약함이 보였다.   놀란 눈으로 모두 뭐라도 발견할까 싶어 호수를 들어다 보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여튼 등치에 않맞게 호들갑 떨기는.. 물에 비친 지 얼굴 보고 저러는 거 아냐? 애초에 저런 인간들 하고 같이 오는 게 아니였는데 아이고 내 팔자야’

금반지는 같이 다니는 일행이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악마가 도선생 얼굴보고 도망갔네 도망갔어.  캬! 여기서도 먹히는 얼굴이네"

농담인지 진담인지 비웃는 듯한 사기군의 말투에 기분이 상한 도박사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아 아.. 농담 한 것 가지고 뭘 또 흥분을 하시고 그러시나.. 요”

도박사의 행동에 당황한 사기군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한심한듯 보고 있던 금반지는 혹시나 물속에 비친 그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해서 다시 들어다 보았지만 애석하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고요하던 호수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가 잠잠해졌다.   조금 시간이 지나 다시 물결이 이는가 싶더니 다시 고요해졌다.  폭풍전야라고 했던가 왠지 불길한 징조에 모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들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갑작스럽게 세찬 바람에 모래가 날아와 눈을 뜰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몸을 피할 시간도 없이 빠른 속도로 사납게 몰려오고 있는 회오리 바람은 곧 일행을 덮칠것 같았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모두들 있는 힘껏 거센 회오리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무조건 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금반지가 그만 발목이 접혀 넘어지고 말았다.  당연히 굽 높은 힐이 문제였다.   하지만 일행은 금반지가 넘어진지도 모른채 빛의 속도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도망가다 뒤를 돌아본 의사가 넘어진 금반지를 발견하고는 그녀에게로 달려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금반지는 발목이 삐어 재대로 걸을 수가 없었고 그들 앞에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거대한 회오리는 곧 두 사람을 통채로 삼켜버릴것 같았다. 여기서 더이상 지채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의사는 금반지를 업고는 죽을 힘을 다해 이를 꽉 물고 뛰었다. 

어디서 초인적인 힘이 발생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그녀를 등에 엎고서는 필사적으로 뛰었다. 그런데 닿을듯 말듯하는 회오리에 개념상실, 양심상실한 그녀는 의사에게 더 빨리 뛰라고 재촉해댔다.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구요"

점점 몸을 짖누르는 무게를 느끼며 숨을 헐떡이며 뛰던 그는 힘을 잃어갔고 급기야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봐요. 이러다간 우리 둘다 죽어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꺄~~"


시커먼 회오리의 손아귀에 휘말리기 일보직전 다행히도 일행의 앞에 갈림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회오리를 피해 어떤 길로 들어섰다.  그 길로 들어서자 거센 회오리는 힘을 잃고 점점 약해지더니 차츰 사라졌다.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며 땅에 쓰러져 숨만 가쁘게 쉬었고 금반지를 업고 뛰어온 의사는 온몸이 후들거려 줄 끊긴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그자리에 덜썩 주저 앉고 말았다.

정신이 돌아오니 좀전의 자기 행동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했던 금반지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눈치를 보며 망설이던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미안함과 그의 용기에 고마움를 정중히 건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주의깊게 보고 있던 사기꾼이 그녀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아름다운 아가씨 이번엔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자기 혼자 살겠다고 죽을듯이 내빼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자 금반지는 그런 친절을 베푸는 사기꾼이 더 얄밉게 느껴졌다.  그런 얄팍한 속셈에 속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사기꾼의 팔을 밀치고 절뚝거리며 걸어가던 그녀는 결국 다른 사람들과 거리가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

‘얍샵한 놈 같으니라고 얼마나 빠른지 발이 없는줄 알았네’

기다리는 사람의 애타는 심정은 나 몰라라인 금반지는 구두를 벗어 들고 혼자 중얼거리며 걸었다.  멀리서 일행이 발길을 멈추고 뒤쳐져 오고 있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이씨! 저건 또 뭐야. 저런 여잘 데리고 어떻게 계속 간단 말이야.  놔두고 갑시다.”

도박사의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에 모두들 눈살을 찌푸리며 쏘아봤다.

"잘 걷지도 못하는 사람을 혼자 나두고 갈 순 없어요”
“그러니까 놔두고 가자는 거 아니야.  아까 죽을 뻔 한거 생각 안나”



부릅 뜬 도박사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점술가도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었잖아요.”

지루한도 도박사의 눈치를 살피며 한마디 거들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태연히 걸어오던 금반지는 자기한테 달려오는 사기군의 모습을 보곤 순간 뒤로 물러서며 몸을 움츠렸다.


“자 가실까요 프리티 걸”
“왜이래요?  어..  이 사기꾼 같은 놈아!  어디다 손을 대”
'어!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요?"


사기꾼은 싫다는 금반지를 번쩍 들어 올리던 그의 넓은 어깨에 들쳐 맸다. 꺼꾸로 매달린 그녀는 온 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이 기분나쁜 남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온 몸으로 발버둥을 쳐댔다.

"가만 좀 있어요  내팽개치기 전에 어린애처럼 보채기는"
"빨리 내려놔. 안 내려놔? 야~~"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찰싹!!  그는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를 한대 때렸다.

"아야! 그 큰 엉덩이 좀 가만 놔둬요"
"내팽게치든 갖다 버리든 당장 내려놔 이 변태같은 놈아~"



일행은 얼마 안가서 보기만 해도 기분나쁜 검은 강물이 흐르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는 허름한 망토를 입은 뱃사공 노인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요.  여길 건너시려면 배 삯을 내셔야 합니다.”

그 배를 얻어 타고 강을 건너기 위해 그들은 배삯을 지불해야 했다.  선뜻 돈을 내려고 하는 사람은 없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점자 모든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집중되었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도박사가 어쩔 수 없이 도박판에서 딴 돈을 꺼내 뱃사공에게 건내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 사람만 뺀 나머지 사람들은 물밀듯이 밀려오는 원인모를 슬픔에 잠겨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다. 오래된 낡은 노의 삐그덕 거리는 소리와 출렁이는 물결 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깨고 있었다

“여긴 어디요 영감.  아니 그런데 기분 나쁘게 강물색이 왜이래?"
“이 강은 아케론 강입니다. 슬픔의 강이라고도 하죠. 전 여기서 혼령들을 강 건너편으로 실어다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뭐요? 그럼 우리가 지금 죽었단 말이야”
“그리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곳을 여행하고 계시지요?  마지막 문을 찾으신다면 다시 오셨던 곳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노인의 말에 조금 마음이 놓인 도박사는 일단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 마지막 문이라는게 혹시 어디 있는 건지 아슈?"

뱃사공 영감은 체념한 듯 고개만 좌우로 저을 뿐이였다.

다시 약간의 두려움을 느낀 그들은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소가죽 배가 강 건너편에 도착하자 노인은 금반지에게 약을 건네며 삔 발목이 빨리 나을거라고 했다.


“영감님 우린 이제 어디로 가면 되죠?”

“여러분들이 가시는 길이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노인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기곤 유유히 노를 저어 사라져갔다.  금반지는 노인한테서 받은 약을 먹어도 되는 건지 몰라 약간 망설이다가 입안에 넣고 삼켰다. 자츰 아팠던 발목이 점차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 이상하네 발목이 다 나았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 약이 효염이 아주 좋은가 봐요. 자 그럼 갑시다.”


건물도 집도 불빛조차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길을 계속 걸어 가다보니 3갈래 길이 나타났다. 없는 길, 알 수 없는 길, 보이지 않는 길이라고 쓰여 있었다.

“뭐야 결국 다 똑 같은 말이잖아. 사람 헤깔리게 왜 3개나 만들어 났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사기꾼이 약간 짜증섞인 말투로 궁시렁거렸다.

“어떻하죠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알 수 없는 길로 가기로 결정한 일행은 어두운 길을 한 발빡 한발짝 떼어놓으며 그때마다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  얼마쯤 왔을까? 일행의 주위가 맑아지고 있었다. 드디어 그들의 눈앞에 넓은 푸른 초원이 정체를 드러내자 모두들 환성을 질렸다.  금반지는 팔을 벌리고 서서 빙글빙글 돌고 지루한과 도박사는 초원위에 벌러덩 누워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모처럼 평화로움을 즐겼다.  그때 사기꾼이 금반지에게 슬슬 다가오더니 느끼한 웃음을 지으며 같이 여행을 하게 되서 좋다는 둥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프리티 걸!  다만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말한 건데 너무 섭섭하네요.”
“이거 보세요 난 댁 같은 사람하고 같이 여행한다는 자체가 내 인생의 오점이라고”
“너무 그렇게 가시 세우지 마시고 우리 스무스하게 지내요”
“꽤나 심심한 모양인데 댁 몸에 촬촬 흐르는 기름끼나 좀 닦으시죠 아저씨”


둘이 티격태격 하는 동안 의사는 수심에 잠겨 있었다.

“여기는 초원만 계속 되니까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네요 어디로 가야 될지 알 수가 없어요."

의사의 말에 지루한이 자기가 낀 시계의 나침반을 보며 남쪽으로 가자고 했다.  그의 시계를본 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지루한은 자기 시계와 카페 주인이 준 시계를 비교해 보았다. 지루한의 시계는 멈춰있었고 주인이 준 시계는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낮인지 밤인지는 구분 할 순 없었다. 계속 걸어도 끝없는 초원만 나오자 모두들 모여 의논을 했다.

“이제 어쩌죠”

끝이 보이지 않는 여행에 모두 망막해 하고 있는데 뭔가를 발견한 도박사가 소리를 질렀다

“어! 저기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도박사의 눈이 향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엘리베이터가 위에서부터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오록 도와 줄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일행은 한명 한명 그 문에 카드를 대 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지루한의 별카드를 문에 대자 문이 스스로 열렸다. 

층 버튼이 없는 엘리베이터는 자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엘리베이터에 몸을 맡긴 일행의 마음속에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파고 들었다.   몸이 잠깐 붕뜬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엘리베이터는 어딘가에 멈췄고 조금씩 열리는 문 사이로 옅은 푸른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 곳은 햐얀 구름이 뭉개 뭉개 아주 낮게 떠다니고 있어 마치 하늘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금반지는 폭신폭신한 솜사탕 같은 구름을 살며시 만져 보았다. 

구름을 헤치며 가던 일행은 또 다른 갈림길에 도착했다. 왼쪽은 강 오른쪽은 바다란 팻말이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마음이 착착 잘 맞았는지 만장일치로 바다란 팻말이 있는 길을 선택했다. 

그 곳은 바다 한가운데 섬을 둘러싸고 초록의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었는데 섬에는 아름다운 모습의 여인들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한가로이 앉아 있었고 작은 배 한 척 옆에 있는 바닷가 바위 위엔 뱃사공이 넋나간 표정으로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기군을 비롯해 그녀들을 본 모든 남자들도 아름다운 그녀들의 모습에 정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쁜 건 알아서'

금반지는 눈살을 찌푸리며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일행을 발견한 뱃사공이 바위에서 내려와 배의 밧줄을 풀었다.  배에 올라 탄 일행이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감상에 젖어 있는데  어디선가 들여오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는 사람들을 점점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고 있었다.

"이건..분명! 모두 귀를 막아요. 세이렌이에요 그 노래를 들으면 안돼요.”

의사가 외치는 소리에 정신이 든 사람들은 그가 시키는데로 귀를 막았다. 아름다운 섬을 뒤로 하며 배는 초록빛 물결을 가르며 유유히 떠내려 갔고 사기꾼은 아쉬움이 남는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배가 도착한 곳에는 서로의 아름다움을 뽐내기라도 하듯 피어있는 온갖 꽃들과 조그맣고 알록달록한 색을 가진 나비들이 꽃속을 노닐고 있어  꽃의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금반지는 이곳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피크닉을 온 어느 노부부가 빨간 천을 깔고 준비해 온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행이 노부부에게로 다가가 길을 욷자 노부부는 웃으며 잠깐 앉아서 음식을 같이 먹자고 권했다.  배도 고픈데 잘 됐다고 생각한 일행은 그 옆에 앉아 나눠주는 음식을 먹었다.

“여긴 어떤 곳인가요? 우린 길을 잃었어요.”

도박사는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다가 음식이 목에 걸렸는지 포도주를 병채로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다.
일행과 좀 떨어진 곳에서는 사기꾼이 나비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니고 있는 모습이 금반지의 눈에 들어왔다


‘한심하긴 뭐하는 거야?'
“여긴 아름다운 곳이죠 여기처럼 아름다운 곳은 없을 거에요  안그런가요 아가씨”
“네 여긴 참 아름다운 곳이네요. 그런데 할머니! 우린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인데 길을 잃었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글쎄요  벌써 여행이 싫증 난게에요?”
“아니 그런건 아니구요.. 혹시 우리 말고 여기를 지나간 사람은 없었나요”
“여길 지나간 사람이 많이 있었지요.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어떤 여행자도 우리에게 아가씨와 비슷한 질문을 했었죠. 하지만 우린 어떤 말도 해 줄 수 없어요 아는 것이 없으니까”
“어떻게 생긴 사람들인데요.”


금반지는 짐작가는 것이 있어서 물어 보았다.

“한 남자는 키가 컸고 여자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창이 큰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둘은 애인인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다른 한 남자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아주 잘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분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우리도 알 수 없어요.”

금반지는 그 카페에 걸려 있던 액자 속의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은 그 액자에 없었는데’
“이곳은 항상 변화무쌍해 누구도 예상할 수 없어요.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니까요. 사람의 인생처럼 예측할 수가 없는 거죠.  이 음식이나 좀 먹고 가세요.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건이것 밖에 없네요.”


그녀의 귓가에 꽃의 요정들이 날아와 먹으면 안된다고 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도박사는 벌써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와인을 마시던 의사도 졸음을 이길 수가 없는지 자리에 드러누웠고 지루한은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사기꾼은 이제 나비 잡는것에 재미가 없어졌는지 금반지가 앉아 있은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다들 왜이래? 전부 잠들었잖아'


사기꾼이 금반지의 옆으로 다가와 앉더니 그 특유의 느끼한 웃음을 지으며 금반지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 둘만 남은 거네요.”

금방 같이 있던 그 노인 부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금반지는 혹시나 저 느끼한 사기꾼이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대 잠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금반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사기꾼이 자기 주머니에 손을 넣어 뭔가를 찾는 것 같더니 초코렛을 내밀었다.


“이거라도 먹어요”

금반지는 그의 손에 있는 초코랫을 옆눈으로 슬쩍봤다.

“어허! 이제 의심의 눈빛은 그만. 나 아가씨한테 의심받은 만한 짓 한 것 없잖아요”

[그래도 넌 수상해. 믿을 수 없어]

금반지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사기꾼이 건내는 초코렛을 잠시 못믿어운 눈으로 살펴보더니 말했다

“혹시 여기 약 넣은거 아니에요?”
“야!  진짜 바리케이트 좀 치지 맙시다.”


금반지는 개운치 않는 마음으로 사기꾼이 준 초코렛을 입안에 넣었다.  달콤한 초코렛이 입맛을 자극했다. 금반지는 초코렛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더 있으면 끄내 놔 봐요”
“이제 없어요. 한 조각도 안주고 혼자 다 먹네.  참 인심 아박하다.”
“댁은 아까 음식 먹었잖아요.”
‘어라 그러고 보니 난 아무것도 못 먹었네.’


초코랫을 입에 넣어 씹던 금반지와 사기꾼의 눈이 순간 마주쳤다.

“아 그럼”

둘은 동시에 바보 도 터지는 소리를 하며 그 노부부의 음식을 먹은 사람들만 잠이 든 것이란 생각을 했다  금반지는 자는 사람들을 흔들어 깨웠지만 모두들 죽은 듯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노부부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둘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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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자동차 판매회사 부장실
반쯤 풀어 헤쳐진 와이셔츠에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시계추처럼 흔들거리는 넥타이, 반쯤 쥐어 띁다 만 것 같은 머리를 한 중년 남자.
얼굴엔 검붉은 빛이 도는게 안색으로 봐선 곧 혈압 올라 쓰러지기 일보직전으로 꾀나 열받은 상태로 파악됨.

책상위에 결재판 나뒹구려져 있고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입이라도 어찌 잘못 땠다간 그 중년의 남자는 바로 혈크로 변해버릴 것이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으련만. 그런 기적이 일어날 일 만무하고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괴물의 공격에 지루한은 바짝 언채로 부장의 심판만 기다리고 있다. 괴물을 처치하는 건 그의 꿈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젠 하루라도 야단을 안 들으면 귀에는 가시가 돋을 정도고 귀에 앉은 딱지만도 숟가락 퍼내도 될 지경이다.
매일 눈 뜨자마자 자동차 4500cc 속력으로 하루를 땀띠 나게 달려보지만...
이름: 지루한 (노총각)
성격: 소심 A형
나이: 밝힐 수 없음
만년 대리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A 호텔 맞선자리
항상 그렇듯 무미건조한 일상속에 괜찮은 남자 하나 걸릴까 싶어 유명한 결혼 정보회사에서 잡아주는 맞선자리를 기웃거리는 여자.
명품으로 온 몸을 도배하고 보기만 해도 위태로워 보이는 킬힐을 신고 호텔 커피숍 문을 활짝 열어 재치며 당당하게 들어선다.  주위를 한번 쫙 훝고는 프릴이 많이 달린 빨간색 스커트를 팔랑이며 미리 와서 앉아 있는 남자에게로 가더니 약간의 미소를 날리고는 우아하게 자리에 앉는다.
미리 나와 앉아 있던 남자는 여자의 미모에 한눈에 뽕 간 얼굴이다.
[그러면 그렇지 니가 안 넘어오고 배겨]
이런 못쓸 생각에 조금 더 거드름을 피운다. 
따분한 맞선자리 항상 똑같은 틀에 박힌 질문들 ‘머라고 시부리쌌노'가 연발로 나오는 가운데 건성 건성 대답하는 그녀. 

형식적인 테이트. 아!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언제쯤 마음에 쏙 드는 이상형을 만날지 벌써 맞선본 것만 해도 손가락 발가락 다 합쳐도 계산이 안 나온다.
이름 금반지
직업: 없음
성격: 전형적인 된장녀
영화 같은 삶을 원한다.

R 거리
왁스를 잔뜩 쳐 발라 빤질빤질 빗어 올린 머리에 흰색 양복. 기생오라비 같은 외모, 이마에 사기꾼이란 글자만 안 써 붙었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사기꾼 외모를 완벽하게 갖춘 남자.
오늘은 누굴 만나 사기를 칠지 머리 굴리는 소리가 멀리까지 난다.
잔머리 굴리는데는 자기가 생각해도 천재수준.
한쪽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휘파람을 불며 길을 가다 한통의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왜 하필 거기야”

이름: 사 기군
직업: 사기치기??
성격: 용의주도함
이 짓도 지겨울 때가 종종 있다.
 
O 도박장
험상궃게 생긴 한 남자가 담배를 입에 씹어 물고 자욱한 연기에 휩싸여 카드 도박판을 벌이고 있다. 
‘아싸’ 쾌재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패가 좋다. 이 정도면 이번 판에서 돈 따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다.  그런데 이 순간 찬물을 확 끼얹는 인간들이 눈앞에 왔다 갔다한다. 
오늘 일진이 사나운지 저번에 돈 잃은 조폭들이 기웃 기웃거리며 자기를 찾고 있다
직업: 도박사
좌우명: 인생은 한방이다
성격: 거칠고 욕심이 많으며 음흉함
재대로 한탕해서 이곳을 뜨고 싶어함
현재 상황: 깡패들한테 쫓겨 도망 다니는 중

T 정신병원
지적인 외모에 약간 혈색없어 보이는 의사가 환자식구와 상담을 하고 있다.
병원에서 매일 이상한 사람들하고 지나다 보니 나도 돌 지경
어떨 땐 내가 돈 건지 니가 돈 건지 구분이 안 갈 때도 있음.
이름: 나 의사
직업: 정신과 의사
성격: 침착하고 이성적임
하루가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함

대도시 한복판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타로카페가 있었다.   그 이유는 이곳에 들른 사람들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건데 심지어 그곳 주인이 사이코란 소문이 돌고 부터는 손님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손님이 없는데도 이 카페는 항상 문을 연다는 것이다. 
오늘 맞선 본 남자와 헤어진 금반지는 그 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힘없는 걸음걸이에 어깨와 목에도 힘이 풀린 것 같다. 오늘도 역시나 맞선 본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꿀꿀한 기분으로 걷던 그녀는 이 카페를 지나다 발길을 멈춘다.  소문도 흉흉하고 해서 조금 깨름직 하긴 했지만 오늘 기분상 술이라도 마셔야지 이렇게 그냥 들어가기엔 마음이 너무 꿀꿀했다.

‘아 정말 이 세상엔 내 이상형이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 생각으로 이미 머리속이 마비된 그녀는 애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페안은 예상과는 달리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은은한 조명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조금 안정된 기분으로 주위를 살피던 그녀의 레이더망에  미리 와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지루한 사원이 포착되었다.  
금반지는 그 남자를 힐끔 쳐다보더니 저런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남자는 아예 멀리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는지 지루한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쳇 남자 혼자 청승떨고 있네 -10점’

조금 뒤에 약간 혈색 없어 보이는 피부가 하얀편이라 그렇게 보이는 지는 모르지만 핸섬한 남자 한명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저 정도면 괜찮은데 +70’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다른 사람 평가는 잘 하면서 자기 평가는 완전 꽝인 금반지가  들어오는 사람 하나하나 점수를 매기고 있었다.
누군가가 또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그 사람을 밀치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도박사가 조폭들의 눈을 피해 얼떨걸에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다.

‘뭐야 생긴건 꼭 도둑놈같이 생겨서 -50점  그 옆에 남자는 음 생긴건 그런데로 봐줄만한
데 너무 느끼해 +30점 전부 합쳐 대충 두드려도 50점도 안 나오네’

쫓기듯 헐레벌떡 뛰쳐 들어온 도박사의 출현에 그 곳에 있던 몇 안되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눈들을 보고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구석자리로 스르르 몸을 감추는가 싶더니 뭔가 불안한 표정으로 몸을 숨긴체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를 뒤따라 들어온 사기꾼은 어느 자리가 좋을지 탐색을 하다가 금반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럴 땐 시선을 피하는게 상책이야]
금반지는 사기꾼과 눈이 마주칠까봐 딴 곳으로 얼른 눈을 돌렸다.

그때 좀 전까지 보이지 않던 카페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손에 카드를 들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눈이 눈썹보다 더 높은 금반지가 봐도 꽤나 미인이었다.  강렬한 와인색 쉬폰 소재로 된 드레스와 굵은 컬이 있는 머리칼은 살짝 올려져 있었고 몇가닥은 늘어뜨려진채 목을 타고 내려와 있었다.  약간 창백해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에 사람을 빨려들게 하는 뇌세적이면서 강렬한 눈빛은 음산하면서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톤이 낮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그런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다.
도박사는 좀 전 보다 안정된 모습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지루한 옆에 슬그머니 다가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고 사기꾼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주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고 의사는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은지 좀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었다
주인은 그곳에 온 손님들 옆으로  다가가 주문할 것을 청했다.

“뭘 드릴까요?” 

뭘 드릴까요란 질문에 뭘 주문해야 할지 선택을 못한 금반지의 눈동자는 매뉴판 위를 구르고 있었다

“민트 프라페는 어떤가요? 도수도 낮고 맛도 부드러워 여성분들이 좋아하시죠. 특히 빛깔이 예쁘잖아요. 기분이 좋아질 거에요.”

주인이 자기 기분을 어떻게 알았는지 약간 의아했지만 무의식중에 나타난 자기 기분을 주인이 눈치 챈 것이라 생각한 금반지는 그냥 카페주인이 권한 술을 마시기로 했다.
주인은 주문한 초록빛이 도는 술을 금반지 앞에 내려놓으며 카드 점을 봐 주겠다며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점술가인 그녀는 카드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손놀림으로 카드를 섞고 있었다. 

혈색 없어 보이는 마른 손에 검은색 매니큐어를 칠한 기다란 손톱이 마치 마녀를 연상시켰다.  그녀가 섞은 카드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탁자위에 좌아악 펼쳐졌고 그녀는 제일 먼저 온 손님부터 한 장씩 뽑을 것을 제안했다.   지루한은 조심스레 탁자위의 카드중 고민하지 않고 한 장을 뽑았다.  그가 뽑은 카드는 봇짐을 메고 있는 광대 카드였다.  신기하게도 두 번째 세 번째 계속해서 모두들 똑같은 카드를 뽑았다.

“광대 카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은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여행을 한다구요”

점술가의 말에 금반지가 앞쪽으로 몸을 약간 당겨 앉으며 관심을 보였다.

“여러분들 마음속에 그 답이 있을 겁니다.  그런 마음이 여러분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끌었을 테니까요”

계속 기회만 엿보던 사기꾼이 둘의 대화를 방해하며 끼어들었다. 

“뷰티풀 마담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저기.. 그게”

사기꾼이 약간 뜸을 들이자 점술가는 매혹적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들리던데요 음..사람들이 실종된다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소문의 진상을 밝히기라도 하듯 사기꾼이 물었다. 모두들 그 소문에 대해 궁금했던지 그녀의 말을 듣기 위해 숨을 죽이고 꼼작도 않은 채 그녀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고 있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드디어 그녀가 입을 뗐다. 

“네 그 분들은 여행에서 아직 돌아오시지 못했습니다.”
“그럼 그 얘기가 사실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그 여행이란 것이 뭐죠”

금반지는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란 말에 놀라 흥분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똑같은 표정으로 카드를 섞으며 시간여행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다.

“그럼 못 돌아오는 이유는요”
“길을 잃어버렸거나 여행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신가요?  사람들은 한번씩 현재 생활에서 이탈을 원하죠.그분들도 그러한 이유에서 여행을 선택하신 겁니다.  전 그런 분들의 여행을 도와드리는 일을 하고 있지요.  하지만 선택은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녀는 묘기를 부리듯 현란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섞었고 모두들 그녀의 손놀림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고루 섞은 카드를 다시 탁자위에 한 줄로 펼쳐 놓았다

“시간여행을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한 장씩 뽑으세요”

점술가는 여기 온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이미 그들의 마음을 꽤뚫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 그녀의 마법에 걸리기라도 한 것 처럼 그녀가 시키는대로 카드를 뽑았다.
사기꾼은 마법사, 금반지는 연인, 의사는 절제, 도박사는 달, 지루한은 별 카드들 뽑았다. 점술가는 각자가 뽑은 카드는 자신들의 정신세계며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부적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카드는 시간여행을 하면서 보게 되는 문이나 엘리베이터의 열쇠기도 합니다.  여행 중에 나타나는 카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견해 주는 카드입니다.  아무쪼록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점술가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저를 따라 오십시오”
 
주인을 따라 가니 좁고 꼬불꼬불한 미로가 시작되었다.  밖에서 봤을 땐 아주 작은 건물이었는데 이런 미로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좁은 미로를 따라 벽에는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마치 무성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액자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이상한 괴물에게 쫓기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다른 액자엔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는 꽃밭에서 모자에 꽃을 꺾어 담고 있는 갈색머리의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꽃으로 만든 관을 머리에 씌워 주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금반지는 잠시 그 액자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의아하기만 한 금반지는 점술가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그녀는 벌써 코너를 돌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점술가를 따라 일행이 도착한 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문들이 있었다. 

“여행이 시작되면 지나간 길은 사라져버려 다시 되돌아서 올 순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마음이 바뀌신 분은 여기서 나가셔도 좋습니다.”

점술가는 그 곳에 온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금반지는 아까부터 느끼한 눈으로 힐끔 힐끔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사기꾼의 시선이 기분 나빴지만 애써 외면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마음의 결정이 쉽지 않은지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인 이 카페에 호기심이 생긴 금반지가 먼저 여행을 시작해보겠다고 하자 사기꾼도 얼른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지금 나갔다가 깡패한테 들키면 맞아 죽을 상황에 놓인 도박사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제 지루한과 나의사만 남았다.

“두 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럼 만약 끝까지 가지 못한다면 우린 어떻게 되는거죠”

의사가 물었다.

“그곳에 남게 되어 영원히 돌아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러분의 인생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여행이 시작되면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쳐도 끝까지 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기로 통하는 마지막 문을 발견 하실 수 있습니다  마음의 결정을 하셨습니까”

두 사람의 얼굴을 살피던 점술가의 무표정한 얼굴에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어떤 표정의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문을 선택하신 후 여러분이 선택한 문을 열면 흰 백합꽃이 가득한 두 갈래 길이 나타날 겁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여러분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겁니다 그 선택이 좋은 선택일수도 있고 좋지 않은 선택일수도 있습니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여러분들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점술가는 모인 사람에게 시계를 한 개씩 나눠 주었는데 그 시계는 고장이 났는지 침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 시계는 이곳의 시간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시계가 자고 있는 것 같이 보일수도 있지만 여행을 시작하게 되면 시간은 정상적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이 시계가 24시를 가리킬 때까지는 돌아오셔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하루 동안 미스테리한 여행을 하시게 될 겁니다. 그럼 이제 문을 선택해 주세요.  어떤 선택을 하시든 그 결과는 여러분 몫입니다.”

얼굴을 흉기로 쓸 것 같은 도박사가 자기가 선택하겠다고 험상궂은 얼굴로 무언의 협박을 했다. 모두들 그의 기에 눌려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자 이제 시작하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감정이라곤 없을 건 같던 그녀가 어떤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처음에 도박사의 달 카드를 문에 대었다.  문이 철커덕 열리자 점술가가 말한데로 흰 백합이 가득 피어있는 두 갈래 길이 나왔고 그 길에는 왼쪽은 무지개 공원 오른쪽은 하늘공원이라고 적혀 있는 팻말이 있었다.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어떤 길을 선택하고 싶으신가요?

일행은 의견이 분분했다. 금반지와 의사는 무지개 공원을 도박사, 사기꾼, 지루한은 하늘공원을 선택했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하늘공원 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 길로 들어서자 왼쪽의 길은 점점 흐릿해지더니 사라지고  갑자기 주위가 온통 모래뿐인 사막으로 변했다.  모래바람 때문에 앞을 볼 수 없는 일행은 한발짝도 움직이기가 어려워졌다.  조금 뒤에 바람이 잠잠해지더니 일행의 눈앞에 스핑크스가 버티고 서 있었다. 스핑크스는 길을 막고 서서 문제를 맞추면 여길 지나 갈 수 있을 것이고 만약 문제의 답을 맞추지 못하면 이곳에 영원히 갇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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