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온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톱스타 최진실, 그리고 가수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동생 최진영 두 남매의 가슴 아픔 이야기. 어머니 정옥숙 여사는 이 책을 통해 두 남매에 대한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리고 고인이 된 딸에 대한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를 사람들의 오해가 풀리길 바라고 있다. 갑작스런 그녀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 그 뉴스를 듣고 나도 또한 오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의 귀를 의심했다. 그렇게 똑부러지고 악바리 같은 그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어린 아이와 자신이 사랑하는 엄마와 동생을 남기고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동안 그녀의 자살을 둘러싸고 많은 말들이 떠돌았다. 그녀의 힘들고 괴로운 상황을 우리는 재대로 알지 못했고 그녀의 죽음을 두고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가십꺼리로 전락해버린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녀는 살아있을 때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민 배우였는데 죽어서도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파워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모든 CF를 거의 다 휩쓸고 드라마에 나왔다 하면 히트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사랑했고 닮고 싶어 했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그녀. 세상은 그녀에게 주목했고 작고 귀엽고 깜찍한 외모와 밝은 미소와 알뜰함, 그리고 솔직함으로 모두를 반하게 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것만큼이나 그녀에게는 말 못할 많은 아픔이 있었다. 진실이 좋지 않은 일을 겪으며 루머에 시달릴때 엄마로써 더 적극적으로 지켜주지 못하고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이 자식을 잃은 엄마의 아픈 마음을 더욱 더 아프게 한다. “맘껏 내 자식 얼굴 볼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한 일입니다“ 라는 말에서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한이 느껴진다. 어린 나이에 만난 첫사랑의 남자에게 아이가 있는 것도 모른채 결혼한 진실 엄마는 신혼첫날부터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인편단심 기다리며 진실과 진영을 낳고 온갖 고생을 겪으며 살아온 엄마의 서글픈 인생. 무능하고 무책임한 남편을 대신해 두 아이를 책임져야 했던 최진실 엄마는 매일 전쟁 같은 날을 보내야 했다. 방 값이 밀려 아이 둘을 대리고 쫓겨나야 했고 먹을 것이 없어 굶기를 밥 먹듯 해야 했다. 가끔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엄마가 조금 모아 놓은 돈까지 긁어 가 버렸고 매일 끼니 걱정과 살아갈 걱정을 해야했다. 먹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 진실은 학교에서 친구들이 먹는 빵이 먹고 싶어 엄마가 싸준 도시락과 빵 반개를 바꿔 그것을 진영과 같이 먹으려고 싸왔다. 아빠가 사준 냉면이 최고로 맛있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아빠와의 추억은 별로 없지만 항상 아빠를 그리워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든 집에서 쫓겨나 갈 곳이 없어 연탄광에서 살면서도 식구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 그러나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렵기만 했던 그들에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죽으려고 했던 엄마의 손을 붙잡고 살고자 했던 진실. 그녀와 진영은 괴롭고 힘들때마다 엄마를 지탱해주는 존재였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든 살아야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 엄마에게 자기가 나중에 엄마 호강시켜주겠다는 말을 자주 했던 진실과 진영은 엄마의 마음을 항상 잘 이해해주고 엄마를 위해주는 든든한 효녀, 효자였다. 찢어질 듯한 가난과 어려움은 세 사람을 더욱 강하게 묶어 주었다. 그녀가 CF모델로 얼굴을 알리게 될 쯤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된다. 처음으로 700만원짜리 전셋집으로 이사한 날 세 식구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더 이상 돈 때문에 쫓겨날 걱정, 떠돌아다닐 걱정 안 해도 되고 뜨거운 물도 콸콸 나와서 좋아했다.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하지만 인기가 올라갈수록 그녀는 점점 불안해하기 시작했고 외로움을 타기도 했다. 그러던 그녀에게 결혼은 그녀의 인생을 탈바꿈하게 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두 톱스타의 만남과 결혼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람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받으며 누구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녀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남편의 외도를 목격했고 이혼을 강요당해야 했다. 엄마처럼 꿋꿋히 가정을 지키며 살고 싶었던 그녀에게는 크나큰 충격이었고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낳아야 했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 남편의 자살은 그녀를 또 한번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힘든 일을 겪었던 그녀는 친구의 불행을 자기 일처럼 너무 가슴 아파했었다. 그런데 그 슬픔이 가시기 전에 사채설까지 나돌고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무니 없이 커져만 갔다. 연달은 충격적인 사건은 그녀를 절망의 늪에서 더 이상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불행은 계속 식구들을 괴롭혔고 급기야 그녀는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은 존재로 세상의 왕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겁이 많고 내성적이었던 그녀는 슬픔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가끔 혼자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있기도 하고 갑자기 가게를 해 보겠다고 했다가 밤이 되면 잠도 못 자고 뜬 눈으로 지새우기도 했다. 세상이, 사람이 무섭다고 말할 때 그런 딸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는 엄마는 매일을 가슴을 치며 괴로워했다. 이제껏 쌓아 온 모든 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사랑과 관심은 저주와 질타로 변해버렸다. 세상사람 모두가 자기를 손가락질 하고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어떤 파렴치한 죄인보다 더 큰 죄인이 되어버려 밖으로 나오기조차 두렵게 만들어 버렸다. 한때 모든 것을 가졌었지만 어느새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는 괴로움과 외로움 두려움 세상의 모든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과의 이별을 선택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자신을 죽음 속으로 내던지고 말았다. 그토록 힘든 세월을 꿋꿋이 이겨내며 진실되게 살고자 했던 그녀에게 그것은 가혹한 형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누나의 죽음은 진영에겐 떨칠 수 없는 슬픔이었고 누나를 그리워하던 그는 죽어서라도 같이 있고 싶었던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살아서 누나를 지켜주지 못해서 죽어서라도 꼭 누나를 지켜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죽음은 부모에겐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남겼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을 살고 있는 엄마는 손자 손녀들 몰래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봄이 오면 진영이가 생각나서 봄나물도 먹을 수 없고 가을이 되면 진실이가 생각나서 단풍도 즐길 수 없는 엄마는 그리움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눈가가 마를 날이 없다. 그리운 진실이와 진영이를 만나 두 팔로 꼭 안아 줄 날을 기다리며 딸이 남기고 간 환희와 준희를 위해 오늘도 슬픔을 삼키며 살아간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소비는 점점 증가하고 그로인해 넘쳐나는 쓰레기로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가 매일 쓰고 버리는 많은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 속에는 우리가 쓰다 싫증나서 버리는 물건도 많다. 모든 것이 부족하기만 하던 예전에는 옷이 떨어지면 꿰매서 입고 그러다 도저히 못 입을 정도가 되어야 버렸지만 지금은 유행이 지나거나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멀쩡한 것들도 하루아침에 쓰레기로 전락해 버린다.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은 꽃섬이라는 예쁜 이름과는 사뭇 다른 쓰레기 매립장이 터전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욕망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버린 욕망의 찌꺼들로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는 꽃섬. 그곳 사람들은 더럽고 심한 악취로 숨조차 재대로 쉬기 어려운 환경에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곳의 사람들은 쓸모없어 버려진 쓰레기가 모이는 곳이자 사람들이 만들어 낸 아주 낯익는 또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다. 아빠와 친구 되는 아저씨의 권유로 엄마와 함께 이곳에 들어오게 된 14살 딱부리는 엄마가 그 아저씨와 같이 살게 되면서 아저씨의 아들 땜통과 형제가 된다. 이름보다는 별명이 더 친숙한 이곳의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기 보다는 부모의 일을 돕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딱부리는 자기보다 나이 어린 땜통을 통해 알게 된 빼빼네와 도깨비 김서방네 가족에게서 따뜻한 가족애를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술과 도박을 즐기던 땜통 아버지가 살인미수로 감옥에 가게 되자 딱부리는 사람들이 아저씨가 삼청교육대에 가게 될 거란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된다. 사람들 말로는 그곳에 갔다 오면 새 사람이 되어 온다는데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리 없던 딱부리는 쓰레기장에서 골라 낸 쓰레기가 재생공장에서 새로운 물건이 되어 나오듯 그곳에 가면 사람도 새롭게 바른 사람이 되어 나오리라 생각한다. 꽃섬에 온 뒤로 딱부리도 언젠가부터 자신도 쓰레기가 되버린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겨울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되도 산타할아버지가 오지 않는 이곳. 크리스마스날 산타할아버지에게 모든 아이들이 선물을 받지만 꽃섬에 버려진 아이들과 땜통은 한번도 산타할아버지를 본 적도 선물을 받아 본적도 없다. 딱부리는 김서방네가 선물해준 쓰레기더미 속 돈을 갖고 땜똥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게임기를 사준다. 땜통은 이제껏 처음 받아 본 새 장난감에 너무 좋아한다. 매일 그것만 가지고 노는 땜통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딱부리. 둘의 형제애는 그들이 보낸 시간보다 더 빨리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자 쓰레기더미에서 튀어 오른 불통이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만든 집에 옮겨 붙어 큰 불이 되어 그곳을 뒤덮는다. 딱부리는 땜통의 게임기를 지키기 위해 다시 불길 속으로 들어가고 화재가 진압된 뒤 죽은 채로 발견된 불쌍한 어린 땜통의 죽음은 딱부리에게 큰 슬픔을 남기게 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 곳 사람들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매일 위협을 무릅쓰고 살기 위해 쓰레기 산에 올라간다. 공장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물건이 쏟아져 나오고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높아지는 쓰레기더미 산. 쓰레기장에서 중기에 깔려 불구가 된 두더지의 형처럼 우리도 우리가 쌓아 올린 부질없는 욕망의 더미에 깔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에 쓰던 물건을 내버리듯 우리는 버리는데 너무 익숙해져있다. 예전의 좋은 것들 까지도 따뜻했던 사람들간의 정도 사랑도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물건들처럼 편한대로 쓰고 버리면서 사람들은 욕망으로 점점 소중한 것들을 잃어간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도 변하고세상도 모든 것이 변하지만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도 우리는 쉽게 버리고 허물어 뜨리고 있는건 아닐지 생각하게 한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이은 또 하나의 미스테리. 너무 친한 친구들 월드컵으로 모두들 한창 들떠 있을 무렵 그 틈을 타 새로운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무참히 살해된 시체의 일부가 인근 동물원 사육사에 의해 발견된다. 수사 반장 보덴슈타인의 잠을 깨우는 한 통의 전화. 그는 직감적으로 사건이 터졌음을 예감했다. 피의자는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교사였지만 환경운동이나 도시계발등 여러 가지 일에 목소리를 높이며 나서는 바람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있기도 한 사람이였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살해할 만한 충분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전작에서처럼 사건 조사가 진행되면서 이 사건에 많은 사람들이 거미줄처럼 밀접하게 얽혀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들은 모두 용의선장에 올려진다. 반전을 거듭하며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야기가 거의 끝날 때 까지 아무도 누가 범인인지 단정지을 수 없게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매일 다양한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중에 정말 비인간적인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이나 성범죄자, 끔찍한 살인자들의 범행이 뉴스를 통해 간혹 보도된다. 어떤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 원인을 가만히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거기엔 사람의 내면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 속에도 인간의 욕망과 질투, 야망, 욕심, 배신. 불륜 등 사람들 내면의 추악한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결국 자신의 이익이나 욕망 때문에 저지른 그들의 비인간적인 행동은 복수의 칼이 되어 자신의 심장에 꽂힌다. 짐승의 탈을 쓰고 그 속에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있는 표지 그림에서 처럼 사람들은 사람의 가면을 쓰고 그 속에 조금씩 잔인하고 사악한 짐승의 모습을 숨기고 사는 건 아닐까.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꿈틀대고 있던 욕망은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 주위의 사람들까지도 파멸로 치닺게 하는데 소설속의 인물들은 각자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거나 행복하지 못한 불우한 시절을 보낸 이들이 많다. 그런 불행의 요소들은 어느순간 그들을 충동질하고 자제력을 잃게 한다. 그들은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충동적인 살인을 선택하고 만다. 이번 소설에서는 사건을 맡은 피아 형사한테까지 검은 마수의 손길이 뻩치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집을 자기 집 드나들 듯 하며 그녀를 공포에 떨게 한다. 급기야 그 정체모를 누군가에게 끔찍했던 과거까지 들켜버린 그녀는 두려움에 자제력을 잃는다. 계속 이어지는 살인사건과 범인을 목격했을 유력한 여학생이 갑자기 소리없이 사라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피아 형사까지 행방불명이 된다. 사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보덴슈타인과 동료들은 두 사람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보덴슈타인은 마침내 한 사람을 거의 유력한 용의자로 확신하게 된다. 그가 지목한 자가 범인일지 아니면 직감적인 피아의 예상이 맞을지 과연 누가 이 사건의 파렴치한 범인일까를 고민하게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용의자들을 계속 눈으로 쫒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된다. 범인은 아마 그 틈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좋은 요리사가 되기 위한 답을 찾기 위해 배낭 하나 매고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탐방길에 올라 세계 최고 세프 페란의 마음을 사로잡기까지 한 청년의 꿈을 향한 좌충우돌 도전기가 꿈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4년 연속 세계1위로 선정되었으며 이미 2년치 식사 예약이 되어 있을 만큼 그 곳의 음식을 꼭 한번 맛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레스토랑 ‘엘 불리’. 최고의 요리사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곳에 아무 연고도 없는 그가 오직 꿈을 향한 열정으로 말도 통하지 않는 스페인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두려움과 설렘으로 그가 그리던 ‘엘 불리’의 문을 두드린다. 꿈을 향해 가는 길은 평탄하지만은 않다. 가다보면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고 넘어야 할 산과 맞닿트리기도 한다. 그의 꿈을 찾아 떠나는 길도 순탄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여행길에서 따뜻한 사람을 만나 사람 사는 정을 느끼기도 하고 차가운 대접을 받기도 했는데 레스토랑의 세프를 만나고 싶어 찾아 갔다가 여러 번 퇴자를 맞고 쫓겨나기도 하고 돈이 없어 텐트를 치고 자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아 경찰에 신고당하기도 하면서 타국에서의 서러움과 배고픔을 견뎌내야 했지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꿈을 향한 확고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곳의 문화와 특색있는 요리를 맛보고 세계적인 요리사에게 그들의 요리에 대한 철학을 들으며 자신이 나아갈 길에 대해 답을 찾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엘 불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도전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란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 힘들게 들어간 엘 불리에서 유일한 한국인인 그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해도 큰 장애물에 부딪히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고 싶었던 일이라 해도 힘에 부대끼다 보면 회의를 느끼고 슬럼프에 빠져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던 꿈이었기에 물러설 수 없었던 그는 그 곳에서 쉴 틈 없이 일하며 살인적인 업무를 해내야 했고 그곳에 있는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과 질투, 괴롭힘을 감수해야 했다. 몇 달 아니 몇 칠도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는 오로지 요리를 배우기 위해 온갖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도리어 행복해 하는 그를 따가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의 열정과 의지가 마침내 최고의 세프 페란의 마음을 움직였고 페란의 신임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닌 오직 그의 노력의 결과였다. 모든 시간을 요리에만 몰두하고 연구하고 새로운 요리를 만들고 체크하는 페란을 보며 그가 세계 최고의 세프가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일에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바치고 끊임없이 노력할 때 비로소 최고의 요리사가 될 수 있고 오랜 시간과 노력을 담보로 하여 최고의 맛을 살리기 위해 정성으로 마음을 다해 요리할 때 철학이 담긴 요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그 일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소스에 들어가는 파슬리10그램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30분 동안이나 다진다니 정말 놀랍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모든 정성을 기울여 요리를 하는 그들에겐 절대 대충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장인정신일 것이다. 그리고 각자 맡은 파트에서 그 일만을 지겹도록 계속 반복하게 하는 것도 그 곳의 특징인데 그런 이유에서 최고의 맛이 나오는 것이다. ‘지루한 반복은 최고를 만들고 엄청난 스트레스는 완벽을 만든다’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꿈을 간직하고 있다면 지금이 바로 자신의 열정을 발휘할 때다.
5. 검은 박쥐떼의 습격 지친 금반지의 머리위에 쏟아져 내리는 빛나는 햇살은 그녀의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끝내 머리가 핑 돌면서 어지러움에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레털레 걸어가던 사기군이 놀라 그녀에게 달려 왔다. “왜 그래요?” “아이.. 으으으” 떼를 쓰다 혼난 어린애같이 울상을 짓고 있는 그녀의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는 굽없는 구두에 한쪽 팔만 달려 있는 브라우스의 앞부분은 단추가 몇 개 떨어져 나가 군데군데 풀어 헤쳐져 있고 곱게 빗어 올렸던 머리는 산발이 되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온 몸은 먼지와 흙으로 꾀제제한 체로 땅에 주저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완전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이 든 사기군은 그녀가 지금 뭔가를 원한다면 다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디 아파요?” “나... 배 고 파 요” 그녀의 말에 어이없이 피식 웃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평소엔 쉬운 일이 지금 상황에선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달라고 하면 그게 더 쉬웠을 것이다. 그때 하늘 위로 뭔가가 ‘휙’ 하고 재빨리 지나갔다. “뭐해요 빨리 안 오고” 무겁고 지친 몸을 이끌고 걸어가던 일행이 뒤쳐져 오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곳까지 오면서 힘든 일을 겪어 지친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쉬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마땅히 쉴 수 있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길바닥에 퍼져 앉아있는 금반지의 귀에 어디선가 나지막히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 안 들려요?” “무슨 소리요?” “종소리요..” 사기군은 그녀가 허기지고 기력이 빠진 탓에 환청을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힘네요 내가 나중에 여기서 돌아가면 먹고 싶은 것 다 사줄게요” "여기서 돌아가기 전에 여기서 굶어 죽을것 같아요" "조금만 더 힘내요. 우리 돌아가면 그땐 맛있는거 배 터지게 먹자구요" '꼭 되돌아갈거야' 그녀는 혼자 그 말을 내뱉으며 천근만근인 몸을 질질 끌며 길을 걸었다. 그녀의 옆에 걷던 사기군은 몸은 지쳐도 입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그녀에게 짓궂은 농담을 걸어왔다. 그의 말에 대꾸도 않고 신경 안 쓰려고 다른 생각을 하며 걸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말이 귀속으로 쏙쏙 들어와 박히며 그녀의 인내를 테스트 하고 있었다. 조금의 힘이라도 남아있었으면 그에게 주먹을 한방 날렸겠지만 남아있는 에너지라도 아껴야 하므로 참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표정이 밝아지며 어딘가로 뛰어가더니 길가에 피어있는 꽃한송이를 따서 돌아와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름다운 아가씨 저의 마음을 받아주세요” “저리 치워요. 말할 기운도 없으니까” 그가 또 헛튼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의 손을 슬쩍 밀치며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하지만 전에 보단 많이 부드러워진 태도였다. 하지만 먹어보란 그의 말에 결국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 그녀는 그 꽃을 빼앗아 땅에 내동댕이쳤다. “야~ ! 정말 죽어 볼래? 이런걸 먹으라고? 너나 실컷 먹어라 이 사기꾼아” 그녀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고함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더니 주먹으로 마구 두들겨 팼다. 그녀의 공격에 그는 아무런 방어도 몸을 최대한 움츠렸다. “아..아 잠깐만요. 왜 이렇게 폭력적이에요? 그게 아니고..내 말 좀 들어봐요” 힘이 다 빠져버린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지친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것 같았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치만 보고 서 있던 사기군은 약간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꽃잎이 떨어져 나가 망가진 꽃을 주으며 속상한 듯 말했다. "이 꽃 먹을 수 있는 거에요. 배고프다고 해서 껶어 온 건데” 축 늘어져 있는 그녀의 콧속으로 향긋한 꽃내음이 솔솔 들어왔다. 그 말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그 꽃으로 눈을 돌렸다. “뭐..라구요” 방금 전 잡아 먹을 듯이 덤비는 그녀의 기세가 좀 수그러든 것 같자 그는 다시 꽃이 피어있는 곳으로 달려가 꽃을 껶어 돌아왔다. 껶어 온 빨간 꽃을 내밀자 그녀는 좀 전의 자기의 행동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슬그머니 그 꽃을 받아 쥐었다. 그녀가 화가 풀린것을 눈치 챈 그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이제껏 어떤 여자들에게도 한번도 자기의 마음을 보여 본 적 없던 사기군인데 금반지 앞에서만은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이 꽃은 시계꽃인데요 가운데는 나침반처럼 생겼고 수술은 마치 시계추처럼 생겼죠” 그는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걸 보여주려고 먼저 꽃잎을 따서 먹었다.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꽃을 코 끝에 갖다 대고 향기를 맡은 후 그 꽃을 입에 넣고 조심스레 씹어 보았다. 그 꽃은 약간 단맛이 났다. 점점 진하게 풍겨오는 꽃향기는 이 꽃의 향기가 아니였다. 그녀가 그 꽃향이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검은 망토를 걸친 여인들이 국화꽃이 얹힌 관을 끌고 가고 있었다. 종소리가 들렸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인들은 검은 망토를 깊숙이 덮어 쓰고 있어 얼굴을 잘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들의 얼굴엔 사람의 감정 중 어떤 감정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느낌은 너무나 차분하고 싸늘했다. 그녀들의 행차를 본 다른 일행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묵념을 올렸다. 하지만 그녀들은 눈길 한번 돌리지 않은 채 묵묵히 관을 끌고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사라져 갔다. “누가 죽은 걸까요.. 저 사람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겠죠” “물론 그렇겠죠” “죽는다는 건 뭘까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어쩌면 다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 그녀는 문뜩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이상한 말 그만하고 어서 가요. 다른 사람들이 우릴 기다리잖아요” “난...이제 더 못 가겠어요” “자 업혀요” 사기군이 자신의 등을 내밀어 주었지만 그녀는 업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빨리 업혀요 너무 빼는 것도 매력 없”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이 커지더니 비명을 질렀다. “도망쳐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그녀가 벌떡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뛰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쭈삣 쭈삣해지는 불길함에 뒤를 돌아본 그도 죽어라고 뛰기 시작했다. “에이씨 또 시작이야” 그의 뒤에 붉은 눈을 가진 박쥐떼가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갑작스런 박쥐떼의 습격에 미친듯이 뛰었다. 벌써 그들의 뒤를 바짝 따라온 박쥐들이 그들을 공격해왔고 일행은 곧 많은 박쥐떼들에 둘러 쌓여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금반지는 고함을 지르며 가지고 있던 가방으로 달려드는 박쥐를 막느라고 난리법석을 떨었고 도박사는 날아오는 박쥐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그 틈을 빠져나와 혼자 슬금슬금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사기군은 박쥐떼들에 쌓여 꼼짝도 못하고 울부짖는 그녀에게로 까만 박쥐떼를 헤치고 조금씩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쪽 팔로 그의 흰 양복을 벌려 그녀를 감싸 안았다. 계속해서 사정없이 몰려들어 그들을 물어 띁는 까마귀들 틈에서 그는 지팡이를 하늘높이 쳐들어 휘둘렸다. 두려움에 떨던 그녀는 그의 품에 더욱더 깊게 얼굴을 파묻었다. 주위의 뜨거운 열기와 고막이 찢어질 듯한 시끄러운 괴음, 그녀의 몸으로 전해져오는 그의 체온과 향수냄새, 목숨을 건 싸움. 그녀의 머릿속은 어지럽게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까맣던 하늘이 열리며 불에 탄 박쥐들의 재는 검은 비가 되어 내렸다. 박쥐들의 습격을 피해 혼자 도망쳐 나온 도박사는 살았구나하는 기쁨에 두고 온 일행에 대한 미안함도 없이 혹시나 다시 공격해 올지 모르는 박쥐떼를 피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더 이상 쫓아오는 박쥐떼가 없자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늦쳤다. 여유롭게 흥얼거리며 걷고 있는 그는 발밑이 약간 흔들림을 느끼고 순간 놀라 멈짓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춘 그는 신경을 곤두 세우고 정황을 살폈다. 이번에는 좀 더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바짝 긴장한 도박사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조심 한발짝씩 떼어 놓았다. 몇 걸음 못가 땅이 심하게 흔들리며 금이 가더니 지그제그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다른 일행이 있는 곳도 마찬가였다. 사기군은 그녀를 데리고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일행을 향해 초고속으로 달려온 보르한의 차가 그곳에 도착했다. 땅은 더 심하게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사기군은 금반지의 손을 잡고 무작정 뛰었다. 그런데 목숨을 걸고 뛰던 사기군은 얼마 못가서 갑자기 멈췄섰다. 그들의 눈앞에 끝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곧 그들은 그곳에서 낭떠러지 끝으로 걸어가고 있는 또 한 사람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아까 혼자 도망가던 도박사였다. 둘은 큰 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그들의 애타는 목소리를 뒤로한 채 도박사는 무엇에 홀린 듯 계속 낭떠러지 끝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엔 볼 수 없었던 다른 잠든 아이의 얼굴처럼 아주 평온해 보였다. 이제 한 발만 더 내딪으면 끝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낭떠러지 밑으로 영원히 사라질 순간. 두 사람은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지켜볼 수 밖에 없어 애만 태웠다. 끝내 도박사는 마지막 한 발을 내딪었고 그녀는 도저히 그 장면을 볼 용기가 없어 고개를 돌려 버렸다. 평소에 미워하긴 했지만 그의 허무한 죽음을 애석해할 시간도 없이 그들이 서 있던 발밑이 순식간에 쫘아악 갈라짐과 동시에 둘의 사이도 떨어지게 되었다. 박쥐떼들의 공격을 피해 헛간에 숨어있던 지루한과 의사는 지진으로 집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자 그 곳을 빠져나와 다른 일행을 찾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눈에 보르한이 누군가를 어깨에 들쳐 매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도박사를 땅에 내려놓으며 두 사람에게 그를 부탁하고는 어디론가 급하게 가버렸다. 도박사의 눈동자가 풀린 것이 정신이 약간 나간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제 정신이 아닌건 확실했다. 의사는 도박사를 살펴보더니 환각상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서 여길 빠져 나갑시다” 의사와 지루한은 그를 양쪽에서 부축해서 데리고 갔다. 사기군과 금반지가 서 있는 땅의 틈은 빠르게 벌어지고 있었다. 금반지가 겁에 질러 꼼작도 못하자 사기군은 그녀가 서 있는 곳으로 옮겨가기 위해 있는 힘껏 뛰었다. 순간 그가 뛰어 내린 발밑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며 그는 벼랑에 매달린 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그를 끌어올리기 위해 그의 손을 잡고 힘껏 당겼지만 그녀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그의 손을 잡고 있던 그녀의 몸도 낭떠러지 쪽으로 딸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팔이 떨리며 손엔 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서 그의 한손이 빠져 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듯 비장한 눈으로 그녀에게 손을 놓으라고 했지만 그녀는 도저히 그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다시 땅이 흔들리더니 갈라져 있던 땅이 간격을 좁혀 오고 있었다. 안간힘을 쓰며 그를 붙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서 그의 손이 자꾸 미끄러져 나가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미안해요 더 이상 당신을 붙잡을 힘이 없어요. 놓으면 안 되는데...어떻하죠] 그 순간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그의 남은 손을 잡아주었다. 그 믿음직한 손에 의해 그의 몸은 위로 당겨 올려졌다. 땅이 맞붙으려는 순간 그의 몸도 함께 빠져나왔다. 사기군은 다시만난 보르한을 보곤 고마움과 반가움으로 어쩔 줄 몰랐다. 특히 금반지는 사기군의 목숨을 구한 기쁨과 다시 볼 수 없을거라 생각한 그를 만난 놀라움, 지금까지의 고생 이런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올라 자기도 모르게 이제껏 참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얼른 눈물을 훔쳤다. “또 한번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시네요. 뭐라고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사기군이 보르한에게 손을 내밀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는 사이 멀리서 다른 일행들이 박쥐떼에 쫓겨 그들 쪽으로 도망쳐 오고 있었다. 도박사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이제껏 죽었다고 생각한 도박사가 살아있는 것을 본 금반지와 사기군은 믿기지 않는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어쨌든 그가 살아 있다는게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보르한은 금반지와 사기군에게 몸을 피할 것을 당부하고 박쥐떼에게 쭃겨 도망쳐 오고 있는 그들을 돕기 위해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본 사기군이 비장한 각오를 한 사람처럼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하곤 바로 보르한의 뒤를 따랐다. 생각도 못한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잠시 어리둥절해 하고 서 있자 의사가 그녀의 손목을 끌며 재촉했다. 그들은 보르한과 사기군을 뒤로하고 앞을 향해 무조건 달렸다. 금반지는 두 사람이 걱정이 되어 순간순간 뒤를 돌아보며 달렸다. 도망가던 그들의 눈이 점차 커지며 얼굴엔 긴장감이 돌았다. 전방 200미터쯤에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격전을 벌이고 있는 그들을 향해 빨리오라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지만 계속되는 박쥐들의 공격으로 그들의 걸음은 늦어지고 있었다. 먼저 엘리베이터에 도착한 세 사람은 그들이 무사히 어서 오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그리 멀지 않는 그들과의 거리가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는 점점 흐릿해지며 사라지고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자 가슴 졸이던 금반지가 간절히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정말 피를 졸이는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의 바램이 하늘에 닿았는지 숨가쁘게 뛰어오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 와요 지금오고 있어요” 반가움에 들뜬 지루한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에 들려왔다. 그녀는 얼른 눈을 떠 긴장된 모습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기군과 도박사의 모습만 보일 뿐 보르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자 반가운 마음 뒤로 그를 홀로 남겨 두고 온 두 사람이 너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보르한에게 자기의 목소리가 전해지길 바라며 소리쳤다. “제발 빨리 와요” 자기들을 향해 소리치는 금반지를 본 사기군은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다. 사기군이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뒤에 따라오던 도박사가 뒤따라온 박쥐의 공격으로 쓰러지더니 다시 일어나 뛰었다. 이제 엘리베이터 문은 반쯤 닫혀가고 있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도박사는 몸의반이 엘리베이터에 끼인채 다른 시간 속으로 이동했다. 결국 오지 못한 보르한만을 남겨둔 채 떠나는 일행은 자기들의 비겁함과 미안함으로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금반지는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을 느꼈다. 그들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어딘가에 멈추더니 문이 천천히 시작했다. 조금 열린 문 틈으로 익숙한 꽃향기가 스며 들어왔다. 주위를 살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일행은 넓게 피어 있는 하얀 국화꽃밭을 보곤 그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했다. 문뜩 이곳에 오기 전 관을 끌고 가던 여인들이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국화꽃이 피어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가던 그들은 어떤 작은 성당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는 성당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이고 들어갔다. 그 곳에는 검은 망토를 입은 여인들이 모여 죽은 사람을 위해 의식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의식이 점점 궁금해진 금반지는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망토를 걸친 여인들이 검은 관을 열었다. 사기군은 그녀가 혹시나 그들의 의식을 방해할까봐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놀란 금반지가 뒤로 돌아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사기군은 관 속의 하얀 드레스를 입고 편히 잠든 아름답고 숭고한 여인을 보고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왜 그래요?”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사기군은 당황해 하며 얼른 그녀의 손을 끌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도무지 어떻게 된 건지 머릿속이 혼란해진 사기군은 그 이후에도 그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말 금반지일까? 아냐 내가 잘 못 본 걸 수도 있어. 그녀와 닮은 사람일지도 몰라] 그들이 성당을 나가자 다른 일행도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그곳을 빠져 나왔다. 지친 그들은 일단 쉴 수 있는 곳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평소 말 많던 사기군이 성당을 나온 뒤론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처럼 멍하니 한마디 말이 없었다. 금반지와 다른 일행은 사기군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푸른 들판이 펼쳐진 곳이 나왔다. 길가에는 곧게 잘 뻗은 가로수와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여기저기 피어있는 이름모를 꽃들은 시원한 바람에 살랑이며 그들을 반겨 주는것 같았다. 모처럼 맞는 평화로운 풍경에 기분이 좋아진 지루한은 혼자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는 허기진 그들의 배를 더욱 고프게 했다. “아 배고프다 너무 배고파서 쇠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애” 금반지는 뱃가죽이 등에 딱 들어붙은 것 같았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 보면 이 근처에 집이 있다는 얘긴데..” 지루한의 말이 떨어지기도 무섭게 그녀는 제일 앞에 앞장서 걷고 있었다. 강하게 코를 자극해 오는 고소한 냄새는 어떤 유혹 보다고 더 감미로웠다. 그들은 곧 아담한 집 한 채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집 앞에 다다른 금반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행동을 의아하게생각한 사기군은 그녀의 시선이 꽂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저.. 저건 혹시” 옆에 서 있던 그도 놀라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왜 그래요?” 그 뒤에 도착한 지루한과 일행도 그 곳을 바라보았다. “아니 저 차는...혹시” “맞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자기의 생각과 같음을 확인했다. 울타리 넘어 군데군데 부서지고 찌그러진 상처가 있는 검은 차가 세워져 있었다. 의사가 달려가 얼른 그 집 문을 벌컥 열어 젖혔다. “보르한씨?” 그는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러 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의사와 일행은 일단 집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