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검은 박쥐떼의 습격

지친 금반지의 머리위에 쏟아져 내리는 빛나는 햇살은 그녀의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끝내 머리가 핑 돌면서 어지러움에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레털레 걸어가던 사기군이 놀라 그녀에게 달려 왔다.

“왜 그래요?”
“아이.. 으으으”

떼를 쓰다 혼난 어린애같이 울상을 짓고 있는 그녀의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는 굽없는 구두에 한쪽 팔만 달려 있는 브라우스의 앞부분은 단추가 몇 개 떨어져 나가 군데군데 풀어 헤쳐져 있고 곱게 빗어 올렸던 머리는 산발이 되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온 몸은 먼지와 흙으로 꾀제제한 체로 땅에 주저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완전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이 든 사기군은 그녀가 지금 뭔가를 원한다면 다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디 아파요?”
“나... 배 고 파 요”

그녀의 말에 어이없이 피식 웃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평소엔 쉬운 일이 지금 상황에선 제일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달라고 하면 그게 더 쉬웠을 것이다.  그때 하늘 위로 뭔가가 ‘휙’ 하고 재빨리 지나갔다.

“뭐해요 빨리 안 오고”

무겁고 지친 몸을 이끌고 걸어가던 일행이 뒤쳐져 오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곳까지 오면서 힘든 일을 겪어 지친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쉬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마땅히 쉴 수 있을 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길바닥에 퍼져 앉아있는 금반지의 귀에 어디선가 나지막히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 안 들려요?”
“무슨 소리요?”
“종소리요..”

사기군은 그녀가 허기지고 기력이 빠진 탓에 환청을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힘네요  내가 나중에 여기서 돌아가면 먹고 싶은 것 다 사줄게요”
"여기서 돌아가기 전에 여기서 굶어 죽을것 같아요"
"조금만 더 힘내요.  우리 돌아가면 그땐 맛있는거 배 터지게 먹자구요"
'꼭 되돌아갈거야'


그녀는 혼자 그 말을 내뱉으며 천근만근인 몸을 질질 끌며 길을 걸었다.  그녀의 옆에 걷던 사기군은 몸은 지쳐도 입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그녀에게 짓궂은 농담을 걸어왔다.  그의 말에 대꾸도 않고 신경 안 쓰려고 다른 생각을 하며 걸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말이 귀속으로 쏙쏙 들어와 박히며  그녀의 인내를 테스트 하고 있었다. 조금의 힘이라도 남아있었으면 그에게 주먹을 한방 날렸겠지만 남아있는 에너지라도 아껴야 하므로 참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표정이 밝아지며 어딘가로 뛰어가더니 길가에 피어있는 꽃한송이를 따서 돌아와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름다운 아가씨 저의 마음을 받아주세요”
“저리 치워요. 말할 기운도 없으니까”

그가 또 헛튼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의 손을 슬쩍 밀치며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하지만 전에 보단 많이 부드러워진 태도였다.  하지만 먹어보란 그의 말에 결국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 그녀는 그 꽃을 빼앗아 땅에 내동댕이쳤다. 

“야~ ! 정말 죽어 볼래?  이런걸 먹으라고? 너나 실컷 먹어라 이 사기꾼아”

그녀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고함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더니 주먹으로 마구 두들겨 팼다. 그녀의 공격에 그는 아무런 방어도 몸을 최대한 움츠렸다.  
  
“아..아 잠깐만요. 왜 이렇게 폭력적이에요? 그게 아니고..내 말 좀 들어봐요”

힘이 다 빠져버린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래저래 몸과 마음이 지친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것 같았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치만 보고 서 있던 사기군은 약간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꽃잎이 떨어져 나가 망가진 꽃을 주으며 속상한 듯 말했다.  

"이 꽃 먹을 수 있는 거에요.  배고프다고 해서 껶어 온 건데”

축 늘어져 있는 그녀의 콧속으로 향긋한 꽃내음이 솔솔 들어왔다.

그 말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그 꽃으로 눈을 돌렸다.

“뭐..라구요”

방금 전 잡아 먹을 듯이 덤비는 그녀의 기세가 좀 수그러든 것 같자 그는 다시 꽃이 피어있는 곳으로 달려가 꽃을 껶어 돌아왔다.  껶어 온 빨간 꽃을 내밀자 그녀는 좀 전의 자기의 행동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슬그머니 그 꽃을 받아 쥐었다.  그녀가 화가 풀린것을 눈치 챈 그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옆에 슬그머니 앉았다.  이제껏 어떤 여자들에게도 한번도 자기의 마음을 보여 본 적 없던 사기군인데 금반지 앞에서만은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이 꽃은 시계꽃인데요 가운데는 나침반처럼 생겼고 수술은 마치 시계추처럼 생겼죠”

그는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란걸 보여주려고 먼저 꽃잎을 따서 먹었다.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꽃을 코 끝에 갖다 대고 향기를 맡은 후 그 꽃을 입에 넣고 조심스레 씹어 보았다. 그 꽃은 약간 단맛이 났다.  점점 진하게 풍겨오는 꽃향기는 이 꽃의 향기가 아니였다.

그녀가 그 꽃향이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검은 망토를 걸친 여인들이 국화꽃이 얹힌 관을 끌고 가고 있었다.   종소리가 들렸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인들은 검은 망토를 깊숙이 덮어 쓰고 있어 얼굴을 잘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들의 얼굴엔 사람의 감정 중 어떤 감정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느낌은 너무나 차분하고 싸늘했다.  

그녀들의 행차를 본 다른 일행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묵념을 올렸다.  하지만 그녀들은 눈길 한번 돌리지 않은 채 묵묵히 관을 끌고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사라져 갔다. 

“누가 죽은 걸까요..  저 사람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겠죠”
“물론 그렇겠죠”
“죽는다는 건 뭘까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어쩌면 다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 그녀는 문뜩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이상한 말 그만하고 어서 가요. 다른 사람들이 우릴 기다리잖아요”
“난...이제 더 못 가겠어요”
“자 업혀요”

사기군이 자신의 등을 내밀어 주었지만 그녀는 업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빨리 업혀요 너무 빼는 것도 매력 없”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눈이 커지더니 비명을 질렀다.

“도망쳐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그녀가 벌떡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뛰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쭈삣 쭈삣해지는 불길함에 뒤를 돌아본 그도 죽어라고 뛰기 시작했다.

“에이씨 또 시작이야”

그의 뒤에 붉은 눈을 가진 박쥐떼가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갑작스런 박쥐떼의 습격에 미친듯이 뛰었다.  벌써 그들의 뒤를 바짝 따라온 박쥐들이 그들을 공격해왔고 일행은 곧 많은 박쥐떼들에 둘러 쌓여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금반지는 고함을 지르며 가지고 있던 가방으로 달려드는 박쥐를 막느라고 난리법석을 떨었고 도박사는 날아오는 박쥐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그 틈을 빠져나와 혼자 슬금슬금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사기군은 박쥐떼들에 쌓여 꼼짝도 못하고 울부짖는 그녀에게로 까만 박쥐떼를 헤치고 조금씩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쪽 팔로 그의 흰 양복을 벌려 그녀를 감싸 안았다.

계속해서 사정없이 몰려들어 그들을 물어 띁는 까마귀들 틈에서 그는 지팡이를 하늘높이 쳐들어 휘둘렸다.  두려움에 떨던 그녀는 그의 품에 더욱더 깊게 얼굴을 파묻었다. 주위의 뜨거운 열기와 고막이 찢어질 듯한 시끄러운 괴음, 그녀의 몸으로 전해져오는 그의 체온과 향수냄새, 목숨을 건 싸움. 그녀의 머릿속은 어지럽게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까맣던 하늘이 열리며 불에 탄 박쥐들의 재는 검은 비가 되어 내렸다. 

박쥐들의 습격을 피해 혼자 도망쳐 나온 도박사는 살았구나하는 기쁨에 두고 온 일행에 대한 미안함도 없이 혹시나 다시 공격해 올지 모르는 박쥐떼를 피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더 이상 쫓아오는 박쥐떼가 없자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늦쳤다. 여유롭게 흥얼거리며 걷고 있는 그는 발밑이 약간 흔들림을 느끼고 순간 놀라 멈짓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춘 그는 신경을 곤두 세우고 정황을 살폈다.  이번에는 좀 더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바짝 긴장한 도박사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조심 한발짝씩 떼어 놓았다. 몇 걸음 못가 땅이 심하게 흔들리며 금이 가더니 지그제그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다른 일행이 있는 곳도 마찬가였다.  사기군은 그녀를 데리고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일행을 향해 초고속으로 달려온 보르한의 차가 그곳에 도착했다. 땅은 더 심하게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고 사기군은 금반지의 손을 잡고 무작정 뛰었다.

그런데 목숨을 걸고 뛰던 사기군은 얼마 못가서 갑자기 멈췄섰다. 그들의 눈앞에 끝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곧 그들은 그곳에서 낭떠러지 끝으로 걸어가고 있는 또 한 사람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아까 혼자 도망가던 도박사였다.  둘은 큰 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그들의 애타는 목소리를 뒤로한 채 도박사는 무엇에 홀린 듯 계속 낭떠러지 끝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엔 볼 수 없었던 다른 잠든 아이의 얼굴처럼 아주 평온해 보였다. 이제 한 발만 더 내딪으면 끝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낭떠러지 밑으로 영원히 사라질 순간. 두 사람은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지켜볼 수 밖에 없어 애만 태웠다.  끝내 도박사는 마지막 한 발을 내딪었고 그녀는 도저히 그 장면을 볼 용기가 없어 고개를 돌려 버렸다. 

평소에 미워하긴 했지만 그의 허무한 죽음을 애석해할 시간도 없이 그들이 서 있던 발밑이 순식간에 쫘아악 갈라짐과 동시에 둘의 사이도 떨어지게 되었다. 

박쥐떼들의 공격을 피해 헛간에 숨어있던 지루한과 의사는 지진으로 집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자 그 곳을 빠져나와 다른 일행을 찾고 있었다. 그때 그들의 눈에 보르한이 누군가를 어깨에 들쳐 매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도박사를 땅에 내려놓으며 두 사람에게 그를 부탁하고는 어디론가 급하게 가버렸다. 도박사의 눈동자가 풀린 것이 정신이 약간 나간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제 정신이 아닌건 확실했다.  의사는 도박사를 살펴보더니 환각상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서 여길 빠져 나갑시다”

의사와 지루한은 그를 양쪽에서 부축해서 데리고 갔다.

사기군과 금반지가 서 있는 땅의 틈은 빠르게 벌어지고 있었다.  금반지가 겁에 질러 꼼작도 못하자 사기군은 그녀가 서 있는 곳으로 옮겨가기 위해 있는 힘껏 뛰었다.  순간 그가 뛰어 내린 발밑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며 그는 벼랑에 매달린 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그를 끌어올리기 위해 그의 손을 잡고 힘껏 당겼지만 그녀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그의 손을 잡고 있던 그녀의 몸도 낭떠러지 쪽으로 딸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팔이 떨리며 손엔 힘이 점점 빠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서 그의 한손이 빠져 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듯 비장한 눈으로 그녀에게 손을 놓으라고 했지만 그녀는 도저히 그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다시 땅이 흔들리더니 갈라져 있던 땅이 간격을 좁혀 오고 있었다.  안간힘을 쓰며 그를 붙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서 그의 손이 자꾸 미끄러져 나가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미안해요 더 이상 당신을 붙잡을 힘이 없어요.  놓으면 안 되는데...어떻하죠]

그 순간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그의 남은 손을 잡아주었다. 그 믿음직한 손에 의해 그의 몸은 위로 당겨 올려졌다.  땅이 맞붙으려는 순간 그의 몸도 함께 빠져나왔다.  사기군은 다시만난 보르한을 보곤 고마움과 반가움으로 어쩔 줄 몰랐다.  특히 금반지는 사기군의 목숨을 구한 기쁨과 다시 볼 수 없을거라 생각한 그를 만난 놀라움, 지금까지의 고생 이런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올라 자기도 모르게 이제껏 참았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얼른 눈물을 훔쳤다. 

“또 한번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시네요.  뭐라고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사기군이 보르한에게 손을 내밀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는 사이 멀리서 다른 일행들이 박쥐떼에 쫓겨 그들 쪽으로 도망쳐 오고 있었다.  도박사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이제껏 죽었다고 생각한 도박사가 살아있는 것을 본 금반지와 사기군은 믿기지 않는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어쨌든 그가 살아 있다는게 정말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보르한은 금반지와 사기군에게 몸을 피할 것을 당부하고 박쥐떼에게 쭃겨 도망쳐 오고 있는 그들을 돕기 위해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본 사기군이 비장한 각오를 한 사람처럼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하곤 바로 보르한의 뒤를 따랐다.   생각도 못한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잠시 어리둥절해 하고 서 있자 의사가 그녀의 손목을 끌며 재촉했다. 그들은 보르한과 사기군을 뒤로하고 앞을 향해 무조건 달렸다.  금반지는 두 사람이 걱정이 되어 순간순간 뒤를 돌아보며 달렸다. 

도망가던 그들의 눈이 점차 커지며 얼굴엔 긴장감이 돌았다.   전방 200미터쯤에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격전을 벌이고 있는 그들을 향해 빨리오라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지만 계속되는 박쥐들의 공격으로 그들의 걸음은 늦어지고 있었다.  먼저 엘리베이터에 도착한 세 사람은 그들이 무사히 어서 오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그리 멀지 않는 그들과의 거리가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는 점점 흐릿해지며 사라지고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자 가슴 졸이던 금반지가 간절히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정말 피를 졸이는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의 바램이 하늘에 닿았는지 숨가쁘게 뛰어오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저기 와요 지금오고 있어요”

반가움에 들뜬 지루한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에 들려왔다. 그녀는 얼른 눈을 떠 긴장된 모습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기군과 도박사의 모습만 보일 뿐 보르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자 반가운 마음 뒤로 그를 홀로 남겨 두고 온 두 사람이 너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보르한에게 자기의 목소리가 전해지길 바라며 소리쳤다.

“제발 빨리 와요”

자기들을 향해 소리치는 금반지를 본 사기군은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다.  사기군이 먼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뒤에 따라오던 도박사가 뒤따라온 박쥐의 공격으로 쓰러지더니 다시 일어나 뛰었다. 이제 엘리베이터 문은 반쯤 닫혀가고 있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도박사는 몸의반이  엘리베이터에 끼인채 다른 시간 속으로 이동했다.   결국 오지 못한 보르한만을 남겨둔 채 떠나는 일행은 자기들의 비겁함과 미안함으로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금반지는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을 느꼈다. 

그들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어딘가에 멈추더니 문이 천천히 시작했다. 조금 열린 문 틈으로  익숙한 꽃향기가 스며 들어왔다.   주위를 살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일행은 넓게 피어 있는 하얀 국화꽃밭을 보곤 그 아름다움과 향기에 취했다.  문뜩 이곳에 오기 전 관을 끌고 가던 여인들이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국화꽃이 피어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가던 그들은 어떤 작은 성당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는 성당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이고 들어갔다.  그 곳에는 검은 망토를 입은 여인들이 모여 죽은 사람을 위해 의식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의식이 점점 궁금해진 금반지는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망토를 걸친 여인들이 검은 관을 열었다.  사기군은 그녀가 혹시나 그들의 의식을 방해할까봐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놀란 금반지가 뒤로 돌아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사기군은 관 속의 하얀 드레스를 입고 편히 잠든 아름답고 숭고한 여인을 보고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왜 그래요?”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사기군은 당황해 하며 얼른 그녀의 손을 끌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도무지 어떻게 된 건지 머릿속이 혼란해진 사기군은  그 이후에도 그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말 금반지일까?  아냐 내가 잘 못 본 걸 수도 있어.  그녀와 닮은 사람일지도 몰라]

그들이 성당을 나가자 다른 일행도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그곳을 빠져 나왔다.  지친 그들은 일단 쉴 수 있는 곳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평소 말 많던 사기군이 성당을 나온 뒤론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처럼 멍하니 한마디 말이 없었다.  금반지와 다른 일행은 사기군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참을 걷다보니 푸른 들판이 펼쳐진 곳이 나왔다.  길가에는 곧게 잘 뻗은 가로수와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여기저기 피어있는 이름모를 꽃들은 시원한 바람에 살랑이며 그들을 반겨 주는것 같았다.  모처럼 맞는 평화로운 풍경에 기분이 좋아진 지루한은 혼자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는 허기진 그들의 배를 더욱 고프게 했다. 

“아 배고프다 너무 배고파서 쇠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애”

금반지는 뱃가죽이 등에 딱 들어붙은 것 같았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 보면 이 근처에 집이 있다는 얘긴데..”

지루한의 말이 떨어지기도 무섭게 그녀는 제일 앞에 앞장서 걷고 있었다.  강하게 코를 자극해 오는 고소한 냄새는 어떤 유혹 보다고 더 감미로웠다.  그들은 곧 아담한 집 한 채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집 앞에 다다른 금반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행동을 의아하게생각한 사기군은 그녀의 시선이 꽂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저.. 저건 혹시”

옆에 서 있던 그도 놀라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왜 그래요?”

그 뒤에 도착한 지루한과 일행도 그 곳을 바라보았다.

“아니 저 차는...혹시”
“맞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자기의 생각과 같음을 확인했다.  울타리 넘어 군데군데 부서지고 찌그러진 상처가 있는 검은 차가 세워져 있었다.  의사가 달려가 얼른 그 집 문을 벌컥 열어 젖혔다.

“보르한씨?”

그는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러 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의사와 일행은 일단 집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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