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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 ㅣ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5
박민아.선유정.정원 지음 / 한국문학사 / 2015년 9월
평점 :
오랫동안 자신의 분야에만 빠져 있다 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의 복잡성을 놓치고 근시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그치고 마는 사례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20쪽)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는 '융합과 통섭의 지식콘서트'의 다섯 번째 시리즈이다. 책은 예술, 역사, 철학 등 타 분야와 긴밀히 연결된 과학을 알기 쉽게 소개해준다. 마치 강의하듯 사진을 곁들여 차근차근 설명해주어 상식이 없어도 따라가기 버겁지 않았다.
특히 첫 챕터 '과학을 알아야 융합이 보인다'를 통해 과학은 엘리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단순히 학문적으로 다뤘다면 완독하기 힘들었겠지만 '과학은 과학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깨뜨리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여 재미있었다. 지난번 읽은 <쥬라기 공원의 과학>처럼 일반인도 지적유희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책은 과학을 다섯 가지 주제(예술, 사회, 역사, 전쟁, 철학)와 맞물려 소개하는데 가끔 두세 가지가 더 섞이기도 하고 모두 뒤범벅되기도 한다. 즉 과학이 순수하게 과학으로서만 발현되는 경우는 적었다. 연구의 시작에서부터 보고까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릴레오가 재정 때문에 후원자가 원하는 주제를 연구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연구결과를 곧이곧대로 발표하지 않고 독자의 수준에 맞게 취급하여 대중화하였다. 과학사학자 시코드가 제시한 개념 '운송 중인 지식'인 셈이다.
오늘날에도 과학자는 온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현미경만 바라보는 직업이 아니다. 연구비를 얻기 위해 설득하고 대가로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얼마나 클까. 오로지 연구에 몰두할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까웠다.
한편 책은 중세과학과 근대과학을 비교하며 당대 주요 인물은 누구이고, 각 이론의 큰 특징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또 별개라고 생각한 종교나 정치가 과학의 발전 및 전파에 미우나 고우나 의외의 역할을 한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강희제의 중국기원론과 세종대왕의 천문학이 재미있었다. 아, 셜록 홈즈 소설에 당대 유용했던 골상학이 적용되었다는 사실도 재미있었다. 또 증기기관이 도입되면서 공장이 많아지고 이에따라 노동자들이 몰리면서 계급의식이 생기는 과정도 흥미진진했다.
그냥 배웠다면 지루했을 내용인데, 읽다보니 내가 과학책을 읽는 건지 역사책을 읽는지 헷갈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과학책이든 역사책이든간에 그거만 고대로 설명한 책보다 훨씬 재미있다.
빗자루를 들었을 때는 눈에 보이는 오염물질의 제거가 청소의 최종 목적이었다면,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면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진딧물과 같은 해충의 제거까지 청소의 범주에 들어온 것이다.(127쪽)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다. 철학적으로 들리지만 정말 유쾌하게 들린다. 가사일을 돕는다는 청소제품이 여성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과하다니, 웃음이 나온다. 얼마나 맞는 말인가! 요새 '99퍼센트 살균 어쩌고'라는 광고 문구가 많은데, 신기한 건 주변이 청결해질수록 우리네 면역력은 약해지는 것 같다.
한편 전쟁편에서는 과학이 반인륜적으로 이용되어 무서웠다. 뜻밖의 실험결과의 어마어마한 파급력과 731부대의 잔혹무도함은 어디까지 과학을 과학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고 그저 끔찍했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 <인터스텔라>에 반영된 웜홀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나 같은 무지렁이도 알기 쉽게 풀어줘서 좋았다. 처음엔 이런 이론을 몰라도 영상 자체의 경이로움과 신비함에 감격하여 소장까지 한 작품인데 이제는 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감상할 수 있겠다.
정말 과학 외 다양한 지식도 배우고 이런 저런 개인적인 오해를 불식시키는데 도움을 준 책이다. 생각보다 읽기를 잘한 책이고, '융합과 통섭의 지식콘서트'의 다른 시리즈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