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설의 계보학 - 탐정은 왜 귀족적인 백인남성인가
계정민 지음 / 소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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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의 계보학>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추리소설을 읽는 정당성, 일종의 방어막을 갖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추리소설이 그런 건 아니지만 '범죄(특히 살인)'가 결부된게 보통이라는 그 사소한 특징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훈 없는 오락소설'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그런 변명거리보다 범죄소설만의 독자적 가치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영미권 범죄소설의 등장인물과 줄거리로부터 당대 사회상(인종, 젠더 등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반영되고 변천해왔는지 인기소설의 텍스트를 통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덕분에 예전에는 무심히 스킵한 것들을 알아서 재미있었다. 단순히 천재 캐릭터라고 본 셜록홈즈나 미스 마플의 이면(?)을 알아서 너무 흥미로웠다. 덕분에 생각도 많아졌지만...나는 주로 일본추리소설만 읽어서 이 책이 영미권 범죄소설을 다루고 있단 점이 아쉬웠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나라만 다를 뿐이지 여기나 거기나 사람 사는 동네기 때문이다. 따분히 구분지을 필요는 없다. 어쨋거나 이 책은 추리소설을 대하는 내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호기심은 디저트였다.
어떤 호기심이냐면, 책은 19,20세기 영미권 범죄소설의 변천사를 설명해주지만 이후 범람한 범죄소설은 어떤 카테고리에 분류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분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해서일까. 뉴게이트소설, 추리소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 속하지 않은 '예외' 범죄소설은 존재하지 않았는지, 있다면 그건 어떻게 보면 좋은지 궁금했다. 21세기 전 범죄소설에서 탐정(해결자)가 주가 되어 독자의 범인과의 동질감을 최소화하고 당대 사회상을 반영했다면, 그 이후 범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사회문제로부터 탈피한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을 어떻게 보면 되는지 궁금했다.
뭐, 그런 명칭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추리소설로 부르기 싫어서다. 탐정의 인종, 성별, 연령, 직업이 버라이어티하게 변한 현대에 대한 의견은 적어서 아쉬웠다. 이 역시 여성의 사회진출, 약자나 외국인에 대한 가치관 변화, 인류의 성숙으로 보면 될까? 그렇다면 미래의 추리소설은 어떠할까. 정말 끝없이 궁금했다. 정답은 없는 질문만 무한 반복하는 나였다.
중학생 때 애거시 크리스티의 작품을 계기로 추리소설에 빠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건의 실마리나 범인 탐색에만 몰두했지 왜 하필 탐정이 '노처녀'일까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노화로 인한 무성성'이란 말이 너무 공감되고 웃겨서 뇌리에 박혔다. 동시에 그렇지 않은 여성탐정을 써준 작가님을 찾아보고 싶은 열정도 타올랐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왜 애거시 크리스티는 노처녀 탐정을 주인공으로 앞세웠는지 궁금했다. 굳이 경제력 있고 당찬 노처녀 캐릭터로 설정할 바에 차라리 처음부터 젊고 매력적인 남자 탐정을 고르지 않았는가다. 왜냐하면 애거시 크리스티는 여성 참정권 등 당시 여성의 사회적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오히려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스 마플이란 캐릭터를 창조한 데는 어떤 의중이 내포된게 아닐까 너무 궁금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영미권 범죄소설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지 오래였다. (나만의 편견이지만) 일본추리소설보다 텍스트가 루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문득, 정말 나의 취향과는 어울리지 않게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사건>부터 역사순으로 범죄소설을 읽어보면서 이 책이 말하는 바와 비교해보고 싶었다. 계급간 갈등이나 외국인 범죄자에 대한 표현, 여성탐정들의 사건 해결 후 어떤 귀로를 걷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달까. 마치 그동안 읽은 추리소설에게 속았다는 기분도 들었다. 사실 텍스트가 전부가 아니야. 탐정과 범인의 배역을 결정한 이유가 생각할수록 재미있었다.
한편 이 책을 읽고 범죄소설을 읽어도 되는 정당성을 얻었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 하겠다. 그런 질문의 해답을 주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저런 사회적 문제점이나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야, 라는 그럴듯한 대답은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진부하고 속보여서 못하겠다. '그래서 범인은 누구야?'라는 일차원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추리소설의 안밖을 풍부하게 음미할 수 있도록 자극해 준 재미있는 지침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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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조 2018-04-22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소나무 출판사 영업 담당자 유현조입니다. 우선 이렇게 정성스러운 서평에 감사드리며, 소나무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님의 서평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간되신다면 저희 블로그에도 놀러오세요~https://blog.naver.com/sonamoopu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