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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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다크》는 책에 대한 이렇다 할 정보없이 많이 알려졌다는 이유로 읽은 책이다. 별다른 생각없이, 그저 어떤 결과일까라는 생각으로 펼쳤다. 어휘력이 부족한 내가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애프터 다크》는 확실히 실험적인 작품이다. 작중인물이 여러 명 등장할 때보다 오로지 혼자 남을 때 독자에게 '관찰'을 당하는 느낌이 강하다.

우리의 시점은 가공의 카메라로서 방 안에 있는 그런 사물을 하나씩 포착해 시간을 들여 꼼꼼히 비춘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침입자다. 우리는 본다. 귀 기울여 듣는다. 냄새를 맡는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그곳에 존재하지 않고, 흔적을 남기지도 않는다.

독자를 이미  '우리'라고 아우른 '존재'는 시점을 직접적으로 설정하여 '우리'가 명백히 관찰자의 입장에 서 있도록 하였다. 마치 CCTV의 렌즈처럼 작중인물 모르게 관찰하는 모습은 언뜻 자유로워보였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존재'가 세팅한 화면을 의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한편 사전에는 수록되어 있지만 흔히 접하지 않는 어휘를 동반하여, '순간'을 활자로 용케 기록하였다. 특히 아시이 에리가 꼼짝않고 자는 모습에도, 미묘한 움직임을 포착하여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잠을 자는 에리가 플러그가 빠진 채 특정화면을 송출하는 텔레비전으로 공간이동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고민했다. 그곳은 마치 세상과 격리된 버려진 장소처럼 보였다.

그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는 순간 또다른 작중인물들의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인텔리하지만 건조한 느낌을 주는 마리, 멀쩡해보이지만 이중생활을 하는 시라카와, 위로가 필요했던 러브호텔 직원들, 취업을 위해 밴드를 떠나기로 한 트롬본 연주자까지.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본심 내지 진심을 숨긴 채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에리 역시 그러했고, 선택은 잠이었다.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 삶을 사느니 의식을 놓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러고보면 나도 스트레스를 잠으로 푼다. 자는 동안에는 생각을 멈출 수 있고 망각으로 인해 조금씩 잊혀질테니깐. 에리가 어떤 이유로 잠을 자든, 알게 모르게 공감이 갔다.

그러고보면 텔레비전 속 화면은 그런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가는 곳 같다. 사실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어거지로 해석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난 그런 곳 같다고 내멋대로 단정지을란다. 어쩌면 그 곳에는 여기 현실에 있는 것과 똑같은 나의 소지품이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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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1-1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84를 읽었는데, 하루키가 1Q84 쓸 때 영감을 받았다해서 더 열심히 봤어요. 하루키가 맨날 카라마조프 형제 이름 다 외우는 걸 책속에서 자랑해서 그것도 보려해요 ㅎㅎㅎ
이 책은 못 봐서 슬쩍 담아봅니다~

하루감정 2016-01-12 23:14   좋아요 1 | URL
ㅎㅎ 책속의 책을 찾아있는건 정말 멋진거 같아요. 그만큼 새로운 책을 읽을 시간을 소모하지만 특별한 감정을 느낄거 같아요. 어려운 책은 기피하는 편이지만 초딩님이 말씀하신 책을 하나하나 시간을 들여 읽어보고 싶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