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즘 - 섹시, 맵시, 페티시 속에 담긴 인류의 뒷이야기
헤더 라드케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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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엉덩이를 바라보며

─헤더 라드케의 『엉덩이즘』을 읽고

나는 내 엉덩이를 똑바로 볼 수 없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당신의 엉덩이를 똑바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있어 엉덩이는 낯선 신체 부위이다. 그리고 이는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뒤에 달린 이 엉덩이 안에는 성적인 역사와 더불어 누군가의 수치와 유산, 상징과 혐오의 시선이 내포되어 있다. 헤더 라드케의 『엉덩이즘』은 그러한 '있는 그대로의 엉덩이'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하나의 보고서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일종의 담론서이다.



"우리 몸은 타고나길 통제에 저한다."

헤더 라드케, 『엉덩이즘』

헤더 라드케의 『엉덩이즘』에는 엉덩이에 의한, 엉덩이에 관한, 엉덩이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응축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몸(그중에서도 엉덩이)에 대한 고찰을 이어나갔다. 그러자 문득 놀라웠고, 또 한편으로 충격적이었다. '몸'은 "사람의 형상을 이루는 전체"를 뜻한다. 내 형상을 이루는 전체에 대해서 여태껏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니. 어쩌면 나는 나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엉덩이는 어쨌거나 자기 모습을 그대로 지켜낼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 몸을 억지로 복종시키려 할 때,

의미를 부여하고 형태와 외양을 바꾸고 변화를 일으키려 시도할 때, 인간의 몸은 고집스럽게 굴복을 거부한다.

헤더 라드케, 『엉덩이즘』

"전 인류의 엉덩이를 조준하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한데 모여있는 헤더 라드케의 『엉덩이즘』은 엉덩이가 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말을 다 해냈다.

이제는 나 또한 묻고 싶다.

"누구한테나 있는 것인데, 왜 이렇게 난리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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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을 걷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1
김솔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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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을 걷는 자의 윤리

─김솔의 『행간을 걷다』를 읽고

"누군가가 책에게 말을 걸 때만

비로소 책은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이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고

위대한 책들만 질문에 반응을 하는데,

그 방법은 찰나의 영감과 영원한 침묵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문자에 담기지 않고 여백에 담기기 때문이다.

책만큼이나 위대한 영혼을 소유한 자들만

책의 침묵을 듣고 이전 세대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

김솔, 「말하지 않는 책」 中

소설에 쓰인 문장과 문단, 즉 모든 문자가 '책의 음성'이라면, (김솔이 말했듯이) 여백은 '책의 침묵'일 것이다. "진리는 문자에 담기지 않고 여백에 담"긴다는 그의 말에 따르면 간혹, 아니 자주 책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는 대다수의 독법은 대단히 잘못된 방식인 셈이다. 그러니 우리는 침묵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이 문장은 곧 여백을 거닐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김솔의 『행간을 걷다』에는 두 개의 자아를 지닌 화자가 등장한다. 금고 제작자로 살아온 주인공 '나'는 뇌졸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에 마비된 한 쪽 몸과 온전한 몸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간다. 온전한 쪽인 '나'는 마비된 쪽에 '너'에게 '쉥거'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이어나간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하천을 따라 걷고 인간 세상의 욕망을 들춰 보며, 물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이어진 천변을 바라봄으로써 죽음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누어진 자신의 자아를 투영한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그에게는 "밤은 밤으로, 침묵은 침묵으로, 열기는 열기로, 빛은 빛으로, 허기는 허기로, 무위는 무위로, 꿈은 꿈으로, 공포는 공포로, 그리고 갈증은 갈증으로 이어지는 날이 계속"(188-189쪽) 될 뿐이다.


따라서 김솔의 『행간을 걷다』를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여백을 걷는 자의 윤리'를 열렬히도 파헤친 소설이라고. 단지 연명한다는 이유로 불안과 반복, 번뇌 속에서 고통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여백을 걷는 자의 행보를 충실히도 추적한 소설이라고. '책의 침묵'이라 일컬어지는 작품 속 여백을 통해 진리를 탐색하기 위한 시도를 기어이 이어나간 소설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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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 : 옥구슬 민나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 3
김여름 외 지음, 김다솔 해설 / 열림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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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으로 흩어져 사방이 되는 이야기들

─『림: 옥구슬 민나』를 읽고

1. 김여름의 「공중산책」


소설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의 장례미사가 있는 날이다."

김여름, 「공중산책」

그리고,

소설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먼 곳에서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그럼 나는 비로소, 완전히.

투명해진다."

김여름, 「공중산책」

처음과 끝의 간격을 가늠해본다. 삶과 죽음의 거리를.

귀신의 모습을 하고 '공중산책'을 이어나가는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안쓰러운 존재였다. 인간은 매 순간 안쓰러웠다. 어쩌면 인간을 잘 아는 자는 인간이 아닌 자일지도 몰랐다."

소설을 읽고 나니 문득 '공중산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귀신이 되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 공중달리기도 해보고 싶고, 공중수면, 공중독서, 공중식사도 해보고 싶다. 투명해져야만 가능할까.

그런데,

비로소, 완전히, 투명해진 사람의 마음은 온전할 수 있을까. 죽어야만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처음과 끝의 간격을 가늠해 볼 필요가 없을 때. 삶과 죽음의 거리를 계산해 보지 않아도 괜찮을 때. 그때는 '공중산책'을 할 수 있을까.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것만 같다.


2. 라유경의 「블러링」

소설의 제목인 '블러링'은 '흐려짐, 흔들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흐려지고, 무엇이 흔들린다는 뜻일까.

"언니의 몸이 기억나지 않는다."

라유경, 「블러링」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한 '나'는 '언니'의 몸을 기억하지 못한다. 언니가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언니의 몸이 "촛농이 불에 녹듯 앉아 있는 자세 그대로 액체로 녹아 원목 의자에 흘러내렸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녹아내린 언니를, 그러니까 흘러내리는 액체를 텀블러에 담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어디를 가더라도 언니와 함께 구입한 그 텀블러를, 녹아내린 언니가 담겨 있는 그 텀블러를 항상 챙겨 다니기 시작했고.

소설 속 '나'는 인터넷 로드뷰 사진 중에 문제가 될 만한 장소나 이미지를 골라 '블러링' 처리하는 일을 한다. 다시 말해 흐려지고, 흔들리게 하는 일을. 흐려지고, 흔들리는 언니를 텀블러 속에 담고 다니면서.

생각한다.

"만약 로드뷰에 찍힌 나를 발견한다면 블러링 처리할 필요 없이 뒷모습이기를 바랐다."

라유경, 「블러링」


3. 서고운의 「정글의 이름은 토베이」

『림: 옥구슬 민나』를 읽으면서 좋았던 것 중에 하나는 '작가 노트'가 함께 실려있었다는 점이다. 서고운 작가의 '작가 노트'에는 이런 문장들이 적혀 있다.

"그러니까, 그럴 때가 있는 것이다. 그냥 비행기를 타고 싶을 때. 비가 많이 오는 날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마시멜로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그러나 마음은 마음일 뿐. 현실은 언제나 끈덕져서 발을 떼기가 쉽지 않다. 올여름도 여느 때와 비슷하다. 비슷한 속에서 풀이 자란다. 계속 자란다. 나는 풀을 베기보단 그 옆에 또 심기를 선택한다. 씨앗을 심고 물을 준다. 그럼 무엇이든 자라나니까."

서고운, 「정글의 이름은 토베이」

'작가 노트'를 읽고 난 뒤에 나는 생각했다. 이 소설은 '언제나 끈덕져서 발을 떼기가 쉽지 않은 현실'과 같은 작품이라고. 그러니 화자인 '순지'에게 "왜 나의 지구는 맨날 망할까'라는 궁금증이 피어오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현실은 결국 우리 발밑에 있는 것이라고.


4. 성혜령의 「대체 근무」

성혜령의 「대체 근무」를 읽고 생각했다. 관계에 균열을 내는 행위가 '너'라는 한 사람의 세계를 무너트리는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또 하나.

생각보다 우리 삶이 '관계'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과 '관계' 안에 놓여있는 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주름이 매끄럽게 정돈된 삶. 보풀이 인 옷은 버리고 새 옷을 살 수 있는 삶. 단강도 그런 사람들처럼 보이고 싶었다. 단기 계약직이라도, 당분간은, 그런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전임자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잠시 착각할 수 있었다."

성혜령, 「대체 근무」

(다른 것으로 대신한다는 뜻의) '대체'란 단어는 왜인지 정이 잘 붙질 않는다. 도대체 언제쯤 누군가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미묘한 인물들의 관계와 마음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소설이다.


5. 예소연의 「통신광장」

소설은 1997년 개봉한 장윤현 감독의 영화 <접속>을 모티프로 삼는다. 영화처럼 '통신광장'에서 만난 두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은 우연한 접촉, 혹은 접속이 새롭게 태어난 질서의 향방을 결정하는 데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섬세하게 그려낸다.

광장에선 어디로 가든 나가는 방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소연, 「통신광장」

예소연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쓰고 보니 정말 우리가 불규칙한 회로를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간신히 서로를 더듬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소설을 읽고 보니 정말 그렇게 느껴졌고, 그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기묘했다.

문득 광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로 가든 나가는 방향"인 곳에.


6. 현호정의 「옥구슬 민나」

현호정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건 무엇보다 형식. 소설의 형식을 크게 따지지 않는 편인데도 형식에 놀라고, 내용에 한 번 더 놀란다.

우주를 만드는 것이 그에게 무슨 득이 되는가─

그를 만드는 우주가 득에게 무엇이 되는가─

득을 만드는 그는 무슨 우주가 되는가─

우주가 된 그는 무엇을 만드는가─

<득>

현호정, 「옥구슬 민나」

신화적인 요소를 활용해서 그런지 몰라도 마치 창세기의 실사판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소설.

명확한 답은 (할 수가) 없고 사유가 깃든 질문만 남는 소설.

그래서,

곱씹어 보게 되는 소설. 새롭게, 다시금 소설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현호정 작가는 그런 소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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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좋은 사람 - 누구에게나 하루 한 송이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에이미 메릭 지음, 송예슬 옮김 / 윌북아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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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새로운 감각을 선사하는 한 송이의 아름다움

─에이미 메릭의 『꽃이 좋은 사람』을 읽고

'아름답다'라는 건 도대체 뭘까. (사전에 나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라는 뜻일까? 정말 단지 그뿐일까?

언젠가 '미감'이라는 단어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 혹은 아름다운 느낌"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나는 세상이 온통 아름다운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작 '아름답다'라는 게 뭔지도 잘 모르는 채로.

그랬던 내게 '아름답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한 책이 찾아왔다. 근래에 읽은 에이미 메릭의 『꽃이 좋은 사람』은 '일상에 새로운 감각을 선사하는 한 송이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책이다. 더도 말고, 다만 한 송이의 아름다움을.





처음 접해본 '플라워 아트북'.

무엇보다 책을 이루는 '이미지'가 가슴 깊이 와닿았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만 자연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일상의 곳곳에서 자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꽃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

더더욱.

꽃은 그 자체로 어떠한 은유나 상징보다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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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지음, 황유원 옮김 / 읻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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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의 패터슨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패터슨』을 읽고

"저는 저의 주인공을 패터슨 씨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시 전체에 걸쳐서 패터슨에 대해 말할 때,

저는 패터슨이라는 남자와 도시를 동시에 말하고 있는 거예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패터슨이 있다. 패터슨에 패터슨이 있다. 패터슨의 패터슨도 있다. 말장난을 하려는 게 아니다. 패터슨과 패터슨의 일정한 상호 작용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패터슨이 있다.

어느 여름, 짐 자무쉬의 영화 <패터슨>을 감명 깊게 봤다. 패터슨 시에 사는 버스 기사 패터슨의 일상을 다룬 영화였다.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그저 그런 음식을 차려먹고 출근길에 오르는 패터슨. 그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면 틈틈이 시를 쓴다는 것. 그가 보여주는 평화로운 일상의 경과를 지켜보며 '시'라는 것의 무용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즉흥적인 일이었고 그 자체로 무용함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몹시 애써야 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시인의 업무를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이하 윌리엄스)의 말은 타당하다.


그럼 다시. 윌리엄스의 『패터슨』은 어떠한가. 『패터슨』은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무려 13년에 걸쳐 총 다섯 권으로 출간된 서사시"(328쪽)이다. 그 규모나 형식 자체만으로도 독자를 압도하기에 충분한데, 무엇보다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윌리엄스가 구어를 자유롭게 활용하여 리듬과 이미지를 창출하는 '이미지즘'의 선구자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여기, 시가 있다. 일상이 있고, 언어가 있다.

누구보다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이 시인의 '자세'라면, 시가 있는 곳, 다시 말해 일상이 있는 곳이 곧 시인의 '자리'일 것이다. 윌리엄스의 『패터슨』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를 이 말을 열렬히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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