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열두 세계 포션 6
이산화 지음 / 읻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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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세계들의 변형과 확장

─이산화의 『전혀 다른 열두 세계』를 읽고

팬데믹을 지나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세계관'이라는 말이 새롭게 부상했다. 이제는 신선하고 매력적인 세계관 하나가 여러 갈래로 뻗어 다양한 형태로 대중들과 접촉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출판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장르적인 특색이 강한 SF/판타지 소설 분야에 있어서 '세계관'은 작품의 뼈대가 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므로 이산화의 『전혀 다른 열두 세계』를 논하는 데에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요즘에는 '세계관'이라는 말이 대개 작품을 이루는 시공간적 배경을 뜻하는 용어로 쓰이는데, '세계관'에서 '관'이 볼 관(觀) 자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나는 그 말을 '작품 속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까 작가에 의해 창조된 작품 속 세계가 있으면 그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 혹은 독자의 시선이 곧 '세계관'이라는 말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하나의 세계관에서 보다 다양한 해석이 파생될 수 있기에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으며 지금도 작가들이 만들어낸 작품 속 세계를 나만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려 한다.




이산화의 초단편소설집 『전혀 다른 열두 세계』에서는 작가의 세계'관'(觀)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전혀 다른 열두 세계'를 그리고 있는 열두 편의 짧은 이야기는 저마다 고유한 (시공간적 배경으로서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작품을 따라 읽다 보면 문득 '또 어떤 다른 세계가 가능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겨난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즈음 나는 ('작가의 말'이라는 탈을 쓰고) 각각의 작품을 해설하고 있는 「열세 번째」를 읽고 있었는데, 얼마 못 가서 교묘하게 설치해둔 작가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름 아닌 마지막 이야기에서 다음 세계를 상상하는 일이 나의(독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었으니까.




이제는 이 책을 통해 작품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세계'관'(觀)이 전혀 다른 세계들의 변형과 확장으로 이어질 차례이다. 이산화가 그려낸 '전혀 다른 열두 세계'의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가 소설 속 세계에서만큼은 무한히 펼쳐지듯이, 우리의 시선 또한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그리하여 또 다른 세계의 문을 마주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열어젖힐 수 있는 용기가 지금─여기에, 내게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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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의 오리무중 트리플 23
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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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일을 마주할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역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내게는 그 말이 새로운 가능성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을 가만히 곱씹다 보면 불가해한 일련의 사건들조차 다시 한번 고민해 보게 된다.

또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먼저 적어놓고 나면 그 뒤에 따라오는 문장은 대개 희망적으로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연대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찾아왔던 것 같다.

박지영의 소설집 『테레사의 오리무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 너머의 무엇이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아도 희극적인 사건 안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의 비애만큼은 기어코 독자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역에 머무르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소설 속 인물들을 일컬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대신, 복잡성을 가진 상태 그 자체로 한계를 일임하면서도 아주 본원적인 연대의 가치를 놓지 않는다"라는 선우은실의 해설과도 맞닿아 있는데, 그 때문인지 나는 박지영의 소설을 접하는 동안 여러 번 내가 찾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다수와 소수가 뒤집히며 옳고 그름의 자리가 순식간에 반전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나 매번 성 테레사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결책은 간단했다. 자아를 집에 두고 출근하면 된다."

「테레사의 오리무중」 中



성당 부속 센터에서 일하는 주인공, 테레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첫 번째 소설 「테레사의 오리무중」은 일명 '자아 분리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함께 일하는 중간 관리자 주경과의 일화를 통해 테레사는 자신이 자아를 분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러 개의 자아와 함께 살아간다. 자아를 분리하여 꿈을 이루고자 하지만 막상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주경에게 돈을 빌려 도망쳐 버린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나의 자아란 왜 이토록 유사하고 이토록 빈약한가"라고 말하는 테레사의 고백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두 번째 소설 「올드 레이디 버드」는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 유일한 미발표작이다. '영우'라는 인물과 '정'이라는 인물의 미묘한 관계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고양이'라는 매개를 통해 두 사람의 시선과 그에 따른 차이를 드러낸다.

정은 영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알잖아요? 진짜 어려운 건 누구도 다치지 않는 타협이라는걸." 영우는 생각한다. 자신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아버지 독고 씨의 죽음(장례식)을 사업화하여 판매한다는 기발한 설정이 바탕에 깔려있는 세 번째 소설 「장례 세일」은 그의 장남인 현수가 벌이는 일종의 '노동 소설'이다. '세일즈맨'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수는 장례식장에서 일하면서 직원 가족이 상을 치르게 되면 30%를 할인해 주는 혜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가 할인 혜택이 끝나기 전에 자신이 일하고 있는 장례식장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급기야 현수는 아버지의 지인들에게 감사 메시지를 거짓으로 꾸며 보내기에 이르고, 얼마 뒤 아버지 독고 씨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자 메시지를 받은 많은 이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온다. '죽음 세일즈' 그게 바로 현수가 원했던 것이다.

우스우면서도 서글픈 세 편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앞서 말했던 이상한 가능성의 너머를 가늠해 보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다름 아닌 구원과 연대의 가능성이지 않을까. 박지영의 인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저마다 지니고 있는 삶의 지향점과 그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니까. 가능성의 지표를 되짚어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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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뇌 변호사 NEON SIGN 3
신조하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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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심'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가, 그러니까 인간이 정의 내리는 것은 웃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이보그라면, 인간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계, 안드로이드라면 어떨까.

여기 실리콘 뇌를 이식받은 사이보그가 있다. '무뇌 변호사'라 불리는 그는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사건을 파헤치고 상대의 의중을 헤아린다. 그러나 그의 삶은 순탄치 않다. 부당한 억압 속에서 버려지고 폐기되며 무력하게 살아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명령을 따라서. 인간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인간 같지 않아서. 지나치게 인간 같아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과 같은 기계들의 죄를 "변호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같은 생존 욕구를 감각하지 못하므로. 그들을 창조해낸 우리가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우월한 존재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때, 그 순종이 완벽할 때 닥칠 위험을. 설마 기계를 고양이같이 길들이려고 했던 걸까?

p. 164




신조하의 장편소설 『무뇌 변호사』는 한 인간을 지켜나가는 안드로이드의 이야기( 「피 흘리지 않는 제물」)와 주인과 한 몸이 되어버린 로봇의 이야기( 「복종하는 뇌」), 딸과 함께 성장하면서 사랑이라는 감각을 깨우친 인물의 이야기(「기억과 유전자의 밤」)가 한데 모여있는 집합체이다. 책 속에서 기계의 반란은 인간을 덜 인간답게 만들고, 인간의 발악은 기계를 더 기계답게 만든다. 그런데,

나는 문득 그런 것이 궁금하다. 정말 '책 속에서'만 그러는 것일까?

신조하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기적이고 욕심은 많지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어서 기계로부터나마 사랑을 갈구하는 그런 존재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처음으로 돌아가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에 대한 답을 해볼 수 있을 듯하다. 자기 안의 사랑이 부족할 때, 그때 인간의 이기심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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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라, 공! - 각자의 방식으로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1
박하령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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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것 중 하나가 '계획 세우기'이다. 정확히 말하면 계획보다는 다짐에 가까운데, 특별한 건 없고 가령 이런 것들이다.

─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 (선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말하지 않기

─ 함부로 위로나 충고, 혹은 조언하지 않기

─ 손톱 물어뜯지 않기

─ 시간 약속 잘 지키기

─ 모두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지만,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처럼 보이는데도 나는 (생각보다 자주) 이 계획들을 지키지 못한다. 왜 그러는 것일까?

얼마 전에 읽은 박하령의 소설 『굴러라, 공!』은 하나의 사건(자전거 도난 사건)을 바라보는 다섯 개의 목소리가 연작 형태로 얽혀있다. 십 대들의 솔직한 내면을 여러 시선에서 파헤친 이 소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시시때때로 급변하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때로는 센티멘털하게, 또 때로는 시니컬한 태도로 지적인 면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하윤은 같은 반 남학생 주홍모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다. 주홍모가 여학생들의 외모를 가지고 인기투표를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윤은 CCTV를 피해 홍모의 자전거 걸쇠를 푸는 것으로 간접적인 경고를 대신하는데, 다음 날 학교에 가보니 홍모의 자전거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사건이 전개되는 것을 보면서 하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소설은 당사자인 주홍모와 옆에서 그 일을 바라보는 같은 반 친구들 한시연, 손지희, 정인섭의 시선까지 더해 다양한 시각에서 사건을 조명한다.







인간은 복잡다단하다. 하나로 설명되지 않고, 하나의 행동 안에도 여러 가지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다섯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배움과 동시에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나를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 또한 문학을 통해서 삶의 진실을 배워 가는 방법 중 하나이리라.

작가의 말 中

소설을 읽고 내가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여느 때와 같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 또한 매번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 때로는 굴러가는 공을 한없이 바라보는 일처럼 일상을 지내는 일이 덧없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내가 삶의 방향을 이타적인 쪽으로 계속 가져가려 하는 이유는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볼 수 없는, 그래서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마음이 기저에 무수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계획을 잘 지키지 못하고 예기치 못한 숱한 삶의 국면을 맞이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깨달음의 지점이 너무도 크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모든 마음을 이해할 순 없겠지만, 모든 마음을 살펴보려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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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2
단요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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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좋은 작품은 좋은 질문을 던진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근래에 읽은 소설 중에는 단요의 『케이크 손』이 그러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좋은 소설'이다. 단순히 '좋은 소설'이라고 평하는 것이 자칫 이 작품만의 고유한 시선이나 미학적 요소를 소거하는 독법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다 읽고 난 뒤에 머릿속에 떠오른 여러 질문 가운데서 한참을 헤매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렇게 밖에 말을 할 수가 없다.

소설은 16세 소녀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소녀는 업소에서 일하는 엄마의 무관심과 친구들의 멸시와 외면 속에서 소외된 채 살아간다. 그렇게 철저히 배제당한 삶을 살아가던 중에 소녀는 한 남자를 만난다. 남자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맨손으로 살아 있는 걸 만지면" 그게 무엇이든 케이크로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남자의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소녀는 "악함과 약함과 불쌍함은 다른 체계일지라도 뒤섞여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앞뒤가 맞지 않은 방식으로 질서 정연"한 세상을 경험한다.





『케이크 손』은 명백하게도 가해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가해자들의 사정을 상상하는 작업은 대개 옹호론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그래서 현실에서는 다소 터부시되기 마련입니다만, 픽션의 존재 의의는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이 글에 비겁하거나 그른 면이 있다면, 그 비겁성은 아마도 남자가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선량하며 유능했다거나, 주인공이 눈에 띄게 영리하다거나 하는 대목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p.211 (작가의 말 中)


단요 작가는 『케이크 손』을 "가해자들의 이야기"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 소설을 '안과 밖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대개 우리는 안에 품고 있는 것들을 바깥으로 잘 꺼내놓지 못하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행복이든 불행이든 빛이 든 어둠이든 경계를 지닌 무수한 '상태'는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이기호의 추천의 말을 빌려보자면)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나는 지금 이 소설이 무섭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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