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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 서연문답
김도환 지음 / 책세상 / 2012년 3월
평점 :
홍대용의 의산문답이란 책이름 정도 들어보았고, 실학파의 한 사람이 홍대용이었다는 정도?
얼마 전에 읽었던 박지원의 얘기 속에 나왔던, 악기를 천재처럼 잘 다루었고 우주,수학 등 당시 성리학 사회에서 주류가 아닌 곳을 다루었던 사람이 바로 홍대용.
이 책은 홍대용(계방)과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 두 사람이 나누었던 짧은 기간 동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홍대용은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당시 철학,정치,사회 등 전분야의 한가운데 놓인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공부를 하더라도 실용(이용후생)에 중점을 두었고, 그 경험은 청나라 사신을 따라가서 과학,수학 등 조선보다 앞서간 사회의 경험을 뼈저리게 느끼고 온 결과이다.
또한 경전 자구 하나하나에 매달리지 않고, 사회의 중심 세력이 되기 위해 필수였던 과거 시험을 치루지 않는 등,
자기 스스로 갖고 있는 생각을 사회와 타협하지 않고 끌고 나갔던, 그때나 지금이나 무척 찾기 힘든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세손인 정조에게 투영하려고 무던히 애쓰는 노력이 정조와 서연 시간에 계속 나타난다.
하지만 세손으로서 정조의 입장은 홍대용이 바라보는 세손의 자리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그리고 정조는 그런 차이를 매우기 위한 노력을 임금이 되서도 계속 보여주고, 이런 모습은 다른 왕과 조금 다른, 성군으로서 정조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홍대용이 당시 다른 주류 철학과 차이나는 점이 정조에 의해서 적극 채택되기에 그의 삶은 오래 가지 못했고, 정조 또한 짧지도 하지만 길지도 않은 삶을 마친다.
이후 홍대용의 머릿속에 있었던 그림의 일부가 후대에까지 흘러가고 있지만, 성리학을 주춧돌로 300년을 거쳐온 조선은 이제 더 바뀌기 힘든 썩은 물이 되어버렸다.
정조 승하 이후 조선 왕조의 내리막은 아마도 정조 사후 명석한 실학자(홍대용,박제가,정약용 등)의 쇠퇴와 강하게 맞물려 굴러간다.
역사의 가정은 알수 없다. 논리로 설명하기도 힘들다. 서양 근대 초기까지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정치-사회 체계를 갖추었던 중국(청나라)은 서양의 근대 문물도
어느 정도 수용하였지만 서유럽의 급속한 팽창과 발전은 다른 어떤 문명도 당해내지 못하였다. 만약 당시 조선이 청나라나 일본을 통해 적극 서양 과학을 받아들였다고
이후 우리의 식민지 경험이 극복될 수 있을까?
우리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지금 현재 한국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은 조선 역사의 어느 시점과 가장 맞아떨어질까? 그리고 그때의 조선은 어떻게 그 현실을 받아들였을까?
빤한 대답이 나오더라도, 같은 역사를 두번 쓰기에 한번 뿐인 인생을 또 낭비하면 안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