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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의 중심 - 가리타니 고진 인터뷰 ㅣ 궁리 공동선 총서 3
가라타니 고진 지음, 인디고 연구소 기획 / 궁리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1부 새로운 이념을 향하여
하나의, 소수의 이념과 가치관이 지속된다면 새로운 생각이 그 평탄함을
비집고 나온다. 자본주의가 갖는 역동의 이미지는 이제 구태의연함을 지우려는 알레고리의 노력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일본의 멋진 비평가 고진 씨는, 20대에 세상이라는 물에 돌을 던져 큰 파문을 일으킨 것처럼 혁명의 논리를 외쳐왔다. 그런데 그 논리의 씨앗 두개 중 하나가 칸트라는 건 태극 속 음양처럼 이율배반으로 느껴진다. 아래 글의 이율 배반과는 또 다른 의미로서지만 말이다.
[주체는 근본으로서 자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칸트를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즈음입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는 제3이율배반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정명제는 “자유가 있다”이고 반대명제는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라는 것인 것, 칸트는 이렇게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명제가 양쪽 모두 성립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것만 읽으면 칸트가 생각한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어렵습니다…실존주의자나
구조주의자는 칸트를 냉소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논의까지도 이 제3이율배반에 포함되어 버립니다. 실존주의자는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라고
생각하죠.(정명제) 구조주의자는 자유는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것처럼 보일 순 있지만 구조에서 벗어나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반대명제). 둘 중 어느 쪽이 옳은지를 분명하게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두 명제 모두 성립하니까요. 그러니까 둘 다 칸트를 뛰어넘은
것이 아닙니다. 실존주의와 구조조의의 논쟁은 조금도 새롭지 않습니다.
어떤 국면에서 주체를 부정하더라도 다른 국면에서 재차 주체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체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도 있고, 그것을 긍정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는 것이지요.]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 생각 중 하나는, 서양의 사유를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일까? 제대로 받아들일수 있을까? 의 문제다. 칸트가 말한 자유를, 고진 씨는 왜 사람들이 이해를 못했는지, 그리고 그걸 이해한 건 나뿐이라는 말로 밀고 나간다(물론 웃음을
포함해서…) 그런데 칸트와 서구의 부르주아지 혁신의 과정에 나온 그 자유가, 과연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얼마나 원전(또는 사전 속) 의미로서 유효할까? 이렇게 생각하면, 과연 사회주의를 말할 만큼 사회가 봉건주의를 뛰어넘어, 사회 구성원의
자발성을 발판으로 그 다음 단계로 진행했는가? 책에서 뽑은 구절과 엇나가는 말을 계속 하는 내가, 왜 이럴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칸트는 자유가 도덕의 영역에만 있다고 말합니다. 의무를 다함으로써 사람은 자유로워진다고 말하죠. 일반에서 사람은
‘의무를 다하는 일이 어째서 자유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이애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 칸트를 비난합니다. 이를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내놓은 사람은 저뿐입니다. 제 생각에 ‘자유로워라’라는 명령에 따를 때에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자유는 그와
같은 명령에서 오는 것이며 그 외에 자유는 없습니다.]
고진 씨도 나름 아틀라스의 어깨 급이라고 평가되어 보이는데, 가볍고
얕은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행복이 목적이 되면 우리는 자유로워지지 못할지니…하지만 그 가벼움 속에서 책임을 말하고, 그동안의 일을 철저하게 살펴봄은
곱씹어볼만한 주장이다.
[도덕이 공동체 규범이라면, 윤리는
자유로워지려는 의무(명령)이지요. 자유는 어떤 것에 속박되지 않는 것인데, 행복하고자 애쓰는 인간의
본능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행복이 목적이 되면 우리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가 없습니다…이미 일어나버린 일이 자신의 자유에 의한 것이었다고 받아들이는 것, 즉
책임을 지는 일입니다…”책임지는 또 하나의 바람직한 방법은 그동안의 과정을 남김없이 고찰하는 일이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고진이 말하는 헤겔(의 법철학)은
마치 얼마전까지의 한국을 짓누르고 있던, ‘국가의 국민 우위’ 태도의
뿌리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를 지배한 성리학과는 어느 정도 겹치는 시각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그것은 일본 식민지에서 흘러내려온 것이 아닐까? 그
당시 일본을 휩쌓아온 그 전체주의와 국가 우위가 갖고 있던 그 폭력성…
[헤겔은 법철학에서 정치 국가를 시민사회 위에 두었습니다. 시장경제체제인 시민사회는 욕망의 체계이고, 정치 국가는 그것을 초월한
이성의 차원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는 사람들이 시민사회에서는 私人이지만, 국가 차원에서 공민으로서 본연의 모습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역전시킨 겁니다. 경제 사회에서 각자가 보편으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이죠. 즉 현실 시민사회에서 사람들이 유적 존재로서 존재한다면, 시민 사회
상위에 상상되는 公으로서의
국가는 이미 필요없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경제에 뿌리를 둔 사회관계에서 계급 대립이 해소되면 정치
국가는 지양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르크스의 유적 존재란 개별의 개인화된 존재 방식이 아니라, 자연/ 사회 존재로서 인간의 총체 존재 방식을 뜻한다. 즉 인간이 노동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고 사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방식을 말한다. 그런데 자본에 의해 노동이 탈취되어버리면 인간은 자신의 유적 존재를 탈취당하게 되며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하고 있는 바는 곧 ‘사인’이라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그것을 보편의 것으로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그것은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서술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계몽이라고 한다면 이는 사회의 근본 변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계몽된 시대가 아니라
계몽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빅데이터라는, 데이터 분석이 강조되는 오늘날에, 그 기반을 제공하는 분야 중 하나인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가
떠오른다. 이 사회를 물리학으로, 구조의 급격한 움직임은
마치 상전이 현상을 말하는 듯 싶다.
[인간은 아무리 설득해도 움직이지 않지만, 구조의 원인이 명백해지면 급격하게 움직이는 법입니다…자유란 원인이
너무 복잡해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 상정되는 환상이라는 스피노자의 생각을 언급했습니다.]
앞서 트랜스크리틱을 읽다가 멈춘 적이 있는데,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자본=네이션=국가를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는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고진 매트릭스
B 국가(약탈과 재분배-지배와 보호)
세계 =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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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네이션(호수 – 증여와 답례)
미니 세계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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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자본(상품교환 – 화폐와 상품)
세계 = 경제 (근대세계시스템)
|
D X (세계 공화국)
|
평등 →
자유↓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게 된 근대자본제 사회에서는 교환양식 C가 지배형태입니다. 그렇지만 앞서와 마차가지로 교환양식 A와 B도 각기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세계=경제, 즉 근대 세계시스템입니다. 저는
특별히 오늘날의 이 시스템을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접합체로
봅니다. 그리고 저의 과제는 자본=네이션=국가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각기 다른 교환양식의 기원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체제를 넘어선 사회가 있는데 이는 교환양식 D가 지배하는 사회구성체입니다. 칸트도 이런 사회를 생각했는데, 이것이 바로 세계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진 선생이, 그 나름의 순발력이나 머리의 반짝거림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하지만 노동자이자 소비자라는 논리로 프롤레타리아트를 풀어낸다는 건, 마르크스의
생각을 매우 비틀어서 생각하지 않나 싶다. 소비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자와는 다른, 기업이나 자본에 맞설 수 있다고 보는 논리인데, 생산자로서 자본에
맞섬이 쉽지 않듯 소비자로서 자본에 맞섬의 우위가 누구나 인정할 만큼 그렇게 커다란 차이를 줄 수 있을까? 설령
그렇지 않다고 했을 때, 용기를 걸고 추구해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뭔가 통통 튀는 듯한데, 막상 손에 잡으면 묵직함보다 가벼움에 살짝살짝
실망을 받는 느낌이다. 또 한가지, 기업을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서
노동자가 경영자가 된다는 생각은 김상봉 선생이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에서 말한 논리와 매우 유사성을 띤다.
[봉건 노예는 소비자가 아니지만, 프롤레타리아는
소비자입니다. 이것은 결정을 지을만한 차이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 운동은 프롤레타리아트운동과 다른 것이라든 가, 노동자 파업은 이미
힘을 잃었다고 말해버리는 것입니다…노동자와 소비자는 별개가 아닙니다.
노동자가 소비라는 장에 설 때에 소비자가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그들이 가장 약한
입장이 되는 생산지점에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입장에 서는 유통의 장에서 소비자로써 싸워야만 하는 것이죠. 생산지점에서
노동자는 기업과 일체화되기 쉽습니다. 기업에 이익이 되는 일은 노동자에게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죠…자본에 대항하는 또 한가지 요소는 노동력 상품을 지양하는 것입니다. 기업을
국유화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하면 국유기업의 임노동자가 될 뿐이므로, 노둥자 상품을 지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자본제 기업을 그대로
협동조합으로 만들어버리면 됩니다. 거기서는 노동자 자신이 경영자죠.]
국가는 의무라기 보다 권리,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보자는 것일까? 사실 국가가 자본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면서 고진 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상황은 이제 충분히 무르익었다. 분명 커다란 변화의 시기가 조만간 올 것이라는 신호가 여러 사람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말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사회주의 혁명이 띄었던 폭력성보다는, 유엔이라는
기존 조직을 통해 바꿔가자는 온건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건, 일본의 책쓰는 분들이 잘하는 도식화 성향이 이분에게도
보인다는 것이다. 네가지 매트릭스가 나오고, 현재와 조만간의
미래 시국을 그 매트릭스에 투사해서 설명함이, 이해는 쉽지만 언제 우리가 매트릭스로 나타나는 역사를
살아 본적이 있을까?의 물음의 답으로는 그리 적절해보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임박? 이 의견은 어느 정도 공감, 아니
이미 그 생각을 이미 해온 나로서는 겹쳐지는 이런 부분이 반갑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세계
전쟁은 과연 선진국보다 중,후진국이라는 범주에 더 큰 위험이 될 것인가?
[앞으로 선진국은 경제 성장이 없는 시대가 계속되어 그것에 익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어소시에이셔니스트가 해야 할 과제는 사람들을 국가에 의해 구제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힘을 기르도록 돕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러한 사회의 힘을
위한 시도를 막는 억압을 저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칸트가 말하는 국가연합은 본래 평화론이 아니라 시민혁명을
세계에 동시 실현하기 위해서 구상한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마르크스가 말하는 세계동시혁명과 칸트가 말하는
국가연합이 저의 이론 속에서 서로 이어진 것입니다…물론 자본=국가는
완강히 저항할 것입니다. 이미 자본주의는 한계를 보이고 있음에도, 자본=국가는 간신히 연명하며 살아남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대항하는
것, 즉 그것을 새로운 세계 체제의 형성으로 전환하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앞으로 남겨진 과제입니다…현재 시점에서 증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 포기/군비 포기입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대로 일본인에게는 비교적 실현하기
쉬운 것이라 생각합니다…제가 세계 동시혁명이라고 말할 때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것은 전세계의 거리에서
시민의 봉기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그림이 아니라, 유엔의 획기스러운 변화일 뿐입니다. 이런 변화가 없다면, 세계 각지의 혁명은 결국 분열하고 고립되며
점차 사라져버리게 될 것입니다...칸트의 용어를 빌려서 말하자면, 이는
구성 이념이 아니라 규제 이념인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이상은 점진화되어 달성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규제 이념이란 현실에서 실현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이상향으로 현실을 비판할 근거가 되는 이념)…제가 역사의 반복과 관련하여 염려하는 부분을 좀 더 정확히 하자면, 가까운
미래에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가 증대하는 것과 더불어, 교환양식 B가
강화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국주의 전쟁이 발발하게 될지도 모릅니다…자본의 축적은
자급자족 경제에 속한 농민을 시장경제의 임금노동자와 소비자로 편입시키면서 유지됩니다. 1970년대까지
선진 사회에서는 이 과정이 한창 진행되었지요. 그러다가 일반 이윤율이 하락하게 되고, 그때부터 세계 자본주의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자본은 당시 자본주의
경제 바깥을 편입시키며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을 통해 그 출구를 찾았습니다. 이 과정이 세계화 입니다…저는 세계 전쟁이 임박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국내의
빈부 격차가 극도로 커졌고, 그를 맞는 사회 불만의 목소리도 많습니다.
그래도 일본은 그나마 괜찮습니다만, 대한민국 남북 격차는 세계 차원으로 보아도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이대로 괜찮을 수는 없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지만, 중진국에서는 그게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갈등이
커지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중핵-주변-아주변이라는 중심-주변 이론, 제국과
제국주의의 차이, 영구평화와 세계동시혁명 등을 말한다.
[선생님은 세계사의 구조에서 세계=제국
단계에서의 ‘중핵-주변-아주변’의 구조(중핵과 주변이라는것은 바로 부르주아에 의한 잉여가치 취득
시스템의 한 혁신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극단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란 프롤레타리아가 창출해낸 잉여가치를
부르주아가 취득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가 별도의 나라에 있는 경우, 잉여가치의 취득 과정에 영향을 미쳐온 메커니즘 하나가 국경을 초월하는 가치의 흐름을 통제하는 교묘한 조작이다. 거기서부터 중핵/반주변/주변이라는
개념으로 총괄되는 불균등 발전의 패턴이 생겨난다. 이 개념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다양한 형태의 계급
대립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지식 개념 장치이다)를 설명하시면서 제국의 문명을 자율성에 기반하여 선택해서
받아들였던 아주변 국가인 영국과 일본은 근대 세계 시스템에서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제국과
제국주의는 다른 것입니다. 제국은 근대 이전 광역국가의 한 형태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라는 하나의 제국이 있었고, 그 주변의 여러 나라들은 조공을 바치는
관계로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이 조공은 실제로는 중국 왕조 측의 답례가 더 많은 호수 교환 관계로 이뤄졌습니다. 제국은 이러한 교환으로 평화체계를 구축하려고 했지요. 이에 비해
제국주의는 근대의 네이션=스테이트가 확장되어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 대영제국이나 일본제국이라고 말합니다만 이들은 제국이 아닌 제국주의인 것입니다…월러스타인은
자유주의나 제국주의를 직선의 일회성 역사 단계로 보지 않았습니다. 즉 그것들을 역사의 단계라기보다 반복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자유주의란 헤게모니 국가의 단계에서 세계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이고, 제국주의란 헤게모니 국가가 몰락하고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가 아직 확립되지 않아서 그것을 목표로 각국이 싸우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이 둘은 번갈아 반복으로 일어나는 것이죠…저는
다음에 일어날 세계 전쟁을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일어날 전쟁은 자본과 국가가
생존을 위해 일으키는 것이니까 그것을 막는 것은 곧 자본과 국가의 연명을 저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평화 운동과 혁명 운동은 별개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칸트가 말하는 영구평화와 마찬가지로 국가 간의 적대성이 없어진 상태, 즉
국가가 지양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세계동시혁명입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 방향성은 분명 우리가 생각해보고 우리 나름의 명확한 눈을 가져야할 분야이다. 현재 IT로 불리는 이 기술이 갖는 지향성이 무엇인지는 (만약 있다해도 아주 소수를 빼놓고는) 알지 못하며,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IT의 깜짝쇼 시청자로 주저앉았다. 과거 철기도 그랬을까? 결국 기술도 헤게모니의 문제일까?
[테크놀로지 문제 자체를 경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사상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테크놀로지론과 문명론에는 언제나 반대합니다. 이런 논의들은 국가와 자본을 무시합니다.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산업자본주의를
낳았고,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산업자본주의가 테크톨로지를 낳았고, 국가가 전쟁을
일으켰으며, 전쟁 속에서 테크놀로지가 발전한 것입니다. 철기시대를
생각해봅시다. 당시는 강력한 무기로서 철기가 생산되던 시기였습니다. 그것은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가 아니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과거를 비추어봤을 때 새로운, 변화의, 혁명은
보편 종교의 형태라고 했는데 이때 보편 종교는 종교라는 말에 한정지어지기는 힘든, 문화나 그 이상의
메타 담론이나 개념어로서 그 모든 것을 포섭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보편종교는 ‘유동민으로서의
자유=평등’을 지향하지만,
역설스럽게 그것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각 국가의 사제계급과 국가 자체에 의해 유지됩니다. 세계=제국에 종속된 것이지요. 그렇게 세계종교가 된 것입니다. 처음에 D는 보편종교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공산주의 운동은 근대 이전에는 항상 종교 운동 형식을 취했습니다. 일본에도 16세기 일향종이 좋은 예이고, 한국의 동학혁명도 그렇지 않습니까? 중국에서는 한왕조 말기 황건의 난 이후, 늘 도교와 관련된 종교
사회 운동이 있었고 그것이 왕조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마오는 종교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혁명에 성공했지요.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19세기 중반까지 사회운동은 모두 기독교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그 이후 기독교 배경은 사라지고 과학 사회주의(역사
유물론의 관점에서 현실을 과학으로 분석하여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자본주의
생산방식이나 노동력의 착취에 기반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공산주의가 필욘으로 도래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가 주장되었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둘중 어느
하나를 제대로 갖추기 매우 힘들고, 하나를 갖출 때 다른 하나는 같이 갖추기는 매우 힘든, 서로 상충되는 요인으로 판단된다. 그 자유와 평등, 아직 우리가 제대로 맛보지 못한 이념의 결과가 언제까지 우리가 목숨까지 바치며 추구해야 할 덕목일까? 게다가 둘은 같은 선상에 놓이기를 서로 썩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이제 우리는 지겨운 두 개념어를 넘어설 준비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아니 그렇게 해야 우리는 우리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개인/ 사회
공동체로서 삶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서로 대립하는 개념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것입니다. 상반되는
개념인 자유와 평등이 양립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를 중시하면 불평등이 생기고, 평등에 무게를 두면 자유가 억압되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렇게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다른 쪽에서 반발이 생깁니다. 그 결과 정권교체가 일어납니다. 선진국의 정치 형태는 이 같은 자유민주주의로
이루어지고, 이것이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언입니다…자유민주주의
정치제체라고 하는 건 ‘자본=네이션=국가’일 뿐, 그것으로
역사가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유와 평등 양 끝 중 어느 한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치면 균형을 잡기
위한 운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 자체를 넘어설 순 없을까요? 제가 고민했던 바는 이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참고하는 아테네의 데모크라시는
바로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으의 모습입니다.]
고진이 본, 마르크스가 보고 비판했던 헤겔은 법철학이었다고 한다.
[다른 헤겔 좌파들처럼 청년 마르크스도 헤겔을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의
직업을 시작했습니다. 마르크스가 특히 초점을 맞춘 것은 법철학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관념론을 유물론으로 전복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마르크스는 헤겔
변증법으로 개념화된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위일체의 구조를
보지 못했습니다. 헤겔은 네이션과 국가를 초월의 위치에 둔 반면에, 마르크스는
그것을 경제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이데올로기 상부구조로 간주했던 것입니다…마르크스가 헤겔의 생각을
뒤집었을 때, 마르크스는 역사를 이미 끝난 것으로서가 아니라 미래에 실현되어야 할 것으로 봐야 했습니다. 이것이 사물을 사후에 보는 입장에서 사전에 보는 입장으로의 이동입니다…교환양식 A,B,C는 끈덕지게 남아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공동체, 국가, 자본은 끈질기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관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교환양식이 집요하게 지속하는 동안, 교환양식 D 역시 마찬가지로 끈질기게 지속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것이 억압받고, 은폐되었다 하여도 D는 계속해서 돌아올 것입니다. 칸트가 말한 ‘규제 이념’이란 바로 이런 것이지요…칸트에
따르면, 국가연방과 궁극의 세계공화국이란 인간의 선의지 혹은 지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비사회의 사회성’과 이를 통한 전쟁으로 도래하게 됩니다. 이 같은 관점을 헤겔은 ‘이성의 간지’와는 반대로 ‘자연의 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와 같은 칸트의 낙관주의는 가혹한 회의주의를 그 바탕에 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19세기 내내 헤겔의 관점이 지배해왔습니다. 제국 사이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었고, 결국
제1차 세계 대전으로 귀결되었지요. 결국 전쟁으로 황폐화된
세계에서 사람들은 영구평화라는 칸트의 관념을 다시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국제 연맹은 자연의
간지에 의하여 현실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부 윤리의 정치화, 정치의
윤리화
고진씨가 말하는 새로운 지평이 어떤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근대 철학이 제기하는 문제들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면서도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지는 못하는 교착상태 말이다. 물론 이러한 패러독스를 피할 방법은 있다. 푸꼬의 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체의 문제를 구조 토대의 차원으로
끌어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