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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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번 써먹은 표현을 다시 비틀어서 들먹이면, 소설을 쓰는 사람은 지금까지의 냄새로 앞날의 향기를 점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해질 무렵은 그 냄새와 향기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주는 소설로 내게 보여진다. 앞으로 몇백년 후, 190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우리 삶은 어떻게 쓰여질까? 세세한 기록은 디지털화되어 많이 남아있을지라도, 역사책에서는 한 두페이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떠들썩한 사건, 몇몇 정치인과 기업인, 우리 사회에 공헌한 누군가 정도가 아닐까? 나무의 나이테가 그 나무의 모든 일들을 적지 못하고 커다란 일들만 굵은 선으로 남기듯 말이다.


지금 땅을 밟고 하늘을 머리에 두고 있는 를 한가운데 놓고 지난 70년대부터 오늘을 뒤돌아보면서 떠올릴만한 사건이나 일이 무엇인지 뒤돌아보면 일단 내가 태어났고 이에 더불어 군사독재, 광주, 경제라고 말해지는 산업화와 소득의 늘어남, 6월 항쟁, 대통령 직선제, 올림픽, 아버지의 퇴직, 성수대교와 삼풍 아파트, IMF, 정권 교체, 코스닥 광풍, 결혼, 김예슬 선언, 아이가 태어났고, 박근혜 게이트 등이 있다. 평범한 일상이라고 말할, 하루만 지나도 잊어버릴 만한 그냥 그런 하루 하루 속에서 도드리지게 튀어오르는 듯한 이런 일을 생각해보며,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디에 있고, 그 옆에는 누가 있었으며, 지금은 같이 지내지 않지만 오랜 동안 나랑 같이 지낸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내 친지들은 각각의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내가 태어나서 자라온 그곳, 지금은 뉴타운이라는 이름속에 공원으로 탈바꿈한 그곳을 보며, 그리 길지 않은 이 삼십년의 기간동안 우리는 무슨 짓을 해온건지 궁금하다. 그리고 아직도 기득권에서 그토록 치장한 자유와 풍요가 이제 그 목숨줄이 흔들릴만큼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다. 그동안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을 디디고 있고, 행복을 얻은 그 누군가는 불행이 오지 않음을, 불행에서 벗어났음에 만족하고 이를 그 누군가에게 감사하면서 스스로의 운명과 시간에 안도하면서 살아온 우리네 삶의 흐름을 무어라고 말하고 평가하고 의미부여를 해야 할까 싶다.


책에는 두명의 민우가 등장하고, 조금 있으면 마지막 해질 무렵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또한 책이 얇아서 이 책을 다 읽는 것도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운이 꽤 갈 듯 싶다. ‘말빨이라는 단어처럼 분명 글빨이라는게 있긴 있구나 싶었다. 글쓴이의 책을 몇권 읽었고, 그분의 광팬은 아니지만, 책을 쓸 때 어느 책에서나 느껴 지는 빤한 전개나 스타일이 안느껴진다. 이러함이 황석영 선생님의 장점이라고 여겨진다.


요즘 이런저런 글을 쓰려고 조금 더 몸짓과 손짓을 하고 있고, 글이란건 역시 쉽지 않음을 느끼는 찰라 이 책을 보면서 커다란 벽이 서있는 거 같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나도 이렇게 감동을 주는 누군가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끼면서, 아직 살아있는 내 자존감을 다시 한번 느끼고 어루만지며 스스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좋은 계기로 삼았음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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