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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 - 2016년 제40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경욱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6년 1월
평점 :
평론가의 눈을 갖지 못한 나는 대상으로 선정된 작가의 두 편 소설보다 김탁환 님의 글에 더 눈이 갔다. 내가 좀 더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내 맘속에 기울어지게 서 있는
판단의 기둥도 얼마간의 역할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그 내용을 보고 나서 내린 결정임을
스스로에게 말해두고 싶다.
머리가 명석했던 막내 외삼촌은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몸이 안좋아져서 학교를 떠나게 되고, 외할아버지의 앵두밭에서 농사를 짓고 하늘의 별을 보고 앵두와 말을 하고 밤에는 책을 보며 세상을 살아간다. 그런 치숙과 소통을 시작하면서 글쓴이는 외삼촌과 때로는 가깝고, 때로는
먼 사이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밀물과 썰물같은 관계의 흐름 속에서 시간은 흐르고, 두 사람의 나이테는 각각 다른 형태를 갖춰 나간다. 맨 처음 치숙을
만났을 때 두 사람이 갖는 글이나 세상에 대한 내공은 시간이 가면서 점차 줄어들었다(고 글쓴이는 생각한다.) 하지만 맨 첫글에 적혀 있듯 치숙은 쓰고 읽고 보는 사람이었다. 니체가
강조한, 나를 극복하기 위해 갖출 그 세가지를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끼니를 잇듯 번갈아 셋을 오갔다. 앵두의 시간이라고도 불렀다]
누군가 무언가를 이뤘을 때, 많건 적건 스스로가 아닌 다른 누구에게
빚진 것이 많다. 이름하자면 서로 주체성이라고 해야할까? 인간은 사회
동물이라고 해야 할까? 의도하지 않았으나, 김탁환 선생님에게는
치숙이라는 분이 오늘날의 김탁환이라는 그릇을 만드는데 중요한 도움을 주셨다. 남들이 보는 세속의 성공을 비록 이루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누구나가 그런 사람, 그런 일이 있을 것이다.
앵두 나무 밑 평상에 누워,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즐기는 모습, 여기까지는 누구나가 할 수 있겠지만, 이제
앵두나무와 말을 하고 돌과 인사를 하는 그 지경에 까지 이른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부럽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 지금이 아쉽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치숙이 글쓴이에게 넘긴 평생 써왔고[간절한 질문만이
하찮은 이야기를 경건한 소설로 끌어올리는 법이라고…] 글쓴이를 위해 건네준 글[“너한테 도움이 되라고 줬지”]의 제목이자,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영원한 주제 중 일부이기도 하다.
이글 말고도 이 책에 담긴 다른 소설을 보면, 아버지나 가족(특히 아이)의 잃어버림, 죽음에 대한 내용들이 나온다. 이 시대 아버지의 의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넘어서려 할 때 높은
곳 어딘가에서 지켜보는 거대한 팔루스일 수도 있고, 회사에서 기죽고 사회에서 사오정이나 오륙도니 하면서
지탄받는 아버지일수도, 돈을 벌지 못하면 가족들로부터도 내몰리는 그런 존재가 아버지일 수도 있다. 여기 소설에서 나오는 아버지들은 어떤 아버지일까?
가족의 상실, 세월호 사건은 정말 우리에게 큰 파문이었다.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언제 극복할지 엄두도 안난다.
이 책을 보면서 몇가지 주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