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만남의 철학 - 김상봉과 고명섭의 철학 대담
김상봉.고명섭 지음 / 길(도서출판) / 2015년 7월
평점 :
이야기 책이 아닌, 딱딱한 철학책으로 쓰였다면 이 정도의 두께까지는
안나왔겠지만, 날 것 그대로 말이 적히면서 처음 마주하는 사람에게는,
가슴을 꽉 누르는 정도의 부피로 나타났다. 이건 처츰 책을 봤을 때 느낌을 말한거고…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잘 넘겨지지
않거나,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픈 마음을 갖도록 하는 말이 아주 많이 담겨져있다. 조금 부풀려 말하면, 처음으로 스파링을 하려고 링에 올라가니, 상대방이 한국 챔피언이 나왔다고 할까?
쓴이의 글 주제는 끊임없이 하나의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들뢰즈가, 자기는 여러 책을 썼으나 하나의 얘기를 하려했다는 뜻과 비슷하다고 할까? 어떤
주제라도 서로 주체성으로 풀이하고 있어, 전가의 보도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되짚어보면 그만큼 글쓴이도 강력한 이론을 갖고 있다는 식으로 풀어볼 수도 있겠다.
철학사라는 잣대로 보자면, 서구에서는 이미 깨뜨리려는 구조(주체)에 대해 글쓴 이는, 이것(주체)부터 일단 ‘우리
식’으로 만들고, 그리고 나서 깨부수던가 넘어서던가 하자는
말을 한다. 나름, 서구에서 근대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다. 또한, 쓴 이의 서로 주체성이든, (그가 논박하는)홀로 주체성이던,
주체라는 이름으로 일단 (형이상학적인) 꼴을
만들고(또는 갖추고) 나서 그 다음 단계로 연결짓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그의 목적(서로 주체성)으로 가기 위한 공식화된
논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의 이야기는, 정말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언제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주체(성)을 확보한 적 있는가?’라고 묻는다.
슬프고, 마음 아프다. 지금까지의 우리를 ‘철저하게 불우하고, 슬퍼온,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함’으로 칸을 쳐서 가둔다. 이 말에, 특별한 반박이 떠오르지 못하는 나의 마음, 슬프고 정말 통탄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슬픔의 연속성 속에서 ‘홍경래의 난-> 동학운동->(의병
운동) -> 3.1운동 -> (4.19) -> 전태일의
죽음 -> 5.18항쟁 -> 6월 항쟁으로 , 이 땅에서 진행해왔던, 서로 주체성의 몸짓의 흐름을 풀어나간다. 그중 서로 주체성의 꽃은, 5.18에서 만발했음을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발한 꽃은 긴 역사에서 얼마 안되고, 오랜 시절은, 심지어 지금까지도 떨쳐내지 못하고 재갈이 물려진 신세에 처해 있음에 비탄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언제부터 잘못일까? 지금의 우리를 보며, 답을 찾거나 조금이라도 바꾸기에는 너무나도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고 보는 사람도 꽤 있어 보인다. 심지어, 며칠
전 신문에 모교수도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버릴 것인가? 아직은
아니란다. 여기서부터 쓴 이의 대안은 조금 실망스럽다. 어둠이
깊으니, 밝음도 클 것이요, 깊은 어둠은 조만간 밝음을 뜻한다는….
살짝살짝 실망스러운 말이 나올 때도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나의 의미, 나의 삶이란 무엇이고 내가 꿈꿔 온 것들을 꿈이 아닌, 내 눈앞에
어떻게 정말로 펼쳐지게 할지에 대해 이 책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는 역시 팔랑귀일까? 나는 역시나 형이상학으로 조금 기울어진 사람일까? 이 책의 소감문을
이렇게 한번 만으로 쓰고 말기에는 그 깊이와 넓이가 한없음을 다시 한번 힘줘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