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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좋아하는데요. 지난 포스팅에서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다룬 뒤 소설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고른 이번 에세이 <소설가의 각오>는 제목에서부터 그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설가로써 지녀야 할 책임, 의무, 윤리에서부터 문학의 본질에 이르기까지,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자신의 올곧은 신념에 부쳐 강한 어조로 독자들에게 어필하고자 합니다. 그닥 기대를 걸지 않고 쓴 첫 작품이 신인상과 아쿠타가와 상을 휩쓸만큼, 어쩌면 그 속에 내재된 욕망은 처음부터 '글쓰기'였던 걸 뒤늦게 발견한 그가, 소설을 대하는 방식은 정도(正道)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 보입니다. 적당주의를 혐오하고 문단의 타락을 안타까워하며 질책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 글이 쓰여졌던 당시와 조금도 변함없이 적용되는 오늘날에 깊은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관계자들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 하나만 등장하면 문학 전체가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이란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 편집자들은 자기 일에 넌덜머리를 내면서도 일단은 잡지의 쪽수를 채우기 위해 원고를 긁어 모으느라 분주하다. 필자는 그에 맞춰 날림으로 글을 쓴다. - p.268
이처럼, 문학이 쇠퇴하고 사람들이 활자를 멀리하게 된 이유를 영상과 기술의 발달에서 찾으려는 이들에게 가하는 일침은 통쾌하기까지 한데요. 자신이 믿는 바가 곧 소설이 되야 한다는 뚝심 아래, 그는 철저한 독고다이 생활을 고수하며 개 한마리와 함께 한적한 시골에 틀어박혀 규칙적이고도 소박한 삶을 오랜 세월 실천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으며 참 제 잘난 맛에 산다는 오만한 사람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작금의 문학실태를 딱 꼬집어 조목조목 회초리를 든 부분은 책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격한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이 뻔히 내다보이는 생활을 철저히 경계하고 글 또한 어떤 것을 쓸지 알 수 없는 과정에서 차차 그 형상을 빚어가는 작업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무릎을 탁 쳤다지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극히 냉정하게 무한한 미지로 놔두는 편이, 어떤 해괴한 것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취급하는 편이, '쓰는 힘'과 조우할 기회가 훨씬 많을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p.56
한편, 사회 곳곳에서 횡행하는 부조리와 젊은 청년들의 나태함에 대해서도 거리낌없는 독설을 내뱉는데요. 이런 관습이 문단으로까지 뻗쳐 지금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분석인데, 흥미로운 건 일본인 특유의 온(효행)의 자세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부분이었습니다. 모두가 당연시하는, 전통적인 모국의 관습조차 그의 레이더망에선 안전할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또,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문학을 바라보는 독자들과 방탕한 생활에 찌든 작가들, 극단의 위계질서에 물든 문학계를 향한 지탄은, 그렇고 그런 세상의 이치에 편승되지 않으려는 몸부림 그 자체로 보였습니다. 침묵, 절제, 고독을 벗삼아 그저 꾸준히 써나가는 그의 소설이 오히려 안 팔리는 게 마땅하다는 얘기를 들으며 깊은 씁쓸함을 삼키기도 했지요.
문학은 쓰는 것이지, 논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소설쓰기를 목표로 하는 자는, 문학론 따위와는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해야 한다. - p.207
고독을 이길 힘이 없다면 문학을 목표로 할 자격이 없다. 세상에 대해, 혹은 모든 집단과 조직에 대해 홀로 버틸 대로 버티며 거기에서 튕겨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환원해야 한다. - p.207
삶을 대하는 태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진실함에서 소설의 영감을 찾고자 하는 그만의 지론은 명쾌합니다. 이러쿵 저러쿵 평을 하는 무리들에게 부화뇌동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소신을 따라 외로운 글쓰기에 천착하는 것. 출세와 명예, 돈, 지위에 대한 욕심을 일체 버리고 한 길을 가는 그에게 소설은 마치 산을 오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등정할 때 필요한 건 오직 시간과 체력, 약간의 여비, 그리고 볼펜이 전부죠. 최근 글쓰기에 대한 책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요. 그 기법을 배우기에 앞서 글을 대하는 태도를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봤을 때, 마루야마 겐지는 마음만 앞서는 예비 작가지망생들에게 길잡이로써 바른 초심을 주입해 주는 한편, 서두르지 말고 긴 호흡으로 일관된 톤을 유지하며 작품 집필에 임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 환경 또한 지루하고 단조로운 나날의 연속일 테지만 견뎌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높은 산을 오르려 하는 자에게 자연광 이외의 빛은 걸림돌이 될 뿐이었다. 또 나는 문학상이란 빛에 홀린 독자들을 상대로 소설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 p.330
조금은 미안해졌습니다.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에 걸친 대장정으로 소설을 완성해나갔던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을 보며, 그들의 문학적 지식과 경험, 상상력과 창조력을 단 몇 푼의 돈으로 교환해 얻으면서 정작 그 작품의 가치는 과소평가하고 비싸다고 징징대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소설에 지나치리만큼 엄격한 잣대를 드리우고 현실과 타협의 여지 하나 두지 않는 그는, 틀어진 오늘날 문단의 마지막 보루와도 같습니다. 요즘엔 본인이 지향하는 글만을 써서는 먹고 살기 힘들다고 작가들은 말합니다. 대중성과 영화화 추세에 따른 트렌드도 익혀야 한다고도 하죠. 흔히 배고픈 직업이라 일컬어지는 험난한 그 작가의 길을 정도대로 걷고자 애쓰는 마루야마 겐지의 모습에서 아직은 괜찮아질 수 있을 거란 가능성을 느껴보려 합니다.
영상 문화가 범람하는 현 시대에도 문자로 표현하고 습득해야 그 감동이 제대로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기에 끝내 문학이 뿌리 뽑히지 않고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이라 믿습니다. '쓸 만큼 썼으니 이제 더는 쓸 것이 없다'는 말은 그에겐 핑계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캐지 못한 문학의 광맥은 다음 세대에도, 그 다음 세대에게도 넉넉하리만큼, 그 끝을 알 수 없이 풍부하다는 게 꾸중 일색이었던 작가의 유일한 희망적 메시지였기 때문이죠. 저 역시 그 주장에 격한 공감을 표하고 싶고 그것을 증명할 의무는 다름 아닌, 독자와 작가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사랑하는 분과 문단관계자들을 포함해 인간관계나 비즈니스 생활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