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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될 때는 즐겨듣는 팟빵
<빨간책방>에서 다뤄진 책들을 꺼내들곤 합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책은 방송의 최대 수혜를 입었던 이언 매큐언의
<속죄>라는 작품인데요. 독서에 그닥 취미가 없으신 분들께는 528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과 고전과 같은 빽빽한 자간에 지레 손사래를
칠지도 모르겠군요. 저 역시 구입 후 한 달 이상을 묵혀 놓고 8월 중순부터 시작한 대장정의 마침표를 어제부로 힘겹게 찍었답니다. 살다 보면
어떤 생각과 행동에 이르게 된 경위를 나 자신조차 설명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죠. 철들지 않은 13살 소녀 브리오니. 아이와 어른의 경계지점에 선
그녀는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공상하기를 좋아하며 다가올 자신의 앞날(어른)에 대한 호기심으로 들끓었던 만큼 그러한 내적 혼란을 글쓰기와
이야기로 배출시키고 싶어했습니다.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 p.66-67
1935년의 어느 여름밤,
영국 서리지방의 탈리스 가 저택에서 15살 소녀 롤라가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용의선상에 오른 이들은 당시 실종된 쌍둥이들을 찾아
집을 나선 모든 남자들. 유일하게 현장을 목격한 브리오니는 도망치던 그림자의 실루엣과 그 날 오후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을 머릿속으로 조합하여
범인을 파출부 아들 로비라 단정짓고 가족과 경찰 모두에게 확신에 찬 발언을 하게 됩니다. 사실 그녀가 몇 시간 전에 보았던 분수대와 서재에서의
일들은 로비와 그녀의 언니 세실리아의 불꽃 튀는 사랑의 시작에 불과했으나 아직 그녀가 이해하기엔 버거운 어른들의 세계를 소리없는 무언극으로,
섹스라는 행위를 단 몇 초간의 시각적 경험에만 의존해 해석한 결과, 정신병자가 휘두르는 무자비한 폭력이라는 커다란 오해로 바뀌어 비극의 시초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브리오니는 압력이나 위협을 받았다고 자신을
위로할 수는 없었다. 사실 압력이나 위협은 전혀 없었으니까. 그녀는 자기가 만든 미로 속에 자신을 가두고 맹목적으로 걸어 들어갔으며, 너무나
어렸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갔던 길을 되돌아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
p.245
매번 엇갈리고 말았던 두 남녀의
마음은 그렇게 한 소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그 사랑이 확인되자마자 기약없는 생이별로 이어집니다. 비록, 단 몇 분이었지만 중단된 사랑의 대화는 세실리아에게
로비가 범인이 아닐 거라는 확신을 주었고 범인 지목에 일조한 탈리스 가와 의절을 하고 간호사로 살아갈 용기를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죠. 한편,
감옥에 억울하게 투옥되어 5년의 시간을 보낸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면서 프랑스로 징집되어 비참한 전쟁통에 눈 앞에 쌓여가는 수많은
시체들과 악취, 쉴새없는 폭격이 난무하는 곳에서 로비는 자신을 향했던 브리오니의 증언에 대해 증오를 품으면서도
죽음이 일상이 되버린 전시 상황에 비하면 그녀의 뒤늦은 증언 번복 결심이나 유죄가 무죄로 바뀌는 것 따위야 어찌됐건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고도
생각되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때에 죄란 과연 무엇인가? 별
의미가 없었다. 누구나 다 유죄이기도 하고 무죄이기도 했다. (...) 우리는 매일 서로의 죄를 목격하면서 살고 있다.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죽게 내버려둔 적도 없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두었나? - p.368-369
그곳에 다다르면 플랑드르 여인과 그녀의 아들에게 그가 자신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인간은 오만에서 나오는 자기 비난의 감정에 휩싸이면 너무 많은 책임을 떠안으려 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370
세월이 흐르면서 지난 날 자신이
내렸던 오판이 크나큰 재앙을 불러왔음을 직감한 브리오니는 뒤늦게나마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언니에게 사죄의 편지를 써 법적인 절차를 밟으려
합니다. 또 케임브리지 진학을 포기한 뒤 군 전담 병원에서 수련 간호사로 고군분투하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에 대한 속죄를 시작합니다. 두 남녀의
사랑을 갈라놓고 한 남자의 인생을 망가뜨린 가해자로써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덜고자 선택한, 그러나 누구도 원치 않았던 고행과도 같은 삶을 자기위안으로 삼으며
살아간 브리오니를 보며 아직도 자기감상에 젖은 유년시절의 기질을 버리지 못했구나 하고 혀를 차기도 했지요. 특히 짬짬히 틈을 내어 완성한
소설원고를 잡지 편집장에게 거절당하며 조목조목 지적받는 회신엔 그녀의 삶과 소설에서 진정으로 존재해야 마땅한 것이 빠져있음을 전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보잘것없는
글재주로 하찮은 소설 하나 펴냄으로써 그 사실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 그녀는 정말로 남을 모방한 소위 현대적 글쓰기 양식
뒤에 숨어서 의식의 흐름속에 죄책감을 익사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히기 싫어했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소설의 척추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척추, 그녀 인생의 척추였다. - p.449
60여년의 세월을 담아낸 이 장대한 서사 구조 속에서
제1부는 단 하루에 걸쳐 일어난 일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마치 나비효과처럼 그 날의 일들로 인해 파생된 이후의 시간들은 단 한순간도 과거 그
시점의 굴레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죠. 이 엄청난 일들의 책임을 브리오니 한 사람에게만 전가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로비를
위하는 척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외면했던 에밀리와 잭, 진짜 범인을 알면서도 피해자로 남아 모든 진술을 거부하고 브리오니가 증언을 하게끔
침묵한 롤라, 세계대전이 격동했던 당시 시대상황등이 얽히고 설키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고 만 모든 일들은, 어쩌면 여름밤의 저녁을
함께 했던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할 책임의 소산일것입니다.
소설을 쓴 이언 매큐언은 등장인물의 복잡내밀한 심리묘사와
영화처럼 생생히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은 상황설명에 탁월한 재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브리오니, 로비, 세실리아 세 사람의 시점에서 마치 각각의
인물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기라도 한 듯이 칭찬받기 좋아하고 상상력 풍부한 사춘기 소녀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그려내는가 하면, 파편적인 사랑의
기억에 의지해 무력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버텨내려는 로비의 심정을, 어린 나이였던 것을 감안하고도 첫사랑의 배신과 질투에 의한 결과라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브리오니의 행동을 어쩔 수 없이 증오하고 마는 그의 고뇌를 섬세한 남성적 필치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특히, 온전히 사료조사에만
의존한 2부의 전시 퇴각 과정의 에피소드들은 작가 본인조차 경험하지 않았지만 독자들 모두를 처참한 살육현장에 이끌고 와 있는 듯한 현실감으로
책장을 넘기는 손에 속도를 붙게 만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브리오니는 비극적 결말에 자신의 소설로나마 속죄하려
했습니다. 한낯 문학 따위가 무슨 힘이 있을까 싶지만 결국 사건의 발단 역시 한 사람의 상상력에서 기인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그녀의 글이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겠지요. 책 속에는 까무러칠 만한 반전이 몇 번 나오는데요. 아직 읽지 않은 독자분들을 위해 언급하진
않았습니다. 잔잔한 원작의 감동을 충분히 즐기고 싶은 맘에
영화로 각색된
<어톤먼트>도 보지 않았는데 영상화된 이야기는 또 어떨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대장정을 시작하기 전에 책의 길잡이가 될 빨간책방
<속죄>편을 참고하시면 더욱 좋은 독서가 되실 것 같습니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
p.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