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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회 - 현대사회의 감정에 관한 철학에세이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4년 4월
평점 :
먹이를 취하고 있거나 임자(?)가 있는 암컷을 건드리면 으르렁대는 것과 같이 짐승들은 우리 인간과는 달리, 본능적인 분노만을 표출하며 살아갑니다. 살인적 기근이나 천재지변, 전쟁이 닥치지 않는 한 현대인들이 사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그러한 생존의 위협에 따른 분노가 다시 들끓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지만, 이제는 발전된 문화, 가치관, 이념, 이상의 대립으로 집단과 계층, 세대간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소위 정신적 차원의 분노사회가 극에 달한 시대가 눈 앞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화를 내면서도 그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해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 과연 분노란 무엇이고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그 배출구와 해답은 무엇인지 오늘의 책 <분노사회>를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분노는 인간이 언제나 관념을 향해있고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가 되는 감정이다. 만약 한 사회가 분노로 넘쳐나고 있으며, 그 분노가 만성화되어 있고, 심심치 않게 분노가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면, 문제는 그 사회의 관념에서 찾아야 한다. - p.14
분노는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그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관념'의 문제와 밀접하게 닿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 수 없듯, 한 개인이 믿고 추구하려는 관념과 이 사회가 지향하는 관념이 항상 같을 수는 없겠죠. 분노는 바로 그런 사회와 개인이 바라보는 관념의 갭에서 온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정당한 방법이 아닌 무차별적 증오로만 해결하고자 한다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살인, 범죄, 자살과 같은 극단적 파괴로만 치닿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내 주변의 온갖 불만들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고 나와 내 가족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생각과 맹목적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진정한 자신을 보지 못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이미 많이 겪어왔고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유명한 속담이 있죠. 지금 한국엔 수많은 사공(집단과 개인)들이 제각기 자기 목소리만을 높여 서로의 이익을 쌓기 바쁘고 정작 그 목소리를 높인 이유에 대해서는 침묵만이 있는 현실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전후 독재정권 시기를 거쳐 급격한 경제성장의 시기를 지나오기까지 사회적 기반이 되었던 집단주의는 여전히 우리 의식 속에 남아 있어 틈만 나면 편을 가르고 각잡힌 위계질서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로 흐르곤 합니다. 허나 X세대 이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때 지난 고정관념이며 기성세대들에겐 지켜야만 하는 자신들만의 방어벽이라 이들의 갈등으로 인한 분노 역시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특히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집단에 의지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얻고 특정한 반대 집단을 지목해 공격하고 비난하는 현상에 대해 '개인주의의 퇴보'라 일컬으며 지적한 부분은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 사회는 사회대로 떼어놓고 생각하기보다는, 내 삶을 지배하는 분노의 원천인 잘못된 교육 제도나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각자의 영역에서 타개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개인이 사회를 바꾸려는 시도는 무모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시대의 사회란 것도 결국 쪼개놓고 보면 개개인의 모임이니 각자의 의식전환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이유겠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연일 뉴스에서 터져나오는 사건, 사고에 반응하는 요즘 우리들을 보면 나만을 위한 이기적 분노가 아닌 도덕적이고 바른 사회를 위한 정당한 분노에 불씨가 당겨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민 의식이 합리적 수단과 맞물려 사회의 밑바닥부터 바꿔나간다면, 역사적 혁명과 같은 단시간의 변화는 아닐지라도 우리가 바라는 사회상에 조금이나마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요.
우리 각자는 홀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란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의 세포를 이루는 몸은 부모로부터. 성격, 가치관, 꿈, 생활패턴, 바라는 이상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전무하고 그렇게 탄생한 개개인이 모여 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사회와 자신의 연계점을 찾고 바람직한 '내'가 모여 만드는 사회야말로 모든 이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참고로 책의 저자 정지우씨는 팟캐스트 <뼈가 있는 책>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작가인데요. 시대를 정면으로 분석하고 날카롭게 비판한 이 책을 집필했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젊고 당찬 젊은이인 듯 합니다. 목소리만 들어선 30대 중반 내외로 짐작되는데 그의 다른 저서들 또한 깊이가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책과 함께 들어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사회는 개인들이 그 사회를 믿고, 생활 속에서 그 사회를 실현하고 있을 때만 존재한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저 온갖 집단 갈등들로 넘쳐나는 군중집합체밖에 되지 않는다. - p.82
현대 사회 개인의 소외라는 것은 내면을 간직하고자 하는 개인, 그러나 내면의 소통이 차단되어 있는 현실이라는 요소들을 통해 이해되어야 한다. - p.89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분노에 휩싸여 있을 때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면, 거의 반드시 잘못된 우리의 인생 과정, 즉 잘못된 가정교육과 공교육에 지배당해왔던 지난날들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그 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 p.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