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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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노동윤리와 취약계층에 대한 책에 관심이 많다. 알라딘 서핑 중 별점이 괜찮아 고른 책인데 좋다.

작품집엔 8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각각의 이야기는 각ㅇ계의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다. 성소수자, 노동자, 외국인, 여성등.. 최근에 읽은 책 중 <선량한 차별주의자>와 궤를 같이 한다. 사실 지금 내 장바구니에 차 있는 도서의 반 정도가 이런 류의 책인걸 보면 요즘 내 관심사가 부쩍 더 이쪽으로 기운것 같다.

인상깊은 단편은 표제작인 <내 여자친구와 여자친구들>과 <미션>, <물물교환>이었고 특히 <블랙제로>는 종종 핫이슈로 다뤄지는 갑질문화를 꼬집는 것 같았다.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이 아직도 사회적으로 어렵다는 점. 동성연애는 당사자들 외에 지인들과의 관계에서 얼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수 있을까. 개방적이 됐다고 해도 의문이 남는 부분이다. <미션>의 두 주인공은 각자가 직장상사에게 물건처럼 이리저리 쓰임을 당하고 업무시간외에도 항시대기하는 근로자다. 둘은 서로의 직장에 대해선 말을 아끼지만 수아가 미국으로 떠난 뒤 미경 자신 만큼이나 친구 역시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가벼운 공공재처럼 이리저리 굴려가며 쓰여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쓸쓸한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 입장에서 부당함을 고스란히 겪으면서도 막상 피부로 느끼게 되는 건 해고라는 최후통보가 전달되는 순간이 되는 현실, <블랙 제로>는 판매직 여성이 겪는 감정 노동과 고객과 사원이라는 자리에서 오는 당연한 누림과 봉사를 젠더라는 문제와 엮어 거침없이 고발한다. 해설에 쓰여있듯이 작가는 자리가 개인에게 주는 혜택, 지위, 보람, 존재의 확인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그려나간다.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자리. <11번 출구 >와 <나사>는 이렇게 대체가능한 많은 인력 중 하나 일 뿐인 노동자라는 자리의 위태함과 연인사이에서의 불안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회사에 뼈를 묻는다는 일, 몇 십년 근속으로 연금생활을 한다는게 요즘은 참 바보같은 말로 들린다. 아무리 내 일처럼 열심히 해도 하루 아침에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해고될 수 있다는게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현실이 된지 오래다.
오랜만에 좋은 작품집과 작가를 만난 것 같은 기분과 현실과 구분되어지지 않는 소설에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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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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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생 작가, 2005년쯤엔 20대 초중반이었을텐데 이런 상념과 글을 뱉어냈다니 대단하다. 10여년쯤부터 이 책은 알았는데 표지가 맘에 안들어 보지 않았었다.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와 상통하는 이미지이긴 하지만 좀 더 고급스런 디자인이었다면 이 좋은 글을 더 빨리 만나봤을수도.

글을 읽으면서 박민규 작가 특유의 유쾌함과 비슷하다 느꼈고 작품집 속 결핍을 앓고 있는 주인공 모두가 비관적이지만도 않으며 냉소적임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느낌이 좋았다. 특별히 눈길이 가는 단편은 다섯 여자들의 익명적이면서 모두의 삶을 그리는 듯한 '노크하지 않는 집'과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과 무심함을 그린 '나는 편의점에 간다' 였다. 특이할 만한 점은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어딘가 모르게 다들 닮았고 어쩌면 한 사람의 내면이 갈라져 나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작가는 그들 특유의 행동이나 성격, 말투, 소지 물건으로 등장 인물들을 규정한다.

외로움. 그것은 주로 이야기 속에서 엄마 혹은 아버지 한쪽의 부재로 그려지고 있고 하층민인 화자는 삶을 그런대로 살아나간다. 원망도 우울도 없이 가난속에서 어떻게든 버틴다. 그렇지만 문장들은 그들을 연민하게끔 두지 않는다. 통통 튀는 김애란의 문체와 그녀를 거친 그 혹은 그녀의 마음들과 행동들은 어딘지 모르게 진취적이며 발랄하기까지 하다. 소설은 생각지도 못한 사건들과 공감으로 나를 어느새 웃음과 울컥임을 반복케 한다. 또한 정말 현실적인 이야기, 전반에 깔린 우울함에도 기분좋은 여운으로 덮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스카이 콩콩처럼 날아오르고 상상속에서 집 나간 아버지를 달리게 하는 긍정의 에너지가 아닐까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외계인이나 괴물, 포스트잇으로 만들의진 종이물고기 이야기는 그녀의 상상력을 엿볼수 있었고 실제 화제가 된 일화도 있어 신기했다. 평을 보니 장편으로 유명한 작가더라. 바깥은 여름이나 비행운도 스테디던데 지금이라도 얼른 읽어보고 싶어졌다. 간만에 내 취향인 작가를 만난거 같아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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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연습
수잔 최 지음, 공경희 옮김 / 왼쪽주머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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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최초라니 자랑스러우면서도 궁금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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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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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소설이었으나 읽는 내내 기분이 찜찜하고 불편하고 찡그려졌던 책이다. 공동 육아와 출산 장려정책의 일환으로 소설에서 제시되는 가상 주택인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은 언뜻 실현 가능하고 효율적인듯 보였다. 또한 거대한 식탁을 둘러싸고 모인 네 쌍의 가족들은 흔한 우리 이웃 또는 나와 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명 맘충, 오지라퍼, 추파유부남, 백수남편, 소심맘, 진상녀등으로 일컬어지는 캐릭터들. 주먹구구식으로 합의되고 계획된 그들의 공동육아는 비협조적이며 제각각인 일상패턴과 사정으로 흐지부지되고 만다. 소설을 보며 남의 집안일에 왜 이리 간섭과 궁금증은 많은지, 왜 그리 유기농에 집착은 하는거며 유부남이면서 옆집여자에게 추근대는건 무슨 이유에선지, 경제활동을 대신하는 아내에게 도움은 못될 망정, 속도 모르면서 아이 돌보는 건 뒤로 한채 이웃 여자와 노닥거리고... 암튼 중심 인물인 서요진을 제외하곤 내 눈에 정상인 커플은 없는듯 했다. 당근마켓에서 주로 진상인 고객을 보면 30대여자인것이 같은 맥락일까. 교원은 남편의 실직 후 부족한 생활비에 허덕이다 맘카페에서 진상으로 소문나고 블로그에서는 자기 집 자랑과 음식 자랑으로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책을 보며 나는 과연 누구에 가까운 사람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곧 소심한 요진과 궁상에 진상인 교원을 섞은 형태라는걸 곧 인지했다. 돈이 아까워 입에 맞는 거 보단 싼 것에 내 입을 맞추고 사람들 많은 곳에서 기분 나쁜 일을 겪어도 좋은게 좋은거라 넘어가고 참고.. 아파트가 거의 없던 옛날엔 이 같은 갈등이 없었을까. 현대인들의 이기주의가 이렇게 삭막하고 높디 높은 아파트란 공간과 맞물려 종국엔 피도 눈물도 인정도 없는 이 지경에 와 버린 걸까.
원래도 비혼을 생각했지만 이 책을 완독한 후 더욱 출산과 육아 결혼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자가 출산후에 그리고 육아를 겪으며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잃어가고 아이와 가족만을 위해 희생하며 수치라는 것도 차츰 옅어져가는 아줌마라는 단어로 명명되기까지 느껴질 그 허무함도 그리고 있는데 씁쓸한 대목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문장의 호흡이 너무 길고 수식어가 많은 편이며 너무 잘 쓰려 한다는 게 눈에 보였다. 이 작가분 소설은 처음인데 그게 처음엔 매력이었는데 계속되니 문장을 되짚어가며 읽는게 힘들었다. 소재와 문제의식, 현실 풍자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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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동아일보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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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케이프타운. 대학교수인 52세의 이혼남 데이비드 루리는 본인의 수업을 듣는 멜라니라는 여학생과 가졌던 반강제적인 관계가 들통나 교직에서 파면되고 도망치듯 딸 루시의 농장으로 떠나와 그녀와 함께 생활한다. 어느 날, 부녀는 집으로 들이닥친 3인조 흑인 갱들에게 집단 린치와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범인들은 전리품을 챙겨 빼앗은 차를 몰아 달아난다. 루시는 그들 중의 한 아이를 임신하게 되는데 그녀는 이를 신고하지 않고 아이 또한 낳아 기르겠다고 한다. 그리고 땅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지참금으로 하여 이웃의 흑인 페트루스의 셋째 부인이 되어 그 곳에서 계속 살아가길 원한다.

번듯한 외모에 여성편력 끝판왕. 고고한 학자(인 척하는)인 데이비드의 가슴엔 학문에 대한 열의 대신 욕정만이 가득하다. 나이 어린 제자를 건드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뒤에도 형식적인 유죄 인정뿐 진심으로 사과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은 없다. 그러나 딸 루시가 강도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무력하게 그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을 때 비로소 그는 이 땅에서 자행되고 있는 폭력과 범죄를 자신이 저지른 불명예스런 행동과 결부지어 생각하게 된다.

수 백년간 백인들 위주로 흘러갔던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의 모든 정책들은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적폐는 뿌리 뽑혀진다. 그 과정은 결코 조용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루시는 분노를 싸지르듯 자신의 육체에 몸을 부린 그들의 행위를, 유구한 세월동안 겪어야 했던 흑인의 수난을 되돌려 받는 의식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런 무법천지에서 범죄를 피할 길은 단 한가지. 원주민에게 종속됨으로써 그 집단의 보스에게 보호를 받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제자를 유린했고 그의 오랜 기질과 살아온 방식은 그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곧이어 돌아온, 백인이란 이유로 흑인들을 멋대로 부린 것에 대한 보복성 짙은 폭행. 18세기의 프랑스에 혁명의 구름이 몰려들 즈음, 파리 시내를 가로지르는 귀족의 마차가 습격을 당하고 폭동의 불씨가 된 것처럼 그것의 성격은 원한으로 똘똘 뭉쳐 있다.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위계가 허물어지고 모든 것이 혼란에 휩싸인 시대. 작가 존 쿳시는 90년대 만델라 정권 초기의 남아공이라는 특정한 시기와 공간 위에 사건을 펼쳐놓고, 권력의 수직관계가 낳은 오랜 정치적 이념이 전복되는 시점에서 한 가족과 개인의 삶 전체가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며 그 의미를 깊이 통찰한다.

특정 집단에게만 당연한 듯 쏠리던 혜택을 고루 재분배하는 일. 그것은 동물복지나 여성인권문제로까지 확장된다. 가망 없는 개를 안락사시키는 이웃의 일을 돕는 데이비드는 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녀석들의 모습에 투영된 자신을 본다. 저항없이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개들. 루시는 저들처럼 되려는가. 자신 또한 그래야만 하나. 원치 않는 생명과 함께 이질적 집단에 묻혀 살아가는 것. 그러한 극단적 방법은 나로썬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것이지만 그녀에겐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일이자 패배는 아닌, 일종의 타협인가 싶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최근의 월드컵 개최국이란 것만 빼면 내겐 너무도 낯선 나라다. 인종 차별 정책. 그것은 경험이 아닌 내 머릿속에 학습으로만 자리한 관습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을 가깝게 느끼려면 관련 문학을 읽어야 한다. 쿳시의 다른 책을 찾아 보니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를 다룬 비슷한 성향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대개의 소재가 읽기 불편하고 심각한 반면, 문장은 아름답고 단순명료하며 덤덤하다. 근래에 읽은 소설들 모두가 '윤리'라는 큰 틀에서 해석된 것에 비교해 보면 이 책의 내용 역시 같은 카테고리로 묶여져 고통스럽지만 마주해야 할 것들 중 하나로 자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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