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이다. 사실 제목만 보고선 그닥 흥미가 일진 않았는데 다 읽고 나선 간만에 좋은 작가를 알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음집의 맨 앞에 자리한 이 작품은 단독으로 리뷰를 써도 좋을 만큼 글감으로써 가치가 있다. 소설을 아우르는 문제의식은 명확했고 그것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이 고민해야 마땅할 시대의 숙제같은 것이기도 하다. 젠더이슈, 페미니즘, 도덕적 기업, 윤리적 소비, 역사 바로알기 등 당장 떠오르는 키워드만으로도 전투적 토론이 끝없이 오갈 것 같은 다소 민감한 주제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짤막한 단편 속에 나열해 놓고 작가는 말을 아꼈다.
좋아하는 한국 가수를 좇아 타국살이를 하면서도 정작 불편한 한일관계의 역사적 내부사정은 알지 못한 채 소녀상과 위안부 집회 무리의 한 가운데 처참히 세워진 일본여성 세실. 본인의 의지가 일부 반영된 행위였다. 허나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난 후엔, 뉴올리언스에서 겪은 마르디 그라의 치욕을 되새기며 수치심에 몸을 떠는 주희의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자신의 외증조모가 전쟁 영웅이었다는, 윤색된 신화에 젖어 살았던 천진한 이방인은 그제서야 역사의 진실을 알고 뒤늦은 참회를 하였을까. 아니면 믿고 싶은 것만 믿었던 자신을 끝까지 밀고 나갔을까.
세실이 그토록 선망하는 k-pop의 발원지인 한국. 주희는 자신이 바로 그 한국인이란 것에 일종의 권력이 부여되고 뒤따르는 우월적 위치가 세실을 더욱 기죽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이 동경하고 닮고 싶어했던 J에게 가졌던 마음과 같았기에 마냥 좋진 않았다. 절대적인 주체란 없고, 때문에 민족이나 성별, 역사적 지식과 입장이 서로 다르듯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저마다의 이름을 바꿔 갖게 될 것이므로.
현지 문화에 대한 정보 없이 그저 가만히 '그 곳에 서 있기만 했던' 주희와 세실은 본인들의 무지로,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침투한 자신들과 이질적인 주변집단과의 충돌에 그저 멍하니 침묵 속의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괜찮다고, 따라가고 싶다고 했던 그녀들은 자신들의 앞에 닥친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호기심에 따라나섰던 본인을 자책할 뿐.
화장품 관련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주희는 본인이 '일본 남자들이 좋아할 타입'으로 귀엽게 생겼단 얘기와 성형 의혹에 발끈한다. 단순히 예쁘다는 말과는 뉘앙스가 다른, 일본에서의 여성 상품화를 떠올리게 하는 그 속 뜻이 왠지 거북했기 때문이리라. 이것은 요즘 떠오르는 미투운동과, 성희롱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뜨거운 화두 또한 생각나게 했다.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이데올로기에 한 점의 의심없이 무작정 경도되는 것. 이것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알 수 없는 곳에 내던져져 의도치 않았던 돌발상황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오늘날 이보다 더 시의적절한 주제를 간략히 함의하고 있는 소설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