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중단편전집 출간 기념 수상작 모음집 이문열 중단편전집
이문열 지음,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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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문열 작가의 1979년 신춘문예 수상작이다. 이 작품은 여자인 내가 체험해보지 못한 '군대'라는 대부분의 남성들만이 아는 세상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전상황에 튀어나오는 특정 용어나 소속, 계급 등에 따라 달리 불리워지는 인물의 호칭 역시 익숙치 않아 독서에 난항을 겪었다. 배경은, 훈련도 실전처럼 살벌했던 1970년대의 한 전방부대. 제각기 하던 일을 멈추고 나라의 부름을 받아 달려온 대한의 남아들은 학력, 나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회에서의 모든 이름표는 떼어진 채 새로운 신분으로 정렬된 상태다. 어떤 이는 이 점을 악용하여 늦깎이 후임을 하대하고 더러는 이것이 하극상과 군대 부적응이라는 감정의 골로 치닫기도 한다.

먹고 자고 향락을 즐기는 것까지 어느 하나 자유로운 게 없는 이 곳. 원칙과 규율 아래 거세된 그들의 욕구는 서로의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농과 함께 웃프게 삼켜야 할 어떤 것이 되버렸다. 그런 허무에서 비롯된 자기 방기. 이른 바 '병사의 절망'이란 말은 짐짓 가슴을 누른다. 작중 이 중위는, 이러한 사병들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심 소위의 평소 질 나쁜 행실에 분개해 그를 치려 했던 강 병장에게 장교 신분으로써 느껴지는 어쩔수 없는 모욕감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군대라고 하면 무기 사용만을 떠올리던 때도 옛말이다. 취사병이 되어 총이 아닌 칼을 놀리는 이가 있듯 작금의 군대란 세분화된 병과 내에서 각자 나름의 반복 작업을 무한 지속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말이다.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오늘도 자행되고 있는 현대전의 실상. 그 속엔 작은 점과 같은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다수의 무리가 있을 뿐 뛰어난 지식인도 별 소용없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노병 박 상병과 팔방미인 강 병장이 말한 무력감은, 이러한 자신이 맡은 바 임무나 계급에 국한된 것 이상을 보일 수 없는 현실에서 오는 자괴감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오늘날 군 생활이 시간 낭비란 생각 역시, 다수의 고학력 출신자들이 단순 노동에 투입되어 재능과 시간을 썩혀야 하는 불합리한 매커니즘에 대한 저항이니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병사의 절망'은 여전히 잔재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난 경험해보지도 못한 '병사의 절망'이란 문구 앞에 격한 공감을 했나. 그것은 나 역시 사회 집단 곳곳에서 느껴본 그 비슷한 감정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이 상징하는 억압, 복종이 상황 자체를 과장하여 드러낼 뿐, 이 또한 위계질서가 갖춰진 조직 속 개인들 누구나가 겪어본 불편한 관례가 아닌가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병영 내 사건 사고는 모두 실제 전투에서가 아닌 병사들 간의 갈등이나 헤어진 연인 혹은 과감한 월북 기도로 단행된 극단적 선택인 것을 두고 보면, 제도가 만들어진 목적은 온데 간데 없고 그 허울만 남겨진 게 오래 전부터의 일이란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지울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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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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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 표지가 인상적이다. 저자인 아멜리 노통브의 젊었을 적 모습인데 그걸 알면서도 작품 속 크리스타와 자연스레 겹쳐 보였다. 요즘 말로 인싸. 그 중에서도 대학 내 열 일곱 또래들의 꽃. 자칭 아싸인 블랑슈가 봐도 그랬다. 인기 많은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어 말을 걸어 볼까 했는데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 새 방은 크리스타의 물건들로 점령됐고 부모님은 새 식구가 된 그녀의 매력에 빠진지 오래. 모사꾼에게 제대로 구워 삶긴 두 창조주는 야속하게도 집안에서조차 블랑슈를 아싸로 만들고 말았다.

가증스러운 것! 책에 심취한 나는 몇 번이고 속으로 외쳤다. 그러게 첨부터 집에 데려와 재워준다는 둥 쓸데없는 호의를 베풀지 말았어야지, 통학 거리가 멀든 말든 그게 블랑슈 너랑 무슨 상관이지? 저런 계집애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구. 이 오지랖 넓은 호구같으니. 하지만 내 충고완 반대로 이 한량없는 소녀의 자의식은 대단했다. 상대를 골라가며 갖은 아양을 떨고 관종에 허언증으로 무장한, 이 강력한 적에게 살의에 가득찬 증오를 느끼다가도 한편으론 십 수년의 고독에 잠긴 자신을 꺼내어 신세계의 쾌락을 맛보게 해준 것에 대해 구원자로써 고마움을 느낀다.

넌 너무 예민해! 맨날 방구석에 쳐박혀서 책만 읽고 몽상따위만 하니 친구가 있을 턱이 없잖아? 그렇다고 저런 친굴 원한 건 아냐! 멈출 수 없는 자기혐오와 머릿 속 대 혼란. 그 와중에도 침입자의 추종자와 노예들은 늘어만 간다.

분명 현실에서도 이런 배은망덕함으로 똘똘 뭉친 맹랑한 것들은 어디든 존재한다. 특히 어린 여자들 무리 속에서. 그래서 더 화가 나고 몰입이 된다. 내 학창 시절을 조금만 더듬어 봐도 내 자신이 블랑슈였던, 혹은 또 다른 블랑슈와 크리스타들을 관조한 경험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내가 아끼던 펜자루가 어느 날 그 아이의 필통에 들어가 있던 날, 좋은 친구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엄친딸의 뜻밖의 도벽에 난 그걸 모두에게 공표하는 대신 조용히 똑같은 방법으로 다시 내 것으로 만들었다. 왜? 그 부모는 같은 일이 생겨도 매번 감싸기 바빴으니 미칠 노릇이었거든.

복수해버려! 속 시원한 사이다는 아니었지만 자기도취에 빠진 족속들에겐 역시 무반응이 답이었다. 그리고 속속 밝혀지는 진실들. 아냐!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허언증 환자의 벗겨진 가면을 보고도 그녀를 끝까지 대변하려는 속터지는 블랑슈의 부모들. 당신들과 당신 딸이 그동안 악마에게 농락당한거라구, 이 답답한 양반들아. 아직도 모르겠어? 난 절대 블랑슈 쪽에 감정이입이 됐다고 하지만 확신할 순 없다. 누구에겐 크리스타였던 적이 있을지도. 혹은 그 중간 어디쯤이었나. 그건 나의 블랑슈만이 알 수 있을 테지.

태풍이 지나간 자리. 크리스타가 휘젓고 간 집과 블랑슈의 공간엔 많은 균열이 남았지만 그것은 얼마전까지 그녀가 누리고 있던 고요함과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심해 속 모든 것이 뒤집히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잔잔한 일상으로 복귀한 후, 블랑슈의 마음 속 깊숙이 오래 자리해왔던 지독한 자기혐오와 바닥치던 자존감이 조금은 회복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나 역시 그랬던 것처럼.
세번째 재독.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처음인데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좀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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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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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기발하고 발칙한 상상력 그리고 주인공의 섬뜩한 재능이 무섭고도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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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뉴스의 나라 - 우리는 왜 뉴스를 믿지 못하게 되었나
조윤호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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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한국판같은 느낌이네요. 내용이 대략 짐작은 가는데 똑똑한 대중만이 뉴스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건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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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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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호기심을 유발하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이 책의 한국어 표제는 많은 독자들이 작품을 찾아보게 하고 입소문이 퍼진 원동력이 된 것 같다. 해석 여하에 따라 결국 예감은 틀렸다고도 할 수 있고 맞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든 이들의 찬사를 받고 만장일치로 영국 최고 권위의 맨부커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던 이 책이 또한 나에게는 수상작 징크스(?)같은 울렁증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한마디로 재밌었지만 쉽지 않았다는 얘기.


첫번째 일독. 무작정 읽어나갔다. 보통 소설을 읽는다고 하면 초반부는 작가의 캐릭터 설정과 시대배경 설명으로 그리 집중하지 않고 훑듯이 읽는데 여기선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역사 시간에 교수와 학생들이 주고 받는 문답이나, 하다 못해 다들 천치라고 여기는 마셜 군의 엉뚱한 대답에서도 복선이 있다. 똑똑한 전학생 에이드리언이 가담한 사총사는 입만 열면 철학 운운하며 치기 어린 지적 허세가 하늘을 찌른다. 심지어 롭슨의 자살 소식 앞에서도. 소설 속 화자인 토니는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한 수위인 에이드리언을 동경하고 경외한다.


어느 날 그는 여친 베로니카의 집에 초대받게 되어 그녀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뭔가 찜찜한 굴욕적인 감정을 맛보지만 그 핵심의 실체는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녀를 그의 패거리에게 소개시킨다. 그러나 베로니카와의 관계가 흐지부지하게 되고 헤어졌다고 말해도 좋을 그런 시점에서 에이드리언으로부터 베로니카와 교제 중이라는 편지를 받는다. 토니는 인상적인 엽서에 쿨하게 잘 지내보라고 답장했고 그걸로 두 사람은 그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세월은 흐르고, 환갑을 넘긴 토니 웹스터에게 어느 날 날아든 편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 포드. 베로니카도 아니고 그녀의 엄마가 무슨 일로? 이유 모를 약간의 돈과 그의 앞으로 남겨졌다는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은 40년만에 베로니카와의 재회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참 나도 주인공처럼 무지한 독자인지 '아직도 감을 못 잡았느냐'는 알 수 없는 베로니카의 일침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그녀로부터 건네받은 오래전 토니의 답장 내용을 본 순간 사람의 기억이란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 속에는 그의 기억과 달리 형언할 수 없는 둘에 대한 악담과 저주가 퍼부어져 있었고 이는 지난 날 묘연했던 에이드리언의 죽음, 토니의 말론 그리스적이라고 했었나? 논리적 사고의 결정판이라고 했었나?(나도 기억이 가물가물...) 암튼 그렇게 젊은 날 요절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가 어쩌면 자기가 무심코 내뱉은 말로 인해 자살이라는 절벽 아래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친다. 되돌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진실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토니는 그러나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망함에 회한과 죄책감으로 깊은 무력감에 빠지고 만다.


사람은 자기에게 유리한 기억만을 편집해 고스란히 간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가령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푼 행동은 길게 또렷이 기억하는 반면, 도움을 받은 것은 그닥 소중한 기억으로 저장하지 않는다든가, 같은 상황에 노출되어 있던 사건의 목격자들의 진술이 서로 상이한 점등... 

책을 읽다 보면 철학적 유머나 작가의 풍부한 지식도 엿볼 수 있고 무엇보다 소설의 장르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반전과 교훈이 맛깔나게 버무려져 짧은 시간에도 유익한 독서를 했다는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예견대로 나 또한 이 책을 최근에 읽은 책 중엔 유일하게 2번 읽었다. 그래도 아직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줄리언 반스의 매력을 가늠하기엔 충분한 작품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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