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꿈이었을까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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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꿈이었을까>는 단지 작가 은희경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읽기 시작한 소설이다.  다른 어떤 정보도 없이 제목만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사람일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애가 타고 답답하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안타깝다'라는 감정에 몰입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띠지에 큼지막하게 써있는 '은희경의 첫 연애소설'이라는 문구 때문에 더더욱 그 감정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이 소설은 연애소설이다'라고 인식하면서 읽어서일까.  지극히 담담하게 그려져 있는 주인공 준과 소녀의 사랑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준은 소녀를 그리워하고 찾길 원한다.  그러나 그녀가 누군지도, 어딜 가야 만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인지 조차 확신할 수 없는 준은 어느새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한 후 변화 없고 무감각한 생활에 적응해 가는 듯 보였다.  소중한 것을 되찾기 위해, 변화를 위해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할지를 모르는 전형적인 인물로 보이는 준의 무력한 모습이 답답하게 보이고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꿈을, 그리움을 가슴 한구석으로 밀쳐버리고 현실에 타협해 버린 준이 한없이 불쌍하게 보였다.

 

'꿈'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꿈에서 본 소녀를 현실에서 만나고, 현실에서 사라진 그 소녀를 다시 꿈속에서 만난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 주인공의 삶은 낯설 거리를 헤매기 시작하고, 주인공의 정신은 혼돈을 경험한다.  소설에는 안개가 등장한다.  안개가 낀 날은 앞이 보일 듯 보일 듯 보이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게 만든다.  뻥 뚫린 미래를 보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희망일 뿐이다.  주인공 준은 안개처럼 꽉 막혀 있던 답답함이 자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것으로부터 기인함을 드디어 알아차린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친구도 사랑하는 여인도 곁에 없고, 꿈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준은 마지막으로 내달린다.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바꿔서 부르고 싶다.  '그것은 꿈이었을까'를 '그것은 그리움일까'로 말이다.  정확한 이유는 댈 수 없지만 떠올리면 가슴이 저릿해져 오고, 어디서부터 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심결에 울컥 터져 나오는 눈물로 당황스러울 때.  바로 이럴 때 잃어버린 꿈이 그리워지는 때가 아닐까.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내 꿈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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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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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이 내게로 오게 된 과정은 아주 단순하다.  어느 날 친구가 스무 권의 책을 골라 놓은 후 그중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 두 권을 고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아주 빠른 동작으로 두 권의 책을 골랐다.  그 때는 아주 흥분한 상태여서 이것저것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뿐 아니라, 혹시나 친구의 마음이 변하지나 않을까하는 얼토당토않은 순간의 의심이 두뇌회전을 방해했기 때문에 책에 관한 다른 정보를 훑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단순히 제목만으로 내게 주어진 기회를 사용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고른 두 권의 책 중 한 권이 <고향사진관>이 되었다.

 

<고향사진관>이란 제목을 봤을 때 나는 훈훈하고 뜨끈한 시골 마을을 떠올렸다.  '고향사진관'은 시골 마을의 사랑방 같은 존재일 것 같았고, 그곳에 들어가면 기쁘고 즐거운 추억만 간직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느낌은 제대로 된 판단일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나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벌써 내 손을 떠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책이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아주 시무룩해있었다.

 

책을 받고서 보니 <고향사진관>을 쓴 작가가 지금으로부터 십 삼년 전에 읽었던 소설 <아버지>의 저자 김정현이었다.  어떻게 몰라볼 수가 있었을까.  놀랍고 미안한 마음이 한동안 내 안에 머물러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이지만 <아버지>를 읽으면서 가슴은 먹먹하고 목울대가 뜨거워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향사진관>의 표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서글픈 생각이 불쑥 튀어 올라왔다.  왜 이렇게 쓸쓸해 보이는 걸까.

 

<고향사진관>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 진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가 만들어 낸 상상 속의 인물이 아닌, 내가 숨 쉬는 세상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의 삶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움도 쓸쓸함도 모두 곱으로 아프게 느껴졌다.  소설의 주인공 용준은 17년 동안 뇌사 상태에 빠져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돌보다 짧은 인생을 마감하는데, 그가 아버지를 지켰듯 마지막까지 지키길 원했고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지켜낸 장소가 바로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있는 고향사진관이다. 

 

내 이익이, 내 감정이 가장 우선시 되는 세상에서 용준과 같은 사람을 가리켜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바보 같이 왜 그러고 살아.  한번뿐인 삶 후회 없이 살아봐야지.'  그렇다면 후회 없는 삶이란 무엇이고, 현명하게 사는 건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하는 걸까.  용준은 제대하기 직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는 전갈을 받는다.  그래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제대 후 군말 없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고향 부모님 곁을 지키기 위해 학업을 중간에 접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랑도 못해봤다는 아쉬움과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열정을 가슴에 묻었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처음에는 이런 생활이 몇 년 안에 끝나겠거니 끔찍한 생각도 떠올린 적이 있었다.  갈등은 점점 더 깊어졌지만, 그 깊이만큼 아버지를 이해하는 감정 또한 더 깊어져갔다.  그래서 그를 지켜보는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커져가는 것과 반대로, 정작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인생이 슬프지만은 않다고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온갖 상념들을, 마음이 흘러넘치는 그릇인양 담기만 해서일까.  그의 몸은 허물어져갔다.

 

주인공 용준의 모든 행동에서는 진정한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대충 하는 척만 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게 모든 행동에서 느껴진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사는 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건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삶을, 내 인생을 빛나게 그리고 가치 있게 만드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니까.  진심으로, 진정으로 삶을 대하는 자세가 가장 먼저여야 한다는 것.  저자가 슬픔을 무릅쓰고 친구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 이유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리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기 전 꼭 준비해야 할 게 있다.  바로 손수건.  갑자기 눈에 고이는 눈물, 갑자기 뚝뚝 흐르는 눈물은 책을 구입할 때 따라오는 기본옵션과도 같으니 억지로 참으려고 하지 말길.  그의 아름다운 마음은 이 책과 함께 세상에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 지는 것 같다.  <고향사진관>을 알게 돼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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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1
스제펑 지음, 차혜정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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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은 중국 후한 말기에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 원소를 무찌르고 화북을 평정한 후 약 18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한 조조를 적벽에서 무찌르고 대승을 거둔 전투를 말한다.  스제펑의 소설로 두 권으로 분철되어 북스토리에서 출간된 <적벽대전 1, 2>는 주유와 제갈량 그리고 조조의 빛나는 지략대결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로 알려진 적벽대전을 그리고 있다.  소설의 첫 번째는 유비와 손권이 동맹을 맺게 되기까지를, 두 번째는 전쟁을 시작하기 전 대치상황에서 상대편을 교란시켜서 더 나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심리전(반간계)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오래 전 삼국지를 읽었었지만 적벽대전에서 주유와 제갈량 그리고 조조가 어떤 전략을 썼었는지 기억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삼국지를 떠올리면 지루하다는 기억만 남아있었는데 소설 <적벽대전 1, 2>를 읽으면서 그들의 두뇌싸움이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로운지, 나아가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얼마나 멋있는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소설 <적벽대전>이 더 재미있는 이유는 또 있다.  소설에서는 조조가 욕심을 내는 두 여인이 등장한다.  두 여인은 손견과 주유의 부인으로, 조조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두 여인을 빼앗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잠깐의 실수로 전쟁에서 패할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여인을 등장시켜 로맨스를 만들어내는데, 잠깐씩 등장하는 그 로맨스는 감초역할을 하면서 소설을 더 생동감 넘치게 만든다.
 
스제펑의 소설을 원작으로 오우삼 감독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난 영화 [적벽대전]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오우삼 감독만의 색채를 담은 영화는 소설에서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던 팽팽한 긴장감과 100만 조조 대군의 위용을 맘껏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영화는 비주얼이 강하게 작용하는 특성상 소설에서 밋밋했던 전쟁장면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실감나고 박진감 넘치게 연출하였고, 틀에 박힌 듯 느껴지는 등장인물들의 이미지도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이미지로 재탄생시켰다.
 
영화가 소설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전쟁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두 여인을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미비하게 언급되었던 주유의 아내 소교와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이 그들이다.  그들의 활약은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경쾌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전환시키기도 하며, 때로는 가슴 졸이는 상황에서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상황으로 내몰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그들의 활약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적벽대전 2부 - 최후의 결전]에서 마지막 30분가량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시종일관 멋진 미소를 날리는 제갈량도 멋있었지만, 칼을 휘두르며 날아오르는 조운과 주유의 매력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소설과 영화의 등장으로 벌겋게 불타오르는 적벽처럼 삼국지의 열기도 다시 뜨거워질 것 같다.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은 워낙 완벽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기에 소설을 읽지 않아도 영화를 감상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원작소설과 영화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므로, 각각의 매력을 따로 느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된다.  스제펑의 소설 <적벽대전>과 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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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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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관심을 가지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배우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출연한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이다.  소설의 제목에 익숙해진 후 작품의 저자를 알게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내가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두 번째 이유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만나겠지 생각만 하면서 뒤로 미루기만 했던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만남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이 책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시작으로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 총 11편이 수록되어 있다.  나는 11편의 소설을 읽은 후 한참을 멍하니 있어야만 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작품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은 후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곤 하는데, 이 소설들을 통해서는 도무지 떠오르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각해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민을 해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하나만 놓고 보아도 소설보다 영화에서 더 깊이 있는 울림을 느꼈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니 소설보다 영화가 더 좋다고 느낀 때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11편의 소설을 난해하다고 해야 할지, 황당하다고 해야 할지, 독특하다고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겠다.  그동안 접했던 스콧 피츠제럴드의 명성을 볼 때, 내가 이 작품들에서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건 아직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조금 우울해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가끔 시간이 흐른 후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줄일 수 있다.  정말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 작품이기 때문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기 때문이거나.  이 책은 두 번째 이유 때문이다.  더 나이가 들고, 더 많은 작품을 접해서, 작품을 이해하는 수준이 더 높아졌을 때, 그 때는 피츠제럴드의 소설이 지금과는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싶다.  이 기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는 작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작가로 기억되는 작가를 나 역시 그렇게 느끼고, 기억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이 마지막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 글을 맺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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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의 죽음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1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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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예제도는 폐지되어 이제는 인간이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사고 팔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노예제도가 사라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구'로 사용되어 지면서 고통 받았었는지 지금의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과거의 자료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노예제도의 비판 나아가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나 소설 등을 그동안 많이 접해 보았다.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고, 누군가의 통제없이 당당하게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었는데, 이 책 또한 그 맥락을 잇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주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되어 지고 있다.  그리고 스파르타쿠스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의 시선,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되어 지기도 한다.  이러한 독특한 시선 처리는 저자가 그려내고자 하는 스파르타쿠스를 독자가 더 가까이 느끼는데 도움을 주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고 느꼈으며, 이 작품의 사실적,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데 기여한다고 느꼈다.

 

스파르타쿠스는 트라키아의 무사이며 메디아족의 왕자였다.  그는 로마인들에게 붙들려 노예시장에서 검투사로 팔린다.  이탈리아 카푸아의 노예 검투사 양성소에 소속된 검투사로 생활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자를 죽여야 한다는 것, 그러나 정작 자신의 목숨은 또 다른 자의 손가락 위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그래서 자유를 찾아 70여명의 동료 노예들과 함께 양성소를 탈출한다.  정부에서 보낸 진압군 보병 3,000명과 싸워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양치기들과 소치는 사람들, 가난한 남자들과 여자들, 아이들, 다른 지역의 검투사들까지 그들과 합류하여 수천명으로 늘어난다.  계속되는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그리고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자유민들을 위해 스파르타쿠스는 통제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그것 또한 쉽지가 않다.  남이탈리아에서 시칠리아 섬으로 건너가려다가 실패한 후, 마지막 전투를 준비한다.

 

저자는 고대 로마를 움직이는 경제적 동력이었던 노예세계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지도자, 고뇌하는 지도자로 스파르타쿠스를 그려내고 있다.  한 계층의 자유와 안락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계층에게 고통과 억압을 강요하여 이루어낸 거대한 문화 유산 로마.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으로 로마에 도전하는 세력은 사라졌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바라던데로 그들의 정신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있다.  그는 아직도 이 세상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기억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승리를 요구하는게 아니라, 단지 우리가 꿈꾸고 바라고 이루었던 것을 사람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랄뿐이다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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