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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무엇을 따라 여기까지 왔을까..?
내가 포함되어 있는 세상의 모습을 마치 제3자의 눈길처럼 무감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가능해 질 만큼 시간이 흘렀을 때, 쓸쓸하다는 느낌으로 가슴이 사무치는 대상을 단 하나로 꼽을 수 있을까. 지나고 보면 애정을 쏟을 만한 의미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듯 보이지만 그 시간에 존재하는 내게는 삶의 전부라 칭하여도 아깝지 않은 대상을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으리라. 이 작품은 과거, 나의 시간으로 존재하던 때, 내게는 무엇이 소중했는지를 회상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1980년대 중반을 살아가는 은호의 고등학교 시절 3년의 시간이 담겨져 있다. 그 시절 은호의 가슴 속에는 온통 은수로 가득 차 있다. 교실에서 아무 존재감도 없는 은호와 달리 은수는 반장이고 얼굴까지 예쁘다. 은호는 은수의 눈에 띄기 위해 기타를 배운다. 오직 기타만 친다. 다음 해에는 문예반에 가입하고 오직 책만 읽는다. 3학년에 올라 갈 무렵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에는 은수와 대등한 위치에 이르렀다는 심적 자신감을 얻는다. 하지만 은수의 대답은 '미안해'였고 은호는 커다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은호가 은수에게 다가가기 위해 한 걸음 내딛을 때 마다 은호 옆에는 현주가 있다. 현주는 은수처럼 공부도 잘하고 예쁘지만 은수와 달리 은호에게 친절하다. 입시를 치른 후 현주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만 은호 역시 현주에게 우정 이상을 줄 수는 없다. 현주도 상실감을 느낀다.
삼 년이라는 긴 시간이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기쁨은 순간이었고 남아 있는 것은 끝간 데 없는 공허함뿐이다. p235
은호와 현주는 자신들의 마음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여기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자신들이 원해서 오게 된 길이란 것만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세월이 흘러 그 때의 기억이 모두 흐릿해졌어도 쓸쓸한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으리라. 소유하지 못한 감정과 시간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끼게 하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제각기 다 자신의 시절이 있다. p211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은 소설의 구성이 테이프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언제 녹음해두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테이프를 앞으로 감다 보면(rewind) 과거의 기억으로 차츰 가까워진다. 그리고 송창식의 노래 열 곡과 보너스 트랙으로 녹음되어 있는 산울림의 노래 한 곡을 들으면 과거의 기억을 모두 되찾게 된다. 마지막으로 테이프를 정지(stop) 시키고 전원을 끄면(power off)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내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따라 여기까지 왔느냐고. 역시 지금도 명확한 해답은 찾을 수 없다. 아쉬움만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