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내게로 오게 된 과정은 아주 단순하다.  어느 날 친구가 스무 권의 책을 골라 놓은 후 그중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 두 권을 고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아주 빠른 동작으로 두 권의 책을 골랐다.  그 때는 아주 흥분한 상태여서 이것저것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뿐 아니라, 혹시나 친구의 마음이 변하지나 않을까하는 얼토당토않은 순간의 의심이 두뇌회전을 방해했기 때문에 책에 관한 다른 정보를 훑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단순히 제목만으로 내게 주어진 기회를 사용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고른 두 권의 책 중 한 권이 <고향사진관>이 되었다.

 

<고향사진관>이란 제목을 봤을 때 나는 훈훈하고 뜨끈한 시골 마을을 떠올렸다.  '고향사진관'은 시골 마을의 사랑방 같은 존재일 것 같았고, 그곳에 들어가면 기쁘고 즐거운 추억만 간직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느낌은 제대로 된 판단일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나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벌써 내 손을 떠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책이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아주 시무룩해있었다.

 

책을 받고서 보니 <고향사진관>을 쓴 작가가 지금으로부터 십 삼년 전에 읽었던 소설 <아버지>의 저자 김정현이었다.  어떻게 몰라볼 수가 있었을까.  놀랍고 미안한 마음이 한동안 내 안에 머물러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 전이지만 <아버지>를 읽으면서 가슴은 먹먹하고 목울대가 뜨거워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향사진관>의 표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서글픈 생각이 불쑥 튀어 올라왔다.  왜 이렇게 쓸쓸해 보이는 걸까.

 

<고향사진관>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 진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가 만들어 낸 상상 속의 인물이 아닌, 내가 숨 쉬는 세상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의 삶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움도 쓸쓸함도 모두 곱으로 아프게 느껴졌다.  소설의 주인공 용준은 17년 동안 뇌사 상태에 빠져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돌보다 짧은 인생을 마감하는데, 그가 아버지를 지켰듯 마지막까지 지키길 원했고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지켜낸 장소가 바로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있는 고향사진관이다. 

 

내 이익이, 내 감정이 가장 우선시 되는 세상에서 용준과 같은 사람을 가리켜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바보 같이 왜 그러고 살아.  한번뿐인 삶 후회 없이 살아봐야지.'  그렇다면 후회 없는 삶이란 무엇이고, 현명하게 사는 건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하는 걸까.  용준은 제대하기 직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는 전갈을 받는다.  그래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제대 후 군말 없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는 고향 부모님 곁을 지키기 위해 학업을 중간에 접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랑도 못해봤다는 아쉬움과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열정을 가슴에 묻었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처음에는 이런 생활이 몇 년 안에 끝나겠거니 끔찍한 생각도 떠올린 적이 있었다.  갈등은 점점 더 깊어졌지만, 그 깊이만큼 아버지를 이해하는 감정 또한 더 깊어져갔다.  그래서 그를 지켜보는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커져가는 것과 반대로, 정작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인생이 슬프지만은 않다고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온갖 상념들을, 마음이 흘러넘치는 그릇인양 담기만 해서일까.  그의 몸은 허물어져갔다.

 

주인공 용준의 모든 행동에서는 진정한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대충 하는 척만 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게 모든 행동에서 느껴진다.  어디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사는 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건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삶을, 내 인생을 빛나게 그리고 가치 있게 만드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니까.  진심으로, 진정으로 삶을 대하는 자세가 가장 먼저여야 한다는 것.  저자가 슬픔을 무릅쓰고 친구의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 이유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리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기 전 꼭 준비해야 할 게 있다.  바로 손수건.  갑자기 눈에 고이는 눈물, 갑자기 뚝뚝 흐르는 눈물은 책을 구입할 때 따라오는 기본옵션과도 같으니 억지로 참으려고 하지 말길.  그의 아름다운 마음은 이 책과 함께 세상에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 지는 것 같다.  <고향사진관>을 알게 돼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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