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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왕이 된 남자
이주호.황조윤 지음 / 걷는나무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조선 15대 왕 광해군은 역사적인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과거에는 광해군의 과오를 집중 조명했다면, 오늘날에는 광해군의 공과를 모두 감안하여 그가 정치적으로 희생된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시선과 부정적인 시선이 대립된다. 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광해를 바라보자면, 대동법을 골자로 한 조세 개혁을 시도하였고 명과 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추구하려했던 현실적인 왕의 모습보다는 인조반정으로 쫓겨 난 이후 홀로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지켜보았을 그의 삶에 더 애착을 느낀다. 폐위된 뒤 그 오랜 세월을 광해는 무엇으로 견딜 수 있었을까, 그 시간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9.7. 걷는나무)》는 두 명의 다른 광해를 등장시킨다. 궁에서 나고 자라 정치의 속성을 뼛속 깊이 알고 있는 왕 광해와 양귀비를 태운 연기를 마신 뒤 정신을 잃은 광해 대신 왕좌에 앉게 된 광대 하선이 주인공이다. 정치를 아는 광해와 정치를 모르는 하선, 두 인물은 자신이 바라는 정치를 하기 위해 너무도 다른 행동과 선택을 한다. 정치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지만 소극적인 왕과 정치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적극적인 왕, 소설 속 두 명의 다른 왕을 보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왕(지도자)은 누굴까 고민하게 된다. 또한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실제 광해는 소설 속 진짜와 가짜 왕 중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울지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광해와 하선 두 명의 왕은 실제로 광해가 현실과 이상을 오가며 진정한 왕이 되길 꿈꾸었던 하나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왕이 되었지만 말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광해군일기」 1616년 2월 28일 기록에 남아 있는 이 말로부터 시작된다. “可諱之事 勿出朝報 : 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 광해군일기 중 15일치 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대전제인 ‘15일치 광해군일기 실종’은 완전한 허구(조선일보, 2012.10.3. p.17)다. 소설 속 이야기 중 무엇이 사실인지, 무엇이 상상인지 제대로 인지한 뒤 읽기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반응이 뜨겁다. 나는 소설을 읽은 뒤 추석에 가족들과 함께 두 명의 광해를 만나고 왔다. 영화에서의 두 명의 광해는 원하는 바를 얻는 것으로 끝맺는다. 소설과 다른 결말에 실망하진 않았다. 소설과 영화에서 각각 다르게 그려낸 결말은, 소설과 영화라는 다른 장르에 어울린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개시의 인물’을 다르게 표현한 부분은 아쉽다. 진짜 광해의 심리상태는 어떠했을까,로 부터 그는 어떤 인물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부분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진짜 광해와 가짜 광해 중 어느 쪽이 더 실제 광해와 닮았을까가 무척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