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에는 오소희 작가의 여행에세이를 좋아하는 책벌레들이 여럿 있다.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우선 함께 동행 하는 이가 작가의 어린 아들이라는 점이 흥미롭고 작가의 서정적인 글쓰기는 여행에세이란 테마를 더 깊은 여운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주변의 오소희 작가의 무한 예찬론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 그와의 인연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새 책이 출간되었고, 때마침 아직까지도 낯선 나라로 여겨지는 남미여행기라니 기대와 궁금증이 폭발할 수밖에.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2013.1.9. 북하우스)》은 오소희 작가와 아들 JB가 남미로 함께 떠난 ‘남미여행기 1부’으로, 페루 리마에서 출발해 볼리비아와 브라질을 거쳐 콜롬비아의 빌라 데 레이바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여행기는 작가의 시선으로 써내려갔지만 어린 아들과 함께 한 여행이니만큼 아이와 엄마의 시간이 하나로 연결된 감정이 느껴져 책을 읽는 내내 흐뭇했다. 아들과의 아니, 혹은 딸과의 여행이 이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는 처음이다.
볼리비아는 바다가 없지만 티티카카 호수에 해군기지를 세웠다. 과거 전쟁에서 태평양 연안을 잃고 내륙 국가가 된 볼리비아는 세계 최고의 호수 해군력을 자랑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 이유를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게 보석도 아니고 석유도 아닌 바로 새 똥(30p) 때문이었다니 참 어이없다. 하지만 새 똥이 중요한 자원인 시절도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이루어 낸 변화의 폭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스페인에 의해 무기력하게 무너진 잉카 문명도 흥미롭게 읽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마추픽추로 오르기 위해서 산길을 오르고 올랐던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분명히 오르는 길은 험난해 보였지만 막상 마추픽추에 올랐을 때 사람들의 황홀한 표정은 인상적이었다. 태양의 도시, 마추픽추에서 잉카족의 위대함, 경이로움을 느끼지만 스페인에 맞서 변변한 대항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든, 아니 믿고 싶지 않은 역사다. 그 뒤 읽게 된 볼리비아의 상심한 천국 이슬라 델 솔의 모습도, 융가스에서 바이크로 달렸던 구도로의 역사도, 천 개가 넘는 부족들이 흩어져서 살고 있던 브라질이 국가로 만들어 지기까지의 역사도, 이구아수 폭포도 파라과이 영토였지만 전쟁에 패한 탓에 현재는 파라과이 쪽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역사도 모두 쓸쓸했다.
나는 왠지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을 읽은 뒤 울적해 졌다. 라티노들의 삶도 순탄치 않은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것이란 사실이, 지구상 어느 곳도 전쟁을 피할 길은 없나보다 하는 생각에 미처 마음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풍족하지 않은 삶이라도 오소희 작가와 아들 JB가 만난 라티노들은 순진무구한 표정을 갖고 있기에 그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다음 ‘남미여행기 2부’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다(2013.1.9. 북하우스)》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