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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노예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9
미셸 오스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9월
평점 :
희망을 가지지 않는 인간은 이미 존재가 아니며 또한 용납될 수 없는 존재다. p.371
프랑스 문학상 공쿠르 상의 1986년도 수상작인 《밤의 노예(2013.09.24. 문예출판사)》의 주인공 ‘필립 아르쉐’는 우유부단하다. 스스로 난 인생낙오자(p.61)라고 고백할 만큼 삶의 의욕이나 애정도 없으며 확실한 목표도 없다. ‘필립 아르쉐’는 자신보다 스물다섯 살 많은 어머니 ‘지제트’와 함께 작은 아파트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그들은 한때는 풍요로웠고, 현재는 풍요롭지는 않지만 가난하지도 않은, 금전적으로는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전쟁 중 독일인의 만행을 막기 위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영웅, 아버지 ‘샤를르 에바리스트 위젠느’가 그와 그의 어머니 곁을 떠나면서 빌뇌브-르-르와 공장(일명 아르쉐 공장)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장을 운영할 수 있는 ‘토니 소앙’도 함께 보내주었다.
마흔 살이 된 주인공 ‘필립 아르쉐’는 어머니 지제트와 정체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흡사 고인 물과도 같은 삶이다. 그런데 필립에게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고인 물도 시간이 흐르면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과 같이, 필립도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무너져버릴게 뻔하다. 언제나 히스테리를 부리는 어머니 지제트와의 갈등 관계를 어떻게 개선시킬 것인가가 첫 번째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데만 급급했던 필립에게 여자친구인 ‘폴라 로첸’과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 것인가가 두 번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퇴직을 원하는 토니 소앙을 대신해 아르쉐 공장을 맡을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선 필립은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엄마 지제트가 처음부터 쉽게 흥분상태에 빠지는 불안정한 성격은 아니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언니 지젤만을 사랑하는 부모에게 거부당했고, 사랑했던 친구 블랑세트의 무서운 죽음을 목격하였으며 급기야 남편에게 버림받았다는 충격이 어머니를 어슴푸레한 자기 방에 혼자 칩거하면서 침묵과 히스테리로 일관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필립은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여자친구 폴라 로첸과의 미래를 그려본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필립 아르쉐는 영웅으로 그려 보았던 상상 속 아버지를 현실에서 만나려는 용기를 낸다. 아버지야 말로 그와 어머니의 현재를 있게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한 결심을 하기까지 필립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실세계가 아닌 환상 속을 헤매는 것과 같은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낸다. 그 혼란스러움은 《밤의 노예》를 읽는 내내 나에게 지루한 시간과 궁금한 시간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가끔, 아니 자주 아무런 연관 없는 무의미한 생각의 조각들 혹은 상상의 조각들을 아무렇게나 나열해 놓은 느낌의 문장들이 끊임없이 계속될 때 나는 참을 수 없이 지루했다. 하지만 그 문장들, 문단들 그리고 페이지를 견딘 후에는, 반드시, 주인공이 왜 혼란스러워야했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바로! 이것이 소설 《밤의 노예》를 마지막 장까지 읽게 만든 힘이다.
《밤의 노예》를 한마디로 어떤 작품이라고 요약, 정리하기는 힘들다. 다만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척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필립 아르쉐’는 마지막까지 혼돈의 삶 속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루한 시간과 궁금한 시간을 오가며 읽느라 무척 고단했다. 이제는 책을 손에서 놓고 싶다.
희망을 가지지 않는 인간은 이미 존재가 아니며 또한 용납될 수 없는 존재다. 희망은 존재의 심층 깊숙한 곳에 박혀 있다. 희망이라는 내밀한 존재는 한순간 환상을 품게 만들고 그러고 난 후에는 분리되어 잘게 부수어져 결국 파괴되고 만다. 거기에는 목적이 없다. 어떤 희망을 경멸하게 되면 너 자신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p.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