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를 융 영혼의 치유자 - 눈으로 보는 융 심리학
클레어 던 지음, 공지민 옮김 / 지와사랑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사회복지학이나 심리학 등 여러 학문에서 인간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을 학습할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인물이 프로이트와 에릭슨, 아들러 그리고 융입니다. 이 중에서도 프로이트가 발표한 정신분석 이론과 그의 제자인 아들러와 융의 이론을 비교해 보는 작업은 학습의 관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세 명의 학자 모두 인간 행동을 ‘정신 내의 운동과 상호작용’에 초점을 두고 정신이 행동을 어떻게 자극하는지, 정신과 행동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강조하는 주요 골자는 다르지 않지만 각자가 주장하는 이론의 주요 내용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세 명의 학자가 주장하는 각기 다른 이론 중 나의 생각은 어떤 이론에 더 가까이 닿아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욱 의미 있습니다. 이론을 나에게 적용시키는 순간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이론은 영향력을 갖춘 실천 학문으로 다가옵니다. 그 존재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학자가 주장하는 이론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적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시험 준비를 위해 정신분석 이론, 개인심리학, 분석심리학 등 다양한 이론들의 주요 개념과 병리의 출발점, 발달 단계 등을 암기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이것이 학자의 생애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이론의 토대가 되는 경험은 무엇인지 숙지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중요한 개념을 발견한 프로이트의 경우를 비추어 보았을 때 학자의 삶과 연구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말입니다.
‘눈으로 보는 융 심리학’이란 부제가 붙은 《카를 융 영혼의 치유자(2013.06.10. 지와사랑)》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융의 연구가 개인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고, 자신이 경험한 어떤 변화가 그의 이론의 토대가 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책입니다. 카를 융이란 인물에 대해서 눈으로 보는 것 같이 입체감 있게 설명하기 위해서 저자가 수록한 편지글, 자서전, 사진 등의 방대한 양의 자료가 이 책을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게다가 융의 이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아니마와 아니무스, 페르소나, 집단적 무의식 등의 주요 개념을 융이 어떤 경험과 인식의 과정에서 정의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그 무엇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환영 속에서 보는 신화적 사고, 신의 존재를 느끼는 것에 대한 접근법, 연금술을 탐구하는 등의 융의 행태 때문에 그의 연구가 과학적이지 못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융을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여겼던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그가 겪어야만 했던 고립도 융이 깊은 내면을 탐구하는데 일조했으리라 짐작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부분인 프로이트와 융이 결별하게 된 과정, 이유를 자세히 알게 되어 평소에 갖고 있었던 궁금증을 해결하였습니다. 프로이트와 융이 주고받았던 편지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경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솔직히 털어놓으면 나는 ‘카를 융’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모든 심리적 문제를 성적 욕구와 연결시킨 프로이트의 이론은 인정할 수 없지만, 그의 이론의 핵심인 ‘방어기제’나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소로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연구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카를 융 영혼의 치유자》를 읽은 뒤인 지금, 나는 프로이트 연구 뿐 아니라 융의 연구에도 강렬한 흥미를 느낍니다. 프로이트와 융, 두 사람이 동일하게 강조한 무의식(꿈)의 연구가 무척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 사람이 바라본 무의식의 측면은 뚜렷한 차이점을 가지지만요.
이 책은 평소 프로이트라는 학자에 관심이 가졌던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 큰 획을 그은 프로이트와 융은 각기 다른 이론을 주장했지만 두 사람을 아무런 관련 없이 서로 다른 이론을 주장한 학자라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 찾기’ 혹은 ‘자아 찾기’에 몰두했던 카를 융이란 학자의 삶과 그의 연구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인간의 불완전성이 어떤 위대한 이론으로 탄생되었는지 그 과정을 확인한다면 카를 융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바로, 지금, 제 마음이 그러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