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구나, 왜 ‘아빠야 형님아‘라고 하지 않고 ‘엄마야 누나야‘라고 했을까. 대답을 못 합니다. ‘엄마야 누나야‘는 시적젠더의 공간이에요. 강변은 생식과 자궁의 공간, 생명의 장소입니다. 아버지, 형님의 공간은 역사와 사회의 투쟁 공간, 공장이거나 전쟁터이거나 경쟁을 하는 불모의 도시예요.

종이라고 하는 것의 첫번째 특성이 기록성이에요. 그런데 이기록성에는 모순이 담겨 있어요.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 기록하는 대로 가지고 다니면서 봐야 하니까. 그 대신 무조건 보존성이 있어야 된다. 기록이라는 것은 오래오래 보존해야 하는 거니까.

왜 파피루스와 양피지가 종이한테 졌을까요? 파피루스는그냥 식물 자체죠. 그것도 나일강이라는 특수한 지역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양피지는 동물의 가죽을 벗겨서 만드는 것입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파피루스가 페이퍼로드의 시작이라고하지만, 파피루스에서 나온 페이퍼라는 말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종이와는 전혀 다른 의미예요.

제가 시를 쓸 때 경험해보면 시가 무엇인지 알아서 쓰지도않았고, 그런 질문들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시적 환경이 바뀌어도 "시의 미디어는 언어다"라는 울 안에서는 벗어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안양예고에서 고등학생 상대로 작년에 시 창작 강의를 했는데요, 그중에서도 김언 시인의 <소설을 쓰자>를 학생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더라고요. "왜 어렵다고 느꼈어?" 하면 검색을 하거나 문예지에서 보면 그것을 해석한 것이 어렵다는 것이죠.

‘즈믄동이‘도 있어요. 세계가 ‘밀레니엄 베이비‘라고 할 때우리나라는 즈믄동이라고 표현했어요. 열을 ‘온‘이라 하고 천을 ‘즈믄‘이라고 했는데, 백까지만 우리말이 있고, 나머지 천,
만, 억, 이것은 전부 한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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