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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 - 나를 이루는 원자들의 세계
댄 레빗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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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책이 나왔다. 2년 전 코스모스를 읽었을 때의 그 경이감 보다 더 크다. 원자, 원소, 유전자, 세포, 미토콘드리아를 주제로 한 책을 여러 권 읽었고, 대기 중인 책들도 십여 권 된다. 대기 중인 책들은 안 읽어도 될 정도로 이 책에서 원하는 정보를 다 얻었다.



내가 이렇게 감탄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압축해 보겠다.



첫째, 가장 근본적인 주제

우리는 우리가 별 먼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다. 우리의 몸이 수천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포 보다 더 작은 유전자에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설계도가 저장되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그 유전자는 뭘로 이루어져 있는가? 그 정체가 바로 원자이다.



헤모글로빈은 574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9,272개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 근육세포인 티틴(titin)은 54만 개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정말 아득하다). 그래, 우리의 세포가 원자로 이루어진 줄 알겠다. 그런데 원자들, 정확히는 별 먼지들이 어떻게 생명을 이루게 되었는가?



그 비밀을 알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둘째, 인물들의 서사

빌 브라이슨,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작품들처럼 어떤 주제를 잡고 그것의 역사를 나열한 작품들을 읽으면 웅장해진다. 왜냐면 어떤 이론을 밝혀내기 위한 인물들의 노고와 그 서사를 책에 담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칼 세이건은 세 번 결혼했다. 그중 첫 번째 부인 마굴리스 역시 과학자이다. 그녀는 우리 세포 내부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와의 공생관계를 밝혀냈다. 쓰레기 연구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15번의 거절 끝에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



프레드 호일은 원소가 어디서 왔는지를 발견한 최초의 과학자였다. 그는 교사들의 멍청함이 싫어서 무단 결석을 했고, 노골적으로 전통을 무시하고 경멸했다. 사귀기 어렵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셋째, 정갈한 글솜씨

이 책은 4부, 1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잘 만들어진 과학 책들이 그렇듯이 적절한 질문을 먼저 던진다. 그리고 그것을 밝혀낸 과학자들의 여정을 뒤쫓다가 장엄한 결론을 도출한다. 그 후 새롭게 생긴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다음 장으로 안내한다.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이 책에도 통한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여정을 따라가다가 후반부에서 작가의 정리가 시작된다. 그때부턴 필사투성이다. 마지막 100쪽 분량을 읽고 쓰는 데에 3시간이 걸렸다.



이런 글쓰기는 리처드 도킨스의 방식과도 흡사했다. '진짜 배운 사람의 글쓰기가 이런거구나'를 느꼈다. 댄 레빗이란 작가가 궁금해서 검색해 봤더니, 다큐멘터리 제작자였다. 이 분이 또 책을 낸다면 믿고 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생명의 경이로움

우리는 지구에 물이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행성에 물이 있으려면 엄청난 우연히 필요하다.



"우리의 혈관을 따라 흐르는 물의 일부는 서로 충돌해서 지구를 처음 만들었던 먼지에서 응축된 것이었다. 혜왕 성과 명왕성 사이에 있는 카이커 벨트에서 출발한 혜성, 태양계 바깥 오르트 구름에서, 목성 근처 암석 소행성에서도 물이 도착했다."<128p>



거의 모든 분자가 별이 폭파하는 초신성에서 생겨났고, 그것이 먼지가 되어 떠돌다가 별이 만들어지고 행성이 만들어졌다. 지구별은 수억 년간 여러 충돌과 격변 끝에 복잡한 유기 화합물이 형성되었다. 그 복잡한 과정은 책에서 확인하길 바라며, "그래 그 원자들이 왜 합쳐지는 건데?"라고 묻는다면,



원자들끼리 달라붙어서 복잡한 분자구조를 이루는 이유는 인력과 반발력 때문이다. 열은 세포의 분자를 무작위로 진동하고 충돌하게 만드는데 이 힘은 허리케인보다 강력하다. 끊임없는 충돌이 세포 안과 바깥으로 분자를 밀어내고, 단백질의 모양을 바꾸고, 효소의 이동을 도와준다.



그럼 원자를 먹고 어떻게 우리가 에너지를 얻는 걸까? 그 답은 식물에 있다. 식물이 광합성으로 당을 저장한다. 우리는 직접 식물을 먹거나, 식물을 먹는 동물을 먹거나 해서 그 당을 에너지로 사용한다. 세포의 미토콘드리아가 당을 먹고 에너지를 방출한다. ATP가 세포에서 에너지가 필요한 모든 분자에게 운반한다. 태양에서 온 에너지를! 매초 1억 개의 ATP가 소모된다. 이런 일이 우리 몸에 벌어지고 있다.



핵심은 식물이다. 식물이 광합성으로 당을 얻어내는 과정이 없었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멸종하면 식물은 잘 산다. 누가 고등한 존재인지는 증명할 길이 없다.



"식물이 죽더라도 그 속에 들어있는 원자는 죽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이 환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몸에 있는 원자는 크고 작은 여러 유기체에서 전생을 보낸 것이 분명하다." <286p>



내가 뽑은 이 책의 명문장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는 끝없이 윤회와 환생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 몸의 주인은 대체 누구일까?



"인간도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조율되어 있어서, 깨어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상관없이 자신이 작동하고 있는 세포의 집합체이고, 자신이 성취했다고 착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세포가 자신을 통해서 성취한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잊고는 한다." -알베르 클로드 <368p>



우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최고의 책이다. 과학 입문서로도, 과학 중수에게도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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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기술 - 명화의 구조를 읽는 법
아키타 마사코 지음, 이연식 옮김 / 까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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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1 : 명화에 숨겨진 트릭들을 알았다. 지금 당장 미술관에 가서 실습해 보고 싶다.



한줄평 2 : 미술책인데 추리 소설 보는 것 같다. 명화 속에 숨겨진 트릭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명화는 왜 유명할까? 내가 볼 때 감탄을 자아내는 그림도 있지만, 별 느낌 없는데 유명한 그림들도 많다. (물론 내가 보는 눈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명화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니었다. 그림들 속에 철저하게 계산된 기하학적인 구도가 있었다. 명암, 색채, 균형, 피사체들의 위치와 동작들을 통해 감상자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그 완벽성에 감상자들은 이유도 모르고 그 작품에 매료되는 것이다.





명화의 구도를 면밀히 따져보면 안정적인 황금비가 드러난다. 인간의 뇌는 무의식중에 균형이 맞는 작품을 볼 때 매혹감을 느낀다. 어딘가가 이상하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거장들은 그런 요소를 생각하며 작품을 남겼다.



실제로 옛날 미술가들은 건축가이자 수학자, 의사,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런 고대 미술가의 철저하게 계산된 구도의 안정성을 후대인들이 답습한 결과, 수학을 몰라도 미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말로는 이 책의 설명을 하기가 부족하다. 작품 하나를 보자.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이다. 책에선 이 작품에 대한 구조 파악만 22p를 소모하지만 간략하게 소개해 보겠다.



먼저 화면 밖으로 시선이 빠지지 않는 장치들이 있다. 작품을 보면 비너스의 얼굴에 먼저 시선이 간다. 그리고 아래쪽에 있는 팔로 내려가 신체 라인을 지나 강아지에게로 간다. 이 때, 시선이 바깥으로 빠지지 않도록 숨겨진 화살표들이 제어한다.





강아지에서 다시 뒤편에 있는 두 명의 사람 중 서있는 사람 > 앉아있는 사람 > 창밖으로 시선이 흐르다 다시 주인공으로 돌아온다. 



뒤에서 앉아서 무언갈 찾는 하녀가 있다. 하녀 앞에는 카소네라는 혼례 용품을 보관하는 상자가 있다. 그 옆 창가에 화분 역시 결혼식에 사용하는 은매화다. 이런 단서들로 봐서 이 그림은 비너스의 결혼식을 기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냥 눈으로 보기에 안정적인 그림, 구석구석 봐지는 그림을 위해서 얼마나 치밀한 요소들이 숨어있는 지 발견하는 순간이 명화를 감상하는 기쁨일 것이다.



미술책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이렇게 추리소설 읽듯이 알려주는 책은 처음이다. 미술 감상에 필요한 나만의 무기를 장착한 것 같아 뿌듯하다. 태권도 겨우 2단 따놓고 막 실전에서 써먹고 싶은 그런 기분이다. 이 때가 바로 겸손 할 때이지.



#그림을보는기술 #아키타마사코 #까치 #까치글방 #이연식옮김 #까치서포터즈2기 #미술전시 #명화 #그림 #미술책 #전시회



※까치 서포터즈 2기로 책을 제공받아 남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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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법 오늘을 비추는 사색 2
기시미 이치로 지음, 노경아 옮김 / 까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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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만한 상품이 되기 위해 진정한 자기를 잃어버린 나 같은 사람들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까치에서 출판한 "오늘을 비추는 사색" 시리즈 중 하나인 "에리히 프롬"이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정리한 입문서이다. 에리히 프롬의 여러 저서들을 들어 그의 철학 세계를 설명해 준다. 기시미 이치로 역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데 기대 이상으로 정리를 잘해주셨다. 에리히 프롬의 책은 작년에 두 권 읽었지만, 앞으로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에리히 프롬의 철학을 한 마디로 정의해보겠다. "삶의 기술"을 터득하여 "진정한 자기"로 거듭나 "사랑"을 베풀고 사는 것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엄청난 지혜가 담겨있는 말이다.



[1. 삶의 기술]

기술이라 하여 어떤 노하우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을 넘어선 훈련 같은 것이다. 인간은 매 순간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왜 결과물은 모두 다른가? 그것은 행복의 수단을 잘못 선택해서이다. 그 선택지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있는 힘이 바로 삶의 기술이다. 이것을 터득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으로 배움에 임해야 한다. 올바른 정보를 얻기 위해 의심하고 사색할 줄 알아야 한다.


"진실을 직시하여, 나의 운명에 무관심한 우주 안에서 내가 기본적으로 혼자이며 고독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나 자신을 책임지고 나 자신의 힘을 활용해야만 내 인생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85p>




[2. 진정한 자기로 거듭나기]

우리가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이유는 군중이 모두 그렇다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 잘 적응한다는 것도 알고 보면 현명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 책 속에 소개된 신경증을 앓고 있는 청년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에리히 프롬의 환자였는데, 사회생활을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에 대해 프롬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 대다수, 즉 정상인들은 너무 잘 적응한 나머지 자신을 모조리 버리고 말았다... 완전히 도구화되면 모순으로 넘치는 현대 사회 한복판에서도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못한다."<160~161p>



그러면서 신경증적인 사람은 자신을 지키는 싸움에서 끝까지 항복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사실 불합리하고 모순 투성이다. 인간관계 역시 가면을 쓴 채로 이어간다.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이런 사회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생각이 없거나, 자기 합리화를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럼 진정한 자기로 거듭나기란 무엇인가?



"사람은 자기 개성을 관철하기만 해도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다."<159p>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 그것은 혼자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군중에서 떨어져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것.



"양심이란 자신에게 "옳은가?"라고 묻는 목소리에 "네"라고 대답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없으면 자신이 한 일조차 정말로 자신이 했다고 말할 수 없다."<66p>



우리 자신의 힘을 활용하여 우리 안에 내재된 가능성을 실현해야 한다. 타인의 기대 때문이 아니라, 질투나 선망 등 비합리적인 감정에 휩쓸려서가 아니라 내가 나로서 존재할 때, 생산성이라 부르는 힘이 나온다. (이 부분은 아티스트 웨이가 생각났다.)



이렇게 내가 진정한 나 자신으로서 거듭나면 이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3. 사랑을 베풀기]

사랑을 베푼다고 했다. 하지만 보통은 사랑을 받으려고 한다. 사랑받기 위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건 사랑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사랑의 기본 요소 4가지를 소개하겠다. 이것을 보고 나는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었구나를 느꼈다. 당신은 몇 가지가 해당하는지 확인해 보자.



첫째, 배려 :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과 성장을 적극적으로 염려한다. 적극적인 배려가 없다면 사랑도 없다.(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게 배려의 모습이다.)


둘째, 책임 : 책임은 외부로부터 강요당하는 의무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본인의 판단에 따라 자발적으로 응답하는 태도이다. (얼마 전 딸아이가 밤중에 복숭아 먹고 싶다고 했는데, 귀찮아서 니가 깎아먹으라고 했다가 딸아이가 칼에 손가락을 베였다. 나는 책임감이 없는 아빠였다.)


셋째, 존중 :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독자적인 개성을 알아주는 일이며, 상대를 위하고 상대가 자신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단 내 가치관에 맞추어 보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넷째, 지식 : 누군가를 존중하려면 먼저 그 사람을 뼛속까지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배워서 얻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먼저 내주고 타자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과 상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에 대해 안다고만 생각하지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주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강력함과 풍요함을 경험한다고 한다. 사랑을 받고 싶을 때, 삶이 힘들 때, 내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를 에리히 프롬이 알려줄 것이다. 리뷰에서 다 담지 못한 프롬의 주옥같은 철학을 기시미 이치로를 통해서 먼저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에리히프롬 #오늘을비추는사색 #까치 #노경아옮김 #기시미이치로 #철학책 #철학책추천 #인문학책추천 #철학입문서


까치 서포터즈 2기로 활동하며 제공받은 책을 읽고 남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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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욕망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꿋꿋하게 살기 위해 오늘을 비추는 사색 1
우메다 고타 지음, 노경아 옮김 / 까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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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우메다 고타

"삶은 고통이다."

이 말을 누가 했더라? 니첸가? 니체 역시 비슷한 주장을 했지만, 이 말은 쇼펜하우어가 한 말이다.(물론 그가 최초는 아닐 것이다.) 또한 삶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쇼펜하우어 하면 염세주의가 떠오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에 의미를 부여하기를 좋아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고통의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떠났을 때, 좋은 곳으로 갔을 거란 믿음을 가지면 슬픔을 덜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일까? 좋은 곳이 있다면 아예 거기서 살 것이지, 왜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고통스럽게 살다 가는가?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부여한 지위를 한 단계씩 잃어가고 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인간은 신이 만든 창조물이 아니라 진화를 거친 동물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 또한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때문이라는 것까지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진실이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바라는 것을 믿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내가 속한 사회에서 세뇌당한 생각일 수 있다. 현시대에 우리가 세뇌당한 생각은 바로 물질 만능주의이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를 빼고 삶을 직관하였다.(여타 철학자들이 그렇듯이) 그렇게 얻은 결론이 바로 "삶은 고통"이며, 고통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그의 저서들을 통해 주장했다.


이 책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명언을 담은 잠언집이 아니다. 난해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의 세계를 쉽게 설명해 주는 입문서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인 어린 시절과, 그가 주장한 "구도 철학", "처세 철학", "의지의 부정" 등 어려운 개념을 풀어서 설명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접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나도 쇼펜아우어 책은 하나도 안 읽어봤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철학이 대강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있었다. 용어들이 좀 난해한데, 내가 한 번 더 쉽게 설명해 드리겠다. 쇼펜하우어는 인도철학과 불교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내가 볼 때는 기독교 사상과도 비슷한 면도 있었다.


먼저 그의 세계관을 보자. 쇼펜하우어는 관념론을 주창한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존재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물리관이며 실재론이다. 반대로 내가 없이는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양자론을 띤 개념이 바로 관념론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사물은 어디까지나 우리에게 인식된 사물일 뿐 그 사물 자체는 아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주관에 비친 객관, 즉 "나"의 모니터에 비친 사물일 뿐이다."<54p>


관념론을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사실 허상이 된다. 그 허상은 우리의 의지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그것을 "삶의 의지"라 하였다. 삶의 의지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면 유전자가 시키는 일이다. 바로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일이다.


"신체에 드러난 의지는 지성에 이끌린 "자유의지" 따위가 아니라 "삶의 의지"이며, 지성 역시 그 의지를 따르고 있다. 모든 의지를 목적 없는 의지 또는 살고자 하는 의지, 즉 삶의 의지로 규정한다."<64p>


쇼펜하우어는 알고 있었다. 우리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의지 또한, 신체의 본능에 좌우된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를 부정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내 의지라고 하는 것은 결국 유전자가 시키는 일밖에 되지 않고, 그것은 종족의 번식 외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지가 바라는 일은 허상을 좇는 일에 불과하다.


기독교에서는 말한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내 생각과 의를 도말하고 성령의 말씀으로 살라고. 쇼펜하우어 역시 말한다. 의지를 부정하고 행복을 추구하기보다는 고통이 없는 상태를 지향하라고.


쇼펜하우어는 감언이설을 하지 않는다. 삶을 직시하는 법을 일러준다. 그리고 인용된 몇 개의 문장들을 보니 위트도 있다. 위트라기보단 너무 솔직하게 말해서 웃음이 나오는 문장들이다.


"사회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상연되는 희극이다. 멍청한 자들은 이런 상황에 매우 만족하겠지만 속이 꽉 찬 자들은 그 때문에 사회생활이 한심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떤 상태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자신에게 혹시 별다른 가치가 없어 보이다면 애초에 별것 아닌 인간이었을 테니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


ㅋㅋ 뭔가 무례한 거 같으면서도 뼈 때리는 문장들이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 입문서이다. 책이 작고 귀엽다. 요즘 명품 허세 말고 책 허세가 유행이라던데,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읽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주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150p 가량 되어서 2시간이면 읽을 수 있다. 쇼펜하우어에 대해 아는 척도 해볼 수 있고, 앞으로 읽을 쇼펜하우어 책들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까치 글방에서 이번에 출간한 오늘을 비추는 사색 시리즈는 총 6권이다. 다음 리뷰 예정인 미움 받을 용기의 기시미 이치로가 쓴 에리히 프롬도 있고,(기대 기대) 미셸 푸코, 한나 아렌트, 장자크 루소, 카를 마르크스가 있다. 이번 기회에 6인의 철학 도서들을 예쁜 책으로 만나보길 바란다.


#오늘을비추는사색 #쇼펜하우어 #에리히프롬 #한나아렌트 #카를마르크스 #미셸푸코 #장자크루소 #철학입문서 #철학책추천 #인문학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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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일본 교과서 속 일본 근대 문학
강산 / 바른번역(왓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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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과서 속 일본 근대 문학

강산 김소희 김지영 옮김


내가 지금은 책을 많이 보지만 학창 시절에는 공부와는 담쌓고 살았었다. 그래도 교과서에 나와서 아는 작가들이 있다. 뭐 피천득, 이상, 김유정, 이광수? 사실 이들의 이름만 알지 아직도 작품은 제대로 못 읽어봤다.


그런데 일본도 당연히 교과서에 실리는 문학작품이 있다. 교과서에 실렸단 말은 일단 작품성이 검증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작품 세계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고, 또 독자들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일본의 교과서에는 어떤 작품이 실렸을까?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궁금해졌다. 책에는 3명의 작가가 나온다. 각각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교과서에 실리는 작품인듯했다.


[미야자와 겐지]

먼저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같은 작품 3편이 나온다. 주인공에게 편지가 왔는데 들고양이가 보낸 것이다. 가장 훌륭한 도토리를 뽑는 재판에 참여를 위해서이다. 이 외에도 동물들이 첼로 연주자의 연습을 도와주는 작품, 병사 둘이 음식점으로 가서 이런저런 주문들을(옷을 벗어라, 총을 내려놔라, 크림을 몸에 발라라 등등) 받는 황당하고도 호기심을 자아내는 작품도 있다. 보면서 이웃집 토토로나 고양이의 보은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이 생각이 났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 작가는 불교적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런저런 곳에서 들어본 종교적 설화를 각색한 것 같았다. 도스토 옙스키의 소설 백치였나? 까라마조프였나? "양파 한 뿌리"의 단편이 있다. 그것과 내용은 똑같지만 그 양파 한 뿌리가 "거미줄"로 대체된 소설 #거미줄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죄인이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다. 그는 살아생전에 유일하게 잘했던 일, 바로 거미 한 마리를 살려 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이 거미 한 마리를 지옥으로 내려보냈다. 죄인은 거미줄을 발견하고 그 줄을 붙잡아 지옥을 탈출하고 있었는데, 다른 죄인들이 따라와서 발버둥 치다 결국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거미줄은 어차피 사람 한 명도 지탱할 수 없다. 죄인의 자비심으로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 와중에 욕심을 내서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한 이야기다.

마치 일장춘몽과도 같은 "두자춘" 이야기도 정말 재미있었다. 내용을 미리 알려주긴 그렇고 인간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교훈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 바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이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듯하다.


[모리 오가이]

이 분은 고등학교 교과서 담당인가? 하며 봤는데 예상이 맞는 것 같다. 작품이 좀 더 섬세하다. 첫 작품 "무희"는 약간 문체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도 비슷했다. 독일로 유학을 떠난 일본 학생이 우연히 만난 무희와 사랑에 빠졌다. 이 작품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이유는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순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걸림돌을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어서인듯하다. 무희가, 아니 사랑이 걸림돌이 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출세를 앞두고 공부해야 하는 제국주의의 학생들에겐 그럴 법도 하다.


일본 교과서 속에서 나오는 문학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분량이 아쉬웠다. 일본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들이 많은텐데 2편도 더 두껍게 나오면 좋겠다. 번역가님들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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