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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강
핑루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 [검은 강]은 자전佳珍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벌인 살인사건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정확한 나이까지는 알 수 없지만 20대 혹은 30대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팡거'라는 남자가 운영하는 커피점(우리가 흔히 말하는 커피 전문점이나 카페를 말하지만, 팡거가 굳이 커피점이라고 이름 붙이고 모두가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에서 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자전은 자신이 일하는 바로 그 커피점의 단골손님인 '훙보'라는 늙은 남자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을 살해하게 됩니다. 그녀는 커피점 앞을 흐르는 강이 태평양까지 이어진다는 걸 알고 시체를 강가에 유기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시체가 미처 바다로 흘러가기 전 발견되면서 덜미가 잡힙니다.
자전은 그녀가 아주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왔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온갖 일을 하지만 집안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자전에게 꽤 자주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자전은 이렇게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본 적 한 번 없이 성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불우한 가정환경 탓으로 그녀는 어린 학창시절부터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됩니다. 워낙 빈곤했기에 그녀는 그 흔한 학용품 하나 제대로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도라에몽 필통이 너무도 갖고 싶던 나머지 한 아저씨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그녀의 첫 경험이었고,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 아저씨라는 남자는 더 이상 자세히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자전의 극빈한 가정환경을 잘 알던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기에 학용품으로 그녀를 꾄 것이겠죠.
그녀는 친한 친구도 거의 없었기에 친구들과 우정을 나눈 적도 없었습니다. 감정적 교류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런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잘 인지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다시 훙보 이야기로 돌아가면, 사실 훙보는 단순한 커피점의 단골손님이 아니었고 아내 몰래 자전과 육체적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훙보와의 관계가 지속되던 중 그녀는 '셴밍'이라는 대학원생과 연인으로 발전합니다. 비록 '사랑'을 갈구하다 훙보와의 어긋난 관계에 빠지게 되었지만, 자전은 쉔밍을 만난 후 그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미래를 꿈꿉니다. 그 미래를 위해서는 훙보에게서 벗어나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훙보는 재혼한 아내를 없앨 계획을 세울 정도로 자전과 함께 하려는 의지를 불태웁니다. 어떻게든 훙보에게서 벗어나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때에 그가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음을 알게 된 자전은 그에게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으로 살인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자전은 훙보 부부를 죽이기 전, 훙보의 아내 살인계획을 그녀에게 알리고자 직접 찾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훙보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이 자기를 결코 배신할 수 없다 여겼고 자전의 자작극으로 치부해버립니다. 결국 자신의 치부(비밀)만 잔뜩 알려주고 돌아오게 됐다 생각한 자전은 훙보의 아내까지 함께 없애기로 마음먹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친한 친구도 없던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비밀을 공유한 적이 없었고, 결국 '비밀'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게 됩니다. 그녀는 더욱 나아가 비밀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증오하게 되는데, 자전의 언질을 무시했던 훙보의 아내가 바로 이러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죠. 결국 훙보 부부 모두 그녀의 타깃이 되고 맙니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였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자전, 드디어 함께할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해주는 사람을 만났고 희망의 빛이 보이는가 싶었지만 그녀는 다시 한밤중의 강물처럼 검고 어두운 곳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의 안전망이나 시스템의 부재나 결여가 결국 이 사건의 최초 진원지라 할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그렇다 생각하실 거라 생각됩니다. 물론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뭔가 그 이상으로 참 씁쓸하게 만드는,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