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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
조예은 지음 / 마카롱 / 2017년 8월
평점 :
처음에 책을 고를 때만 해도 제목과 표지만 보고는 외국 작가의 작품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사실 저자의 이름을 한 번만 봤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착각이었는데 말이죠. 아무튼 책을 직접 손에 잡고 펴면서 저자와 작품 속 인물들이 우리나라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끔 책을 읽기 전 제목이나 책 소개 등을 통해 어떤 내용일지 혼자 추측하거나 예상해보고는 하는데, 막상 책을 접하고 난 후 제 예상보다 훨씬 흥미롭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에 푹 빠져서 정신없이 읽게 되었습니다.
전반적인 줄거리와 소재들은 굉장히 암울하고 가슴 아팠습니다. 또 한편으로 '찬'과 '란' 형제가 사이비 종교인 '천령교'에 흘러들어가게 되는 계기와 그 이후 병을 담는 '그릇'의 아이들이 다뤄지는 것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마크드 포 라이프(markded for Life)]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무고한 어린 아이들이 처참하게 다뤄지고 무참히 희생되는 모습들이 겹쳐지면서 마음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찬과 란 형제는 인신매매의 피해자로서 사이비 종교인 천령교의 교주 '한승목'과 그의 망나니 동생이자 천령교 장로로 활동하는 '한승태'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게 됩니다. 어떤 연유로 납치된 아이들은 칠흑 같은 어둠의 컨테이너 속에 감금되어 있다가 배를 통해 중국으로 팔려갑니다. 하지만 찬과 란은 배에 탈 수 없는 아이들로 분류되었고 결국 한승목 형제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찬과 란을 그저 애물단지로만 생각했던 한 형제는 우연히 형인 찬의 신비한 능력을 알게 되었고, 그를 교주의 아들로 사람들 앞에 내세우고 그의 능력을 이용하여 사이비교를 부흥시키게 됩니다. 찬의 신비한 능력이란 바로, 처음에는 단순히 상처나 질병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특정인물의 그것을 다른 개체 즉, 다른 사람에게로 이동시키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병을 낫게 해주는 기적을 행하는 종교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떨칩니다. 결국 나라의 각계 유명인들도 찾아오게 되고, 돈과 권력욕에 취한 형제의 탐욕은 끝을 모르고 질주합니다. 동시에 찬은 능력을 행하면서 생기는 육체적 부작용과 죄책감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점점 쇠약해져 갑니다. 그런 와중에 한 신자(信者)가 한승목이 자신의 아픈 아들을 선택하여 '축복'을 내려주지 않은 바람에 결국 죽게 되었다 생각해 그 복수로, 똑같이 그의 아들이라 알려진 찬을 죽이려 합니다. 하지만 그 칼은 동생이었던 란에게 향하였고, 동생을 너무도 아꼈던 찬은 동생의 상처를 자신에게 옮겨와 대신 죽게 됩니다. 하지만 동생의 자상을 가져만 간 것이 아니었고, 자신의 그 '능력'을 란에게 넘겨줍니다. 자신이 형의 능력을 이어 받게 된 것을 안 란은 형의 복수를 꿈꾸게 되면서 이야기는 더욱 절정을 향해 치닫게 됩니다.
능력 자체만 보면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그 외에 다른 요소는 반대로 너무도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능력'이 차라리 없었더라면, 아니 있었어도 알아채지 못했더라면 찬과 란 형제는 훨씬 더 사람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