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선출되자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다시 가까워지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러시아는 유럽안보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했고, 미국과 협력하고자 하는 의지는 2010년 4월 새로운 전략 무기 감축 협정인 뉴 스타트 체결로 구체화됐다.
2010년 12월 ‘아랍의 봄‘은 러시아를 다시 떨게 했다. 시민들은 독재자에 항거하고 자유 선거와 완전한 시민권 보장을 외쳤다. 그러나 시리아에서는 평화로운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강제 진압했고,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는 카다피의 군대가 시민들을 위협했다.
2011년 3월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리비아 국민을 돕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승인하는 결의안을 투표할 때 놀랍게도 러시아는 기권했다. 이때 나토가 군사 작전의 지휘를 맡았다.
키이우의 독립광장(마이단 네젤레즈노스티)을 중심으로 일어난 ‘존엄의 혁명‘(또는 유로마이단혁명)은 2014년 2월에 유혈 사태와 대통령의 피신으로 막을 내렸다. 독립광장에 나갔던 외교관 중에는 미국 국무부 차관인 빅토리아 눌런드가 있다. 이때 눌런드가 시위자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모습이 카메이라에 포착되었는데, 이는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떼어놓고 우크라이나를 개종시키려는‘ 미국의 음모와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2015년 2월 말, 돈바스 내 러시아의 개입에 관한 보고서를 준비하던 전 러시아 부총리 보리스 넴초프가 크램린 근처에서 암살당했다. 3월에 러시아는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에 따른 활동을 멈추었다. 해당 조약은 1990년에 나토 회원국과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이 체결한 것이다. 이로써 군비 제재에 대한 새로운 축이 무너졌다.
2018년 2월 미국 행정부는 <핵 태세 보고서>에서 "러시아는 미국과 나토를 자국의 지정학적야망을 위협하는 주요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몇 주 뒤 영국 솔즈베리에서이중 첩자였던 세르게이 스크리팔이 신경독인 노비촉으로 암살당했다. 유럽은 충격에 빠졌고러시아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기분에 빠졌다. 러시아 정부는 모든 것을 부인했지만 세계 곳곳에서 러시아 외교관들이 추방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20년 8월 러시아의 반정부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도 노비촉과 비슷한 신경독으로 쓰러졌다. 그는 독일로 이송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암살 시도를 부인했으나 그간의 거짓말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암살 시도와 이를 부인하는 러시아의 입장을 본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 정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못 할짓이 없고, 무엇이든 감추려 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러시아 대 나토 : 70년의 대치
나토는 소련의 확장을 막기 위해 냉전 시대에 탄생했다. 따라서 러시아는 2004년에 시작된나토의 동진을반드시 이겨내야 할 포위로 받아들인다. 특히 나토가 러시아의 영향력이 높은구소련 지역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그러한 인식이 팽배했다.
천연가스 위기를 되살린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여실히드러냈다. 액화 천연가스를 수입하려면 많은 국가가 갖추지 못한 비싸고 특수한 터미널을 지어야 한다.
흑해 또는 따뜻한 바다에 대한 야망
30년 전 일어난 냉전 종식은 해상 요충지들이 평화적인 협력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리라는 희망을 낳았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자 그곳은 러시아와 나토의 힘겨루기장이 되어버렸다.
러시아에게 흑해는 북극해나 발트해와 비교해- ‘따뜻한 바다‘로 갈 때 꼭 필요한 접근로다. 2011년 시작된 시리아 전쟁은 타르투스 항과 라타키아 항에서 군사 거점을 강화할 기회를 러시아에 제공했다. 이러한 전략적 측면에서 2014년 합병한 크림반도는 러시아에 흑해 연안의전진 기지 역할을 하며 핵심적인 위치를 고수했다.
사실 흑해는 ‘러시아의 호수‘가 아니라 "나토의 호수‘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 오히려 나토가 가진 흑해 주변의 회원국들의 안보를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강화했으니 아이러니하다. 2016년 이지스와 같은 탄도미사일 방어 체계를 루마니아의 데베셀루 군사 기자에 배치한 것이 그 증거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가 자국의 안정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나토 가입을 원하는것도 마찬가지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흑해는 냉전 시대에 이어 또다시 러시아와 나토가 맞서는 대결의 장이 되었다. 흑해에서 군사배치를 강화했던 러시아는 아조프해 연안을 장악하고 더 나아가 합병할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럼으로써 러시아의 본토와 크림반도를 육상으로 잇는 길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크림반도는 250년 이상 러시아에 전략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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