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정의 운동은 이미 원리상으로는 생태 피해가 환경을 넘어서 다수의 지배 축(흔히 젠더, 인종, 민족, 국적)과 뒤엉켜 있는 상황을 공격하고 있으며, 이 운동의 일부 흐름은 명백히 반자본주의적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운동, 그린뉴딜 주창자, 일부 생태-포퓰리스트들도 지구 온난화에 맞설 계급적 필요조건의 일부)을 파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재생가능에너지로 나아가는 전환을 친노동 계급적인 소득·일자리 정책과 연결할 필요성, 대기업에 맞서는 국가의 힘을 강화할 필요성이다.
중상주의적 자본주의는 주변부의 숱한 노예봉기와 식민 본국 내 민주주의 혁명으로 주기적으로 들끓었고, 결국은 파멸했다. 그 뒤를 이은 자유방임주의는 한 세기 동안은 튼튼히 버티다가 50년간 정치 대란을 겪었는데, 이 대란은 다양한 사회주의 혁명과 파시스트 쿠테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셀 수 없는 반식민주의 봉기로 점철됐다.
국가-관리주의 체제에서도 정치 위기는 낯설지 않았다. 이 체제는 반식민주의 반란, 전 지구적 신좌파 봉기, 장기화된 냉전, 핵무기 경쟁의 거대한 물결을 헤쳐나가다 결국 지구화·금융화의 현 자본주의 체제를 연 신자유주의의 체제 전복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정당하고 효과적인 공적 권력은 자본 축적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하지만 자본의무한한 축적 충동은 자신이 의존하는 그 공적 권력을 오랜 시간에 걸쳐 불안정에 빠뜨리는 경향이 있다. 이 모순이 현재 민주주의 위기의 근원이다.
정치권력은 인프라를 건설하고 유지했으며, ‘시장 실패‘를 보완하고 경제 발전을 지휘했다. 사회적 재생산을 장려했고, 경제 위기를 완화했으며, 경제 위기와 결부된 정치적 부수 효과를 관리했다.
정치적 힘은 (사회적 재생산, 비인간적 자연과 마찬가지로) 결코 하찮은 부속물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적 요소다. 공적 권력은 자본주의라 불리는 ‘제도화 된 사회 질서‘의 본질적 부분이며, 그 작동에 핵심적인 요소다.
자본주의는 공적 권력의 식객이 되어, 축적에 필수적인 법률 체제와 억압 기구, 인프라, 규제기관을 마음껏 활용한다. 동시에 이윤을 향한 갈망 탓에 자본가 계급의 일부 분파는 주기적으로 공적 권력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공적 권력이 시장에 비해 열등하다며 이를 약화시키려고 획책한다. 단기적 이익이 장기적 생존을 압도하는 이런 경우에 자본은 또다시 스스로를 존립할 수 있게 해주는 바로 그 정치적 조건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
국가-관리 자본주의 체제에서 중심부 국가들은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거나 완화하기 위해, 자국 영토 안에서 공적 권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4년 미국의 패권 아래수립된 브레트우즈 시스템의 자본 통제로 역량이 강화된 중심부 국가들은 인프라에 투자했고, 사회적 재생산 비용의 일부를 떠맡았으며, 완전고용(예 근접한 상태)과 노동계급 소비주의를 촉진했다.
또 노동조합을 노사정 협상의 파트너로 받아들였으며, 경제 발전을 적극 지휘했고, 시장의 실패‘를 보완했으며, 자본 자체의 이익을 위해 자본을 전반적으로 훈육했다. 사적 자본의 지속적인 축적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목표였던 이러한 조치들은 정치의 관할범위를 넓히면서 동시에정치를 유순하게 길들였다.
결국 국가-관리 자본주의 역시 자신의 경제적·정치적 모순과 충돌했다. 임금 상승과 생산성향상의 일반화가 중심부 제조업의 이윤을 하락과 함께 전개됐고, 그러자 자본 측에서는 시장의 힘을 정치적 규제의 족쇄에서 풀어주려는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한편 전 지구적 신좌파가체제 전반의 기반인 억압과 배제, 약탈에 도전하며 들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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