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운용이 널리 주목받지는 못했던 대략 1930년대부터 1950년대 말에 이르는 시기에는, 노동계급이 존엄한 삶을 누리려면 ‘가족임금‘, 남성의 가족 내 권위, 젠더 차이에 관한 완고한 의식이 필요하다는 시각에 토를 다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 결과 중심부 국가의 국가-관리 자본주의에서는 남성이 생계비를 벌고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젠더화된 가족의 이성에 규점적 모델이 안정된 지위를 구가하는 광범한 경향이 나타났다.

1980년대 무렵 선견지명이 있는 관찰자라면, 우리 시대의 금융화된 자본주의로 귀결될 새로운체제의 윤곽이 출현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추진한 이 체제는 국가와 대기업이 사회복지 투자에서 철수함과 동시에 여성을 유급 노동력으로 대거 충원하고, 결국 돌봄 활동을 가족과 공동체에 떠넘겨 외부화하면서 가족과 공동체의 역량을 위축시키도록 조장했다.

부채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국가를 압박해 사회적 지출을 삭감하고, 긴축을 시행하며, 무방비 상태의 인구집단에게서 가치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투자자와 전반적으로 협력하게 하는 수단이다. 남반구의 농민이 수탈당하는 것도 주로 부채를 통해서다.

역사적 중심부의 축적 역시 점차 부채를 통해 이뤄진다. 예를 들면,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제조업 일자리를 저임금 불안정 서비스 일자리가 대체함에 따라, 임금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생산 비용 아래로 떨어진다. 이러한 ‘긱gig 경제‘에서는 계속 소비에 지출하려면 소비자 대출을 늘려야 하며, 이로써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때 사회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지지 기반이었던 노동운동은 이제 철저한 패배까지는 아니어도 수세적 입장에 서 있다. 또 하나는 젠더, 성, 인종, 종족, 종교의 위계 구조에 맞서는 진보적인 ‘신사화운동‘과 기성 생활세계(최근 새로운 경제의 ‘세계시민주의‘로부터 위협받고 있는)와 특권(대단치도 않은)을 방어하려는 인구집단이 대립하는 구도이다.

금융화된 자본주의는 공적 지원을 축소하고 여성을 유급 일자리로 충원할 뿐만 아니라 실질임금을 낮췄고, 이로써 가족을 지탱하려면 각 가정마다 유급 노동에 보내느 시간을 늘리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돌봄 활동을 타인에게 맡기려는 필사적인 쟁탈전을 부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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