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부분의 논의는 주로 자본주의 위기의 경제적 측면이나 생태적 측면에서 집중하면서,
(그 긴급성과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재생산의 측면을 무시한다. 이는 분명 성차별과 연관되어 있으며, 우리가 도전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돌봄‘ 위기는 지금의 광범한 위기에서 너무도 중심적인 측면이라, 이를 생략하고는 다른 어떤 측면도 제대로 이해할 수없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나는 현재의 ‘돌봄 긴장‘을 자본주의에 내재한 사회·재생산 모순의 첨예한 표현으로 해석하자고 제안한다. 이는 두 가지 발상을 담고 있다. 첫째, 현재의 돌봄 긴장은 우발적인 게 아니라,
앞에서 내가 ‘금융화된 자본주의‘라 칭한 현 사회 질서에 구조적으로 깊이 뿌리내린 것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사회적 재생산 위기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현재 형태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에서 뭔가가 썩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현재의 신자유주의반이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변혁되어야만 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필수저 공급이나 돌봄 제공, 상호작용 등의 활동에 화폐화된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마치 무상인 듯 취급하면서도 이에 의존한다. 마니,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무임승차한다.

돌봄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어디인지, 보상으로 돈을 받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회-제생산 활동은 자본주의의 작동에 필수적이다. 생산적이라 간주되는 임금노동도, 이로부터 추출되는 잉여가치도, 돌봄 활동이 없다면 있을 수 없다.

자본이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의 양과 질을 갖춘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가사와육아, 학교 교육, 정서적 돌봄, 그리고 일군의 관련 활동들 덕분이다. 즉, 사회적 재생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생산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적 재생산과 경제적 생산을 분리하여, 전자를 여성과 결부시키고 그 중요성과 가치가 눈에 띄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 사회는 바로그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 의존해 공식 경제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분할 division + 의존dependency + 책임회피 disavowal의 별난 관계야말로 불안정화 destabilization를 야기하는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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