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에게 크로키북 속 청년 이야기를 듣고 나는 혼란에 빠졌다.
이즈미는 나와 그 청년의 관계에 관해 가르쳐주었다.
우연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묘한 인연으로 유사 연애관계를 시작했다는 것.
우리가 매일 만났다는 것. 그날그날의 내가 그 애에게서 힘을 얻었다는 것.
그림을 그리는 습관은 그 애 덕에 생겼다는 것. - P341

"이거……… 네가 썼던 진짜 일기랑 수첩 그리고 가미야그림이야. 일기엔 가미야랑 보낸 나날도 전부 들어 있어.
미안. 원래는 네가 장애를 극복했을 때 내가 먼저 말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비밀로 해서, 네 소중한 추억을 빼앗아서 정말 미안해."
사과할 필요 없다고 대답하며 이즈미에게서 그것들을받았다. - P343

가미야 도루를 처음 만나 그 애가 죽기까지가 당시 내글씨로 쓰여 있었다. 일기를 읽으니 알 수 있었다. 가미야도루라는 사람은 늘 내곁에 있어주었다. 나를 소중히 대해주며 즐겁게 해주었다.
자잘한 버릇, 취미, 위생감을 소중히 했던 것. 난처하면모호하게 미소 짓던 것.
한꺼번에 다 읽을 수는 없었지만 글을 통해 그 애의 그런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 P345

내가 자전거 뒤에 태워달라고 억지를 부렸을 때다.
내가 지르는 환성이 들렸다.
이렇게 티 없이 즐거운 듯 웃었다. 그리고 그걸 잊고 있었다.
"히노, 너무 몸을 앞으로 내밀지 마. 그러다 떨어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미야다. 가미야 도루. 내남자친구였던 애.
고등학생치고는 침착한 목소리의 임자에게 내가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 P348

"너희 둘은 늘 정말 즐겁게 이야기했었어. 사귄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놀랐지만 익숙해지니까 어쩌면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넌 남자친구님이라든지 도루라고 부르는데 가미야는 계속 널 성으로 부르는 게 좀 귀여웠어" - P349

"도루의 인생은 너랑 함께한 기억으로 환해졌다고 생각해, 도루는 이제 없어. 하지만 도루가 좋아했던 건 너야. 소중히 하고 싶어 했던 것도 모두 너거든."
그 말에 가슴이 메어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 P353

• "전 그 소중한 걸 잃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그 애를 잊어갈 거라면..... 전 조금씩 그 애를 기억해내고 싶어요. 소중한 걸 되찾아보고 싶어요." - P355

"언젠가 다시, 너를・・・ 누나는 거기서 일단 말을 끊었.....
다. "약간 대담한 표현을 쓰자면, 언젠가 다시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사람을 사랑해줘. 도루는 과거로 돌리고."
사랑의 의미를 나는 아직 모른다. - P356

어떤 슬픔도 사람은 언젠가 잊어버린다. 상처는 언제까지고 아픈 것은 아니다.
도루의 누나가 한 말을 떠올리면서도 아플 동안은 울자고 생각했다. 상관없다. 울보면 뭐 어떤가전부 내 것이다. 슬픔도, 아픔도, 기쁨도, 추억도, 전부,
전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또 울었다. - P362

일기와 내 말을 참고해 도루와 함께 갔던 장소에 가서도루와 함께했던 일을 하며 기억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홍차 때처럼 되지는 않았다.
일은 간단하게도 단순하게도 풀리지 않는다. 그래도 마오리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직시하고 있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잊어버린 자기 과거를 계속 직시하고 있었다.
조금씩이기는 해도 도루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갔다. - P366

"진짜 눈처럼 보이기도 하지. 하늘이 모르는 눈이라고했던가? 일기에서 읽었는데, 그 애랑도 여기서 꽃구경을한 적이 있나 봐. 그때 그 애가 벚꽃을 그렇게 부른다고 가르쳐줬거든." - P370

마오리는 지금도 완강하게 도루의 데이터가 든 스마트폰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소중한 것은 자기 안에 있다며자력으로 생각해내려 하고 있다.
그게 가끔 슬플 때가 있다.
설령 기억을 되찾는다 해도 도루는 돌아오지 못한다.
어떻게 해도, - P371

벚꽃이 활짝 핀 벚나무 아래.
빠르다. 실은 마오리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처음 봤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윤곽을 잡아가나 우그래… 그렇겠지. 마오리는 매일 반복하고 있으니까.
도루와 함께 있었을 때도, 도루가 떠난 뒤로도, 매일,
순식간에 밑그림이 완성됐다.
벚나무 밑에 누가 있었다. 서서히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날 셋이서 꽃구경을 했을 때의 도루가 있었다. - P373

상실뿐인 세상에서 도루는 분명히 거기 있었다.
마오리 안에서 도루는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마오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 애는 그런 표정인가.
마오리가 그린 도루는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다정한 얼굴로 마오리를 지켜보던 그날 그대로 지금도거기서 웃고 있었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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